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63)
◈ 163화. 상천과 태산표국
물끄러미 쳐다보던 시평이 물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석두가 급히 시선을 거뒀다.
“죄, 죄송합니다.”
“네 가족은 내가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 마라.”
시평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석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니 자신들의 가족을 데려간 것은 바로 양산채였던 것이다.
단려화가 시평을 보며 핀잔했다.
“왜 겁을 주고 그래요?”
시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상천의 채주에게 한 소리 할 수 있는 여인은 천하에서 소저밖에 없을 겁니다.”
표국이 퍼트린 온갖 괴소문으로 인해 상천에 대한 인식은 흉신악살이나 다름없었다.
진무립이 석두를 바라보았다.
“태산표국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해봐라.”
“예. 태산표국은 국주와 세 명의 대표두가 거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습니다.”
“대표두?”
“천하대전에서 팔황문에게 멸문당한 숭무문과 전가보, 비룡문 출신의 고수들입니다.”
“전쟁의 생존자인가?”
“그렇습니다. 표국의 수뇌부 대부분은 그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진무립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혹시 다른 오대표국의 수뇌부도 그들과 같은 처지인가?”
“대부분 비슷합니다. 사실 일급 이하의 젊은 표사들은 천하대전 당시 어린아이였거나 그 뒤에 태어난지라 전쟁과 직접적인 접점은 없습니다.”
“대표두의 무위는?”
“무림 칠군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 바로 아래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산동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히는 고수들입니다.”
진무립의 머릿속에 다양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숭무문과 전가보, 비룡문에 그런 고수를 키울 만한 무공이 있었나?’
천하대전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진무립이다.
고작 문도 수 일백에 불과한 방파에서 그런 고수를 배출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평이 말했다.
“표국이 자리 잡은 뒤로 국주는 표행에 나서지 않습니다. 중요한 표행은 세 명의 대표두가 번갈아 나서지요. 그중 벽력도(霹力刀) 악계화는 주목할 만합니다.”
“악계화?”
그에 석두가 답했다.
“한 자루 도를 제 몸처럼 사용하는 잡니다. 성격도 패도적인 도초만큼이나 거칠어 산동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시평이 눈을 흘기며 그를 툭 쳤다.
“이봐. 난 주군 외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야.”
움찔한 석두가 즉시 말을 고쳤다.
“사, 상천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대표두는 각기 쉰 명의 직속 표사를 데리고 있는데 백표대(白彪隊)라고 합니다. 그들이 받는 대접은 일반 표두를 상회합니다.”
진무립이 말했다.
“표국에서 꽤나 아끼는 모양이군.”
“그들의 무공이 일반 표두를 웃돌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만나셨던 능양보다 강한 자가 쉰 명이라고 보면 됩니다.”
수문화에게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으나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비록 진무립을 만나 어처구니없게 깨지긴 했으나 능양의 무위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표두가 셋이니 그런 자가 백오십은 된다는 말이다.
하나의 거산채에는 은곡 출신 무인 백여 명과 새롭게 양성하는 무인을 포함해 이백여 명이 있다.
석두의 말이 온전히 사실이라면 오대표국의 전력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그들은 오로지 대표두의 명에만 따르며 임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연무장에서 침식을 함께합니다. 기루나 객잔조차 가는 법이 없으니 정말 무공에 미친 자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시평이 이어서 말했다.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총사가 적극적으로 충돌을 말린 이유도 바로 백표대 때문입니다. 그들과 싸우면 이쪽도 반드시 본신 무공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런 놈들을 데리고 그토록 깔보던 우리와 적극적으로 싸우려 들지 않았다. 그 말은 놈들도 숨기고 싶은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금성표국주 운화결은 은곡의 무공을 익혔다.
백표대 역시 그와 연관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진무립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양측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먼저 무공을 노출하는 쪽은 천하의 공적이 된다.
자칫하면 양측 모두 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중원무림맹을 끌어들이려는 것인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으나 상대는 다리를 하나 더 놓으려 한다.
진무립의 두 눈에 흥미로운 빛이 번졌다.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구나.”
시평이 시원스럽게 웃었다.
“하하하.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웃는 걸 보면 자신 있는 모양이야.”
“세상에서 저를 막아설 수 있는 자는 주군밖에 안 계십니다.”
“채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를 떠올린 시평은 기분 나쁜 듯 슬며시 고개 돌렸다.
