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2
(71)
“……님…….”
이번 회차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정된 것 같았는데.
에이슬링을 동부에서 빼 온 것도 그렇고, 슈첸페스트도 그렇고.
“……님!”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회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회귀를 할 때마다 몸이 점점 쓰레기가 되어간다고.
“……작님, 공……!”
아, 근데 회귀할 수는 있나?
유릭이 날 죽인 게 아니잖아. 나를 납치한 괴조가 유릭이 부리던 놈이라면 또 몰라도 유릭이 나온 게 아니라면…….
“공작님, 공작님! 이, 일어나세요!”
“우와아아아악! 내가 살아있다!”
“저, 정신 차리셨, 군요, 공작님! 다, 다행이에요.”
회귀 안 했다!
벌떡 일어나 몸을 더듬었지만 내 몸은 멀쩡했다.
부러지거나 산산조각 나지도 않았다. 살았다!
옆에서는 아멜리아가 손을 꼭 모으고 누군가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멜리아까지 있구나. 다행이다.
“아멜리아, 여기는 어디야?”
나와 아멜리아가 있던 곳은 회색 석조만으로 이루어진 둥그런 방이었다.
저편에 계단 같은 것이 있기는 했는데, 관리한 지가 오래되었는지 중간부터 조금씩 부서져 있었다.
아멜리아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 잘 모르, 겠습니다. 저, 새가 떨어지고, 눈밭에 착지했지만 새, 새도 죽은 게 아니었고, 또 주변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 껴져서 일단,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로 공작님을 옮겼, 어요.”
“기척?”
“자, 잘은 모르겠지만, 대, 대충 위험한.”
괴조와 함께 추락하던 지점이 어디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부 경계선을 넘어왔다는 것,
아멜리아가 말한 눈밭은 북부 초입부터 나타난다던 설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루셀만 내버려 두고 북부에 도착했다는 셈인데.
“사, 사람도 안 보이고요. 게다가, 날씨가 어둡고 누, 눈이 내리니까 시야 확보가 어렵, 어려워서.”
“괜찮아. 여기가 어디인지는 한 번 살펴보면 알겠지. 버려진 건물이라 아무도 없는 걸 수도 있잖아.”
“고, 공작님. 어쩌면 좋을지.”
“일단…… 먼저 좀 올라가 볼까?”
그렇게 말하며 위를 올려다봤다.
이 방은 천장이 공작저보다 훨씬 더 높았다.
결국 원통형 구조를 가진 일종의 탑이라는 소리다.
아멜리아가 나를 안고 바로 들어온 걸 보면 탑이 잠겨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아직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좀 정찰해보자. 날씨가 문제가 된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
“네, 네!”
나와 아멜리아는 탑 벽에 붙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밖에서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소리가 탑 안쪽까지 들렸다.
무너진 곳은 아멜리아가 먼저 건너가 보고 나도 건널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희미한 빛이 스미는 최상층 천장의 뚜껑을 밀어 올리자,
“읏.”
살을 에어낼 것 같은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뼈를 저미는 추위는 망토를 아무리 여며도 틈새로 스며들었다.
얼어버린 눈이 따끔따끔하게 볼을 후려치고 지나가는 눈보라에 일순 압도되었다.
회보랏빛의 어두운 하늘,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흐릿한 창공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새하얀 얼음의 동토.
초목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이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져 있는 왕국의 경계.
“여기가, 북부…….”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지만 바람에 휩쓸려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멜리아의 말처럼 멀리까지 내다보기는 불가능했다.
다만, 이 탑의 양옆으로 비슷한 크기의 구조물이 서 있었다.
“가, 감시초소, 일까요?”
“그럴지도 몰라. 여기가 경계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라면.”
북부의 한가운데에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이라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 목에 걸려있는 검은 호각.
그 캠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기는 했지만.
“고, 공작님? 호, 혹시 몸이 안 좋으세요?”
“아냐, 괜찮아. 일단은 내려가자. 너무 춥다.”
아멜리아에게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 것이며, 루셀에게는 어떻게 둘러댈지 생각하는 게 골치 아팠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공작부인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일 뿐.
내가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지난 회차처럼 죽거나 약물 중독으로 서서히 사망했겠지.
나는 아멜리아의 에스코트를 받아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손에 내 손을 미처 올리기도 전.
“공작님!”
내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멜리아가 나를 끌어안고 다른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서 있던 방향으로 묵직한 것이 내려찍히는 소리와 익숙한 괴성이 들렸다.
“이, 이게 무슨!”
“그, 새예요!”
한쪽 눈을 잃은 새는 대가리의 반쪽이 검은 체액으로 칠갑 되어 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녹색 눈알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초소탑 꼭대기의 난간을 발톱으로 쥐고 성난 포효를 질렀다.
등을 보여도 죽고, 여기에 있어도 죽는다.
내가 죽는 것 정도는 익숙하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여기서 죽으면 이제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멜리아를 먼저 아래로 보내고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한다.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를 꽉 안은 그녀의 팔을 잡으며 내 뒤로 보내려고 할 때였다.
“아멜……. 아멜리아?”
뭔가 이상하다.
분명 놀라서 겁을 먹거나 떨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나를 풀어주더니 제 발로 내 앞에 걸어가서 섰다.
나와 샨타크 사이를 가로막은 그녀는 양쪽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었다.
하나는 평범한 단도, 다른 쪽은 아른트가 건네주었던 마수 무기.
