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0
(59)
“오늘부터 정식으로 공작님의 호위로 임명된 루셀 나빌로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루셀의 등장과 함께 성에는 분홍색 바람이 불어왔다.
다정하고 성실하며 든든한데다 잘생긴 금발의 기사님이라니, 누가 봐도 뭇 처녀들의 마음을 훔쳐 갈 만한 키워드다.
덕분에 성의 하녀들은 모일 때마다 루셀의 이야기로 꽃을 피워댔다.
‘황금의 기사님’.
루셀에게 최근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아른트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 덕분에 일의 효율이 내려간다니까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잖아. 그랬다면 진작 네가 조치를 취했겠지.”
투덜거리는 아른트를 보며 슬쩍 덧붙였다.
“이제 시종장이시니까.”
루셀이 호위 기사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제법 여유가 생기자마자 아른트를 시종장으로 임명했다.
원래부터 아른트가 성의 온갖 업무를 총괄해오고 있었기 때문인지, 고용인들 중에서도 크게 반감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나이가 어린 편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지.
아른트는 내 말에 입꼬리를 씰룩이다가 진정하고 서류를 한 아름 덜어갔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일은 더 못 덜어드려요.”
“성의 일은 네가 맡아주니까 너무 편한데.”
“모처럼 이렇게 된 거, 공작님께서도 좀 더 익숙해지시면 좋을 텐데요.”
“이미 익숙해졌어. 난 바깥일 할래.”
자잘한 일에 얼마를 썼는지, 어디를 수리해야 하는지, 월급은 어떻게 나가는지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네.
아른트는 이따 최종 검토안을 올리러 오겠다며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루셀이 들어와 활기차게 인사를 했다.
“공작님, 나빌로프입니다. 레안드로스 경께서 실내 경계를 당부하셨습니다.”
“응. 고마워.”
나빌로프는 내 책상 옆에 자리를 잡았다.
딱 버티고 보초를 서는 모습이 막 실전 투입된 마약탐지견 같았다.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각오와 실수하면 어쩌지, 같은 긴장이 뒤섞인 표정.
지금 서술을 읽을 수 있다면 루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네.
“레안드로스와는 좀 어때?”
“공작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괴롭히진 않고? 적응 기간에도?”
“예, 잘해주십니다! 훈련도 열심히 시켜주셨습니다.”
“무슨 훈련을 했는데?”
“기초 근력 강화를 했습니다. 성 근처를 빙 돌아서 50바퀴를 뛰거나, 혹은 팔굽혀펴기를 400번 하기도 합니다.”
…….그거 괴롭힘 아닌가?
지금 루셀은 레안드로스에게 맡긴 상태였다.
엄연히 레안드로스가 호위 기사로서 선배니까 루셀을 이끌어줄 의무가 있었다.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레안드로스를 믿고 터치하지 않았는데.
“훈련은 할 만해?”
“네! 아주 좋습니다. 공기도 맑고 청량해서 훈련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근육도 점점 늘어나는 기분입니다.”
“오. 얼마나 늘었는데?”
“잘 모르겠는데……. 혹시 만져보시겠습니까? 제 근육이요.”
“아니. 싫어.”
루셀은 단박에 시무룩해졌다.
쳐진 귀와 꼬리가 보이는 환상이 또 나타났다.
젠장.
“……팔 근육 말하는 거지?”
“네!”
“까봐.”
루셀은 신이 나서 팔을 둘둘 걷기 시작했다.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은 팔은 정말 며칠 동안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내가 그 팔에 손을 뻗으려고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레안드로스입니다.”
“들어와.”
레안드로스는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이었다.
집무실에서 팔을 깐 루셀과, 나를 보는 시선이 건조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루셀 나빌로프 경.”
“네, 네!”
“공작님이 네 친우이신가.”
“아닙니다!”
“경계를 서라고 했더니 소매를 걷고 뭘 보여드리는 거냐.”
