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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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에서는 수많은 신들이 인간을 개미처럼 가지고 논다.
그들은 인간보다 고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한낱 인간이 지닌 다양한 욕구와 감정 역시 가지고 있었다.
유희, 악의, 분노, 욕망…….
오직 사랑만을 제외한 모든 것들.
그런 감정은 가끔 신들의 전쟁으로 번졌고, 신자들의 파멸과 함께 신을 영원한 잠에 빠뜨리기도 했다.
“모든 신이 무적인 건 아냐. 형체를 갖춘 모든 것은 죽일 수 있어,”
“공작님, 저것은 신입니다!”
“내 말 잘 들어, 레안드로스 경. 인간이 신을 죽일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야.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그들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뭔지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바로 미치기 때문이라고!”
레안드로스는 나를 흡사 미치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레안드로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붉은 숫자였다.
[64/70]언제는 60이기도 했고, 언제는 50이기도 했던 숫자.
하지만 70이라는 수치만은 변하지 않았다.
시시각각 줄어들기만 하는 숫자와, 변하지 않는 수치.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이성과, 그런 정신을 좀먹으며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세계관.
저 수치가 가리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공작님. 흥분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
“난 지금 어느 때보다 멀쩡해. 레안드로스, 딱 하나만 믿어주면 돼. 딱 하나만.”
“무엇을? 제가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그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 조연인 나를 믿지 않는다면 베드 엔딩은 확정이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나를 믿어. 네 주인인 나를 믿고 검을 들어!”
“공작님.”
“알고 보면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어, 이게 옳은 길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맹세해. 내가 너를, 너희들을.”
“아렌하이트 하르트만 공작님!”
“너희들만은 끝까지 살아남게 해줄게.”
고작 세 번의 죽음으로는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어떤 엔딩이 이 이야기를 영원히 종료시킬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레안드로스를 이 책의 끝까지 데려갈 것이다.
“날 믿어?”
레안드로스는 화내지도, 그렇다고 더 이상 뭐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는 기가 막혀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눈매가 점점 매섭게 치솟고 있는 걸로 봐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윽고 레안드로스가 낮게 으르릉거렸다.
“이게 조카였으면 벌써 거꾸로 매달아 놓고 종아리를 호되게 때렸겠지.”
“뭐라고?”
“지금 제 앞에서 공작님이라는 신분으로 서 계신 걸 다행으로 생각하십시오.”
“그거 호위 기사가 할 법한 말이 맞아? 너무 건방진 거 아냐?”
“공작님이야말로 주인의 자각이 없으신 건 아니십니까?”
이게 아주 맞먹으려고 하네.
레안드로스는 내 손을 밀어내며 짜증스레 말했다.
“신이 신을 죽일 수 있다고 해 봤자, 여기에 있는 건 아품 자의 분신뿐입니다. 저 여신을 격퇴할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도 자신 있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그야 아품 자의 유일한 신도가 여기 있으니까. 명색이 신이라는 자가 하나뿐인 신도가 위험에 처했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눈사람이 발을 톡톡 굴렀다.
“만물의 어머니가 온다. 위대하신 아품 자, 강하다. 하지만 멀다. 멀리 있다. 만물의 어머니, 검은 풍요의 염소. 가까이 있다. 강하다.”
“알아. 게다가 여기에는 슈브-니구라스의 자식들이 있지. 신에게 종속된 마수는 하나하나가 신자인 셈이야.”
“그렇다면 이 눈사람…… 아품 자가 힘을 빌려줘도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까?”
레안드로스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눈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신자. 신을 부른다. 이 자리에 존재를 강림시킨다. 내 말 맞다?”
강림.
신은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일이 드물었다.
대신 종속된 자식, 혹은 계시를 내려 자기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수많은 형상 중 하나를 택해 분신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신의 강림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로 취급된다는 뜻.
강림이라는 단어에 레안드로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신관이나 사제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계속 생각을 해봤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것 같더라고.”
별걸음쟁이는 왜 나를 삼켰을까.
어인은 왜 나를 씹어버리고 눈을 가져갔을까.
슬레이프니르는 왜 내 머리카락을 탐냈을까.
수많은 어인을 마쳐도 깨어나지 않던 심해 속의 괴물이 내 눈알 하나로 눈을 뜬 이유는 뭘까.
별걸음쟁이가 웅크린 동부의 구덩이 속으로 떨어뜨린 내 피는 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인면쥐에게 건넸던 머리카락 몇 가닥은 무슨 가치가 있었을까.
전 공작부인은 아렌하이트를 어떻게 길렀으며, 그녀는 외계의 이방인을 위해 어떤 그릇을 준비했을까.
매일 밤 떠올랐던 무수한 의문이 가리킨 해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늘은 더욱 새빨개졌다.
불살라진 건물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다.
어디선가에서 더운 공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모든 것은 불티와 재의 냄새를 품었다.
종소리는 성난 폭풍처럼 울리고,
염소의 울음소리와 단단한 발굽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눈사람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눈사람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불경하고 어리석은데다 배은망덕한 신자.”
“하지만 너의 하나뿐인 신자지.”
눈사람의 손을 잡자 뼛속까지 얼리는 한기가 손바닥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붉은 책이 멋대로 펼쳐지며 페이지가 넘어갔다.
