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41
(40)
아이든이 아른트를 끌고 달려간 곳은 말을 매둔 곳이었다.
거기에는 말이 딱 한 필 서있었다.
아이든과 아른트가 타고 온 말 중 하나였다.
본래는 더 많았지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동부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타고 간 탓에 대부분이 사라졌다.
아이든은 아른트를 무작정 하나 남은 말에 태웠다.
“뭐 해요?!”
“잘 들어. 우측으로 가면 황무지밖에 나오지 않지만, 좌측으로 쭉 가면 산맥 방향이라 그나마 고지대가 나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데요?”
“거기까지 진흙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숨어서 밖에서 올 구조대를 기다려.”
“그쪽은요? 같이 타면 되잖아요!”
고삐를 쥔 아른트의 손바닥이 축축했다.
아이든은 뒤쪽에서 여기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피난처의 사람들을 눈짓했다.
“내가 내 사람들을 두고 혼자 도망가다니, 안 될 말이지.”
“그런 궤변이 통할 거라 생각하냐고요!”
“같이 탔다가는 둘 다 멀리 가지 못할 게 뻔하니까. 처음 가는 길이라고 무서워하지 마.”
“그런 것보다 내가 왜 혼자서…….”
아른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이었다.
“밖에 나가면 도련님한테 말 좀 잘 해줘. 알겠지? 구덩이에서 나온 마수야 큰 놈이 아닐 테니까 괜찮아. 먼저 가!”
아이든이 매섭게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
말은 크게 울며 허공에 앞발을 휘젓다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얼결에 자세를 낮춘 아른트는 뒤를 돌아봤다.
피난처였던 막사의 뒤로 검고 끈적거리는 진흙의 파도가 배경처럼 그려졌다.
사람들의 비명과 살려달라는 외침,
도망가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로 멀어졌다.
아른트는 그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달렸다.
미처 챙길 수가 없었다.
밤하늘을 울리는 거대한 괴성이 울렸다.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무엇인지 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른트는 그저 본능에만, 감각에만 의지해서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아이든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왼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이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공작님은? 구조대는?
누군가가 알고 있기나 한 건가?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며칠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한 말이 결국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아른트는 헝겊 인형처럼 메마른 땅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머리가 세게 부딪힌 탓인지 세상이 하얬다가 다시 까맣게 변했다.
이마 위로 미지근한 액체가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 느껴지는 격통 때문에 아른트는 몇 번이나 실패하다가 겨우 몸을 뒤집었다.
누렇고 메마른 땅이 검게 변해 있었다.
황무지를 뒤덮은 검은 진흙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원인도,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재앙.
그 위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거대한 괴물.
아른트는 진흙이 자신의 발목을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피난처는 파괴되었으며, 거기 있던 사람들도 전부 진흙에 삼켜졌을 것이다.
아이든이 애써 보내줬지만 고작해야 몇 분 더 목숨을 연장한 것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몇 걸음 더 걷자고,
몇 번 더 숨을 쉬어 보자고.
아이든이 자신에게 고삐를 준 건 아닐 텐데.
“차라리 당신이 타고 가던가…….”
당신이 나보다는 더 똑똑했으니까.
그게 맞지 않았을까.
아른트는 등 뒤로 스며드는 축축한 액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소리 없이 다가온 마수는 아른트의 몸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아른트는 어둠 속에서도 마수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일곱 개의 다리에는 백 개가 넘는 발이 달려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서 뻐끔거리는 구멍에서 역한 악취가 났다.
입이라고 생각되는 기관에는 가느다란 촉수들이 무수히 나서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의 팔이었다.
수천 개의 팔이 허공을 쓰다듬고, 서로를 쥐어뜯다가 돌이든 먼지든 닥치는 대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아른트는 그 모습을 보고도 기절하지 않았다.
다만, 죽음이 있다면 이런 끔찍한 모습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첫 번째 팔이 아른트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른트는 더 이상 어떤 의지도 없이 눈을 감았다.
그가 끈적한 진흙 속에서 끌려나와 무수한 팔들의 환영을 받아들일 찰나.
