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4)
◈ 154화. 그들의 꿈
왠지 모를 울컥한 감정이 솟구친 운화결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영아.”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잠시 놀란 그녀는 이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악몽을 꾸셨나 봐요.”
요동치는 심장 박동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진다.
그 떨림이 잦아들 무렵.
그녀를 곁에 눕힌 운화결은 눈꺼풀을 내려 아련한 눈빛을 감췄다.
“길몽이다.”
“상공은 거짓말쟁이로군요.”
그녀의 핀잔에 운화결이 웃는다.
참으로 신기한 여인이다.
임교영과 대화를 나누면 그 어떤 걱정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는 운화결의 팔을 베고 누웠다.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리 사천으로 가요.”
“왜 하필 사천이더냐?”
“이곳 중원에서도, 복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짧은 정적이 지나간다.
그리운 곳이면서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그녀에게 고향 복건성은 그런 곳이다.
장사치였던 부친이 풍랑에 실종된 뒤, 모친과 함께 노예로 팔려간 그녀는 해적 소굴에서 모진 수모를 겪으며 삼 년을 버텼다.
운화결이 그곳에 나타난 것은 모친을 잃고 절망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였다.
단신으로 백여 명이 넘는 해적을 도륙한 운화결은 그곳에서 그녀를 구했다.
모든 것을 잃고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족이자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운화결은 어색한 정적을 깨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그러자. 모든 일이 끝나면…… 사천에 가서 꽃도 심고, 밭도 일구고 그렇게 살자꾸나.”
“당신을 닮은 아이가 있다면 참으로 예쁠 거예요. 한 명쯤 첩을 두어도 괜찮아요.”
운화결은 그녀의 진담을 농담으로 받고자 애써 웃었다.
“하하하. 내 죽기 전까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힘주어 안으며 화제를 돌렸다.
“중원맹에서 답변이 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일은 개봉의 시전에 가보자꾸나.”
“……알겠어요.”
임교영은 작게 끄덕이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 * *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이 짙은 안개를 밀어낸다.
얼마 전 대별산을 나선 십여 대의 수레와 일백의 녹의인은 드넓은 평야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대열의 중앙, 단출한 사두마차에는 진무립과 단려화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단려화가 진무립의 가면을 응시하며 물었다.
[가면 쓰고 다니는 거 불편하지 않아요?] [그대의 면사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왜 전음을 보내는 거야?]단려화는 앞을 힐끔 쳐다봤다.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이틀 전에 합류한 수문화와 두용청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무립은 그녀의 강압에 못 이겨 흑면탈을 벗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간다.
닫힌 창문 밖에서 백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말이 지쳐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이참에 조식을 해결하겠습니다.”
“알았다.”
진무립이 다시 흑면탈을 착용하자 단려화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시기도 참 적절하네요.] [그런 표정 마음에 들어.] [면사를 더 두꺼운 것으로 사야겠네.]곧이어 마차가 멈추며 네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 서늘한 새벽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빨려든다.
무인과 상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식사를 준비한다.
진무립과 단려화는 조금 떨어진 작은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하늘의 구름과 함께 말 없는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단려화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알면서 뭘 물어봐?”
“마도림을 반석 위에 올리는 것과 상천의 가족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 그건 진정으로 당신을 위한 꿈이 아니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이 물었다.
“나를 위한 꿈은 대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똑똑한 사람이 정말 그걸 몰라서 물어요?”
“나라고 전부 아는 건 아니야.”
“예를 들면 말이죠. 혼인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는 몇을 낳을 것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거 말이에요.”
“그게 나를 위한 꿈인가.”
“남을 위한 꿈은 아니잖아요.”
작게 끄덕이는 것을 보니 이해한 모양이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진무립은 미안한 듯이 말했다.
“답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말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그런 거야.”
“알고 있어요. 당신은 바쁜 사람이니까.”
단려화는 천천히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 까닭이다.
