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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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의 영웅은 마을을 구하고 나서도 얼마간 갤로에 머물렀다.
마을에 찾아온 여신의 화신체는 무너뜨렸지만, 그녀의 권속이 된 마수까지 완전히 퇴치된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남은 잔당을 소탕하는 사이에,
그의 일행들도 함께 마을에 머무르며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거나 타지 않은 주거 구획을 찾아내 보수를 서둘렀다.
무너진 건물이나 흩날리는 재는 여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살아남은 마을 주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 정도일까.
북부 외곽과 중심부의 상점가에서 시작한 화재는 건물과 집을 전소시켰다.
그래도 사람들이 지낼 멀쩡한 집은 아직 남아있었다.
마을 주민의 상당수가 이미 괴물이 되어 빈집이 많기도 했고.
베르데는 갑자기 환자가 무더기로 쏟아지자 죽는 소리를 내며 치료에 전념했다.
아멜리아도 그를 보조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진짜로 신경을 쏟고 있는 일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마을 내외에서 시작될 여론전과 교섭.
“와, 왕실 직할령에서 대, 대규모의 화재가 바, 발생했으니 다, 다른 곳에 있던 대리인도 곧 오, 올 거예요. 그때 중요한 건 레안드로스 경의 고, 공적뿐만 아니라 어, 어떤 경로로 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느냐, 는 이유인데.”
“유릭 왕세자가 조건을 걸었기 때문에 온 거라고 말해줄 수는 없어요. 잘 둘러대는 수밖에. 하지만 우리가 갤로에서 해낸 일이 대리인을 통해 왕실로 직접 올라가면 보기 좋겠군요. 겸사겸사 소문도 좀 더 내고.”
아멜리아는 누워있는 아렌하이트 공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좀 어때요?”
“베, 베르데가 치료하고 있어요. 다, 다들 고마워하고 있기는, 한 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물론 있겠죠?”
“초, 촌장을 적극적으로 지, 지지하던 사람들이 있어서. 여,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 중입니다.”
“잘 살펴봐 주세요. 이런 경우에 우리 쪽에서 반박해야 할까요?”
“그, 그런 것보다는. 가, 같은 마을 주민이 저희를 오, 옹호하게 만드는 게 좋지……않을까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잘 부탁합니다.”
당장은 제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네요.
그렇게 덧붙인 아렌하이트가 제 몸을 내려다봤다.
아멜리아의 시선도 무심코 함께 따라갔다.
잠시 신에게 빌려주었던 몸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렌하이트는 제 몸을 제법 귀하게 여기고 잘 관리했지만,
그가 모시는 신은 그 몸을 일회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 굴려댄 바람에 아렌하이트가 감당해야 할 내상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느, 늑골은 어, 어떻게 되셨는지. 부, 붙을 수 있, 대요?”
“가만히 있으면 된대요, 대신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던데.”
아렌하이트의 손과 얼굴에는 화상 때문에 수포가 올라와 있었다.
까맣게 탄 머리카락은 한 움큼이나 잘라냈지, 빗장뼈나 갈비뼈도 몇 군데 골절이 되었지.
타박상은 기본이고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된 주제에 아렌하이트는 기뻐하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는 겨우 면했기 때문이라나.
“다친 건 상관없어요. 나는 무술을 배운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목숨을 구한 걸로도 득을 본 거죠.”
“아, 아무리 그래도.”
“레안드로스의 이름을 앞세워서 갤로의 남은 주민들을 규합하고, 마을의 복구와 안정을 빌미로 하르트만 공작가에 의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지금까지 마을 두 개는 공작령으로 편입시킬 수도 있을 거고.”
“예산은 추, 충분할지. 그게 무, 문제인 것 같네요.”
“아.”
예산. 예산.
그렇게 중얼거리면 아렌하이트는 힘겹게 아멜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만한 마을을 지원하려면 돈이 얼마나……?”
“자, 잘은 모르겠지만, 아른트 씨가 예산안 편성에 비, 비명을 지를 정도이지는 아, 않을까요.”
“그건 안 되는데.”
앳된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저 머릿속에 영지 확장과 성 운영, 사업이 함께 들어 있으니 복잡할 만도 하겠지.
아멜리아는 이제 슬슬 성을 비워놓는 것도 좀 그렇지 않느냐고 운을 떼려 했다.
그러나 아렌하이트가 예상외로 먼저 입을 열었다.
“아멜리아 양. 저는 공작저로 돌아가야겠어요.”
* * *
아멜리아의 말을 들은 순간 여기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돈, 돈, 그놈의 돈.
한국에서부터 신물이 나게 겪었던 재정 이슈가 여기서 발생하다니.
하지만 아멜리아의 지적은 옳았다.
아무리 디켄터 산맥을 상단에게 대여해준다고 해도 수익은 한정적이다.
고용인들의 보수,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 베르데의 여비, 앞으로 하르트만 아래로 편입될 많은 도시와 마을.
장기적으로 따져보자면 돈이 들어갈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레안드로스가 막 활약을 하려는 순간에 돈이 없어서 성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그것만큼 체면 구겨지는 일도 없겠지.
“공작저에서 상황도 좀 보고, 앞일을 대비하려고요.”
“괘, 괜찮으시겠어요? 제, 제가 대신 가도.”
“정말로 필요하게 된다면 그때 편지 보낼게요.”
아멜리아는 약초와 붕대를 덕지덕지 붙인 내 몸을 보며 뭐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가능한 내 고생을 줄여주고 싶다는 의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아멜리아는 레안드로스와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았다.
