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40
(39)
동부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건 과언이 아니었다.
동부선 육로와 항로는 전부 가로막혔다.
서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관문도 마찬가지였다.
동부에서 막 돌아온 사람들과 동부로 갈 예정이었던 사람들이 마구 뒤엉키며 극도의 혼란을 초래했다.
“누구에게 의뢰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부로 향하는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큰일인데.”
우리는 동부로 향하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함께 동반할 수 있다면 금화를 몇 닢을 쥐도 좋다고.
하지만 제정신이라면 지금 동부로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전 삶에서 목격했던 동부의 이상현상.
검은 진흙이 흘러넘쳐서 황무지를 가득 메웠던 장면이 떠올랐다.
제정신이 아닌 듯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미처 황무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면?
게다가 내가 동부로 보낸 아른트는?
무사할까?
에이슬링이라면 동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아이든이 혼자만 냉큼 빠질 리는 없잖아? 이 정보를 분명 공유할 거고.
그러면 자연히 사업은 중단되거나 멈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발짝 늦은 모양이지.’
이전과 같은 루트로 진행 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이번에야말로 내 사지가 왕국 전체에 흩뿌려질 테니까.
그렇게 죽는다면 이번에도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계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동부로 가는 길이 다 차단되었다고.”
“현 시점으로서는 그렇습니다.”
“왕궁이나 수도의 소식은?”
“왕성에서는 현지 조사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입니다. 명확히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재와 이전을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 있다는 거다.
바로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다는 거.
이전에 동부로 갈 때는 이런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마을에 잘 들르지 않고 걷는 여행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변화는 변화.
지금 주인공이 듣고 보는 게 다르다는 점이 중요한 거니까.
검은 말을 위해 임시로 들른 여관.
식사용 테이블 위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동부로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서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길목을 훑다가 멈췄다.
방금 레안드로스가 말한 대로라면 동부로 가는 길은 없었다.
“모든 길이 봉쇄당했다고 했잖아.”
“예.”
“그럼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되지 않나?”
단 하나.
산맥을 가로지르는 방법만 빼면.
북부와 왕국을 단절시키는 거대한 디켄터 산맥.
그 산맥에서 유래한 줄기들은 마치 해파리나 문어의 발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줄기는 동북부와 서부 위쪽을 점령했다.
내가 가리킨 방향은 서부에서 북부로 향하는 길을 골라 산을 타고 바로 동부로 향하는 쪽이었다.
산맥을 넘는다면 바로 동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이지만 말이 안 되는 여로.
한 마디로 미친 소리였다.
“혹시 무리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과거의 내가 들으면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싶겠지.
나는 레안드로스에게 물었다.
이쯤 되면 그도 가벼운 타박 정도는 하지 않을까.
불가능한 여정을 상정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뜻밖에도 그 길을 신중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무리는 아닐 겁니다.”
“진짜로?”
“산을 넘는 거니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이대로 동부로 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예상합니다. 통행이 언제 가능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레안드로스는 지도를 둘둘 말았다.
“동부로 가야만 하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으니.”
“이유?”
“그 녀석 때문이 아닙니까. 동부로 손수 보내신 게 마음에 걸리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른트?
물론 아른트도 중요한 요소기는 했다.
여러모로 생활력이 뛰어나서 보조를 잘 해주기도 하고.
소문 수집도 잘 해주고, 또 늘 항상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써주니까.
없어서 허전한 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크게 느끼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레안드로스는 나를 과대해석하고 있었다.
“응. 그럴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왕 좋게 해석해 주는데, 받아먹자.
굳이 나서서 아니라고 정정하는 것보다 시종을 아끼는 공작으로 생각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가는 길에 말을 한 필 더 구해야 할까?”
“말을 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런 건 아닌데, 타고 있는 말이 하나뿐이면 불안하지 않은가?”
여행의 초반에 구매했던 검은 말은 지금까지 소비한 것 중에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했다.
성질이 더럽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리 달려도 두 사람을 태운 채로 땀 한 방울 흘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이거 말 맞아?
신종 이생명체 같은 건 아니지?
“생각보다 튼튼한 놈입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지친 걸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장담하면 나는 상관은 없는데.”
날이 갈수록 힘들어하기는커녕 털이 반질반질해지는 검은 말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나중에 품종 의뢰를 해봐야지.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 레안드로스는 진지하게 답했다.
“공작님께서 알아두셔야 하는 건 말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공작님입니다.”
나?
레안드로스는 그 말만 남기고 건량을 구비하러 여관주인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레안드로스가 한 말의 의미를 산맥에 올라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 볼품없는 전신의 근육을 걱정해준 것이다.
* * *
밤, 동부의 황무지 한구석.
원래는 개간 사업의 전초지이자 귀빈용 숙소로 쓰이던 막사가 현재는 임시 피난처로 바뀌었다.
미처 동부 황무지를 탈출하지 못한 장인, 인부, 용병, 상단 관계인이 피난처에 우글거렸다.
