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92)
◈ 192화. 사천검화라구요
숲에서 터져 나온 굉음이 제남의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제남성 남쪽으로 내달리던 나명도가 잔뜩 인상을 구겼다.
‘칫. 쓸모없는 늙은이.’
역이광이 당한 시간을 보면 놈의 신법은 자신보다 뛰어난 게 분명하다.
바닥에 눈이 덮여 있는 이상 추격전이 벌어지면 반드시 잡힌다.
‘계획을 바꾼다.’
다시 신법을 전개한 나명도는 성벽 앞에서 방향을 바꿔 민가의 담장을 넘었다.
잠시 후, 그가 사라진 거리에 복면을 착용한 단려화가 나타났다.
담벼락 밑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그녀가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벌써 밖으로 나갔을까?’
나명도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챈 것은 전투가 일방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과연 상천팔기의 수위를 다투는 고수답게 시평의 무공은 군계일학이었다.
영화무한봉(影化無限棒)을 극한으로 전개한 시평의 무공에 적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대표두를 모두 잃은 그들에게 시평을 막을 만한 고수는 나명도가 유일했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단려화는 뒤늦게 그가 도주했음을 인지하고 급히 태산표국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은밀히 발자국을 좇아가던 그녀가 성벽 앞에서 흔적을 놓치고 멈춰섰다.
‘이대로 성벽을 넘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힘껏 도약해 단숨에 성벽 위로 솟구쳤다.
드높은 성벽 위로, 횃불을 밝힌 채 이쪽을 쳐다보던 병사와 그녀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
성벽의 높이는 무려 일 장.
기어서 올라올 수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불쑥 나타났으니 놀란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뉘시오?”
성벽 위에 사뿐히 착지한 단려화는 멋쩍은 듯 배시시 웃었다.
“혹시 누가 여길 넘어가지 않았나요?”
“성벽을 타 넘었냐는 말이오?”
“네.”
“거참. 성벽의 높이가 일 장인데 무슨 수로 타 넘는단 말이오?”
“고마워요. 그럼 가볼게요.”
“살펴 가시오.”
몸을 돌린 단려화가 그대로 뛰어내렸다.
외곽을 주시하던 병사가 소리를 듣고 고개 돌렸다.
“무슨 일인가?”
병사는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어떤 소저가 나타나서 누가 여길 넘지 않았냐고 묻더군. 대체 어떤 인간이 일 장이 넘는 성벽을 타 넘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 소저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어?”
성벽을 다시 뛰어내린 단려화는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후방을 주시했다.
‘발자국이 사라진 곳에서 성벽을 넘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무인이 일 장 높이의 성벽을 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솟구친 자신이 병사와 바로 마주친 것을 보면 그는 아직 성 내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오감에 집중했다.
‘아버지는 나한테도 육감 좀 물려주지.’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든다.
솨아아아…….
고요한 정적 속,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길 일다경.
그녀의 예리한 감각에 마침내 뭔가가 걸려들었다.
‘뭔가 있다.’
소완공을 전개한 그녀는 마치 구렁이처럼 민가의 담장을 넘었다.
바람에 스며들어 빠르게 북상한 그녀는 마침내 오감에 걸려든 이질적인 존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명도!’
방 두 칸짜리 작은 가옥의 처마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명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검파에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큭큭. 결국 여기까지 왔는가?”
단려화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들켰어?’
일 장이 넘는 거리에서 자신의 소완공을 간파한 이는 처음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무릎이 굽혀지는 순간, 용수철처럼 몸을 튕긴 나명도가 방문을 뚫고 들어갔다.
‘아!’
마당에 내려선 그녀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가 죽은 듯 눈감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나온 것이다.
나명도가 이곳을 은신처로 삼은 이유였다.
“아직도 내 목을 원하시는가?”
복면 위로 드러난 그녀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였다.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당신은 국주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면 우린 천하대전이 끝나고 씨가 말랐을 것이네. 그대도 알지 않은가? 우리가 무슨 수로 목숨을 연명해 오늘에 달했는지 말이야.”
천하대전 직후엔 다른 은곡을 미끼로, 태산표국에선 동료들을 미끼로 던지고 탈출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선 무고한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아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죄의식이라는 게 없는 건가?’
단려화는 천천히 검파에서 손을 떼며 물러났다.
“추격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아이는 두고 가세요.”
“큭큭큭. 어리석구나. 동지와 동료의 목숨을 발판으로 살아남은 내가 네 말을 믿을 거라고 보느냐?”
“그럼 무엇을 원하나요?”
나명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깃들었다.
“자결해라. 그럼 아이는 살려두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사내를 찾았는데 시집도 못 가보고 죽을 순 없어요.”
“……응?”
자신의 귀를 의심한 나명도는 이게 뭔가 싶은 얼굴로 단려화를 쳐다봤다.
“선택하세요. 아이를 두고 돌아갈 건지, 아니면 여기서 한판 붙을 건지.”
진무립과 함께한 시간도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절대 주도권을 넘겨선 안 된다는 걸 그를 통해 배운 상태였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내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어요.”
“네년은 누구길래 거창하게 이름을 건다는 것이냐?”
“유화라고 해요.”
“그런 한미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천검화도 들어본 적은 없나요?”
“없다.”
단려화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사천의 광녀는?”
그제야 놀란 나명도의 눈이 부릅떠진다.
“광녀? 광룡의 곁에 머무는 그 광녀를 말하는 것이냐?”
단려화의 얼굴이 형편없게 구겨졌다.
‘이런 씨…….’
그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지기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내가 그 광녀가 맞으니까 아이를 두고 가세요.”
“사천에 있어야 할 광녀가…….”
무면산왕의 영준한 용모를 떠올린 나명도는 그제야 복잡한 머릿속의 조각을 짜 맞췄다.
