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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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한 원작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세계 멸망 엔딩이 제일이다, 이왕 말아먹은 거 완전 말아먹자. 아니다. 호러 소설이면 그럴 필요는 없지 않느냐, 우선 개연성을 좀 다듬어야 한다, 제발 광증 걸리는 사람들 좀 먼저 어떻게 해야 한다.
한때는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나조차도 곤혹스러웠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원작 개변의 의무를 진 나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레안드로스! 아른트!”
타운하우스에 도착해 부엌으로 뛰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토마토를 으깨고 있는 레안드로스였다.
……왜지?
잠시 어벙벙하게 서 있으니 안쪽에서 냄비를 젓던 아른트가 나왔다.
“공작님! 별일은 없으셨습니까?”
“없긴 했는데. 둘이서 부엌에서 뭐 하고 있던 거야?”
“비가 오기도 하고 타운하우스가 비니까 적적해서요. 취미 삼아 요리를 좀 해볼까 해서.”
“넌 그렇다 쳐도 레안드로스는 요리 못하잖아.”
“그래서 토마토를 으깨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거 말고는 못 하는구나.
레안드로스는 무표정하게 그릇과 나무 숟가락을 내려뒀다.
“찾으셨습니까, 공작님.”
“아, 맞다. 다른 게 아니라 본성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짐 좀 싸달라고 하려고 했지.”
내가 고른 선택지는 바로 주인공을 도주시키는 거다.
연극의 절정에 이르는 조건이 충족되면 주인공은 죽는다.
그러면 그 무대에서 주인공을 아예 뒤로 빼돌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주인공의 공백으로 이야기가 삐걱거리게 된다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어차피 유릭이 아니라면 죽어도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말을 하자마자 아른트는 왕방울 눈이 되어서 달려왔다.
“지금요? 갑자기? 왕성에서 무슨 협박과 공갈을 들으신 겁니까, 공작님?!”
“무, 무슨 소리야?”
“왕세자 전하 때문에 급하게 몸을 피해야 하는 경우입니까? 본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용병을 미리 고용할까요? 성에 차진 않지만 기사단을 편성하기 전에 임시방편으로라도…….”
사람이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소리를 해!
이거 PTSD 아니냐고!
“그런 거 아냐. 그냥 성이 걱정되어서 그래. 여기서 할 일도 없고.”
“할 일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서 가장 바쁜 건 공작님이 아니실까요?”
“나? 내가 왜? 혹시 사냥제 일 때문에?”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수도 귀족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가주나 그 후계자를 잃기도 하고, 어떤 가문은 직계 후계가 없어서 방계를 불러들이기도 한다더군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귀족들은 언제나 구심점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각개전투를 하게 되면서 왕권을 강화하게 되니까요.”
슬슬 이해가 갔다.
사냥제의 참사로 수도 귀족들의 세력이 약화 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저들끼리 뭉치려고 한다 이거지.
무리를 짓는 이들이 자연히 따지는 건 상대와의 격차.
재산이든, 봉토의 규모든, 뭐로든 줄지어 세우는 게 이쪽 귀족이다.
그걸 가장 가시적으로 잘 보여주는 게 ‘작위’라는 시스템이고.
“공작님께서는 두 명의 호위 기사 덕분에 가장 피해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도제에도 참석하셨고요.”
“과거 하르트만의 일 때문에 꺼림칙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남은 수도 귀족들에게는 오히려 상징적으로 비칠 것 같은데요.”
한때 반역자들의 소굴이라 불렸던 하르트만 공작가를, 이번에는 왕권에 반한 귀족 세력의 주축으로 삼는다?
여기에 넘어간다면 유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도 귀족의 움직임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수도에 온 것도, 망할 판인 디켄팅 브랜드를 홍보하려고 온 거였다고.
순조롭게 1위를 차지하고 자 이거 봐라 이게 디켄팅 무기다, 하고 자랑하려고 했던 게 언제 여기까지 온 거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역모를 꾀한다고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필요하다고 하면 냉큼 가줄 줄 알았나.”
“하지만 다른 가문에 비해 저희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공작님.”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놀아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아른트, 네 말이 맞아.”
나는 애들을 데리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거지, 귀족계에서 왕따가 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무기 사업도 있으니까.
