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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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 중에는 왕실의 시종이나 개인 시종, 또는 기사와 병사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여파가 큰 건 귀족가문 출신들의 사망이었다.
왕실에서는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이들을 위해 대대적인 추도제를 지내기로 했다.
왕실 부지 안에서 특별한 날에만 열리는 사원에서 진행되는 추도제.
무려 대신관이 주관한다고 하니 왕실에서도 확실히 이번 일을 좌시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순백색의 예장을 갖춘 늙은 대신관은 신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망자가 사후 세계에서 누릴 무한한 축복과 영생, 그리고 이 비극을 일으킨 주모자들을 향한 비난까지.
거대한 황금색 향로에서는 묘한 연기가 피어올라 허공으로 사라졌다.
길고 긴 추도제의 끝에 꽃을 바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신분과 작위의 순서에 따라 먼저 왕가의 일원들이 꽃을 바쳤다.
그 후 공석인 대공작을 건너뛰어서 나에게 순서가 돌아왔다.
“공작님.”
아른트가 한 손으로만 꽃을 내밀었다.
그의 한쪽 팔은 붕대를 둘둘 감아놔서 완전히 못 쓰는 상태였다.
나는 아른트가 내민 꽃을 받아 들고, 레안드로스만 대동한 채 제단으로 다가갔다.
꽃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건 쉬웠다.
돌아와서 내 뒤로도 다른 이들이 꽃을 바치는 걸 지켜보다가 눈을 돌리니, 저편에 왕실을 대표해 나온 유릭이 눈에 띄었다.
검은 옷 일색으로 침통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자니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짜 추도제.
가짜 기도.
가짜 눈물.
이 자리에서 진짜인 건 저 사람들의 죽음뿐이었다.
“공작님. 괜찮으세요?”
“응. 난 괜찮아. 팔은 좀 어때?”
“약 덕분에 통증은 없습니다.”
아른트는 내 다리에 시선을 잠시 줬다가 거두었다.
새로 생긴 다리라 그런지 적응이 안 되어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아른트는 그게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사고의 여파였다.
나는 한 번 죽었고, 다른 이들은 진짜로 죽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연회장으로 도망쳤지만, 역설적이게도 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연회장의 문이 헐거워 잠금이 풀렸다던가.
아른트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나를 보고 뛰쳐나온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없던 것 같은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공작님…….”
제단 위에는 하얀 꽃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모든 이들의 헌화가 끝나자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몸을 추슬렀다.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하르트만 공작.”
“왕세자 전하를 뵙습니다.”
유릭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살짝 절뚝거리는 모습이 다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피해자들을 위한 추도제에 참석해주어서 고맙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당시 현장에서 하르트만 공작과 공작의 기사들이 발휘한 용기와 기사도에도 왕실을 대표해 치하하겠네. 그대들 덕분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니.”
더 큰 희생이라니?
그 소리에 정신이 약간 아득해졌다.
애초에 사냥터에 나타난 마수는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는 마수였다.
유릭 왕세자가 길들인 마수로만 등장했지.
[미끄덩한 몸체와 무엇이든 녹이는 체액. 몸집에 비해 화살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집은 뭇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의 희고 둥그런 새끼는 영양분이 많은 뇌수를 빨길 즐기며, 희생자들은 소리 없이 다가온 죽음에 저항할 수 없다.]그걸 사냥터에 보냈다는 건, 전부 유릭의 의중이 담겨 있었다는 것.
유릭의 가증스러운 얼굴에 말문이 막힌 나를 두고 그는 극본이라도 읽는 것처럼 술술 뱉었다.
“오늘은 추모를 하는 날이니, 고인들에게 욕되지 않게 물러나야지. 나중에 왕실에서 그대의 기사에게 포상을 내릴 생각이야. 많은 이들이 그러기를 바라고 있으니.”
“제 기사를 왕실로 초청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그러겠나. 물론 공작도 와야겠지. 국왕 폐하께서도 기꺼이 그러길 바라실 테니. 어떻게 생각하나, 경?”