“그놈에게 이기면 뒤통수가 근지러워서…….”
백채륜과 시평은 같은 은곡 출신으로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자랐다.
상천팔기의 다른 채주들과 달리 두 사람은 진무립이 직접 무공을 가르쳤다.
비록 나이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 진무립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충직한 상천팔기 중 두 사람의 충심이 유독 남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단려화가 궁금한 듯 물었다.
[팔기 중에 누가 가장 강한가요?]그들을 본 적은 있으나 먼 거리에서 잠시 지켜본 터라 뭔가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과거 팔황문의 팔성 중 누가 가장 강했는지 아나?] [창성 반서련이 가장 강했다고 들었어요.]구천맹을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그녀의 창술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단려화의 스승 천영이 없었더라면 분명 구천성은 함락됐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흑백독화(黑白毒花) 이하빈. 복호채주의 창술이 가장 강하지.]말을 듣는 순간 다소 냉막한 인상의 미녀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럼 시채주의 자신감은 뭔데요?] [복호채주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치는 거다.] […….]* * *
빛 한 점 들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은 밀실은 한 사내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수련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압도적인 위엄이 묻어난다.
그 앞에 부복한 사내는 등 뒤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동진상단의 상행에 대량표국의 깃발이 걸려있습니다.”
“표행에 나선 것은 누구냐?”
“표두 능양입니다. 일급표사 종보도 그와 함께 표행에 나섰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종보는 국주 청금환의 육촌 조카였다.
그러나 청금환의 눈빛에는 그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는다.
“지금 표행을 이끄는 자는 누구냐?”
“대량표국의 깃발을 내걸곤 있으나 그곳의 표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자들입니다.”
표행에 참여했던 쟁자수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량표국주 신노군의 설득으로 곡부에 남은 까닭이다.
“그 한 놈은 누구냐?”
“청옥공자 시평입니다. 그 외에 백여 명의 무인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청금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양산채의 시평?”
“예. 항시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다니기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청금환의 눈에 섬뜩한 빛이 번갯불처럼 스쳐 갔다.
“그놈이 제남에 온다는 말이지.”
지금까지 충돌을 극도로 기피하던 자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상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능양을 비롯한 표사들은 전부 죽었을 게 분명하다.
별로 아쉬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표국의 입장에서 좋은 명분이 될 테니까.
“분부를 기다립니다.”
“음.”
청금환은 생각을 정리했다.
순순히 돌려보낼 뜻은 없으나 이곳 제남에서 섣불리 충돌할 수는 없는 일.
여기서 부딪히는 것은 고작 백여 명을 이끌고 온 상대 역시 원치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은표대를 보내 감시하라. 일단 지켜볼 것이다.”
무공은 대단치 않으나 추적과 감시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즉시 전하겠습니다.”
부하가 꺼지듯 사라지자 청금환은 그대로 밀실을 나섰다.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근육질 몸매가 칼날조차 튕겨낼 듯 탄탄하다.
‘아직 부족하다.’
눈앞의 벽 너머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 걸음이 천 리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대기하던 시비가 다가와 식지 않은 어깨에 얇은 도포를 걸쳐 주었다.
생각을 정리한 청금환의 눈에 욕망의 불길이 일렁거린다.
“세 명이다.”
그녀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즉시 준비하겠사옵니다.”
* * *
제남에 들어선 진무립 일행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시선 속에 동진상단으로 향했다.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창문을 슬쩍 열어본 단려화가 작게 말했다.
“여섯이네요.”
시평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육감은 소천무군에게만 이어졌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만일 육감도 없는데 이 정도라면 대체 신룡은 어떤 괴물이라는 거야?’
저 많은 사람 중에 콕 찍어서 감시자를 찾아내는 감각은 놀라울 정도였다.
긴장한 석두는 복면을 잔뜩 끌어 올렸다.
이곳 제남에선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평이 핀잔하듯 말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사실인데 뭘 그리 숨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단려화가 빙그레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말아요.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팔짱을 낀 진무립은 앞으로의 계획을 재차 점검했다.
‘동진상단이 표국의 손을 놓는다면 다른 상단도 연쇄적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당금 무림에서 오대표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곳은 화령과 인연이 있는 천하상단뿐이다.
만일 동진상단과 같이 큰 규모의 상단이 상천과 손을 잡는다면 오대표국의 입지를 흔들 수 있다.