‘이 사람이 원하는 모든 염원을 이룬다면…… 과연 그때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마도림의 부흥은 모친의 꿈.
은곡 출신이 아닌 진무립에게 상천의 세상은 엄밀히 따지면 그가 아닌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한 꿈이다.
적수를 찾기 힘든 엄청난 무공과 번뜩이는 두뇌.
원하는 모든 걸 가질 능력이 있음에도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였구나. 그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거야.’
이제야 깨달았다.
상천의 사람들이 진무립을 신처럼 숭배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하나 생각해봤다.”
그녀의 고개가 진무립에게 향했다.
“무엇을요?”
“내 꿈.”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비친다.
“모든 일이 끝나면 사천으로 돌아갈 거다.”
단려화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그거 혹시 맹주님과의 약속 아니에요?”
마도림에는 초무강의 후계자가 필요했다.
진무립의 능력이라면 마도림과 상천의 통합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끝까지 들어봐. 사천으로 돌아가면 와룡소의 죽림부터 걷어낼 거다.”
처음으로 말하는 그를 위한 꿈.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흥미로운 빛이 번졌다.
“그리고요?”
“죽림을 밀어낸 자리에 다섯 칸 정도로 집을 다시 지을 거야. 주변엔 능소화를 심을 거다. 그곳에서 혼인도 할 거고 아이도 키우겠지.”
가진 능력에 비하면 욕심이 없는 평범한 꿈이다.
그러나 단려화는 왠지 그 꿈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남을 위해 희생만 하는 고독한 삶은 아닐 테니까.
“첩도 한 명쯤 들여볼까?”
“어머, 그거로 되겠어요? 넉넉하게 대여섯 명 두는 게 어때요?”
그녀의 새침한 말에 진무립은 씩 웃으며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렵겠어. 생각해보니 나는 한 명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거든.”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 돌렸다.
‘사천이라.’
아련한 눈동자에 지나간 추억이 떠오른다.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두용청이 수문화에게 물었다.
“천주님과 저 여인은 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수문화는 단려화를 슬쩍 살피더니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셨소? 광룡의 곁에는 언제나 광녀가 있다.”
“그건 최근 십대고수에 오른 광룡과 그의 곁에서 미친 듯이 싸우던 여인을 말함이 아닙니까? 천하에 자자한 소문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광룡이 저기, 저 가면 쓰신 분이고 광녀가 바로 면사를 쓰신 여인이오.”
“그, 그, 그게 정말입니까?”
두용청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산채에서도 다들 천주님, 천주님 하니까 아는 이가 별로 없지만 주군의 본명이 진무립이오.”
“마도림의 소공자라고 하던데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오. 돌아가신 주군의 모친께서 공위맹주 초대협의 따님이셨지.”
“무면산왕과 광룡이 동일 인물이었다니…….”
십대고수의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게 알려진다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천천히 다가왔다.
움찔한 수문화가 두용청을 툭 치며 말했다.
“잡설은 그만하고 굶기 싫으면 일합시다. 용전표국은 어떻소?”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던 두용청이 이내 입을 열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용전표국은 머지않아 태산표국에게 흡수될 겁니다.”
“음.”
둘은 수문화가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인수할 표국을 물색하는 중이었다.
두용청이 말했다.
“산동에서 고르자면 대량표국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곳을 고른 연유가 무엇이오?”
“곡부에 위치한 대량표국은 태산표국이 성장하기 전까지 인근에서 가장 큰 표국이었습니다. 이곳의 표사는 용전표국과 달리 전원 낭인 출신으로 은곡과 악연이 없습니다.”
어느새 다가와 대화를 듣던 진무립이 물었다.
“태산표국과의 관계는?”
“견원지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묻는 순간 바로 답이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업계에서 경험 많은 이가 있으니 편하다.
두용청을 포섭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곡부라면 마침 우리가 지나는 길에 있군. 열흘 안에 도착할 수 있겠어.”