유릭은 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안드로스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황송하오나…….”
“네, 가지요.”
물론 말을 끝낸 건 나지만.
레안드로스와 아른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유릭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릭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왕세자 전하의 초청을 감히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초청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제 기사를 치하해주신다니, 이보다 큰 명예가 있을까요. 준비가 되시거든 초청해주십시오.”
유릭의 입가에 언뜻 웃음 같은 게 스쳐 지나갔다.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 서신을 보내겠네. 그날을 고대하고 있도록 하지.”
* * *
“왜 그러셨어요?”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서 응접실에 앉자마자 아른트가 물었다.
따뜻한 물이 잔을 채우는 동안 아른트의 뒤에서는 흐린 글자가 아롱거렸다.
[아른트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의 주인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었다. 죽었다 살아난 이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유릭에게 물어볼 게 생겼어.”
“가서 싸우실 건 아니죠?”
“설마 그러겠어?”
내가 ‘깨어난’ 날은 어제 오후라고 한다.
물론 나는 기억에 없다.
일어나고 나니까 오늘 아침이었고, 내 침실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말라붙은 접시가 수북하게 있었을 뿐이었다.
깨서는 진짜 깜짝 놀랐다.
일어나니 아른트의 팔은 미라가 되어 있지.
루셀은 엉엉 울면서 진짜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하지.
그런 와중에 오늘 추도제가 있다는 소식까지.
유일하게 평정을 지키는 레안드로스가 없었다면 오늘 추도제 참석은 불가능했었을걸.
의자 뒤에 서 있는 레안드로스를 흘깃 올려다봤다.
“왕성에 가도 괜찮아?”
“공작님께서 괜찮다고 하신다면 가겠습니다.”
[레안드로스는 왕성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유릭을 보기만 해도 살심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음,
“생각은 좀 더 해보자.”
물이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니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공작님, 씻을 물을 대령할까요?”
“아냐. 그냥 피곤해진 것뿐이야. 거기 있는 책 좀 줘.”
아른트가 붉고 화려한 장식의 책을 건네주었다.
수도에 올라왔을 때부터 틈틈이 읽던 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책을 펼쳤는데도 글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컨디션이나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숫자가 신경 쓰여.’
[60/70]레안드로스의 머리 위에 깜박이는 붉은 숫자.
처음 죽었을 때는 분명히 65/70이었던 숫자가 지금은 60/70이 되어 있었다.
왜 줄어든 거지?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뭐 때문에 그런 거야?
아무리 레안드로스의 서술을 읽어봐도 그 숫자에 대한 단서는 없었다.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이 숫자는 흰색 서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만 보이는 것 같으니까.
무엇을 표시하는 건지도 감이 안 잡혔다.
만일 이게 중요한 지표라면 지금 파악해야 하는데. 아니,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내 눈에만 보이는 거잖아. 하지만 만일 중요하다면 중요도를 매겨야겠지. 중요도는 1부터 5까지 해서, 음…… 아른트 5. 루셀 4. 레안드로스는 7로 해주자. 7? 7일은 무슨 날이었더라, 월급날 3일 전, 가계부 써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빨래도…….
생각이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손에서 붉은 책이 스르륵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 * *
꾸벅꾸벅 기울어지는 머리를 가볍게 받친 레안드로스가 아렌하이트를 안아 올렸다.
아른트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공작의 침실로 향했다.
한 손만으로도 잽싸게 침대 정리를 마치자, 레안드로스가 그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하얀 이불에 푹 감싸인 아렌하이트는 어제만큼이나 생기가 없었다.
이불을 끌어올리는 레안드로스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아렌하이트의 가슴이 미약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손을 보던 아른트가 물었다.
“두 번째군요.”
“뭐가.”
“공작님께서 이렇게 되신 횟수가.”
그리고 레안드로스가 아렌하이트의 죽음을 목격한 게.
