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5)
◈ 155화. 위험한 냄새
북문을 나선 일행이 관도의 우측으로 난 작은 숲길에 접어들었다.
육군명의 얼굴에 의심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정말 이런 곳에 중원맹이 있다는 거야?”
“이쪽 어디에 있는 건 확실해요.”
유대하가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그 말은?”
동초개가 씩 웃었다.
“사실 개봉에 와서 똥만 치우느라 듣기만 했지 가본 적은 없어요.”
“…….”
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초개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렇게 이십 장을 나아갔을 때였다.
육군명과 유대하가 동초개의 어깨를 잡는 순간, 전방의 나무에서 청의를 입은 사내가 뚝 떨어져 내렸다.
“에구머니나!”
움찔한 동초개가 기겁하며 뒷걸음쳤다.
눈앞의 청의인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여기부턴 중원무림맹의 구역이오. 돌아가시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동초개가 버럭 화를 냈다.
“이런 시벌. 놀랐잖아요!”
“…….”
갑작스러운 욕설에 청의인은 이게 뭔가 싶은 눈으로 동초개를 쳐다봤다.
육군명이 그를 툭 치며 은근히 말했다.
“그렇게 욕해도 되냐?”
“워, 워낙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헛기침을 한 동초개가 포권을 취했다.
“흠흠. 본인은 개방의 사결제자 동초개라고 하오. 비각의 부각주 적모개 어른을 만나고자 왔소.”
청의인의 눈이 동초개를 위아래로 살핀다.
동초개는 아차 싶은 얼굴로 숨겨둔 매듭을 꺼냈다.
그에 상대는 매우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개방의 대협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시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청의인은 그대로 몸을 돌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초개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했다.
“……그렇게 정중하면 내가 뭐가 돼?”
유대하가 실소를 흘렸다.
“욕이라도 해주길 바란 거요?”
“그건 아니지만.”
네 사람은 적모개를 기다리며 나무 밑에 앉았다.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파고든다.
용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젠 춥네. 겨울이 올 모양인데.”
사천에서부터 이곳 개봉까지.
정신없이 흘러간 나날 속에 계절은 어느덧 겨울을 앞두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히 달려오는 적모개가 보였다.
“분타주!”
벌떡 일어난 동초개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적모개는 동초개의 머리를 냅다 쥐어박았다.
“으악!”
적모개가 눈에 불을 켜고 쏘아붙였다.
“이 망할 놈이 대체 어딜 쏘다니다 온 거야?”
동초개는 머리를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모처럼 만났는데 이럴 거예요? 사람이 변했네. 호의호식하다 보니 전우애라는 게 사라졌나 보지?”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딜 다녀왔냐니까?”
“똥 냄새가 싫어서 잠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방주님 밥그릇 깨고 도망친 게 아니고?”
동초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못 봤는데?”
“역시 네놈이었군.”
지레짐작에 넘어간 동초개가 인상을 구겼다.
“시부럴.”
한참을 쏘아붙인 적모개는 그제야 주변인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냐?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역용을 한 세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유대하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접니다. 분타주.”
웃는 낯에서 왠지 익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설마 유소협?”
적모개의 두 눈이 한 명씩 천천히 살펴 간다.
유대하에 이어 육군명과 용추까지, 고단한 업무 속에 참으로 그리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적모개는 반가운 얼굴로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짧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적모개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반가운 지인들이라곤 하나 외부인을 맹에 들일 수는 없는 법.
그들은 맹에서 제법 떨어진 곳의 한적한 관제묘에 도착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관제묘 내부에는 작은 침상까지 놓여 있었다.
동초개가 물었다.
“여긴 뭐예요?”
“가끔 일하기 싫을 때 쉬려고 만들어둔 안가다.”
“여전하시네.”
적모개는 구석의 바닥을 들고 술병을 꺼냈다.
“모처럼 만났는데 술이 빠질 순 없지. 안주는 없지만 다들 한 병씩 하시오.”
육군명이 씩 웃었다.
“그래도 필요한 건 다 있군.”
적모개도 마주 웃어 보였다.
“이곳에서 며칠 느긋하게 쉬다 가도 좋소.”
다섯 사내가 바닥에 원을 그리듯 둘러앉았다.
적모개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 물었다.
“그곳 사정은 좀 어떻소? 정신없이 바쁠 텐데 다들 잘 지내고 있습니까?”
유대하가 멋쩍게 웃었다.
“다들 잘 지낼 겁니다. 그보다 분타주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 이것저것 시키기만 하다가 시키는 일을 하자니 아주 죽을 맛이오.”
“하하하. 그래도 능력을 인정받아 이곳까지 온 것이니 좋은 일이 아닙니까?”
적모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나도 그럴 줄 알았소. 현실은 좀 다르더군.”
반역에 가담한 스승으로 인해 평생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중원이다.
진무립과 함께하며 운 좋게 이곳까지 오게 됐을 때는 아쉬우면서도 기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막상 이곳에서 일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은 것이 달라. 소공자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군. 가끔 바람을 쐬러 나올 때마다 남서쪽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오.”
적모개의 두 눈에 아련한 빛이 떠오른다.
용추가 물었다.
“그립나?”
“하하하. 그야 내 평생을 보낸 곳인데 당연한 일 아니겠소?”
동초개도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그래요. 사결제자가 되고 여기 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사천에서도 안 하던 똥만 푸게 하고.”
적모개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너를 사천분타로 보내자고 방주님께 말씀드렸다.”
동초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게 정말이에요?”
“거절하시더군. 밥그릇 깬 놈 찾기 전까진 누구도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동초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차라리 말을 말지.”
적모개는 유대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다들 여기까진 어쩐 일이오? 그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 테고.”
