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78)
◈ 178화. 포섭
용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 상천이라고?”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린 용삼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선 진무립이 가만히 지켜보는 가운데 석두가 말했다.
“그렇네. 상천의 천주께서 몸소 우리를 필요로 하셨네. 오랜 세월 헌신해온 두표사님 같은 이를 제치고 능양과 같은 자를 표두에 올리는 게 태산표국일세. 그곳에서 무슨 미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자네의 말이 틀리지 않네만…….”
“나는 확신하네.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자네와 우리는 태산표국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게야. 그 이유를 아는가?”
용삼이 아는 석두는 말을 허투루 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말해보게.”
“표국의 중추에 오른 자들은 모두 아는 자들. 오르지 못한 자들은 알지 못하는 자들이지.”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 그게 무슨 말인가?”
“국주와 대표두. 백표대를 비롯한 중추를 이루는 자들의 무공 말일세.”
“무공?”
“그들이 익힌 무공은 모두 은곡의 무공. 즉, 팔황문의 무공이란 말일세. 그걸 아는 자만이 요직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야.”
“…….”
짧은 정적이 스쳐 간 뒤 용삼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오대표국은 모두 천하대전에서 사문을 잃은 무인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게 아닌가? 국주님의 사문이 팔황문의 손에 멸문했다는 것은 모르는 자가 없질 않나.”
“생각해보게. 초기에 국주와 함께했던 선배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듣고 보니 뭔가 마음에 걸린다.
십오 년 전 표국에 들어갈 때 요직에 있던 선배들은 하나씩 실각하더니 지금은 종적조차 묘연한 상황이었다.
“밖에서 보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더군.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요직에 오르는 자들은 모두 아는 자들이 분명하네.”
“국주의 사문이 천하대전에서 팔황문의 손에 멸문했다는 말은……,”
석두는 차분히 생각해온 바를 풀어놓았다.
“국주의 사문은 북양문으로, 대표두들의 사문은 숭정문, 전가보, 비령문으로 알려져 있지.”
“그렇지.”
“표국에서 듣기 전에 그런 방파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한미한 이름이지. 그런 곳에서 갑자기 저들 같은 고수를 배출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곳이 저들의 사문이라는 사실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초기에 함께 했던 선배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은 목적을 이룬 국주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국주의 입장에선 은곡에 원한을 품은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보였겠지.”
용삼은 아무도 없는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무면산왕이 표국에 쳐들어온 연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
석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우리 상천의 무공도 그들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네.”
용삼은 평생 놀랄 것을 오늘 전부 몰아서 듣는 것 같았다.
상천의 역사를 설명해준 석두는 표국 앞의 전투에서부터 기습전이 끝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용삼의 얼굴이 제법 심각해졌다.
“우리가 주변 방파들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안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보게. 용삼이. 태산표국은 침몰 직전의 구멍 난 배와도 같네. 우리와 함께하세.”
잠시 고민하던 용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안 되겠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무엇을 망설이는가?”
“나 혼자라면 두말 없이 자네를 따라갔을 거야. 하지만 내 밑에 갓 들어온 아이들을 버리고 어찌 나만 살길을 찾아가겠는가? 전면전이 벌어지면 그 아이들은 모두 화살받이가 되고 말 걸세.”
의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다운 대답은 석두가 용삼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석두가 은근히 물었다.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 생각을 고쳐보겠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석두는 조용히 일어나 진무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속하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수고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린 진무립이 석두와 자리를 교환했다.
마치 상하가 바뀐 듯한 그 모습에 용삼이 고개를 갸웃했다.
“호위가…… 아니었는가?”
석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내가 모시게 된 천주님일세.”
“아!”
용삼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무, 무, 무면산왕…….”
마당에서 일 수를 교환했을 때 범상치 않은 무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무면산왕이 이곳에 나타나리라곤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참고로 천주님께선 무면산왕이라는 무명을 좋아하지 않으시네.”
움찔한 용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무립을 무면산왕으로 만든 괴이한 소문은 대부분 표국에서 냈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얼굴을 드러내자 용삼은 일순 방안이 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얼굴이 정말 본모습이란 말인가?’
역용이 아닌 진짜 얼굴이라면 세간의 소문이 크게 억울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보니 어떤가? 머리가 세 개에 팔다리 여섯 개를 가진 괴물인가?”
용삼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 숙였다.
“아닙니다.”
사실 진무립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태산표국에서 표사와 식솔들을 진두지휘해 도피시킨 이가 바로 용삼이었다.
“어려워할 것 없다. 나는 석두와 함께 그대의 힘을 빌리러 온 것이니까.”
“…….”
“우린 대량표국을 인수했다. 태산표국이 사라진다면 산동의 모든 물자는 대량표국을 통해 움직이게 된다. 그리된다면 많은 표사들이 필요하지. 자네는 두용청 못지않게 인망 있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용삼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아닙니다. 제 어찌 두표사님의 인망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데려오는 표사들을 모두 대량표국에서 채용하겠다. 당장은 돈이 없으니 지금보다 나은 대접을 약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표국의 성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있다면 그대들과 나눌 것이다.”
짧은 정적 속에 고민하던 용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말하라.”