눈을 마주치기 두려운 주문과 그림이 넘어간 끝에 멈춘 곳은 거대한 불꽃의 그림이었다.
그 불에는 재가 없고, 불씨가 없고, 온도가 없었다.
그저 영원불멸 타오를 뿐인 창백한 푸른 아지랑이.
페이지 속에서 목소리가 속삭였다.
-나의 신자여.
글의 잉크가 흘러내려 손을 까맣게 적셨다.
폭포처럼 샘솟는 잉크가 바닥을 물들이며 번졌다.
불길한 징조에 레안드로스가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온몸의 온기를 빼앗긴 것처럼 체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어리석고 불경한 자여, 부조리하고 모독적인 행태를 일삼는 나의 작은 신자여.
눈사람이 녹아가고 있었다.
흐물흐물하게 물이 되는 눈사람을 보면서, 나는 손바닥의 한기가 심장까지 뻗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연결고리를 형성하기 위해 보냈던 분신은 거두고, 분신으로써 사용하기 위한 힘은…….
-나의 축복을 받으라.
바싹 마른 눈송이를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내 몸의 모든 주도권을 그에게 넘겼다.
* * *
레안드로스는 눈사람이 완전히 녹아 사라진 자리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렌하이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렌하이트가 괜찮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당장 아렌하이트에게 일어난 변화조차도 알 수 없었다.
호흡 한 번, 손짓 하나까지 그가 알던 아렌하이트와 완전히 같았다.
행여나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면?
레안드로스가 아렌하이트를 향해 한 발짝 내디뎠을 때 소리가 들렸다.
-메에에.
염소?
레안드로스는 뒤를 돌아봤다.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한 길 한가운데에는 작은 염소가 한 마리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까만 털을 가진 염소는 목에 작은 종을 매달고 있었다.
염소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레안드로스도 염소를 마주 바라봤다.
염소의 일자 눈동자 속에 레안드로스와 그 뒤의 아렌하이트가 담겼다.
물러나야 할까?
레안드로스가 망설이던 찰나 앳된 음성이 말했다.
“아니, 등을 보이는 것보다 그대로 있는 편이 대비하기에 좋을 거야.”
“공작님?”
“이 몸으로 공작님이라고 불리니까 기분이 안 좋은걸. 위대하신 아품 자님이라고 부르지 그래?”
아, 젠장.
레안드로스는 단박에 공작님의 안에 든 게 뭔지 정체를 알아차렸다.
빌어먹게도 아렌하이트가 원하던 대로 된 모양이었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그의 옆에 섰다.
“저걸 봐. 금방이라도 우리를 치려고 벼르고 있잖아. 자식들이 엄마에게 죽는소리를 좀 했나 본데.”
“……내 눈에는 작은 염소로 보인다만.”
“그래? 진짜로 그렇게 보이나? 하여간 인간들의 감각이란.”
묘하게 즐거워하는 목소리에 레안드로스는 염소를 다시 자세히 관찰했다.
움찔거리지도 않는 귀. 노란 눈에 검은 일자 동자. 뾰족하게 난 수염. 재질을 알 수 없는 종. 깨끗한 까만 털. 그 아래에 있는 커다란 그림자…….
잠시. 커다란 그림자?
레안드로스는 여태까지 연기와 일렁거리는 불빛에 시선을 뺏겨 바닥을 보지 못했다.
바닥에 그려진 염소의 그림자는 비정상적으로 컸다.
게다가 그것은…… 염소 모양이 아니었다.
검고,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계속해서 부풀었다가 서로 엉겨 붙어 가라앉는 그림자 덩어리들.
부패한 피비린내가 났다.
염소가 울었다.
-메에에.
그뿐이었다.
그 울음에 반응하기 시작한 그림자가 땅에서 일어나 현실로 빠져나왔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입이 뻐끔거리면서 자식이 아닌 존재를 탐하려 미쳐 날뛰었다.
실체가 생긴 그림자가 두 사람을 덮쳤다.
레안드로스는 반사적으로 아렌하이트를 감싸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돌조각을 쩝쩝거리며 씹어대던 그림자는 바닥에 넓게 퍼졌다가 오므렸다.
저 검은 것에 한 번이라도 닿았다가는 뼈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를 일으켜 세우며 제 뒤로 밀어냈다.
그나마 보호해야 할 사람이 하나뿐이라 다행인가.
아멜리아와 베르데를 미리 마을 밖으로 빼돌린 아렌하이트의 선견지명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의 속에 든 신에게 경고했다.
“뒤에 가만히 있어. 도망갔다가는 둘 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
“뭐?”
“못 알아들었나? 내가 막을 테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이 몸이 왜 그래야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황당한 답변에 레안드로스는 잠시 사태의 심각함도 잊고 뒤를 돌아볼 뻔했다.
하지만 레안드로스의 노력과 상관없이, 아품 자의 분신이 된 아렌하이트가 그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심드렁한 것도 같고, 귀찮은 것도 같은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갈색 눈은 어느새 무감정한 회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딛는 자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얼었고, 더운 공기는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바뀌었다.
아품 자의 강림체는 하늘 위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러면 되잖나.”
하늘?
레안드로스가 고개를 위로 들었을 때,
그는 어두운 구름 속에서 우박이 쏟아지는 것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