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8
(67)
“레안드로스 경은?”
“휴가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제 기산데요? 제가 맘대로 줬죠.”
유릭은 수줍은 자태로 서 있는 루셀을 보다가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공작,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보군. 어디까지나 사냥제에서 세운 공을 치하하기 위해 그대의 기사를 청한 것이네.”
“네, 하르트만의 기사들의 공입니다. 레안드로스 경과 마찬가지로 루셀 경 역시 큰 공을 세웠죠. 루셀 경, 네가 무엇을 했는지 왕세자 전하께 고해드려.”
“앗, 네! 레안드로스 선배님과 연회장에 도착해서 시신을 수습하고 갈라졌습니다. 그 와중에 변태기에 들어간 마수 무리를 발견하고 현장을 해결했으며 숙소에 숨어있던 영식들을 구조해 안전한 장소까지…….”
“그래, 그래. 정말 대단한 공적을 세웠어. 나빌레라 경.”
“나빌로프입니다, 왕세자 전하. 제 기사의 이름을 바꾸지 말아 주시죠.”
“어쨌든 레안드로스 경이 연륜이 있으니 하르트만의 기사를 대표하려면 그쪽이 더 보기 좋지 않겠나, 공작?”
“글쎄요, 루셀 경도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레안드로스 경은 휴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최근 호위 기사의 복지에도 신경을 쓰기로 해서요.”
“언제부터 하르트만의 호위기사가 이렇게 나태한 직종이 되었지?”
“앗, 왕세자 전하. 저희 공작님께서는 2교대를 충실히 보장해주십니다. 그리고 식사도 맛있어요.”
“자네는 잠시 조용히 해주겠나, 나블대라 경?”
유릭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길게 뱉었다.
그는 뒤에 대동한 시종이 들고 있던 붉은 빌로드 쿠션 위의 상자를 루셀에게 건넸다.
“받게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성대한 축하연은 열 수 없어 안타깝게 되었다네, 나발…….”
“제 기사 이름 바꾸지 마시라니까요. 나빌로프 경이라고요.”
“그래, 나빌로프 경.”
상자를 연 루셀은 안에 있던 작은 훈장을 보고 감격에 찬 눈으로 무릎을 꿇었다.
“감격스럽습니다. 일신의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왕세자 전하!”
“그래, 그래. 기사도에 충실하고 앞으로도 건실한 청년이 되어주게.”
스스로가 획책했던 계획적인 연극이 수포로돌아가자 유릭은 온통 흥미를 잃은 듯했다.
나는 유릭이 훈장을 가지고 온 시종을 물리면서 ‘준비한 연회는 그냥 치워.’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면서 물었다.
“제 기사를 치하하는 건 이걸로 끝입니까?”
“약식이라서 불만이라도 있나?”
“그럼 제게도 치하를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공작을? 내가? 왜?”
불량한 태도로 서 있는 유릭에게 방긋 웃자 그는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왜, 사냥제의 내기 말입니다.”
“내기……. 아아, 하지만 그건 무효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사냥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내가 이긴 게 아니었나. 공작보다 3점이 더 높았으니.”
“예, 분명히 그랬었죠. 동물만 놓고 보면 말입니다.”
사냥제에서 유릭이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계속 생각했다.
처음에는 소원권을 걸었으니 하르트만의 예지를 내놓으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와서 예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에이슬링을 이쪽으로 끌어들인 것뿐이고, 그걸로 예지를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게다가 예지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개념이다 보니 뭐로든 위장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마수가 귀족들을 덮쳤고 사냥제는 그대로 끝났다.
그렇게 되면 소원의 의미가 사라진다.
유릭이 바란 건 예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왕세자에게 있어서 무엇이 그렇게 탐이 났을까.
일국의 왕세자가, 손짓 하나로 공작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허름한 성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던 사람에게서 뺏고 싶어서 안달을 내던 게 대체 뭘까.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을 생각하면 답이야 뻔했다.
“사냥제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사냥감의 크기에 따라서 점수를 정한다던가…….”
“타인의 사냥감을 빼앗지 않고, 타인을 해하지 않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냥을 한다. 그래. 분명히 그런 규칙이 있었지.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규칙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사냥제의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
“사냥제의 사냥감이란, 숲에서 나온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규칙이요.”
슈첸페스트의 유래는 숲에 살던 마수를 토벌하기 위한 토벌전.
마수의 종류는 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강한 마수뿐만 아니라, 별걸음쟁이처럼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는 녀석도 있다.
그중에서 인간을 숙주로 삼아 조종하는 놈 하나가 없을까?
다시 말해서, 숲에서 나온 것.
마수에게 지배당한 인간 숙주든,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풀어버린 마수든.
슈첸페스트의 규율에 의해서 ‘사냥감’으로 처리된다.