수문화가 물었다.
“직접 가보시겠습니까?”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용청. 내일까지 대량표국에 대해 아는 바를 남김없이 적어 보고하도록. 문화는 표국과 접촉할 방도를 찾아봐라.”
“알겠습니다.”
* * *
진무립 일행이 산동의 경계에 접어들 무렵.
개봉의 성문이 보이는 관도에 네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하하.”
허탈하게 웃는 이는 동초개였다.
“내가 여길 다시 오네.”
유대하와 육군명이 마치 그를 구속하듯 양어깨를 잡았다.
“동소협은 소공자의 왼팔 아닙니까.”
“아니지. 이젠 무면산왕의 왼팔이지.”
동초개가 움찔하며 물었다.
“내, 내가 무면산왕의 왼팔?”
용추가 씩 웃었다.
“너는 왼팔. 나는 오른팔.”
육군명이 은근히 겁을 주며 말했다.
“행여 내가 죽게 되면 동초개가 무면산왕의 왼팔이라고 세상에 까발릴 거야.”
동초개가 울상을 지었다.
“……나한테 왜 그래요?”
빙그레 웃은 유대하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만큼 믿는다는 겁니다. 갑시다.”
단숨에 성문을 넘은 네 사람이 개봉의 떠들썩한 거리에 접어들었다.
인파 사이를 나아가던 육군명이 동초개에게 말했다.
“적모개와 접촉하는 게 우선이다. 어디로 가야 하지?”
행여 아는 얼굴을 만날까 걱정한 동초개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북문을 나가야 해요. 그냥 성을 돌아갈 걸 그랬나.”
사천맹에 성도의 북쪽에 있었던 것처럼 중원무림맹도 개봉의 북쪽에 있었다.
성 내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면 무고한 양민이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을 살피며 일행을 이끌던 동초개의 어깨가 마주 오던 여인과 부딪쳤다.
“앗.”
휘청한 동초개를 유대하가 붙잡았고 넘어지던 여인을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부축했다.
“이런, 죄송…….”
사과하던 동초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과 부딪친 여인의 매혹적인 미모가 천하절색이었기 때문이다.
단려화가 청초한 인상의 미인이라면 눈앞의 여인은 그와 반대로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미인이었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저 또한 앞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헌앙한 외모의 사내가 그녀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냐?”
“네. 상공.”
육군명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미안하오. 개봉은 초행이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 모양이오.”
사내는 마주 예를 갖췄다.
“괜찮다고 하니 괘념치 마시오. 그럼 가보겠소.”
두 남녀는 육군명의 곁을 스쳐 지나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뒤를 슬쩍 돌아본 육군명이 미간을 좁혔다.
‘뭐지?’
사람이란 누구나 특유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상대에게선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앞서 나아간 동초개가 그를 재촉했다.
“뭐해요? 어서 가요.”
“……그래.”
육군명은 잡념을 지우고 서둘러 뒤를 따랐다.
지금은 지나간 사내의 정체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들과 지나친 여인이 불편한 듯 어깨를 매만졌다.
“괜찮다고 하더니 아닌 모양이구나.”
그의 말에 임교영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잠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다.”
“상공.”
그녀가 걱정스럽게 운화결을 쳐다봤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첩은 정말 괜찮사옵니다. 그러니…….”
운화결은 그녀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빙그레 웃었다.
“나도 배가 고파서 말이다.”
한결 마음이 놓인 임교영이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래요. 상공.”
고개 돌린 운화결의 두 눈에 섬뜩한 빛이 스치듯 사라졌다.
[각환.]복잡한 대로변, 우측의 지붕 위에서 매우 은밀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이내 답을 해왔다.
[예. 주군.] [교영과 부딪친 자들의 거처를 알아와라.]임교영은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은 존재.
지금까지 그녀에게 작은 고통이라도 안겨준 자는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