낯선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고 잘 구워삶아서 공작저에 호의적으로 만들어놔야지.
그런 건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니까.
“그렇다, 면야. 제가 처, 첨언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요. 저, 저는 주민 사이 정세를 살필 겸 베, 베르데를 도우러 갈게요.”
“일부러 와줘서 고마워요.”
아멜리아가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들췄다.
“아멜리아 갔어.”
“인간 여자, 갔다? 이제 괜찮다?”
“괜찮고 말고를 떠나서 계속 안에 있으면 내가 춥다고.”
이불 아래에서 눈사람이 어기적거리며 기어 나왔다.
아품 자와 내가 분리되어 눈사람인 분신체로 돌아왔을 때 레안드로스는 아품 자를 밟아버리려고 했었다.
이유는 멋대로 내 몸을 훼손시켰다는 사실.
물론 정신을 차린 내가 극구 말려서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만.
대신 아멜리아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그녀도 눈사람에게 꽤나 냉혹한 자세를 고수하게 되었다.
지금껏 아멜리아가 알게 모르게 작은 눈사람을 귀여워했기 때문일까.
눈사람은 제법 상심이 큰 모양이었다.
“위대하신 이 몸. 큰 활약 했다. 왜 이런다? 대접 불만이다. 인간 기사, 영웅이다? 왜 나는 아니다?”
“내가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잖아. 그만 섭섭해해. 아멜리아도 조금 있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기약 없다. 인간, 변덕스럽다.”
“그보다 하던 이야기나 하자. 슈브-니구라스에 대해서부터.”
눈사람을 대충 달래면서 이불 위로 들어서 앉혔다.
눈사람은 얌전히 앉아서 내 곁에 놓인 붉은 책, 마도서 프나코틱을 가리켰다.
“저 책. 신과 권속, 유산에 대한 정보다. 프나코틱, 이계의 존재가 작성했다. 인간, 읽는다? 미친다. 하지만 신자, 나의 가호를 받았다. 드림랜드에서 취득했다. 신자가 주인이다.”
“그건 이해했어.”
“슈브-니구라스. 모든 것의 어머니. 프나코틱에 나온다. 그녀의 아이도 나온다. 권속, 자식. 이 마을, 그녀의 자식들로 가득했다.”
“결국 신이 권속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지.”
“신, 특별한 경우 아니다? 권속 때문에 화신체를 보낸다? 말도 안 된다. 슈브-니구라스? 마을에 왔다. 분신체도 왔다. 이건 그럴 수 있다. 화신체도 왔다. 이건 이상하다. 위험하다.”
“신의 화신체는 어떤 경우에 오는 건데?”
“가치가 있을 때 온다.”
언뜻 들으면 알쏭달쏭한 답이었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이라는 놈들은 자신을 떠받드는 개미 떼 말고는 다른 존재들에게 하등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신이 이 마을에 화신체를 보냈다는 말은.
“관심을 가진 거군. 여기에 있는 뭔가에.”
아무리 자신의 자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신.
그런데 우리가 오자마자 갑자기 관심을 돌려 여기에 직접 화신체를 보냈다.
여신의 관심을 끈 존재가 누구인지는 굳이 유추하려 하지 않아도 뻔했다.
어쩐지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감이 너무 심해질 거야. 여기저기서 함부로 건드리라고 레안드로스를 데려온 게 아니야.”
주인공이니 이 세상의 근간마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두 번째 마을부터 신의 화신체라니.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일이 잘못 흘러가면 진짜 신도 마주치는 거 아니냐고.
“신자, 그러면 어떻게 한다? 인간 기사. 나의 축복을 받았다. 화신체를 무너뜨린 인간. 분노하는 신. 흥미 있는 신. 독종들 있다. 관심이 있다.”
“그렇겠지.”
“신의 관심. 인간들에게 유해하다. 좋을 것 없다. 위대하신 아품 자 제외. 아품 자, 너그럽다.”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부터는 레안드로스만의 여행길이지. 조연인 내가 나설 무대는 없는 거야.”
레안드로스는 여기에서 극권의 군주, 아품 자의 의지를 떠받드는 사도로 거듭났다.
인간은 신을 죽이지 못하지만, 같은 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대리자는 죽일 수 있지.
인간이 신을 죽인 전례는 없다는 말을 훌륭하게 회피해낸 결과였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크게 걸리는 부분은 없을 테니까.
“나는 슬슬 영역으로 돌아가야 해.”
애를 너무 싸고도는 것도 안 좋아.
적당히 때가 되면 풀어주고 하면서 세상의 거친 풍파를 겪어보게도 해야지, 암.
적당히 레안드로스를 뒤에서 받쳐주고 나도 나 나름대로 유릭을 피하고 레안드로스의 위광을 등에 업어 살아남을 기회를 만들어 봐야지.
그렇게 결정을 내린 지 몇 시간 후.
“고, 공작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들어와요?”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아멜리아가 다급하게 방에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짧은 서신이 한 통 들려 있었다.
이미 한 번 뜯긴 봉투에는 편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걸 받아 읽어보는 중, 내 손 안에서 편지지가 와작와작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이…… 미친 새끼들!”
[친애하는 갤로 촌장, 마쿠스 씨.먼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합니다.
왕실직통속령(王室直統屬領領) 갤로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 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을 보유한 자가 갤로의 피해 규모와 복구, 지원 대책을 마땅히 세워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쁘시겠지만 화급한 논의를 위해 북동부 도시 발렌타인을 직접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