“시정하겠습니다!”
“엎드려.”
“네!”
힘차게 답한 루셀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박고 엎드려뻗쳐를 했다.
그 광경에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리는 나에게 레안드로스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보고했다.
“성 인근의 보르미 소탕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일전에 명령하셨던 장소에서 보르미의 둥지를 찾았습니다.”
“처리했어?”
“네.”
“개체수는 더 이상 안 불어날 것 같아. 에이슬링 상단에서 슬슬 정착지를 만들고 필요한 걸 설치하고 싶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레안드로스가 저렇게 말한다면, 남은 개체수는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수고했어, 인근 정리도 부탁할게. 보르미의 부산물은 따로 우리 쪽에서 챙기도록 하자. 하인을 데려가서 채취해.”
“네.”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엎드려뻗쳐를 하던 루셀이 벌떡 일어났다.
“보르미를 정리하신 겁니까, 공작님?”
“그럴 필요가 있었거든. 마수에 관심이 많나 봐?”
“예! 아까 정리를 부탁한다고 하신 게 근처에 남은 잔당을 소탕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비슷하지.”
“그렇다면 저도 레안드로스 경과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루셀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물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안드로스에게 물어봐. 이 일은 그에게 일임했으니까.”
“나중에 훈련하면서 여쭙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쌓으려면 마수를 직접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작님께서는 레안드로스 경께서 진검을 쓰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나야 많이 봤지.”
당장 이번 회차에서 죽을 때만 해도 봤고.
루셀은 신이 난 듯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저와 대련해주실 때는 목검을 쓰시는데, 가끔 검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손질하시는지 감탄만 나옵니다. 그 검은 낡은 검집 안에서 잠든 맹수 같다니까요.”
“그게 많이 낡은 건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레안드로스의 무구가 남들 보기에도 낡아 보이는 게 맞나 보다.
주인공이 허름한 검을 쓰는 것도 좀 아니긴 하지. 언젠가 새로운 무기를 선물해줘야 할까.
하지만 이름난 명검 같은 게 이 세계관에도 있나.
나중에 한 번 찾아봐야겠다.
* * *
결과적으로 루셀은 마수 소탕에는 손톱만큼도 일조할 수 없었다.
레안드로스가 자기도 가도 되냐는 루셀의 질문에 ‘호위 기사라는 게 어떤 직책인지 머리에 똑똑히 박아 주겠다’라고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참견하지 않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봐주는 수밖에.
뭐, 내부적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슬링 상단은 레안드로스가 잔당을 청소하는 사이에 캠프 설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위치도 확인할 겸 직접 현장으로 가봤는데, 규모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컸다.
하르트만의 빈 장원에서 말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면서 산맥 줄기와 인접한 곳.
일백은 넘을 것 같은 인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고, 평평한 땅에는 텐트를 세우는 중이었다.
활기찬 사람들 가운데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관계자분이신가요?
고작해야 서른도 안 될 것 같은 여자였다.
희끄무레한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게 활동성을 중요시한 것 같았다.
시원하게 걷어 올린 소매와 함께 헐렁하고 질긴 바지를 입은 모습은 아무리 봐도 현장의 실무진이었다.
“아렌하이트 하르트만이오.”
“아, 공작님! 여기까지 몸소 오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에이슬링 상단 소속 현장 책임자인 이본느입니다. 평민이라 성은 없으니 편하게 불러주세요.”
싹싹하게 인사를 건넨 이본느는 바로 캠프 설치 현황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에이슬링 상단이 목표로 하는 것은 마수의 부산물을 가공한 튼튼한 무기를 유통하는 것과 마수의 추가적인 연구였다.
무기를 유통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마수에게서 어떻게든 더 뽑아먹을 구석이 있는지 살피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샘플도 넘쳐나는 상황이니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상단이 진행한 연구 결과는 조건부로 공유받기로 했으니.
