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49)
◈ 249화. 두 명의 절대자
떨리는 군중들의 눈빛만큼이나 외총관부의 담장이 거칠게 흔들린다.
뒤늦게 나타난 화령의 지사전주 화윤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뭐야.”
부전주 사마진이 물었다.
“언제 도착하신 겁니까?”
“지금. 외총관부에 머무는 자들이 정말 상천의 무인들이 맞나?”
“예. 광룡 진무립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당가의 소가주와 아미의 속가제자. 웬일인지 개방의 제자도 한 명 있습니다.”
“기묘한 조합이군. 만나봤어?”
지사전 부전주 사마진은 천하대전 당시 후방에서 훌륭하게 지원 임무를 수행한 지재.
화령에서 화윤 다음가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사마진이 손에 쥔 장부를 들어 보였다.
“누가 자기 일을 죄다 떠넘기고 도망친 탓에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주 나쁜 녀석이군.”
“할 수만 있다면 주리를 틀어버리고 싶은데요.”
“그건 좀 곤란한데.”
그때 검황 천영이 앞으로 나서며 자세를 낮췄다.
“모두 물러나라.”
목소리의 나직한 울림이 인근으로 퍼져 나가며 모여든 무인들이 일사불란 물러날 때.
천영의 검신이 번개같이 뽑혀 나왔다.
솨아아!
물결치듯 시원한 소리가 퍼져 나오더니 한 줄기 섬광이 무너지는 담장을 가로 그었다.
파지지직!
거리로 무너지던 담장이 잿더미가 되는 순간 단소룡이 그것을 향해 소매를 털었다.
슈우우우!
별안간 나타난 소용돌이가 돌가루를 끌어안고는 허공으로 말려 올라간다.
“오…….”
화령의 일인자와 이인자가 보여주는 신기에 군중들은 탄성을 흘렸다.
담장이 무너지자 내부의 전각까지 시야가 탁 트인다.
전각 뒤편 연무장에 있던 당천과 진설란, 은무대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화윤이 짓궂게 웃었다.
“배상을 청구해야겠는데.”
그때 전각의 문이 열리며 검은 장포를 두른 진무립이 나타났다.
모두의 눈길이 내딛는 그의 걸음에 집중된다.
‘저자가 바로…….’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혀올 때마다 육중한 기도가 점점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때 진무립의 뒤로, 전각에서 일하던 이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뛰쳐나왔다.
“무, 무너진다!”
무인들이 나설 겨를도 없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전각이 순식간에 하인들의 머리 위를 덮쳐 간다.
“아!”
가장 늦게 탈출하던 시비의 얼굴에 짙은 절망이 드리웠을 때였다.
어디선가 미풍이 불어온다 싶더니 뭔가가 무너지던 전각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천천히 고개 돌린 그녀의 눈에, 전각을 향해 장심을 내민 진무립이 보였다.
“다치지 않았나?”
놀란 눈을 껌뻑이던 그녀가 홍조 띤 얼굴로 연신 끄덕였다.
“예. 괘,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돌아선 진무립이 놀란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너진 전각은 우리가 책임지겠소.”
당당한 걸음으로 단소룡의 오 장 앞에 멈춰선 진무립이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상천의 천주, 진무립이오.”
최근 그 위명이 천하를 진동케 하는 무인.
북쪽의 절대자 광룡 진무립의 등장이었다.
진무립을 위아래로 훑어본 단소룡도 가슴을 펴고 예로 답했다.
“화령의 영주. 단소룡이다.”
스쳐 가는 바람이 두 명의 절대자 사이에 무거운 긴장감을 선사한다.
짧은 정적이 지나간 뒤, 단소룡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조금 피곤하군.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에 하도록 하지.”
진무립도 전각을 향해 돌아섰다.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측근들이 서둘러 그들의 곁으로 따라붙는다.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이 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군중들은 긴장된 숨을 토해냈다.
“후아!”
“저자가 바로 그 광룡인가.”
“영주님의 그 눈빛에 당당히 마주 서는 자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그 전에 말이야. 전각을 날려버리던 장력을 보았는가?”