저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서 홀로 떨어져 작은 물자 상자 위에 앉아있는 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동그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우울한 얼굴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청년에게 뜨거운 물 한 컵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이거라도 마셔.”
“……에이슬링 씨는 불안하지도 않으세요?”
아이든은 어깨를 으쓱이며 청년에게 억지로 컵을 쥐여주었다.
“나라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 너만큼이나 불안할걸. 다들 힘든 시기야, 아른트.”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제법 평화로워 보이는데요.”
“그런 척 하는거지.”
아이든은 아른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른트는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물었다.
“혹시 밖에서 연락이라도 온 건.”
“없었어. 하나도. 전서구도 날려보내봤지만 돌아오지 않았지. 이유가 뭔지 궁금할 정도야.”
“정찰조는요?”
아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황무지의 상황을 살펴보러 갔던 이들까지 오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열흘 하고도 일곱째 날.
황무지의 구덩이가 폭주한 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 아른트는 동부에서 신세를 지게 될 아이든의 부탁으로 황무지에서 일을 돕게 되었다.
-그쪽도 알겠지만 지금은 주요 인원은 동부 밖으로 파견을 보내고 있어.
-파견?
-명목상의 핑계지. 왕실과 투자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확실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손이 좀 부족한데 도와줄래?
-뭘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간단한 일. 황무지는 가본 적 있나?
아른트는 인력 관리를 지원했다.
사고나 실종자의 숫자를 검토하고, 가끔 출몰하는 마수와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용병은 몇 명인지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든과 함께 아침부터 나가서 저녁에 에이슬링 저택으로 돌아오는 루틴이었다.
그래서 아른트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렌하이트가 헤어지기 전에 흘린 말 같은 거, 그렇게 큰일은 아닐 거라고.
밤의 황무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당부한 것뿐이라며.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아서 지금 어떻게 되었지?
아른트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지반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는 감각.
구덩이 아래에서부터 들려오던 인부들의 비명.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한 검은 진흙과 그 속에서 나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
진흙 속에 잠겨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이들.
간신히 도망친 생존자들은 구덩이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막사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진흙은 계속해서 흘러넘쳐 전진하고 있었다.
컵을 들고 있는 아른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공작님의 말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아이든은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른트를 보다가 어깨를 다독였다.
“좋게 생각하자고. 수십 마리나 날린 전서구가 밖에 닿았을 수도 있어. 동부를 벗어나서 이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있을까요…….”
“왕성에서도 알았겠지. 밖에서 구조대가 동부에 진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상상은 어때? 기운이 나지 않나?”
아른트는 아이든의 말대로 좋은 상상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어깨는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아무리 해도 좋은 상상을 할 수 없어요.”
“불안한 건 알겠지만…….”
“불안이 아니라, 그냥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요. 이해하겠어요? 뭔가 꼭 사람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기분이라고요. 그냥 어떤 것도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빠르게 뱉는 아른트에게 반박을 하려뎐 아이든은 문득 그의 손에 들린 컵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발견했다.
아른트의 말은 이어졌다.
“불길한 확신밖에 들지 않아요. 밖에서 동부를 포기한다면요? 저희 도련님이 이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여기서 다들 나갈 수 없어진다면, 그래서 우리가.”
“아른트.”
“여기서 이렇게 죽게 된다면요……?”
아른트가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아이든은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른트는 특히 그런 면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아이든은 힘든 상황에서도 억지로 수면을 취하고 형편없는 식사라도 했다.
하지만 아른트는 밖에 있는 도련님 걱정하랴 진흙 걱정 하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모양이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인내심에 한계가 올 법도 했다.
“그럴수록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해.”
“하지만.”
“나가면 도련님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걸 생각해봐. 지금은 이거 싸움이라고.”
아이든은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정신력 싸움 말이야.”
“……그런 거 잘하시나봐요?”
“무역 사업을 하다보면 간이 커져.”
“왜 무역인데요?”
“먼 바다에서 내 돈을 퍼부은 배가 통째로 가라앉거나 해적질을 당한다고 생각해봐. 나는 뭍 위에서 꼼짝도 못하는데 말이야. 완전 천재지변이라고.”
아이든이 무역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걸 본 아른트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아이든이 맞는 말을 한 걸 수도 있다.
이만한 규모의 이상 현상이 일어났는데 밖에서 모르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 공작님도 알고 계실 것이다.
자신을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주시겠지.
사람을 쓰든, 레안드로스를 보내시든 상관 없었다.
아른트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입을 열었다.
“배는 타본 적 있으세요?”
“아, 그럼. 그쪽은 타본 적 있어? 없으면 태워줄게. 안 그래도 그쪽 도련님이 나한테 남부에서……”
아이든이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경비 교대나 수면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는 절박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수! 마수야! 마수가 온다!!”
마수.
구덩이에서, 여기까지 마수가 온다고.
대다수가 그 소리를 듣고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이었다.
아이든이 아른트의 손목을 붙들고 일어나 뛰었다.
피난처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