“그날, 표사와 식솔들을 살려두신 까닭은 혹시 오늘을 위함이었습니까?”
진무립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나를 흉악한 악귀로 보는군.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을 죽여서 무엇하겠나? 나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날 죽은 인물은 국주의 아들과 호위들뿐.
막아서던 표사 중 다친 자는 있을지언정 식솔들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다.
만일 진무립이 소문대로의 악인이었다면 그날 태산표국에서 살아남은 자는 없었을 것이다.
‘석두는 내게 거짓을 말할 친구가 아니야. 이 친구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발을 빼는 것이 옳다.’
이대로 계속 몸담고 있다간 하루아침에 사라진 선배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용삼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르겠습니다. 동료들을 설득해볼 터이니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옳은 판단이었다는 걸 머지않아 확신하게 될 거다.”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두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이곳에 오면서도 자네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거웠는데 한시름 놓았네. 두표사님도 기뻐하실 걸세.”
하지만 용삼은 그의 미소에 화답할 수 없었다.
상천을 따르기로 한 이상, 동료들을 그 안에서 빼내기 위해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아는 자인지, 누가 모르는 자인지 구분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섣불리 접근했다간 여지없이 목이 날아갈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진무립은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사람처럼 해답을 내주었다.
“지금부터 버릴 자와 데려갈 자를 구분해야 할 거다.”
속내를 들킨 용삼이 움찔하며 물었다.
“혹시 구분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처음 정문 앞에서 벌어진 날이다. 그날 문 앞에서 싸운 자들과 싸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 있을 거다.”
“분명 그랬습니다.”
“전투에 나선 자들은 국주의 무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설령 친분이 있더라도 그들에겐 접근하지 마라. 그들은 아는 자들이다.”
“아아.”
용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진무립이 물었다.
“지금 표국의 분위기는 어떻지?”
“건물이 모조리 부서지고 불탄 탓에 임시로 막사를 세웠습니다. 저처럼 외부에 집이 있는 자들은 괜찮으나 수뇌를 비롯한 무인들은 막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날 내가 남긴 경고에 따라 이탈하는 자는 없던가?”
“있다 한들 겉으로 속내를 내비치긴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동요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석두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자네의 아내처럼 말인가?”
용삼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
“수백이 넘는 자들을 들키지 않고 포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세. 가장 먼저 우리와 가깝게 지냈던 자들에게만 사실을 알리고 뒷일은 천주님의 계획에 맡기게.”
용삼은 진무립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내가 남긴 경고가 아직 그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전투의 내막이 알려진다면 동요는 더욱 커질 것이다.”
“내부에 소문을 흘려야겠군요.”
“가능하겠는가?”
용삼은 무겁게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해보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그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라.”
진무립의 말에 용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진무립이 용삼의 집을 나섰을 땐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려앉은 밤이었다.
은밀히 골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 앞에 백하진이 나타났다.
움찔한 석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백하진이 정중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개봉의 은무대원이 흑조를 보내왔습니다.”
“흑조?”
“의화전에서 중원무림맹과 오대표국이 손을 잡기로 결과가 나온 모양입니다.”
석두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시기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반면 진무립은 마치 예상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었나?”
“적모개라는 자가 시간을 벌기 위해 은무대의 힘을 빌리고 싶다 하였습니다.”
“허락한다. 그리고 복호채에 서신을 보내 중원맹에 있는 세 사람을 데려가라고 전해라.”
의화전의 결과가 나온 이상 유대하들을 언제까지 그곳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복호채주 이하빈의 창술이라면 누가 막아선들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백하진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 *
어둠이 짙게 내린 장원.
숨 막히는 정적이 깃든 내원의 심처에서 나직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거리에 상천의 자객이 우리를 습격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모양입니다.”
은은한 불빛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선문주 도조강이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이가장주 이웅과 양소방주 묵운정이 있었다.
묵운정의 주름진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내 칠십 평생을 살면서 이보다 지독한 배신감을 느낀 적은 없었소. 그간 우리가 얼마나 태산표국의 행사에 협력했소이까?”
도조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만일 상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쯤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고 있었을 겁니다.”
묵운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향을 피워줄 이조차 죽고 없을 것이외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도조강이 말했다.
“그보다 상천까지 은곡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니…… 대체 놀랄 일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려. 이 일을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자신들은 모든 진실을 들었기에 은곡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눈앞에서 은곡 출신의 무인들끼리 싸우는 것까지 보았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여전히 무림의 공적이었다.
상천에게 입은 구명지은과는 별개로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질 터.
그때 상천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림의 공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것이다.
많은 무인과 식솔을 책임진 이들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고민이었다.
짧은 정적 끝에 이웅이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도 우리를 지키고자 처절히 사투를 벌이던 상천의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수장이라는 자가 은혜조차 모르는 파렴치한이 된다면 어찌 고개를 들고 부하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상천에 본 장의 명운을 걸어볼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대신 말하는 듯한 모습에 도조강과 묵운정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먼저 대답한 이는 도조강이었다.
“어차피 상천이 아니었더라면 죽었을 목숨인데 무림 공적이 되면 어떻습니까?”
이어서 묵운정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인근의 방파와 접촉할 방법을 생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