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34
(33)
어떤 약사나 의사도 아멜리아를 치료할 수 없다.
나는 바닥에서 뒹구는 아멜리아를 뒤로 하고 바로 방을 나갔다.
진찰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작부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이런 상태라는 걸.
그녀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 옆에는 하인이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 하인은 숱한 방문객들이 아멜리아를 치료하지 못하고 뛰쳐 나가는 걸 봐왔겠지.
“남작님을 뵐 수 있을까요?”
“남작님을?”
“아놀드 아가씨를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했다고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아멜리아에게 알아낼 정보가 있기도 하고.
하인은 내 말에 뜻밖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남작부부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남작부부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얼굴에는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뱉은 첫 마디에 그들 역시 의아해 했다.
“영애의 치료를 위해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예. 영애께서 앓는 병은 질환이 아님을 아시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그렇지. 하지만 다른 의원이나 약사는 광증은 약으로 고칠 수 없다고 하더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멜리아가 미친 건 아닐 거다.
보통 이 세상에서 광기라고 하면 보다 더 편집증적인 면이 추가 된다.
비이상적인 행동과 언어라던가.
하지만 아멜리아는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있었다.
일방적이긴 해도 이야기도 제대로 했지.
“제 생각에는 염려하신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친 게 아니란 말인가! 광증이 아니라고, 그 애가 그러는 이유가 대체 뭔가?”
“저도 천천히 알아봐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지금 상태로는 영애의 안전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몸을 긁는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의 신체 훼손에 거리낌이 없었지.
나중에 혀라도 깨물면 곤란했다.
“하인들을 시켜 아가씨를 강제적으로라도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식사도 소화가 가능한 것으로 주시고, 방의 위생도 함께 신경 써주십시오.”
“그럼, 그럼! 내 당장 그럼세. 또 다른 게 있는가? 아예 그 애를 침대에 결박해 두겠네.”
네?
“결박이라고 하시면.”
“손이나 다리를 묶어두면 발광하지 못하겠지. 자네가 말한 게 그게 아닌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시대가 시대니 비인권적인 발언도 나온다는 걸 생각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
나는 머리를 한참 굴리다가 제안했다.
“이 방법은 어떨까요?”
그리고 잠시 후,
아멜리아의 방은 갑자기 우르르 들이닥친 하인들에 의해 깨끗이 정리되었다.
아멜리아는 발광을 하면서도 억센 하녀들 여섯 명에게 끌려가 씻김을 당했다.
그 사이에 하인들은 깨진 장식품이나 뜯어진 카펫을 치웠다.
그 외에 부서질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그리고 침구를 담당하는 하녀들이 아멜리아의 커다란 침대 시트를 갈았다.
그 후, 아멜리아가 비척거리면서 나오자 하인과 하녀들이 힘을 합해서 아멜리아를 이불로 감쌌다.
그것도 두껍고 포근한 새 이불로.
아멜리아를 이불 째로 말아버린 후에는 다른 시트를 사용해서 이불을 묶었다.
거대한 이불말이가 된 아멜리아는 몸부림을 쳤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긁진 못했다.
아멜리아를 침대에 앉히고 환기까지 하고 난 하인들은 왔을 때처럼 우르르 빠졌다.
나는 침대 옆에 의자를 끌고 가서 앉았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드리네요.”
“미친 새끼.”
“마음대로 부르시고요. 아가씨를 치료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 하세요.”
“이거 풀어! 네가 뭔데, 네가!”
“혹시 시중이 필요하시면 제게 말하시거나 하녀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미친 새끼.”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아멜리아의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소통을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풀어달라, 살려달라, 그런 말 뿐.
이대로 가다가는 아멜리아에게서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변인으로 탐문의 범위를 넓혀보기로 했다.
첫 번째 타겟은 옛날부터 아멜리아를 모셨다는 전담 시녀였다.
“아가씨께서 이렇게 되어서 정말 슬퍼요. 사실, 아가씨께서 공작가에서 돌아오셨을 때 정말 살았다 싶었거든요. 왕궁에서 하르트만 직계의 처벌을 논한 직후였으니까요.”
“그렇군요. 저는 그 때는 하르트만에 있지 않아서 잘 몰랐어요.”
“그 상황에서 아가씨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짐작도 못했답니다. 정말 시름시름 앓으셨어요.”
“앓았다는 말은……?”
“아, 지금 같이 되기 전의 일이라서요. 몸도 안 좋아지시고, 침울해지시고. 즐기시던 독서도 관두셨거든요.”
그녀는 당차게 물수건을 짜서 겨우 잠든 아멜리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저희는 아가씨가 하르트만과 관계가 없는 게 입증 되었으니 무사하실 거라고 위로를 드렸죠.”
“그랬더니 영애께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 말도 않으셨어요.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만 하셨죠.”
“남작님과 남작부인께서는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하셨죠! 아가씨가 좋아할 만한 것들은 전부 사들이고 선물해 주셨어요. 몸에 좋은 것도 공수해서 식사에 올리셨고요. 고용인들까지 재배치하실 정도로 신경 쓰셨어요.”
“고용인들은 왜?”