“레안드로스!”
하늘 위로 붉은 유성이 길게 이어졌다.
팔이 들리지 않는 외침을 뱉으며 후두둑 진흙 위로 떨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통증에 눈을 뜬 아른트의 앞에는,
한 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밤하늘만큼 검은 낡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오래된 검을 쥐고 있었다.
아른트는 그 검을 익히 봐왔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처음 보는 기분을 느꼈다.
별과 같은 은색의 검신을 타고 도도히 흐르는 빛.
레안드로스의 발이 질퍽한 땅을 박찼다.
마수는 허공으로 뛰어오른 먹잇감을 향해 움찔거리는 목구멍과 팔을 쩍 벌렸다.
하지만 그 먹잇감의 종착지는 마수의 뱃속이 아니리라.
매서운 검의 궤적이 마수의 몸통을 꿰뚫었다.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역겨운 체액이 비처럼 쏟아졌다.
아른트는 멍하니 그것을 보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과 함께 진흙 속에 파묻힌 아렌하이트는 마수를 직시하고 있었다.
겁도,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역겨움도, 혐오도, 공포도 보이지 않았다.
아른트는 전 공작부인을 떠올렸다.
언제나 초연한 태도.
모든 일에 의연한 자세.
어떤 겁박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
아렌하이트가 아른트를 내려다봤다.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데리러 왔어.”
이제 아렌하이트는 그의 하르트만 공작이었다.
* * *
결과적으로 산맥을 타고 내려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눈앞에서 마수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아른트가 습격당하고 있던 걸 구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일어날 수 있겠어?”
아른트는 약간 얼이 빠진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진흙에 오래 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를 빼내야 했다.
아른트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겨우 일어났다.
몸의 반이 진흙에 파묻혀 있었지만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괜찮아? 혼자서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
“황무지에 갇혀 있었습니다, 공작님. 저말고 다른 이들이 있었어요.”
있었다니.
과거형을 사용한 아른트에게 한 번 더 묻지는 못했다.
참혹한 광경을 굳이 한 번 더 상기시킬 필요는 없지.
“구덩이가 폭주하면서 어떻게 된 거야?”
“남아있던 인원이 전부 갇혔습니다. 구덩이에서는 이것과 같은 진흙과 괴상한 생명체들이 넘쳐났어요. 마수라고 불렀지만, 진짜 마수보다는 오히려.”
“오히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것들이 괴기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구덩이 안에서부터.”
이전에는 사람을 끌어들이기만 했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어서 구덩이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아른트를 여기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나도 레안드로스에게서 떨어지고 싶은 건 아니고.
이를 어쩐다.
그때 레안드로스가 외쳤다.
“공작님, 몸을 피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의 말대로 한 번 쓰러졌던 괴물은 꿈틀거리며 수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재생이 생각보다 빨라서 조금만 있으면 상처가 전부 아물 듯했다.
나는 그걸 보다가 크게 한숨을 뱉었다.
젠장. 내가 봐주는 거라고.
“아른트, 너는 진흙을 피해서 계속 위로 가. 레안드로스와 함께라면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겠지. 난 검은 말을 좀 빌릴게.”
“공작님! 구덩이로 가시려고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검은 말 위에 올라타자 아른트는 비틀거리면서도 따라왔다.
아른트는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레안드로스에게 왔던 길목에서 보자고 전해줘. 조금 있다가 만나.”
“그래도 혼자서는 말 못 타시잖아요!”
“달라붙는 건 이제 잘해!”
이게 날 뭘로 보고!
말고삐를 쥐고 소리를 지르자, 검은 말은 그걸 신호로 알아들었는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저 뒤에서 아른트가 뭐라고 외쳤지만 빠르게 멀어져서 잘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체면 따위 집어던지고 말 등에 바짝 붙었다.
검은 진흙에 발이 푹푹 빠질 법도 한데, 검은 말은 마치 바람처럼 달렸다.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것들은 볼 수조차 없었다.
저 멀리 언젠가 봤던 형체가 드러났다.
하늘에 그린 듯한 은하수, 그리고 무수한 별빛.