“하인들을 통과해 허깨비처럼 전각 앞에 나타나더군. 정말 소문대로의 무인인 모양일세.”
처음 목도하는 진무립의 신위에 감탄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
진무립은 자신을 미심쩍게 보던 무인들에게 단 한 수로 실력을 증명한 것이다.
술렁이던 군중들이 삼삼오오 나뉘어 멀어질 무렵, 화령도가 훤히 보이는 언덕 위에 두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벌써 뭔가 벌어진 건가?”
“그런 모양인데요?”
눈을 가늘게 뜬 준수한 용모의 청년, 그와 반대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섬을 응시하는 여인.
두 사람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도와 그의 동생 남궁설이었다.
강남 무림의 정보체계에 따라 광룡의 소식을 접한 두 사람이 이곳 화령도에 온 것이다.
팔황문의 후신이 나타난 지금 광룡 진무립의 행보는 강남 무림 전체의 이목을 끌어모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남궁설이 귀엽게 입술을 핥았다.
“정말 상천의 천주가 그 광룡이 맞단 말이죠?”
혈천대전의 마지막 전투, 오라버니와 함께 그것을 조용히 지켜본 그녀는 진무립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영주님께 인사부터 올리고 고모님을 찾아뵙자꾸나.”
두 사람의 고모, 부친이자 가주인 남궁명의 동생 남궁소소는 검황 천영의 부인이었다.
“가요.”
* * *
화령도 전체가 낮의 일로 시끄러웠다.
소문만 무성하던 북쪽의 절대자 진무립.
그가 자신들의 주군 앞에 당당히 그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거리의 웅성임이 닫힌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가운데, 처소를 옮긴 진무립 일행이 큰 방에 모였다.
“천하를 구한 영웅이라, 과연 소문대로의 무인이었어요.”
이들은 단소룡과 만난 지금에서야 자신들이 어디에 왔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곳은 천하제일방파 화령도.
자신들이 머무는 곳은 그야말로 용담호혈이다.
진설란은 이런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진무립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당천이 진무립을 바라보며 물었다.
“쉽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더군.”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쉬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일 네 제안을 거절한다면? 물론 그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겠지?”
당천은 진무립이라면 반드시 이번 일을 성사시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느긋하게 팔짱을 낀 진무립이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물론이지.”
“방법을 듣고 싶군.”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예를 들면…….”
진무립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깃들었다.
“복령천에 대적할 수 있는 존재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출 수도 있겠지.”
당천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다소 협박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선택해볼 만하겠어.”
진설란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천이 말했다.
“당금 무림에서 복령천과 마교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화령이라고 해도 둘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런 상황에서, 중원의 지배력을 공고히 한 상천과 그에 협력하는 자들이 사라진다면 적의 칼끝이 어디로 향하겠나?”
“아아.”
복령천은 팔황문의 후신.
당연히 화령에 큰 악감정을 가진 그들은 막아서는 자들이 없다면 화령부터 공격할 것이다.
그때 구석에 앉아있던 동초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용추가 물었다.
“뭐야?”
동초개는 진무립의 곁에 앉아 끄덕이는 단려화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저분이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
모두의 시선 속에 단려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죠?”
* * *
모처럼 뜨거운 물에 묵은 때를 벗기고 나온 단소룡이 웃옷을 걸쳤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단소룡의 그림자이자 호위인 영기가 그의 앞에 부복했다.
“주군.”
“휴가는 잘 보냈느냐?”
“그 어떤 위협에서도 주군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부하들을 교육했습니다.”
단소룡이 쓴웃음을 지었다.
“쉬라니까 말은 참 안 듣는군.”
젊은 시절 만난 호위장 영기도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는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영기의 눈가에 초승달 모양의 주름이 패인다.
“휴식은 하루면 족합니다.”
“네 고집을 누가 말리겠느냐. 차나 한잔하자꾸나.”
“그 전에 손님부터 만나보셔야겠습니다.”
“손님?”
“남궁가의 자제들이 주군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도와 설이로구나. 알았다.”
“귀빈실로 모시겠습니다.”
복도로 나선 단소룡이 영기를 따라 태천각의 귀빈실에 도착했다.