“그래서, 주거지역은 아이든 님이 논의 드렸던 대로 장원의 일부를 빌리려고 합니다.”
“다 비었으니 편하게 쓰게. 무너뜨리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마수 사냥 시 부산물 가공을 현장에서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동부의 장인에게 의뢰를 하기에는 시간이 극심하게 소요되는 상황이라서요.”
“그렇다면 특수한 공예 환경이 필요한 게 아닌가?”
마수의 부산물은 평범한 제련이 불가능하다.
강도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적인 금속을 훨씬 웃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이본느의 눈이 번쩍 빛났다.
반짝이 아니라 번쩍.
“공작님께서 이쪽으로 잘 아시고 계신가 봅니다! 마수의 부산물은 초기 가공에도 많은 노력과 재료가 필요하죠. 그렇기때문에 통째로 작업실을 옮겨오다시피 하는 장인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본느가 엄지로 자신을 척, 하고 가리켰다.
“이 이본느는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하는 장인이기 때문에! 그런 건 필요 없답니다!”
“혹시 마공예사인가?”
“공작님은 안목도 높으시군요! 동부에서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천재 마공예사! 장인 중의 장인! 제가 온 이상 부산물 가공에 대해서 걱정하실 필요가 없답니다!”
이본느.
사실 원작에서는 그녀에 대해서 언급된 것이 없다.
하지만 에이슬링이 중요한 사업에 어중이떠중이를 보낼 리는 없으니 그녀가 주장한 바는 거의 다 맞을 것이다.
현장의 책임자가 마공예사라고 하니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녀만큼 적합한 사람도 없다.
마수에 대해 지식이 있으며, 공예 과정을 꿰뚫고 있고, 명망이 있어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하지 않을만한 인물.
아이든 에이슬링은 디켄터 산맥에 거대한 공방을 차린 셈이었다.
“그대는 주로 어떤 무기를 만들지?”
“천재 장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걸 보니 진짜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혹시 개인 의뢰도 받는가?”
“어? 공작님의 개인 의뢰요? 물론 받지만, 지금 당장은 곤란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전초기지가 완성되는 대로 바로 용병을 투입할 예정이라서요.”
“캠프는 언제 완성되지?”
“물자 수레가 계속해서 오고 있으니 길어야 나흘 정도일 겁니다. 그 정도면 고용한 용병들도 얼추 도착할 시간이고요.”
나흘. 나흘이라.
그 정도면 재료를 줘도 깔짝거리다가 끝나겠네.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이본느에게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혹시 나중에라도 시간이 난다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누군가가 헐레벌떡 우리에게로 뛰어왔다.
캠프를 설치하던 일꾼이었다.
“이본느 님! 큰일입니다. 물자 행렬이 오는 길에 마,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 산맥 인근이니 경호 인원을 붙여서 보내는 거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런데 산맥에서 내려온 마수가 중형종 이상인 데다가, 워낙 흉포해서.”
일꾼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사, 살아남은 사람이 많이 없답니다……. 몇 대의 수레는 도착했지만 물건도 많이 떨어뜨렸고, 살아남은 사람 중에서는 다친 사람도 있습니다.”
이본느는 그 말에 제 이마를 턱 짚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물자가 도착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아예 그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다른 길은 지금 선택한 경로만큼 효율적이지도, 빠르지도 않을 것이고.
이대로면 물자가 도착하기까지 짓다 만 캠프에서 허송세월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하느라 말을 잃은 이본느 대신 내가 물었다.
“그것의 모습은 전해 들은 바가 있나?”
“엄청나게 크고 털이 많은 사람 같았다고 하는 것 외에는 못 들었습니다.”
털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마수는 단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크다고 하면, 한 놈밖에 생각 안 나는군.
“이본느.”
“네, 네?”
“이 일은 공작저 측에서 해결하겠네.”
나의 첫 사망 플래그인 변종 보르미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