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86)
◈ 186화. 제령상단의 몰락
방을 나선 서진환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탕약을 들고 선 공여소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서진환이 곁을 스쳐 지나는 찰나, 공여소가 작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약을 가져왔다가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발소리는 서진환도 인지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대의 주군께서는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겐 그런 능력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룬다면…… 그때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십니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진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공여소는 천천히 은수련의 처소로 들어갔다.
“몸은 조금 어떤가요?”
은수련은 눈가의 습기를 훔쳐내며 힘겹게 일어났다.
“대부인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공여소는 가져온 약그릇을 내려두며 침상 옆에 앉았다.
“그렇지요. 지금은 육신보다 마음이 더 아프겠군요.”
“…….”
공여소는 안쓰러운 눈길로 은수련의 등을 쓸어내렸다.
“조급해할 것 없습니다. 두 사람은 젊고 시간은 많아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걷다 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작게 끄덕였다.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지 안다.
주군의 호위로서, 그를 지키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자신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 지금은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해.’
과하게 욕심낼 필요는 없다.
언젠가 상천의 숙원을 이뤄냈을 때, 그때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등을 매만지는 공여소의 손길은 마치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 부드러웠다.
그녀의 웃는 얼굴과 마주한 은수련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대부인.”
“말씀하세요.”
“대부인께선 대체 누구십니까?”
* * *
숨 막힐 듯 고요한 밤과 낮이 수차례 지나갔다.
새벽이 밝아온 태산표국의 정문 앞.
빠른 속도로 달려온 마차가 멈춰 서더니 배가 잔뜩 나온 중년인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문을 열어주게.”
위사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
“죄송합니다. 당분간 정문을 열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왜 이러시는가?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인가?”
“제령상단의 상단주 엽대인이 아니십니까?”
엽평은 답답한 듯 호통을 쳤다.
“그걸 알고도 문전박대를 하겠다는 말인가! 시급을 다투는 일일세. 당장 국주님을 뵈어야 한단 말이야!”
소문이 퍼져나가고 가장 곤란해진 것은 바로 제령상단이었다.
얼마 전 수문화의 서신이 도착한 후.
다른 이들이 모두 상천과 접촉하고자 은밀히 움직였음에도 엽평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태산표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자 했었다.
되려 누가 상천과 접촉하려 하는지 서신으로 알려주기까지 했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설령 관에서 나와도 문을 열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와주십시오.”
답답한 듯 발을 구르던 엽평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그럼 한 가지만 알려주게. 그럼 바로 돌아가겠네.”
위사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국주께서는 무사하시지? 떠도는 소문은 전부 거짓인 게지? 연막인 게지?”
얼마나 속이 타는지 하나만 묻겠다더니 세 번이나 물어본다.
“예. 국주께서는 무사하십니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엽평은 애써 웃으며 돌아섰다.
“그럼 그렇지. 산동거사가 어디 산적 나부랭이들에게 당할 위인이던가. 허허허.”
그를 태운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거리를 빠져나간다.
‘살아 계시니까 거짓말이라곤 할 수 없지.’
위사는 자세를 바로 하곤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제 정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나.’
외곽을 철통같이 지키곤 있었으나 술렁이는 내부는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엽평은 태산표국을 벗어나기 무섭게 마부석으로 통하는 작은 창을 열었다.
“아무래도 국주가 당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야. 상천의 천주가 이가장에 머물고 있다고 했었지. 그리로 가세.”
직접 마차를 몰던 총관 소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래와 관련된 일은 모두 제천지사에게 위임했다고 들었습니다. 차라리 곡부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엽평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이 우매한 사람아. 지금 와서 그리로 간다고 일이 해결될 것 같은가? 천주의 바짓단이라도 붙잡아야 살길이 열린단 말이야!”
호통에 움찔한 소종은 즉시 고삐를 흔들었다.
“이가장으로 돌리겠습니다.”
바람처럼 내달린 마차는 이내 이가장의 커다란 장원 앞에 도착했다.
바퀴가 멈추기 무섭게 문을 박차고 내린 엽평은 이가장의 수문위사에게 달려갔다.
“이보게!”
마차에 매단 깃발, 거구의 인상착의를 통해 상대를 알아본 수문위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천주께서 제령상단주가 올 거라고 하시더니.’
엽평은 한겨울임에도 비 오듯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안에 상천의 천주께서 계시지 않는가?”
위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제령상단의 사람이 오거든 절대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권고를 거부하거든 목을 치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엽평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
소종이 다급하게 달려갔다.
“사, 상단주님!”
사색이 된 엽평의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난날로 돌아가 태산표국에 들어서는 자신을 두들겨 패서라도 말리고 싶었다.
* * *
정적으로 가득한 태산표국과 달리 곡부의 대량표국은 각지에서 온 손님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총사 어른! 총사 어른!”
경박스럽게 외치며 처소로 달려드는 이는 바로 동초개였다.
탁자 가득한 서신을 읽던 수문화가 호위 정이상에게 물었다.
“쟤는 언제 개봉으로 돌아가냐?”
“혼자 가기 무섭다는데요?”
“……그게 무서우면 여기까지 혼자서 어떻게 온 거야?”
그때 동초개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총사 어른!”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히 달려오는 거요?”
“연진상단의 상단주께서 직접 오셨어요!”
연진상단은 동진상단과 함께 산동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상단이었다.
정이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서신을 보내고도 직접 온 걸 보면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연진상단은 이곳 곡부보다도 남쪽에 있지. 소문이 퍼지기엔 일러. 그저 태산표국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이로써 제령상단을 제외하고 전부 우리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진무립이 있는 이상 태산표국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제 산동을 완전히 접수하고 다른 오대표국의 이권까지 가져올 차례였다.