동초개가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이젠 자신이 나설 때였기 때문이다.
“분타주.”
“뭐냐?”
“있잖아요. 그거.”
“그거?”
“금성표국주와 밀담을 하기로 했던 거 말이에요. 그거 어떻게 됐어요?”
적모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네놈 입을 믿었던 내 잘못이지.”
육군명이 미안한 듯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 사실 우리도 궁금하거든.”
잠시 망설이던 적모개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손을 잡자고 하더군. 상천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지부를 세워 함께 관리하자고 말이오. 그리 해주면 거래처 일부를 넘겨줄 수도 있다고 했소.”
일순 유대하와 육군명의 얼굴에 어둠이 스치고 사라졌다.
육군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중원맹의 대답은?”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연일 회의로 바쁘다오. 마음 같아선 반대하고 싶으나 상천과 작은 인연이 있는지라 말을 꺼내기 어렵더군. 그런데 설마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날 찾아온 것이오?”
육군명을 슬쩍 쳐다본 유대하가 입을 열었다.
“분타주께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으니 이쪽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적모개가 멋쩍게 웃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그렇게 심각하시오?”
“사실 우리는…….”
유대하가 진실을 털어놓으려는 순간 육군명이 끼어들었다.
“중원무림맹도 돌아볼 겸, 개봉을 비롯해 이곳저곳 유람하고 갈 생각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도 안 보고 가면 그렇잖아?”
의아한 듯 쳐다보는 유대하의 귀로 육군명의 전음이 틀어박혔다.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내색하지 말고 대화를 이어가.]있다가 아니라 있는 것 같았다.
전음을 보내는 이 순간까지도 확신이 오질 않는다.
‘만일 숨어있는 놈이 있다면 은잠술만큼은 단소저나 은무대주에 필적할 정도다.’
유대하는 내색하지 않고 적모개에게 전음을 전달했다.
적모개는 눈으로 수긍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갔으면 서운했을 거요.”
“개봉은 어디가 볼만합니까?”
“가볼 곳이야 많다만 우선 북제 시절 지어진 대상국사가 가볼 만하지.”
나직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육군명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마지막으로 상천의 이야기를 한 게 언제였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개봉의 남문 앞 들판이 나온다.
‘그곳에선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성문을 넘은 뒤엔 상천을 언급한 적은 없다.’
천만다행이다.
그렇다면 놈이 왜 자신들을 쫓아왔는지 생각해야 한다.
‘역용을 한 얼굴을 알아봤을 리도 없고 상천의 무인이라서 따라온 건 아니다.’
동초개에게 미행을 붙였을 리는 없다.
적모개라면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게 되면 중원무림맹에서부터 미행을 했다는 말이 된다.
중원무림맹의 영역에서 대담하게 그를 미행할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성문을 넘어서부터 이곳에 오기까지.
지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는 가운데 불현듯 시전에서 마주친 남녀가 떠올랐다.
‘설마 그놈인가?’
접촉이 있었다면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던 그 사내밖에 없다.
그때 술을 홀짝이며 마시던 동초개가 투덜대듯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재미없는 얘기만 할 거예요? 사실 우리는…….”
흠칫 놀란 유대하가 고개를 돌릴 때였다.
꽝!
별안간 뚝 떨어진 용추의 주먹이 그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억!”
눈이 풀린 동초개가 스르륵 쓰러지자 용추는 히죽 웃었다.
“최근에 익힌 기억봉인술을 시험해봤어.”
“……자칫하면 기억봉인이 아니라 인생을 봉인시킬 것 같소만.”
“그것도 연구해볼 거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던 적모개가 실소를 흘리며 남은 술을 들이켰다.
“아쉽지만 회의가 있어 다녀와야겠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올 수 있을 거 같군.”
천천히 일어나던 적모개가 고개를 숙인 채 전음을 보냈다.
[술을 꺼낸 자리에 부싯돌이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관제묘에 불을 지피시오. 맹의 망루에 일러 이쪽을 주시하라 이르겠소.]유대하는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다녀오실 땐 안주라도 챙겨 오십시오.”
“거지에게 안주를 요구하다니.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젖힌 적모개가 관제묘를 나섰다.
지붕에 숨어 내부를 주시하던 각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눈치챈 건가?’
각환은 이내 생각을 고쳤다.
저들과의 간격은 일 장 반.
상대가 천하십대고수에 준하는 인물이 아닌 이상 이 간격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를 더 머문다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보고한다.’
조용히 관제묘를 빠져나온 각환은 빠르게 개봉으로 향했다.
* * *
고요한 방 안.
침상 곁에 앉은 운화결은 쌔근쌔근 잠이 든 임교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각환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그의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주군. 다녀왔습니다.] [어디냐?] [북문 밖 관제묘입니다. 하루 정도 머물 모양입니다.]고개를 끄덕인 운화결은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널 아프게 한 녀석들을 혼내주고 오마.’
운화결이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물었다.
그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목적이 무엇인 것 같더냐?]짧은 정적 끝에 다시금 전음이 들려왔다.
[별것 아닌 대화 중에 나온 터라 특별한 목적을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천천히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덧 하늘이 어둑해졌다.
운화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앞장서라.”
“예.”
그들이 장원을 나설 무렵.
동초개의 코골이가 나직이 퍼지는 가운데, 육군명이 용추에게 무언의 시선을 던졌다.
사방을 둘러본 용추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이젠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내 생각도 그래.”
깊은 숨을 토해낸 유대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시전에서 마주쳤던 그자는 대체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인물은 없다.
“그건 모르겠다만 위험한 냄새가 좀 풍긴단 말이야.”
나직이 읊조리던 육군명이 이어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일단 적모개에게 들을 건 대충 들었으니 그냥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