안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이 반갑게 웃으며 예를 갖췄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영주님.”
“하하하! 못 본 새 정말 많이 컸구나. 앉거라.”
시비가 가져온 차향이 방 안에 짙게 깔리는 가운데 단소룡이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
“그래. 가주께서는 안녕하신가.”
남궁세가주 남궁명은 과거 천하대전에서 함께 싸운 만큼 단소룡과 각별한 사이였다.
남궁도가 말했다.
“예. 영주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건강히 잘 계십니다.”
“고모는 만나 뵈었느냐?”
“영주님께 인사부터 올리고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단소룡이 물었다.
“단순히 인사만 하겠다고 온 것은 아닐 테고, 혹시 가주의 전언을 가져온 것이냐?”
“전언이라기보다는 확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복령천이라는 대적이 나타났고 상천의 천주가 이곳 화령도를 방문했습니다. 그와 영주님의 대화가 어떤 결론을 만들어낼지 지켜보고자 합니다.”
강남의 무인들에게 화령은 그저 단순한 천하제일방파가 아니다.
강남 무림을 지탱하는 기둥.
수십 년간 화령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이들이었기에 상천의 천주가 방문한 사실에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화령의 움직임에 발맞춰 자신들도 함께 움직이게 될 테니까.
남궁도가 말을 덧붙였다.
“칠맥의 종주께서도 곧 이곳에 도착하실 거라 하셨습니다.”
“아직 그와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했는데 급하구나.”
“상대가 팔황문의 후신이라면 이쪽도 느긋하게 대처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의 중심에 있던 강남무림이었기에 경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단소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 그와 만나볼 생각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사천에서 그를 본 적이 있어요.”
“남궁세가에서 혈천대전에 무인을 파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남궁도가 말했다.
“비록 젊다곤 하나 그에겐 전쟁의 중심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만일 함께하게 된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지만 진무립은 남궁세가의 후계자인 자신조차 갖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압도적인 무공, 아군을 통솔하는 지휘력과 판을 유리하게 가져오는 계책.
그가 보여준 능력은 질투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염두에 두고 있으마. 결론이 나면 그 뒤에 다시 자리를 만들어보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도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기다리고 있던 화윤과 탁이신이 들어왔다.
탁이신이 그답지 않게 웃으며 물었다.
“폐관의 성과는 있었나?”
좀처럼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그였으나 진짜 친구 앞에선 진심으로 반갑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단소룡도 마주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아직 부족하다.”
“욕심이 과한 게 아닌가?”
화윤이 곁에 앉으며 말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대목의 욕심도 늘어나는 모양이야.”
“그런 욕심이라면…… 할 수 없군.”
탁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단소룡이 물었다.
“중원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네가 그를 직접 데려왔다지?”
“그래.”
화윤이 묻는다.
“네가 본 그는 어떤 인물이었지?”
탁이신은 어렵지 않게 생각해둔 바를 말했다.
“너와 대목을 섞어둔 것 같은 인물. 나로서는 판단이 불가능한 자였다. 위사영과 진대천의 생각도 나와 같았지. 그래서 직접 데려온 거다.”
단소룡이 떨떠름한 눈으로 화윤을 쳐다본다.
“우릴 섞어뒀다고?”
화윤이 인상을 구겼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탁이신이 한숨을 내쉬며 탁자를 두드렸다.
“종잡을 수 없는 자라는 거다. 협상을 하게 된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화윤이 물었다.
“무성한 소문에 거짓은 없었나?”
“무슨 소문인지 말해봐라.”
“화무신검을 죽이고 일기당천을 해낸 것 말이야. 그것도 은곡 출신 무인들을 상대로.”
탁이신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 함께 싸운 위사영과 진대천의 증언이니 그건 확실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광룡의 목적은 복령천과 마교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연맹을 창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맹주 자리에 대목을 올리고자 한다더군.”
단소룡이 화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의 예상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화윤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머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봐야겠군.”
단소룡은 활짝 열린 창밖을 쳐다봤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늘 저녁.
그러나 중천에 떠오른 해가 기울기엔 아직 멀어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난 단소룡이 문을 열었다.
“길게 시간 끌 것 없지. 지금 만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