“혹시 나한테 들어온 초대장 같은 건 없어?”
아른트는 그 말에 바로 달려가서 두툼한 편지 여러 통을 챙겨왔다.
그간 죽었다 살아난 내 눈치를 보면서 쟁여둔 모양이었다.
편지 봉투를 하나씩 넘기다 보니 문득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 가문이라면…….
“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어.
* * *
“공작님, 이렇게 귀한 걸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아놀드 남작 부인.”
수도에 올라와 가장 처음 방문한 가문은 아놀드 남작가였다.
아른트만 대동하고 갔는데, 입구에서부터 얼마나 극진히 모시던지.
간단한 티타임이라고 들었는데 달콤한 수십 가지의 디저트가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기 케이크 위에 올라간 건 진짜 생화인가?
찻잔은 살얼음이 낄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차갑고 시원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다니.”
“저희가 초대를 드릴 게 아니라, 미리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공작님께서도 병환 중이시라 들어서요. 사냥제에서의 일은 정말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제 기사들이 기사도를 따른 것뿐입니다.”
“공작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화된 것이 아닐까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그들은 벙글벙글 웃으며 내 비위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언젠가 한 번 봤던 집사가 정중하게 서 있었다.
지난 회차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네.
“아멜리아 양과는 면식이 있으니까요.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그렇죠. 아놀드와 하르트만은 과거로부터 연이 있었죠! 어쩜 이렇게 운명적인 일이 있을까요. 일전에는 저희 가문으로 찾아뵈어 주신 일이 있었지요?”
아멜리아에게서 호각만 뺏어갔을 뿐인데.
이야기야 5분도 안 나눴고.
“요양을 위해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거든요.”
“저희도 함께 뵈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앞으로도 이렇게 마주할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공작님. 앞으로 어떤 일이든 저희가 힘을 보탤 것이 있다면 말씀 주세요.”
사근사근하게 말하던 남작 부인이 문득 일어나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공작님. 저희 딸이 치장을 하느라 약간 늦었습니다. 이리 온. 아멜리아, 공작님께 인사드리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잖니!”
아멜리아가 내 뒤에 있던 둥근 아치형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사냥제에 입었던 남색 옷보다 훨씬 옅은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직까지 혼인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듯 풀어 내린 머리는 싱그러운 장미 생화로 장식했다.
물론 그 아래에서는 병색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 있었지만.
아멜리아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가 아른트를 보고는 아예 시선을 돌렸다.
뭐지?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아놀드 남작 영애.”
“그, 그날은 감, 사드립니다. 덕, 덕분에 목숨을 구, 구할 수 있어서…….”
“아멜리아, 얘! 그렇게 말을 더듬지 말라고 했건만. 죄송해요, 공작님. 저희 애가 아프고 난 이후로 이렇게 소극적이 되었답니다. 아주 최근에서야 병을 털고 일어났거든요.”
“그렇군요.”
정황상 유릭이 심어둔 그 시종이 아멜리아에게 무슨 짓을 했기 때문에 아팠던 거겠지만.
시종을 없애서 다행이었다.
잠자코 차를 마시는 중에도 남작 부인은 아멜리아를 내 옆에 앉히고 이러쿵저러쿵 한참을 떠들어댔다.
“이렇게 보여도 저희 애가 공작님을 얼마나 뵙고 싶어 했는지 모른답니다. 참 깜짝 놀랐다니까요.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혼기는 이미 까마득하게 놓쳤지만, 아직도 사교계에서는 영애로 봐주잖아요, 알고 보면 똑똑하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차를 마시며 모든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
남작 부인의 꿍꿍이가 훤히 드러나잖아.
게다가 난 연상 취향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아멜리아를 봤다.
그녀의 시선은 내 쪽으로 향해 있다.
나보다 좀 더 비스듬히, 그리고 좀 더 위로.
지금 그쪽에 서 있는 사람은.
“……!”
와, 오, 진짜. 진짜냐?
전쟁통에서도 애는 태어난다더니.
아른트는 그 시선을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 뒷짐을 진 손을 쉼 없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공작님,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고, 또 이렇게 티타임에 와 주셨으니 공작님께서도 답례로.”
“아놀드 양은 이후 어디서 지낼 예정이십니까?”