레안드로스는 호위 대상 하나쯤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작부인이 그에게 유일한 핏줄을 맡긴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레안드로스는 두 번씩이나 아렌하이트를 놓쳤다.
다른 귀족가였다면 벌써 호위 기사의 양손이 잘리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레안드로스에게 불공평했다.
아렌하이트는 일부러 죽음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아른트와 남작 영애며, 마수며, 정말이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한다. 그가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아른하이트는 죽었고,
레안드로스는 평생 느낄 일이 없던 무력함을 맞이했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으니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비난하려는 게 아니에요. 저도 할 말은 없으니까.”
아른트의 팔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른트에게는 그날 창고를 뛰쳐나가던 아렌하이트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직무 유기도 힘들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거라면 나가서 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합니까?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제까지 해왔던 일을 계속해야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시잖아요.”
두 사람은 잠든 아렌하이트를 바라봤다.
옆에는 그가 읽다 만 붉은 표지를 두른 책이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평화로움밖에 느끼지 않았겠지만.
“죽는 건 쉬운가요?”
“그럴 리가.”
“한 번 죽으면 행복해지나요?”
“전혀.”
“그렇다면 공작님께서는 왜.”
왜 자꾸 이렇게 되시는 거죠?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아른트의 끝맺지 못한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흐린 하늘을 비추는 창문으로 빗줄기가 투둑투둑 떨어졌다.
이틀 후 도착한 왕성의 초대에 응하기 위한 공작가의 마차가 길을 떠날 때까지, 비는 계속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 * *
비가 내리는 음산하고 고즈넉한 왕성.
궁인들은 전부 숨을 죽이고 다니고,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했다.
왕성이니 공작가같이 왁자지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던 것 같은데.
알현실로 안내하는 시종이 공손하게 말했다.
“공작님과 호위 기사분께서는 왕세자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잠시 몸을 쉬시길 바랍니다.”
“고맙네.”
알현실에 들어가는 사람은 한 번에 한 사람씩. 혹은 일행이라면 최대 두 명까지.
그렇게 소수만 입장할 수 있는 알현실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천장을 두른 금테, 백옥을 깎아 자잘한 보석의 파편을 섞어 넣은 장식, 어딜 봐도 순백과 황금색밖에 보이지 않는 실내.
상상했던 세속적인 아름다움은 전혀 엿볼 수 없었다.
차라리 신전에 왔다고 하면 믿겠다.
한숨을 쉬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알현실 문이 열리며 지팡이를 짚은 유릭이 나타났다.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던 그는 추도제와는 달리 생기 넘치게 우리를 환영했다.
“어서 오게, 공작. 얼마나 기다렸다고.”
“초대를 받자마자 바로 채비를 서둘렀습니다만.”
“공작이 너무 꾸민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게 아닌가? 그렇게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되는데.”
“일국의 왕세자 전하를 뵙는데 그게 무슨 실례랍니까.”
“하하하.”
“아하하.”
이게 은근히 돌려 까네.
유릭은 나를 실컷 꼽준 다음에야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내 동행인에게 몸을 돌렸다.
“레안드로스 경, 기다리고 있었다네. 추도제에서 봤지만, 긴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지. 비도 와서 눅눅한데 망토는 벗어도 돼. 거기 너, 경의 망토를 벗겨드리도록 해라.”
대기하고 있던 궁인이 순종적으로 내 옆에 서 있던 이의 젖은 망토를 벗겼다.
곧이어 드러난 얼굴에 유릭의 환한 얼굴에 금이 갔다.
“와, 왕세자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저는 추도제에 가진 않았는데요?”
유릭이 나를 조용히 쳐다봤다.
왜 얘가 여기서 나오느냐는 얼굴이었다.
그에게 최대한 정중하고 상냥하게 답했다.
“사냥제에서 만난 후로 처음이죠. 제 호위 기사인 루셀 나빌로프 경입니다.”
네가 레안드로스 경 데려오라고 말 안 했잖아?
우리 집 기사면 된대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