옛날에는 마수의 숙주화된 동료를 죽여도 괜찮다는, 일종의 정신적 지지대로 쓰이던 규칙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기 편리한 좋은 도구일 뿐.
유릭은 애를 어르듯 차근차근 말했다.
“하지만 기사들이 얼마나 죽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 않나. 세어줄 수 있는 심판관도 없으니 그 건은 무효일세.”
“루셀 경.”
루셀은 훈장이 들어있던 상자를 조심조심 닫으며 답했다.
“76마리입니다, 왕세자 전하.”
“농담인가?”
“아뇨, 정말입니다! 사냥터에서 레안드로스 선배님과 갈라지기 전에 뭐든 똑똑히 기억하라고 명령하셨거든요. 그래서 모든 건물을 뒤지면서 제가 죽인 놈들과 사망한 피해자의 수를 세야 했습니다.”
루셀의 순진한 눈이 끔뻑거렸다.
유릭은 습관적인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뒤틀린 심기는 숨기지 못한 채였다.
그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내게 몸을 돌렸다.
“그대의 기사가 이렇게 말하니 무를 수도 없겠군 그래. 공작, 무엇을 원하나? 왕실에서 반환 대기 중인 공작령? 금화?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의 기사를 위한 명검?”
“아뇨. 그런 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받고 싶은가?”
무엇을 받고 싶느냐, 인가.
나는 유릭에게 제안했다.
“왕세자 전하의 집무실로 가서 천천히 대화를 나누어보면 어떨지요?”
* * *
유릭은 따라오는 시종들을 전부 물렸다.
빗소리가 들리는 길디긴 회랑을 걸으면서 앞서 나가는 유릭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흐린 백금발, 검은 장갑, 검은 옷, 검은 지팡이.
늘 무언가를 애도하는 사람처럼 입고 다니는 이유라도 있나.
“그렇게 구경하고 있으면 다 느껴진다네.”
“뒤에도 눈이 달리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공작이 둔한 게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걷는 것을 멈춰도 유릭은 멈추지 않았다.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물었다.
“아멜리아 남작 영애에게는 왜 그러신 건지 궁금한데, 여쭤봐도 되나요?”
그를 멈춘 건 같이 걷는 사람의 보폭이 아니라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나는 계속 물었다.
“로타어에게도 왜 그러셨던 건지. 하르트만을 무너뜨리고 싶으셨다면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게 가장 쉬웠기 때문입니까?”
“공작이 남부에 갔을 때, 아놀드 남작 영애가 말하던가?”
“영애의 가문에 전하의 사람을 심어 넣으셨잖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를 돌아본 유릭의 표정이 유독 창백했다.
밀랍으로 세심하게 빚은 듯한 얼굴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같은 충격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왜 그걸 제가 말하느냐는 듯한 얼굴이시네요. 기대하고 있던 사람이 찾아오길 바라셨죠?”
“…….”
“그 사람은 안타깝게도 휴가 중이라서요. 이렇게 되니 정말로 휴가를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요.”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이 가혹한 별이 사랑하는 보물.
세계관의 주인공, 언젠가 내가 보지 못할 먼 미래에 악을 패퇴시키고 엔딩을 선사해줄 사람.
레안드로스.
아렌하이트의 호위기사.
우리는 한참 서로를 바라봤다.
의중을 탐색하던가, 혹은 간파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마침내 유릭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공작은 전혀 모르겠지. 끝나지 않는 이야기 속에 갇힌 기분을.”
끝나지 않는 이야기.
지난 회차처럼 유릭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약간 긴장했지만 곧 이어진 말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방이 온통 회색이야. 어떤 음악도, 그림도, 시도, 문학도 내게 있어서는 단순한 소음이나 울림, 잉크 자국의 흔적일 뿐이네. 누군가 웃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우는 이유도 알 수 없었어. 그러다가 만난 거야.”
“레안드로스를?”
“누구보다 나와 닮은 사람을.”
레안드로스가? 왕세자의?
레안드로스는 유릭을 죽기보다 더 싫어해서 늘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유릭은 레안드로스를 흡사 십년지기 친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불과 얼음 같은 두 사람이 닮았다고?
이거 일방적인 착각 아니냐.
내가 생각에 잠겨있든 말든 유릭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가 기사 작위를 받기 전에 훈련생들 사이에서 뭐라고 불렸는지 알고 있나? 다들 레안드로스를 괴물이라고 불렀다네.”
“딱히 그렇지 않은데도요.”
“그 당시는 정말로 그랬으니까. 평민 출신의 종기사는 생각보다 괴롭힘을 많이 당한다네.”
“개인 목검을 숨긴다거나 방에 가두나요?”
“그런 자잘한 것 말고도 대련을 빙자한 집단 구타라거나. 그래서 평민 종기사들은 불구가 되어 작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
세상에.