“설마 무면산왕의 정체가 광룡이라고?”
“그래요. 그가 광룡이고 내가 사천검화로 불리는 유화에요.”
자세를 낮추며 아이를 왼팔로 옮긴 나명도가 검파를 움켜쥐었다.
“비켜라. 광녀.”
“…….”
단려화는 치미는 화를 억누르며 냉정하게 생각했다.
‘할 수 있을까?’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승님께 물려받은 천인검(穿人劍)의 무음사식(無音四式)이라면 소리 없이 기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실전에서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을뿐더러 적이 자신을 눈에 담고 있는 이상 성공하기도 어렵다.
‘누가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스릉.
시퍼런 검신이 아이의 목덜미에 닿는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내 말을 어디로 들었어요? 아이를 내려두기 전에는 비키지 않을 거예요.”
“그럼 아이는 죽는다.”
“그럼 당신도 죽겠죠.”
나명도는 코웃음을 쳤다.
“네년에게 가능한 일이겠느냐?”
“고작 일다경을 못 버티겠어요?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광룡이 찾아올 텐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나명도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자신의 지척까지 은밀하게 접근한 은잠술을 비롯해 풍기는 기도를 보아 일다경 안에 끝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제기랄. 뭐 이런 독한 년이…….’
그녀가 광녀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간 감당하지 못할 괴물이 찾아올 것이다.
외통수에 걸린 나명도는 결국 천천히 상체를 세우며 말했다.
“좋다. 아이를 두고 가지. 약속은 지켜라.”
“물론이에요. 난 아버지를 닮아서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요.”
“물러나라.”
단려화는 그를 주시하며 순순히 담장 밑까지 물러났다.
천천히 아이를 내려둔 나명도가 번개같이 지면을 박차는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자신을 떠난 상대의 시선은 담장 너머를 바라보는 상태.
소리 없이 매끄럽게 뽑혀 나온 검신이 담장을 뛰어넘는 나명도를 향해 쏘아진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천인검 무음사식의 초식.
서걱!
네 줄기 검영이 나명도의 등과 다리를 스쳐 가며 시뻘건 피가 튀었다.
“큭!”
억눌린 신음을 토해낸 나명도가 담장 너머로 추락한다.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상대의 운신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단숨에 담장을 뛰어넘은 그녀는 바닥을 구르는 나명도에게 검초를 전개했다.
“네년이 감히 약속을…….”
“이제껏 배신을 거듭하고 살아왔으니 한 번쯤 당했다고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요.”
슈슈슈슈슉!
검극에서 쏟아진 새하얀 검광이 나명도의 전신으로 매섭게 짓쳐 든다.
나명도는 재차 몸을 굴리며 다급하게 검신을 끌어당겼다.
카카카캉!
온전한 상태의 나명도는 분명 십대고수에 버금갈 만큼 무서운 강자다.
단려화는 가까스로 잡은 승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려타곤을 전개하는 상대의 시선이 일순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단려화는 재차 무음사식을 전개했다.
푸푸푸푹!
소리 없이 날아간 네 줄기 검영은 상체를 일으키는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컥!”
나명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가 균형을 잃고 휘청하는 순간, 벼락같이 짓쳐 든 단려화의 검신이 그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서걱!
억울한 듯 눈을 부릅뜬 나명도의 목이 지면에 떨어졌다.
솟구치는 피를 피해 훌쩍 물러난 단려화는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싱긋 웃었다.
“그러게 왜 광녀라고 불러서 명을 재촉해요?”
착검한 그녀가 골목 모퉁이 너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 왔어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제 왔냐니까요?”
“아, 지, 지금 도착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기 직전, 이곳에 도착한 한천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모퉁이를 나섰다.
적의 목을 베고 섬뜩하게 웃는 걸 보니 왠지 누군가를 닮아가는 듯 보인다.
‘이 여자는 미친 여자야.’
그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단려화가 말했다.
“시신을 수습하세요. 돌아가죠.”
“……예.”
분리된 목과 몸뚱어리를 챙긴 한천유는 서둘러 단려화의 뒤를 따랐다.
* * *
태산표국의 전투는 엄청난 무위를 선보인 시평의 활약으로 압승을 거뒀다.
도주했던 역이광은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으며 나명도는 목이 떨어진 채로 돌아왔다.
양산채 무인들은 마을에서 의원을 데려와 태산표국 무인들을 치료했다.
얼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상대가 베푸는 호의가 달가울 리 없었으나 그들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들이 조용히 상처를 수습하는 가운데, 진무립은 악계화의 막사를 찾아갔다.
“상태는 좀 어떤가?”
“…….”
전신이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한 악계화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모두 단려화가 적시에 그를 도운 덕분이었다.
의원의 치료를 받으며 침상에 누운 악계화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주군을 잃고 적에게 도움을 받은 지금의 상황에 머리가 복잡한 탓이었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진무립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내일 다시 오지. 의원께서는 치료에 신경을 써주시길 바라오.”
“예. 공자.”
막사를 나선 진무립의 눈에 피에 젖은 전장이 차분하게 담긴다.
‘연판장까지 만든 산동 무림은 끝까지 우리를 지지할 것이다. 이 상황을 이용해 나머지 오대표국과 중원무림맹의 동맹을 깨고 뒤에 숨은 자들을 끌어내야 한다.’
오늘의 일이 알려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으나 이전의 소문은 산동을 넘어 중원에 닿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모두가 마음 놓고 무림을 활보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반드시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마지막까지 절대 방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각오를 다진 진무립이 몸을 돌렸다.
“문화에게 이곳의 상황을 전달해라.”
어둠 속에서 튀어 나온 서진환이 즉시 예를 갖췄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