남작 부인이 입을 가리고 ‘어머나!’ 하고 가성으로 외쳤다.
아멜리아는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저, 저는 마땅히 정해진, 것이.”
“그렇다면 정해진 것은 없는 모양이군요. 남작 영애, 그렇다면 하르트만 성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네, 네?”
아멜리아는 곤란한 얼굴이었고 남작부인과 그 옆의 남작은 기뻐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멜리아의 시선이 방황하다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하, 하지만 아직도 모, 몸이 좋지 않아서, 바, 방문한다고 해도 머, 먼 길이고.”
“얘! 아멜리아! 죄송합니다, 공작님. 저희 애가 아직 사리 분별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당연히 기쁘게 방문하겠습니다. 오호호호호.”
“네.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르트만 공작가의 집사로서요.”
“……네?”
아멜리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하,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아놀드 영애를 아끼셨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뛰어난 인재라 부집사장까지 할 수 있었고요. 지금 성이 보수를 거듭해 상주 인원이 늘어나게 되었는데요. 아른트의 팔을 보세요.”
아른트의 붕대를 감은 팔은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다.
그 팔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아끼는 시종은 이런 팔이 되어서 성의 업무를 볼 인원이 부족하던 참이었습니다. 아놀드 영애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말이 요청이지, 해달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남작 가문이 공작의 청을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목숨을 구한 은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지금 아멜리아의 시선을 생각한다면 아멜리아가 이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제게는 너, 너무나 과, 과분한 자리인 것, 같, 습니다.”
……응?
아멜리아는 안절부절못했다.
확실한 거절의 의사였다.
남작 부인은 거기에 안도한 듯 재빠르게 말했다.
“맞아요, 공작님. 지금은 과년한 나이에 다른 가문으로 선뜻 떠나기도 어렵죠. 게다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 이를 어쩌죠.”
“아, 아닙니다. 아놀드 영애의 뜻을 존중합니다.”
응? 이게 아닌데?
그 후로 이어진 티타임은 어쩐지 흐지부지했다.
아멜리아는 가시방석에 앉은 투였고, 남작 부인은 나와 아멜리아를 맺어주려고 노력했지만 반응이 없었고.
이 자리에서 사업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고.
결국 티타임은 별 소득도 올리지 못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파하게 되었다.
남작 부인의 마지막 발악인지, 그녀는 자리를 떠나려는 나를 아멜리아가 배웅하도록 채근했다.
아멜리아는 죽을상이 되어서 남작 타운하우스의 밖으로 나를 안내했다.
타운하우스의 앞뜰.
저 멀리 현관에서 아른트가 남작가의 집사에게 물건을 받는 모습을 구경하던 차였다.
“……왜 그런 제, 안을 주, 주셨어요?”
“그런 제안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저, 저는.”
시치미를 떼는 나에게 아멜리아가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저, 는, 이미 한 번, 공작, 님의 가, 가문을 배신해서, 용서받을 수, 없다고.”
“그 일은 당신이 데더릭을 사랑해서 일어난 일이죠.”
“…….”
“데더릭은 저희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시종인 아른트는 저를 무척 생각해주고 있죠.”
“저,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 요.”
“그리고 당신은 제 시종에게 호감이 있고.”
“아,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에게 제안한 겁니다.”
아멜리아가 나를 돌아봤다.
얼굴이 온통 새빨갰다.
“아놀드 영애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눈이 머는 유형이죠. 모시던 주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정도니까.”
“그, 그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제가 영애의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있다면 영애는 배신 같은 건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무례, 하세요!”
“유릭 왕세자는 아직 끝내지 않았어요.”
분노로 떨리던 아멜리아의 손이 일시에 멈췄다.
그 얼굴에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시종.
거짓말 같이 낫기 시작한 몸과 연이어 일어나는 금단 증세.
그것만 두고 봐도 유릭이 이제까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겠지.
아멜리아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자 그녀는 움찔했다.
“옛날에 저질렀던 일을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지, 진심이신가요? 제가, 제가 뭘,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제가 당신에게 기대하는 건 하나뿐입니다.”
아른트가 망토를 받아 들고 집사와 마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가련한 꼴이 된 팔도.
“만일 앞으로 하르트만에 어떤 일이 일어나거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두진 않을 것이다.
내가 무대 위에서 몇 번을 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