그 아래에서 쉴 새 없이 흙을 토해내는 구덩이.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구덩이에는 단순히 진흙만 흘러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구덩이의 저 아래에서부터 부풀어 오른 것이 입구를 동그랗게 막고 있었다.
마치 거품이 터지기 일보 직전 같다.
구덩이 근처에 도착하자 진흙이 이미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냥 내렸다가는 허리까지 파묻힐 것 같은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구덩이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올라가는 계단 따위는 없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진흙의 무게에 못 이겨 쓰러졌거나 그랬겠지.
“올라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답답해서 무심코 뱉은 말에 검은 말은 푸륵, 하는 소리를 내더니 멋대로 구덩이와 반대쪽으로 향했다.
“야, 뭐해? 어디 가? 우리 안 갈거야. 왜 이래?”
터벅터벅 걷던 말은 구덩이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도 진흙탕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쌓여있진 않았다.
거기서 말은 갑자기 앞발 한쪽으로 진흙탕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왜, 왜 이래. 이상한 짓 하지마.”
-푸르륵.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지?”
-이히히힝!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는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말이 달려나갔지.
나는 그 등 뒤에 매달려 있었고.
말은 비스듬한 구덩이의 벽면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이 녀석아! 안 된다고!!”
안 그래도 미끄러운 경사로인데 진흙까지 덮여 있다고!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닌데!
하지만 말은 순식간에 경사면을 뛰어올라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달렸다.
검은 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구덩이의 최상부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얼음처럼 바짝 얼어서 등판에 들러붙은 나에게 말은 보란 듯이 투레질을 해댔다.
-푸르르릉. 프르륵!
“너……. 한 번만 더 이래봐…….”
긴장에 굳은 손을 억지로 떼어내서 아래로 내려왔다.
다리가 약간 떨렸지만 그렇다고 구덩이 안으로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구덩이의 입구를 막은 건 커다랗고 검은 알 같았다.
표면은 젖어 있었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알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견고하게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쿵쿵거리는 맥박이 요동칠 때마다 겉면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동시에 듣고 싶지 않던 소리까지 들렸다.
[별…… 돌아가…….]귀가 아닌 머리를 통해 들리는 음성.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미끌거리는 알을 손바닥으로 만져보다가 거기에 귀를 가만히 갖다 댔다.
“너야?”
[……사람……함께……성간을……비행하는……우리의…….]별걸음쟁이 맞네.
듣기만 해도 바로 여기서 뛰어내리고 싶게 만드는 그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견딜만 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둬.”
[……아……아아……아…….]“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유릭이 이 안에서 나를 찾았댔지. 나도 이랬었나?
나는 얼굴을 떼고 그 찐득한 껍데기를 더듬었다.
알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조사하자, 어느 한 부분이 다른 곳보다 특히 크게 맥동 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 천천히 내 손을 밀어 넣었다.
그래도 껍질이 있어서인가 쉽지는 않았다.
손톱으로 꼬집고, 단단한 막을 뜯어내고, 그렇게 만든 틈 사이로 손끝부터 밀어 넣었다.
팔이 점점 깊숙이 빨려들어가면서 뜨겁고 축축하고 물컹한 속이 느껴졌다.
나는 구역감을 참고 열심히 탐색 범위를 늘려나갔다.
얼마나 그렇게 휘저었을까.
내 몸 반쪽까지 파묻힌 채 어깨가 뻐근해질 무렵,
손끝에 겨우 걸리는 게 있었다.
단단한 것을 무작정 잡고 당겼다.
그것은 속살 사이에서 아주 천천히 흘러나오듯이 끄집어내졌다.
발이었다.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것이 누구의 발인지는 볼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이 알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이전처럼 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이 안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마수가 사람을 덮치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수의 공격성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왜 사람을 덮치는가? 왜 산짐승을 사냥하지 않는가?
[일어나면 모든 게 달라져…… 우리는 함께 먼 여행을 떠나…….]이들에게 인간은 단순한 먹잇감은 아니었다.
어쩌면 마수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의의는.
“그대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붉은 눈을 빛내는 창백한 금발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유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