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91)
◈ 191화. 역이광의 최후
붉은 옷을 입은 적표대와 검은 옷을 입은 흑살대.
팅!
어둠 속, 시위를 퉁기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철사대주 자영과 백표대, 철사대를 공격하던 이들이 일제히 돌아서며 철시에 대비했다.
‘백곡시(百谷矢)!’
어둠을 가르던 화살에서 수십 개의 그림자가 파생되더니 폭포수 같은 궤적을 그려간다.
눈을 부릅뜬 역이광은 즉시 장심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쪽이 아니다!”
적표대와 흑살대를 향하던 화살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수뇌들을 덮쳐 간다.
돌아선 무영천퇴 영요설의 눈에 물줄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가 떠오른다.
‘정말 팔천영신공을 익힌 거야?’
진무립의 활을 떠난 철시는 모두 넷.
공격이 역이광과 자신, 흑살대주 공대수와 조관에게 갈라지는 것을 보면 그림자에 섞인 실초는 단 하나일 것이다.
척!
보폭을 벌린 그녀의 주먹으로 가공할 기세가 운집한다.
‘부숴줄게!’
그녀는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흑광의 중심에 천수만화공 폭천격을 때려 박았다.
콰아앙!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파 속, 주먹에 으깨지는 화살의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호호호! 고작 이 정도에 당할 것 같아?”
영요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깃드는 순간이었다.
“즐겁나?”
사각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에 그녀의 가슴이 철렁한다.
쉬익!
어느새 그녀의 좌측으로 움직인 진무립은 움켜쥔 흑검을 뻗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위기를 감지한 조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요설!”
“안다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가까스로 대표두의 자리에 오른 자신이다.
가까스로 복령천의 중심에 들어설 기회를 잡았는데 여기서 허무하게 무너질 순 없었다.
슈아악!
번개같이 솟구친 오른발에 묵직한 흑검이 걸려들었다.
쾅!
영요설의 시야에 드디어 진무립이 잡힌다.
‘좋아!’
튕겨 나간 검신, 활짝 벌어진 진무립의 가슴.
그녀는 상대가 검을 회수하는 것보다 자신의 발이 먼저 그를 내리찍으리라 확신했다.
쉬익!
솟구친 오른발이 도끼질하듯 뚝 떨어질 때, 진무립의 손이 흑검을 놓고 움직였다.
쾅!
내리찍은 발뒤축이 진무립의 손등에 정확히 막힌다.
“머리가 나쁜 계집이로군.”
“아!”
정신이 번쩍 드는 한마디였다.
위기를 모면했다는 희열에 상대가 팔천영신공을 익혔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아래에서 벼락같이 솟구친 좌권이 그녀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직!
“커억!”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오며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 명치 끝에서 밀려든다.
그녀의 발이 지면에서 두 자 남짓 솟구친 순간, 등 뒤에서 조관의 창두가 맹렬하게 짓쳐 들었다.
“멈춰라!”
이어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방에서 적표대원들이 쇄도했다.
진무립은 영요설의 복부에 한 번 더 주먹을 때려 박았다.
쾅!
마치 명치가 쪼개지는 듯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혀 온다.
“큭.”
억눌린 신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지면에서 일 장 가까이 떠오른다.
슈슈슈슈슉!
등을 찔러오는 날카로운 창두, 좌우에서 쏟아지는 적표대의 공격.
탓!
지면을 박찬 진무립의 발밑으로 적의 병장기가 오싹하게 부딪친다.
카카카캉!
단숨에 영요설의 등 뒤로 솟구친 진무립은 두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네년이 웃고 떠들 때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숨 가쁘게 도망치고 있었다.”
나직한 말이 끝나는 순간 깍지 낀 두 손이 망치질하듯 그녀의 등을 후려쳤다.
꽝!
“끄윽.”
유성처럼 추락하던 그녀의 눈에, 지면에 꽂힌 창끝이 빨려들 듯 확장된다.
그것은 진무립의 등장과 함께 땅에 쑤셔박힌 흑창이었다.
‘아, 안 돼!’
간절한 바람이 부질없게도 창끝은 그녀의 몸을 꼬챙이처럼 꿰뚫어버렸다.
푹!
의식이 날아가는 그녀의 귀에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조관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요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조관은 움켜쥔 창두에 전신 내력을 쏟아부었다.
슈우우우!
소매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날카로운 창두가 시꺼먼 흑광을 머금는다.
“무면산왕!”
낙하하는 진무립을 향해 예기를 발하는 흑광이 일점으로 폭사한다.