유릭은 잠시 추억에 잠긴 채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선임 종기사 8명과 싸우고 그들의 다리를 하나씩 분질러버렸어. 당시 왕실 훈련소가 발칵 뒤집혔다네.”
“네?”
“뭐, 결과적으로 일은 잘 마무리됐다네. 선임 종기사라고 해도 가문을 업고 규칙을 어기면서 기강을 흐리던 무리였거든. 게다가 평민 출신의 새파란 종기사에게 당했잖나.”
“뒤탈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지. 그래서 레안드로스 경은 두 번이나 기사 작위 시험에서 떨어졌다네. 덕분에 나는 그 기간 동안 친해질 수 있었지.”
“친해진 게 이 모양입니까?”
“멀어져서 서먹해진 것뿐이라네.”
“그건 그렇다 쳐도 그 일에 대해서 생각보다 자세히 알고 계십니다.”
“직접 봤거든. 선임 종기사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장면을.”
뭐?
유릭은 평온했다.
“크게 이상한가? 당시에는 나도 함께 있었어. 신분을 숨기기는 했지만. 저항하는 사람의 정강이를 정확히 동강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네. 무릎을 부술 수도 있으니까.”
“대체 무슨.”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하나씩 부러뜨렸지. 화내거나 비웃지도 않고 묵묵하게 해치우는 모습을 봐버린 걸 어쩌겠나. 할 일만 하고 가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어.”
다시 말해서 유릭은 레안드로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친구로 삼아야겠다 싶었다는 거다.
미친놈인가.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왜 그렇게 주변을 괴롭히세요? 옆에 두고 싶어서?”
“재미있는 친구는 옆에 두고 싶어.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나.”
“잘못되었는데요. 그건 차치한다고 해도 옆에 두셔서 뭘 하실 겁니까?”
“모두가 그를 알게 만들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그를 끌어올릴 수 있어. 온 대륙이 레안드로스 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음유시인들이 가장 자주 노래하는 이로 만들겠네.”
“그리고 나서는?”
“그리고 나서는 마지막에…….”
유릭은 아, 하고 제 입을 살짝 때렸다.
말해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말할 뻔한 것처럼 구는 모습이 가식적이었다.
“비밀이라네.”
“원래부터 이러실 작정이었잖습니까.”
“다 알고 있었나?”
“네. 그래도 전하의 의중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몰랐던 면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요.”
“그래? 그럼 나에 대한 인상이 좀 바뀌었나?”
“네.”
유릭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어느새 우리는 닫힌 집무실의 앞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하는데요. 자칫하다가 빗줄기가 굵어지면 돌아가기 곤란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렇군. 그래서 사냥제의 보상으로 받고 싶은 것이 뭔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아니면 사냥제는 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미끼였나?”
“아뇨, 그럴 리가요. 하지만 이런 비극을 발판 삼아 뭔가를 청하자니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
유릭의 희멀건 목에 달린 은색 줄.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왕세자 전하께서 아끼시던 그 목걸이를 하사해주신다면, 가문의 귀보로 여기고 싶습니다.”
공작부인이 내게 물려준 호각과 반으로 나누어진, 기능할 수 없는 호각.
어떻게 그게 유릭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기능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유릭은 눈을 크게 떴다가 접었다.
“더 귀한 것을 청해도 될 텐데.”
“아뇨.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런 것을 받아 갔다가는 다들 입방아나 찧겠지요. 기회를 노렸다면서. 그러니 최대한 약소한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게다가 유릭은 내가 돌호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그는 나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목걸이를 벗어서 내 손에 내려놓았다.
가벼운 만큼 싸늘한 감촉이었다.
“좋은 기사들을 두게 된 것을 다시 축하하네. 공작도 제법 재미있는 짓을 하기는 하는군?”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는 게 좋아. 나는 재미있는 걸 좋아하지, 머리 위로 기어오르는 개미는 좋아하지 않아.”
“전하의 무료한 일상을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면야, 목숨도 감내하지요.”
만들어낸 게 분명한 자비로운 온화한 웃음으로 배웅을 받은 나는 알현실로 돌아왔다.
연신 훈장 상자를 들여다보던 루셀이 후다닥 일어났다.
“공작님! 한참 동안 오시지 않으셔서 걱정을…….”
“빨리 나가자.”
“네? 공작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루셀은 시종에게 바로 망토를 가져오라 명령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다.
-온 대륙이 레안드로스 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음유시인들이 가장 자주 노래하는 이로 만들겠네. 그리고…….
유릭은 레안드로스를 아끼고 귀애했다.
하지만 그건 레안드로스를 향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과 닮은 꼴의 주인공에게 이입을 했을 뿐이었다.
모든 위광과 찬사가 레안드로스를 향할 때, 그가 인생의 정점에 이르러 모든 서사가 조건을 충족할 때.
유릭은 레안드로스를 죽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