독과점을 악용해 점점 표행비를 올린 탓에 불만을 가진 상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직접 이곳까지 온 이유였다.
수레 곁에서 말을 몰던 대행수 송현은 자신을 향한 은밀한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올 게 왔구나.’
찌릿한 시선이 여실히 느껴진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는 듯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야.’
전음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벌써 대답을 요구해왔을 것이다.
주변의 은밀한 시선 속, 천천히 나아간 그들은 마침내 외곽의 한적한 길에 접어들었다.
오가는 사람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가면을 쓴 진무립이 문을 벌컥 열었다.
“진환. 감시자를 전원 제거해라.”
“예.”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큭!”
은무대의 고강한 무공은 추적과 감시에 특화된 그들이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쇳소리조차 들리는 일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한 은무대가 시신을 들고 나타났다.
“헉!”
소스라치게 놀란 송현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태, 태산표국의 무복!”
가까스로 뛰는 가슴을 억누른 송현이 두려운 눈으로 말했다.
“천주님. 이곳은 제남입니다. 행여 그들이 나서기라도 하면…….”
진무립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표국에 상주하는 무인은 백표대를 비롯해 일천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진무립은 확신하듯 말했다.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예?”
“이곳 제남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뭔가를 숨기고 싶은 자들이라면 많은 눈이 있는 이곳에서 붙고 싶을 리 없다.
진무립은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레에 실어라.”
“예.”
은무대는 시신의 미간에 난 구멍을 막고 그것을 수레 빈자리에 실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송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상천과 태산표국.
어느 쪽을 선택하건 무탈하게 넘어가긴 틀린 게 확실하다.
제남 동북쪽의 거대한 장원.
좌우로 숲을 낀 인적 드문 이곳은 산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진상단의 장원이었다.
일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마당 가득 쌓인 짐들을 옮겨 간다.
“그건 이쪽으로 옮겨두게.”
호리호리한 체구에 새하얀 장삼, 반듯한 윤건을 쓴 중년인이 익숙하게 지시를 내려갔다.
“예. 총관님.”
그때 멀리 쪽문이 열리며 젊은 사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총관님!”
윤중평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송행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윤중평이 반색하며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주문이 들어온 참인데 잘되었다.”
“근데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 어디 산적에게 표물이라도 빼앗긴 것인가?”
그 말에 사내가 잠시 머뭇거렸다.
들어보니 절반은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한 것이다.
“산적은 산적인데…… 표물을 빼앗긴 것은 아니고…….”
윤중평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일단 나가보셔야겠습니다.”
“알겠네. 일단 가보세.”
정문 앞으로 걸어간 윤중평은 낯선 무인들 속의 송현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송현이 진땀을 닦았다.
“다녀왔습니다. 총관님.”
“송행수. 저들은 대체 누굽니까?”
분명 출발할 때 이곳에 나타났던 태산표국의 표사들과는 전혀 다른 복장이었다.
그때 시평이 한 걸음 나서며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본인은 상천의 양산채주 시평이라고 합니다.”
“엉? 누구?”
자신의 귀를 의심한 윤중평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의문이 터져 나온다.
빙그레 웃은 시평이 재차 말했다.
“양산채주 시평.”
찢어질 듯 부릅뜬 윤중평의 눈이 연신 껌뻑거린다.
자신을 바라보는 백여 명의 녹의인과 그들 틈에 멀뚱히 서 있는 상인들.
그제야 현실이 눈에 들어오며 수많은 의구심이 떠오른다.
“……여길 왜?”
눈앞의 사내는 결코 이 자리에 있어서 안 될 사람이었다.
“긴히 논의할 것이 있으니 단주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빠르게 다가온 송현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일단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마차 안에는 상천의 천주님도 계십니다.”
“상천의 천주?”
“무면산왕 말입니다.”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백지장처럼 창백해지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 무, 무, 무면산왕이라고?’
양산채주 시평에 이어 상천의 천주까지.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누구라도 자신과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
“총관님.”
짧은 정적 끝에 정신이 번쩍 든 윤중평은 손수 대문을 열었다.
“드, 드, 들어오십시오.”
“고맙습니다.”
시평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레와 마차를 안으로 옮기고 상단의 지시에 따라 짐을 내려라.”
“예!”
천천히 굴러간 마차가 마침내 동진상단의 정문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