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56)
◈ 256화. 천하를 향해
천하대전에서 화령과 함께 싸운 두 개의 거파가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이제 사마진이 강남의 각 문파에 뜻을 전할 것이다.
칠맥의 종주 자로가 먼저 화령도를 떠난 가운데, 밤이 내릴 무렵 남궁도 남매가 섬의 포구에 도착했다.
작은 배가 달빛 내린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온다.
다소 차가운 인상을 가진 중년 여인이 두 남매의 손을 차례로 잡았다.
“시국이 어수선하구나.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야 한다.”
검황 천영과 함께 배웅을 나온 여인은 바로 남궁세가주의 동생 남궁소소였다.
남궁도가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그만 들어가십시오. 고모님.”
이어서 남궁설이 맑은 미소를 보였다.
“또 놀러 올게요.”
“그래. 다음에 보자꾸나.”
남궁소소가 슬쩍 눈치를 주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천영 부자가 앞으로 나섰다.
“당금 무림은 폭풍전야의 고요함과도 같다. 비록 강남 무림이 다른 곳과 다르다곤 하나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되 가주께…….”
“상공.”
남궁소소가 그의 팔을 슬쩍 꼬집었다.
“안부 전해다오.”
천진서가 쓴웃음을 짓는다.
천하에 두려울 게 없는 부친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가 바로 모친이었기 때문이다.
“잘 가라.”
미소로 답한 남궁도가 천영을 향해 예를 갖췄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훌쩍 뛰어오른 두 사람이 갑판에 내려서며 손을 흔들었다.
포구를 벗어난 배가 점점 멀어져가자 천영 일가도 발을 돌렸다.
어둠이 내린 오솔길, 사박이는 세 사람의 발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궁소소가 말했다.
“맹이 만들어진다지요.”
“그렇소. 내일 영주가 중원으로 갈 모양이더군.”
“그들이 천하대전의 실패를 발판 삼아 절치부심했다면 결코 쉬운 전쟁은 아닐 거예요. 분명 많은 피가 흐르겠지요.”
천영의 대답은 간단했다.
“막아야지. 그때처럼.”
그의 말처럼 그게 간단한 일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천영은 아들 천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돌아가면 짐을 싸서 떠날 채비를 해라.”
예고 없는 말에도 천진서는 두말없이 대답했다.
“예.”
남궁소소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진서를 보낼 생각이십니까?”
“마음 같아선 내가 함께 가고 싶지만 영주가 없는 화령도엔 내가 필요하오. 진서의 무공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거요.”
비록 단자룡에게 가려진 감이 있으나 천진서의 무공은 과거 천하대전 당시의 자신과 필적할 정도였다.
순간 남궁소소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스치듯 사라졌다.
‘벌써 진서도 세상을 돌아볼 시기가 되었구나.’
늘 함께 머물렀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한 살 어린 단려화가 벌써 사 년이나 세상을 돌아보고 온 것을 생각하면 조금 늦은 감도 있다.
연이은 폐관 수련에 시기를 놓친 까닭이다.
남궁소소는 뒤따르는 아들에게 말했다.
“려화가 무림행에 나설 때와 지금은 시국이 다르단다. 준비를 잘해서 다녀오너라.”
천진서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변화가 없다.
“예. 어머니.”
그간 이곳에서 갈고닦은 실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누가 오든 자신이 있었다.
떠날 채비를 하는 이는 비단 천진서만이 아니었다.
어둠에 휩싸인 전각.
타오르는 횃불이 사방을 밝게 비추는 가운데 양 갈래머리를 딴 귀여운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뒤 따라 나온 탁이신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일 떠나야 하는데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것이냐?”
탁소혜가 두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짐은 전부 챙겼어요. 다들 객잔에 모여있을 거란 말이에요.”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초 넌 명단에 포함된 것도…….”
“바늘 가는 데 실이 안 갈 수 있나요?”
당돌한 대답에 탁이신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바늘이란 말이냐?”
“누구긴 누구겠어요. 우리 대주지.”
그녀의 직위는 숭무대 부대주.
당연히 대주는 천진서였다.
“말리지 말아요. 말리면 가출할 테니까.”
탁소혜는 말릴 틈도 없이 신법을 전개해 담을 뛰어넘었다.
“저놈이…….”
그때 뒤에서 그의 아내 수란이 나타났다.
칠맥 연화봉 출신의 그녀는 단소룡의 아내인 백설하의 막내 사매이기도 했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왈가닥인지 모르겠어요.”
탁이신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누구긴 누구겠어. 당신이지.’
한적한 거리에 접어든 탁소혜가 신법을 전개해 객잔으로 내달렸다.
두 개의 골목을 지나 거리에 접어들 무렵, 전방에 익숙한 뒤통수가 나타났다.
기다란 봉을 등에 멘 앳된 청년은 바로 투백비였다.
“어? 백비!”
뒤를 힐끔 쳐다본 투백비의 콧잔등에 세 가닥 주름이 패였다.