“당연히 아가씨를 위해서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크게 소용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어느 순간부터인가 예민해지시더니, 나중에는…… 아시죠?”
전담 시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녀의 말을 듣다보니 묘하게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단순히 유릭과 결탁했다면 그렇게 침울할 리가 없었다.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을 때 슬퍼했겠냐?
크비슬링이 눈물 흘리면서 노르웨이 국영방송국에 가서 수상 발표를 했겠느냐고.
분명 아멜리아의 증세가 하트르만과 관련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 ‘어느 순간’이 언제쯤인지.
“혹시 이 저택에 아가씨께서 자주 교류했던 사람은 없나요?”
“남작님과 남작부인께서는 항상 바쁘셨거든요. 게다가 도련님은 수도로 유학을 준비 중이셨어서요. 방에 혼자 계셨을 때는 저나, 하녀장님?”
아멜리아는 외향적인 성격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다못해 시녀가 친구조차 언급하지 않는 걸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런 식으로 몇 명의 고용인들과 더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아래층까지 내려갔다가 복도를 어슬렁거리다보니 누군가가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약사님.”
검은 머리에 제법 훤칠한 얼굴의 하인이었다.
피부가 묘하게 하얘서 인상이 도리어 희미해지는 사람.
누구더라. 아, 맞다.
“그 쪽은 주스 하인이죠?”
“……아가씨의 주스 전담은 아니긴 하지만요.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약식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고요. 남작 영애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충 둘러대자 하인은 싱그럽게 웃었다.
“약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아가씨가 많이 호전되신 것 같아요.”
적어도 자해는 멈췄으니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려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은 지금 막 기억난 것처럼 주머니에서 뭔가를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얇은 종이에 싸인 말린 풀이었다.
“이건?”
“아가씨의 전담 시녀가 말하더군요. 약사 선생님이나 아가씨나 잠을 잘 못 이루신다고. 이건 수면향 약재인데 한 꼬집 태우시면 숙면이 가능해요.”
“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약재를 잘 챙겨뒀다.
안 그래도 아멜리아가 밤낮없이 울부짖어서 내 인내심이 걱정 되는 참이었다.
하인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바쁜 일이 있어 가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더 이상 탐문할 거리가 없는 나도 아멜리아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멜리아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고함이 나를 반겼다.
곁에 있던 시녀는 평소보다 더한 발작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풀어! 풀어달라고 했잖아, 이 망할 년아! 내가 이거 풀기만 하면 넌 죽었어. 알아? 아냐고, 이 싸가지 없는 년!”
“아가씨, 제발 진정하세요……. 선생님! 아가씨 좀 봐주세요!”
나를 발견한 시녀는 구세주라도 발견한 것처럼 달려왔다.
시녀의 얼굴도 눈물범벅이라, 나는 그녀를 잘 달래서 방에서 내보냈다.
침대 위에서 씨근덕거리는 아멜리아를 보자니 살아있는 악귀가 따로 없었다.
“풀어! 풀어어!”
“아뇨, 약기운이 빠지기 전까지는 안 돼요.”
“네가 뭔데 이 미친 새끼야!”
남작가의 영애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까지.
조만간 중독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약초라도 찾아봐야겠다.
침대 옆의 테이블 위에는 인센스를 태우는 작은 모래 향로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아까 하인에게서 받아온 향을 조금 털어 넣고 불을 당겼다.
이러면 모래가 뜨거워지면서 안에 든 것을 서서히 태우는 방식이었다.
이거라도 써서 좀 재우자.
“저녁 시간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가씨. 조금 진정하시고, 주무시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풀어어어!”
당분간 아멜리아를 혼자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향내가 조금씩 퍼진 후, 나는 방을 도로 나섰다.
이 아가씨가 약기운을 조금이라도 빼야할텐데.
* * *
그날 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
지키는 이들이 없는 남작 영애의 침실 앞.
평소 같으면 비명이나 고함이 희미하게 들렸을 텐데, 오늘따라 유독 조용했다.
그렇기에 도리어 아무도 지키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제정신이 아닌 아가씨의 폭언과 발작에 오랫동안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시달렸기 때문에.
침실 문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리조차 나지 않게 문을 열자 방 안에서 타던 약초 향기가 훅 끼쳤다.
무겁고 텁텁하지만 달콤한 향기.
사람의 의식을 몽롱하게 하고 무의식으로 이끌어 준다는 수면향.
침입자는 마치 뱀처럼 매끄럽게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거대한 포대기에 꽁꽁 싸여 눈을 감고 있는 아멜리아가 있었다.
보기 흉할 정도로 비쩍 마른 그녀의 눈꺼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침대에 있는 여분의 베개를 집어 들었다.
아멜리아가 지금이라도 눈을 뜬다면 충분히 사람을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고,
비명이 나오더라도 베개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어떤 소음도 없는 조용한 살인의 현장.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아멜리아의 품 손으로 손길이 들어왔다.
깡마른 목을 더듬던 손은 뭔가 잡히자마자 그것을 움켜쥐었다.
투둑.
힘없이 끊어진 줄을 꽉 쥔 그림자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섬뜩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뭐해?”
젖은 후드를 뒤집어쓴 약사 선생이 열린 방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