쐐애액!
발밑으로 짓쳐 드는 가공할 일초.
타타탓!
그에 덩달아 병장기를 치켜든 적표대원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친다.
역이광은 치솟는 붉은 물결을 눈에 담고 확신했다.
‘고작 한 명을 끝내겠다고 악수를 두었구나. 저건 막지 못할 것이다!’
날개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승무관천(昇武貫天)의 초식을 피해낼 수도, 막아낼 수도 없을 터.
가공할 흑광이 지척까지 짓쳐 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진무립의 확장된 동공에 발밑의 전장이 담긴다.
동지를 팔아넘겨 살아남은 자들.
저들 때문에 무고한 노인과 아이들이 무수히 죽어 나가야 했다.
“내가 있는 세상에 네놈들이 설 자리는 없다!”
분노의 일갈을 토해낸 진무립은 전신 내력을 쏟아부어 대지를 향해 좌권을 내리찍었다.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콰지직!
힘과 힘, 내력과 내력의 정면충돌.
팔천영신공 폭천격(爆天擊)의 태산 같은 거력에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시꺼먼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조관은 창대가 우그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으나 벼락 치듯 떨어진 폭천격을 당해낼 순 없었다.
쩌저저적.
거미줄 같은 실금이 순식간에 창두 전체로 퍼져나간다.
‘아아. 틀렸다.’
조관의 부릅뜬 눈에 원통한 빛이 떠오르는 순간,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가공할 청광(淸光)이 그와 적표대원들을 집어삼켰다.
쿠아아앙!
귓전을 강타하는 경천동지할 굉음에 이어 눈 덮인 대지가 역류하는 폭포수처럼 치솟는다.
“큭!”
으깨진 돌가루가 암기처럼 비산하자 역이광은 다급하게 물러나며 소매를 털었다.
타닥탁탁!
곧이어 피에 섞인 흙먼지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며 참혹한 전장이 드러났다.
운석이 떨어진 듯 움푹 꺼진 대지, 시신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곳으로 시뻘건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든다.
“…….”
역이광과 회남표국 무인들의 눈이 거칠게 요동쳤다.
단 한 수에 조관을 포함해 열 명에 달하는 무인이 혈수가 되어 녹아버린 것이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정적 속, 그들은 마치 공유하듯 같은 생각을 뇌리에 담고 있었다.
‘계획은 실패다.’
절망한 그들과 반대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었다.
‘무면산왕이 우리를…….’
지금까지 가까스로 버텨낸 백표대와 철사대가 그들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힘겹게 선 자영이 진무립을 눈에 담았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어제까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싸웠던 상대가 자신들을 구하겠다고 싸우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진 것이다.
핏물을 밟고 우뚝 선 진무립의 손으로 흑검이 빨려들었다.
“동지를 사지에 몰아넣으면서까지 회천(回天)을 꿈꾸는가?”
쾅!
지면을 박찬 진무립의 신형이 역이광을 향해 폭사한다.
“네놈들의 세상은 지옥에서나 만들어라!”
분노 섞인 외침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검극에서 시꺼먼 기운이 운집했다.
위기를 감지한 나명도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막아라!”
정신을 차린 적표대가 다급하게 역이광의 앞을 막아서며 진무립에게 달려든다.
시뻘건 인의 장막이 해일처럼 진무립을 덮쳐 가자 단려화의 눈에 다급함이 번졌다.
“무립!”
단려화의 발이 지면을 박차기 직전, 악계화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접근하지 마라. 경천검무(驚天劍舞)는 사방의 모든 것을 꿰뚫는 무서운 초식이다.”
그의 말대로였다.
검극에서 줄기줄기 쏟아져 나온 흑광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해 접근하는 모든 것을 꿰뚫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콰콰!
회남표국의 정예답게 일부는 공격을 막아내고 튕겨 나왔으나 검극을 정면에서 받아낸 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크아악!”
종횡무진 적진을 누비는 진무립은 그야말로 양 떼에 섞여든 성난 늑대와도 같았다.
그들의 피와 살점이 비산하는 기파에 섞여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압도적인 신위에 나명도는 전신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팔존으로는 무리다. 주군을 제외하고 저놈을 막을 수 있는 건 그 녀석밖에 없다.’
귀로 들어온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만일 그의 상대가 자신들이 아니라 무림의 여느 방파였다면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을 것이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나명도는 즉시 전음을 보냈다.
[노존! 피하십시오!]역이광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대로 남아있다간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탈출하려면 무면산왕의 눈이 저들에게 쏠린 지금 밖에 없다.’