“두 각주는?”
“곧 제남으로 출발할 겁니다.”
태산표국에서 이탈할 표사들을 수용하기엔 두용청만 한 인물이 없었다.
“내게 알릴 필요 없이 곧장 출발하라고 해.”
“예.”
수문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올 테니 이걸 채주들에게 보내다오.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정이상은 탁자에 놓인 일곱 개의 서신을 챙겼다.
* * *
제남에서 시작된 소문은 보름 만에 산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태산표국과 상천의 충돌로 드러난 은곡의 진실.
산동 무림 최강자로 군림하던 청금환이 무면산왕에게 무너졌으니 더는 태산표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진무립과 제남의 방파들은 철저하게 태산표국을 악으로 매도하고 상천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물론 모두가 상천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천하대전을 직접 경험한 일부는 상천의 출신이 은곡이라는 사실에 작지 않은 반감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태산표국이 독식해온 이권을 모두와 공유할 것이라는 소문이 번지자 그들도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문이 서서히 다른 지역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이가장의 진무립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원의 커다란 방 안.
탁자를 사이에 두고 진무립과 마주 앉은 동진상단주 채경승이 놀란 눈을 치켜떴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령상단이 취급하는 품목과 같은 물품을 거래하십시오.”
채경승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상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간 산동의 오대상단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서로가 다루지 않는 품목만 거래해왔다.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만일 전투에서 우리가 패했다면 제령상단은 동진상단의 기둥뿌리까지 뽑아갔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행여 뒷말이 나오거든 우리 상천을 방패막이로 삼으십시오. 상천의 천주가 지시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십시오.”
제령상단은 상천과 손잡으려 하는 상단들의 명단까지 은밀히 태산표국에 넘기기까지 했다.
평소처럼 선을 긋는다면 동진상단은 아군, 태산표국과 손을 잡은 제령상단은 적이다.
아군은 확실히 챙기고 적에겐 자비가 없는 진무립의 성격에 그들을 용서할 리 없었다.
채경승이 다소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동진상단을 산동이 아닌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그 약조를 지킬 것입니다.”
동진상단은 미래가 불확실한 상천과 가장 먼저 손을 잡은 곳이다.
상단의 명운을 걸고 모험을 한 만큼 그에 걸맞은 확실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
진무립은 감격한 채경승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단,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우리 상천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적이라 볼 수 있는 제령상단의 이권은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상단의 이익은 탐하지 마십시오.”
“그야 물론입니다. 세상과의 상생. 그것은 나 역시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진무립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태산표국의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상천과 천주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채경승이 예를 갖추고 떠나자 허공에서 단려화가 뚝 떨어져 내렸다.
진무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숨어 있을 필요는 없는데.”
“연습이에요.”
“연습?”
단려화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이 잘못되면 눈 돌아갈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나라도 지켜야죠. 바쁜 은무대 대신 연습 좀 해봤어요.”
“……고맙군.”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생각인데, 숨어서 따라올 건가?”
“어딜 가는데요?”
“태산표국.”
“거긴 왜죠?”
진무립은 씩 웃었다.
“구경.”
* * *
장막을 두른 연무장 안에 수십 명의 표사들이 포박된 채 무릎을 꿇었다.
철사대주 자영과 세 명의 대표두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외부에서 머물다 소집된 표사들이었다.
앞으로 나선 외당주 유표가 매섭게 눈을 뜨고 으름장을 놓았다.
“분명 이 안에 소문을 퍼트린 자가 있을 것이다.”
이들을 잡아 온 것은 불같이 번지는 소문으로 인해 도주하는 표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근무하던 위사가 사라지는가 하면 담장을 보수하던 표사가 그대로 도망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진상 조사에 나선 철사대는 외부에서 거주하는 표사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바른대로 실토하면 목은 붙여줄 것이다. 소문을 흘린 자가 누구냐!”
무거운 침묵 속에 용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준다고 했었지.’
지금 어디선가 분명 자신을 지켜보는 상천의 무인이 있을 것이다.
‘쫄지 말자. 용삼아.’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든 용삼은 유표가 아닌 자영을 쳐다봤다.
“철사대주. 우린 억울합니다.”
자신을 지나친 그의 시선에 유표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이놈! 질문하는 것은 나다!”
용삼은 지지 않고 자영에게 호소했다.
“세상에 범인이 무고한 자를 추궁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부당합니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더니 유표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범인이라고? 지금 나를 말하는 것이냐?”
“외당주께서는 발뺌해도 소용없을 것이오.”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이, 이놈이 미쳤나?”
앞으로 나선 자영이 유표의 어깨를 잡았다.
“자세히 들어보겠소.”
“저런 개소리는 들을 것도 없소! 소문은 이놈들이 퍼트린 게 확실하오.”
버럭 하는 유표를 향해 자영의 차가운 눈빛이 쏟아진다.
“그 입 다무시오. 나는 들어야겠으니까.”
어깨를 타고 스며드는 서슬 퍼런 기운에 유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영이 한다면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
용삼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총단의 외벽을 보수하던 중에 외당주가 낯선 인물과 접촉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가 용기를 내자 이어서 장일이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같은 날 외당주께서 뭔가를 들고 막사로 복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문이 퍼진 것은 그날부터였습니다.”
유표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이놈들이 지금 누굴 모함하느냐!”
분노 섞인 외침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자영이 침착하게 말했다.
“흥분하지 마시오. 모함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 일이오.”
유표는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좋소! 당장 내 막사로 가보시오. 대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저놈들을 찢어 죽일 것이오.”
“말리지 않겠소.”
고개를 끄덕인 자영은 즉시 부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외당주의 막사를 수색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