“공작님, 지금 아, 래로 내려가세요.”
“아멜리아.”
“여기 있으면 방해, 라서. 부탁, 드립니다. 저, 저도 곧 내려갈 테니까.”
이대로 가라고?
하지만 아멜리아에게 더 말을 붙이기에는 그녀 앞에 침을 질질 흘리는 샨타크가 있었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고요한 아멜리아까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아멜리아가 목숨을 바치고 시간을 벌어다 준다면,
나는 나름대로 그에 대한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 * *
아렌하이트가 무사히 내려가는 걸 확인한 아멜리아는 단도를 고쳐 잡았다.
날이 여간 추운 게 아니라 손이 자연스레 곱아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장시간 대치를 할 수는 없다.
아래에서 무엇이 올라올지도 모르는 데다가, 아렌하이트 공작은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고, 공작부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네요…….”
첫 만남에는 그래도 조금 닮은 것 같더라니.
제 종이 바락바락 대들거나 말대꾸를 해도 그래그래 하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공작부인의 유일한 혈육이라기에는 너무 무르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아까도 자신의 앞에 나서려고 힘껏 꿈틀거리고 있지 않았던가.
“하, 하지만 그랬다가는 도, 돌아가신, 공작부인께서, 경을 치실, 치시겠죠.”
공작부인에게 받은 은혜는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로, 말 그대로 셀 수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공작부인을 배신했다.
그깟 사랑에 눈이 멀어서, 자신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들떠서.
하지만, 지금 그 은혜를 갚을 때가 되지 않았던가?
아멜리아의 손안에서 단도가 비틀렸다.
그녀는 자세를 낮추고 거대한 괴조를 노려봤다.
아까 올라탈 때 깨달았지만 비늘은 합금처럼 단단했다.
날개까지 비늘로 둘러싸고 있으니 칼이 들어갈 수 있는 구석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하늘로 솟구친 작은 몸은 정확하고 예리했다.
허공에서 한 번 빙글 돈 몸은 그녀의 궤적을 쫓아 고개를 치켜든 괴조의 하나뿐인 눈을 노렸다.
화살은 작지만 치명적이었고, 과녁은 무르지만 커다랬다.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리가 북부의 하늘에 울렸다.
‘모자라.’
역겨운 감촉을 담담하게 받아낸 아멜리아는 머리가 휘둘리는 바람에 멀리 떨어졌다.
지이익, 하고 신발 바닥과 돌이 마찰하는 소리를 쿵쿵거리는 소음이 덮었다.
괴물이 이쪽으로 전속력 돌진하고 있었다.
눈이 멀었으니 이제는 소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
그녀는 옆으로 훌쩍 뛰는 걸로 첫 번째 박치기를 피했다.
난간이 무너지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와 함께 괴조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능도 낮아.’
불빛을 보고 혼자 있는 아렌하이트를 급습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본능일 것이다.
타고나길 교활하고 얍삽하게 태어났지만, 정작 그 머리에 뇌라고는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다는 게 증명되었다.
아멜리아는 제 발치로 굴러온 돌을 집어 다른 쪽으로 힘껏 던졌다.
괴조의 머리가 그대로 돌아가더니 찢어질 듯한 울음을 내며 온몸을 떨었다.
그 틈을 타 한 번 더 뛰어오른 그녀는 곡예사처럼 괴조의 목 위에 올라탔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그녀는 단검을 몇 번이고 머리와 목의 경계부에 찔러넣었다.
-캉, 까앙!
두어 번 휘둘렀을까, 단검 끝은 형편없이 무뎌졌다.
그 사이에 괴조는 스스로 머리를 난간에 처박으며 발광을 해댔다.
충격을 피할 수 없었던 아멜리아는 목에서 미끄러지다가 겨우 매달렸다.
“그렇다면……!”
아른트가 맡긴 단검이 왼손에서 반짝였다.
피에 젖어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것을, 아멜리아는 비늘이 난 방향에서 역으로 찔러 들어갔다.
-키기긱!
믿을 수 없게 쇠와 쇠가 마찰하는 소음이 났다.
마수의 이빨과 함께 제련한 검이 한낱 괴조의 얇은 비늘 한 겹을 뚫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멜리아의 얼굴에 드물게 희열이 피어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괴조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단어 그대로 날뛰었다.
바닥을 구르고, 난간에 몸을 부딪치며 아멜리아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아멜리아의 필사적인 노력이 더 강했다.
결국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괴조의 목에서 검은 체액이 분수처럼 솟구쳤고, 그걸 흠뻑 뒤집어쓰면서도 아멜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괴조는 비틀거리다가 하늘을 향해 길고 높은 울음을 뱉더니, 그 자리에 육중한 몸을 뉘였다.
아멜리아는 그제야 손을 놓고 바닥을 굴렀다.
“끄, 끝…….”
겨우 일어난 아멜리아는 아직도 괴조에게서 꿀럭거리며 흘러나오는 검은 체액을 보다가 제 얼굴을 닦았다.
문득 손에 쥔 단검이 눈에 띄었다.
별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단검.
호화스러웠지만 그 위력은 얕볼 게 아니었다.
아멜리아는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제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이 단검이 나를 구했어.
당신이 나를 구한 거야.
그렇게 못마땅한 얼굴을 하면서 주더라니.
정말 귀여운 사람이야!
아멜리아의 얼굴에 분홍색 홍조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