그가 노구를 이끌고 신법을 전개하는 순간 흑살대주 공대수의 귀로 또 다른 전음이 파고들었다.
공대수가 모든 부하를 이끌고 진무립에게 달려들 때 시평과 양산채 무인들이 도착했다.
“회남표국의 무인들을 처단한다!”
“예!”
범람하는 물처럼 담장 너머로 쏟아져 온 그들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적을 몰아붙여 갔다.
부하들의 합류로 숨을 고른 진무립은 적표대의 뒤로 역이광이 사라진 담장을 쳐다봤다.
그 노인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시평. 여긴 네게 맡기겠다.”
상천팔기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시평이라면 희생 없이 적을 도륙할 수 있을 것이다.
“예. 다녀오십시오.”
창대를 움켜쥔 시평이 적을 향해 몸을 날린다.
흩어진 무기를 회수한 진무립은 육병흑궤를 걸머지고 역이광을 추격했다.
부하들 틈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본 나명도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됐다!’
무면산왕이 역이광을 쫓아간 지금이 탈출할 적기다.
그는 어느새 흑살대의 흑빛 장포를 걸친 상태였다.
‘노존. 미안하지만 되도록 멀리 도망쳐주시오.’
부하들의 뒤로 돌아간 나명도가 어둠 속으로 은밀하게 스며들었다.
상관을 미끼로 삼고 부하를 희생시켜 목숨을 구하는 것에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혈전이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의 후미에서.
전황을 빠르게 살핀 그는 역이광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제남의 성벽을 넘은 역이광은 어느새 캄캄한 숲속에 접어든 상태였다.
‘완전히 당했구나.’
가쁜 호흡마저 안으로 감춘 그였으나 낭패한 표정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꼬.’
객잔의 전투가 끝난 시점에 태산표국은 이가장에 머무는 상천을 당해낼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무면산왕은 자신을 살려 보냈을뿐더러 태산표국을 공격하지 않았다.
‘놈은 다른 표국을 끌어들여 청금환을 죽이길 바라고 나를 살려둔 것이다. 거기까진 알고 있었다.’
무면산왕은 얼마 전 표국의 정문 앞에서 청금환의 무공을 끌어내 제남의 무인들에게 목도하게 했다.
이번에도 내분의 과정에서 회남표국의 무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려 할 줄 알았다.
그리되면 오대표국이 태산표국과 같은 무공을 익혔다는 걸 만천하에 밝힐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은밀히 나명도를 불러들였고 결국 기습에 성공했다.
그러나 무면산왕이 직접 개입해 백표대를 구출하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놈은 배신당한 자들의 복수심을 이용해 태산표국과 오대표국의 연결고리를 입증할 생각이다. 중원무림맹과의 동맹을 깨뜨리기 위해서 말이야.’
주인을 잃고 복수에 불타오른 백표대라면 분명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산동무림이 퍼트리는 소문보다 치명적이다.
떠도는 소문이야 노력하면 잠재울 수 있겠으나 태산표국 출신의 백표대가 증언한다면 그 파장은 천하를 강타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을 만큼 치밀한 계획이었다.
‘이건 위험하다. 반드시 주군께 알려야 한다.’
조급한 마음만큼이나 내딛는 발이 다급하다.
빗살처럼 뻗어 나가던 그의 신형이 작은 숲을 벗어났을 때였다.
“동지를 미끼 삼아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습관은 여전하구나.”
등 뒤의 나직한 목소리에 역이광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 어느새?’
돌아보는 그의 눈에 지척까지 접근한 진무립이 보인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육병흑궤가 열리며 흑창이 빨려 나왔다.
“네놈은 이제 쓸모가 없다.”
창대를 잔뜩 끌어당긴 진무립의 눈에서 지독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죽음으로 악업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진무립은 남은 공력을 아낌없이 끌어올려 전력으로 창을 내던졌다.
슈아악!
가공할 기세를 머금은 흑창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일직선으로 쏘아진다.
팔천영신공 일섬격관(一閃擊貫)의 초식.
피하기엔 늦었다.
이가 부러지도록 악다문 역이광은 두 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려 원선지벽(圓線地壁)의 초식을 전개했다.
모든 것을 꿰뚫는 초식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초식의 격돌.
일 점으로 쏘아지던 흑광이 빛무리로 감싸진 견고한 방패를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쿠아아아앙!
원선지벽을 단숨에 깨뜨린 흑광이 뇌성벽력과 함께 역이광의 전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