‘귀찮은 여자다.’
말이 많은 여자는 딱 질색이다.
투백비의 무릎이 살짝 굽혀지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와 그의 단정한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억.”
“이 새끼가 누님을 보고 인사도 없이 도망가?”
절정의 신법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탁소혜였다.
인상을 구긴 투백비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거 놓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어쭈? 어디 해보시지!”
투백비의 손이 봉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전방의 골목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고 마치 거짓말처럼 머릴 움켜쥔 손이 사라졌다.
탁소혜가 천상여인처럼 배시시 웃었다.
“어머나. 대주.”
두 사람을 본 천진서가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탁소혜의 손이 벌어지는 투백비의 입을 덥석 틀어막았다.
“다들 객잔에 모인다길래 가는 길이었어요. 헤헤.”
투백비가 슬쩍 눈을 흘겼다.
‘역시 이 여잔 제정신이 아니야.’
여자란 짐승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난 평생 혼인하지 않을 거다.’
각오를 되새기며 그녀의 손을 뿌리친 투백비가 성큼 걸어나갔다.
천진서가 물었다.
“설마 너도 가는 것이냐?”
“가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대꾸한 투백비가 객잔의 입구로 걸어간다.
“…….”
탁소혜가 천진서의 곁에 바짝 붙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객잔에 당가의 소가주가 있다고 했었죠?”
“그렇다. 그와 상대할 적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웃으며 말했다.
“어서 가요. 헤헤헤.”
객잔에는 이미 내일 단소룡과 함께 출발할 이들뿐만 아니라 제법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대표두라는 자들이 그런 수준이란 말인가?”
휘둥그레진 양천의 눈에 담긴 이는 얼큰하게 취한 동초개였다.
“그렇다니까요? 은곡의 무공을 익힌 자들은 보통 사람으로 간주해선 큰코다쳐요. 우리 천주님만 봐도 알잖아요?”
동초개가 열변을 토하며 상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당천과 진설란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진설란이 또다시 들어오는 이들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나가려 할 때마다 하나씩 사람들이 들어와 궁금한 것을 묻는 통에 반나절이 넘도록 나가질 못했다.
“우리 언제 가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당천은 천진서 일행이 들어오는 순간 조용히 객잔을 떠났기 때문이다.
* * *
동쪽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올 무렵.
새벽잠에서 깬 무인들이 하나둘 일어나 봇짐을 챙겨 나온다.
마침내 떠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불 꺼진 방 안.
창문 틈으로 옅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가운데 진무립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팔천영신공은 시전자의 성장과 함께 진화하는 무공이다. 그 극의는 결코 혈천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야.’
단소룡과의 싸움을 복기하던 진무립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백하진에게 전수한 백라자수, 한천유에게 전수한 연사비도는 자신과 스승이 함께 만든 무공.
그 외에도 녹사대와 청사대의 무인들은 진무립이 만든 무공을 익히고 있다.
이미 일파를 창시할 만한 대종사의 반열에 오른 진무립은 한 번의 싸움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실마리를 잡은 상태였다.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는 혈천비를 사용하고도 아직 내겐 여유가 있었다. 한 방이 승패를 가르는 싸움에선 남은 내력까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분주했던 그날의 움직임에서 군더더기가 빠져나가며 보다 날카롭고 강렬한 초식으로 변모한다.
방안에 스며든 새벽 공기가 진무립의 주변에 도달하자 옅은 서기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슈우우우…….
세숫물을 들고 방문 앞에 도착한 금성우는 안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주군께서 또 뭔가 얻으셨구나.’
상천의 깃발이 무림에 내걸리기 전부터 진무립을 모셔온 그는 진무립이 실전 같은 비무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 왔다.
천음지체의 뛰어난 오성을 타고난 진무립이기에 이와 같은 경이로운 성장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대야를 바닥에 내려둔 금성우가 검파에 손을 올린 채 문 앞을 지키고 섰다.
어스름한 동쪽 하늘의 빛이 점점 강렬하게 변하며 화령도가 아침 햇살에 휩싸일 무렵.
문틈 사이로 번뜩이는 정광이 새어 나오더니 마침내 살갗이 에일 듯한 예기가 사라졌다.
주변을 살핀 금성우가 조용히 진무립의 방문을 두드렸다.
“주군. 성우입니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간 금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대성을 감축드립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으나 눈빛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현기는 마치 판천라마를 연상케 할 만큼 신비로웠다.
진무립은 지그시 눈을 감고 떴다.
그러자 현기가 짙게 흐르던 눈빛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대성까지는 아니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부하들의 피해를 줄이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 마음을 이해한 금성우는 빙그레 웃으며 탁자 위로 대야를 옮겼다.
“고맙다.”
차가운 세숫물에 세안을 한 진무립이 면포로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준비는?”
“은무대 전원 채비를 마쳤습니다. 화령 측에선 영주와 대군사, 그리고 후기지수들로 일행을 꾸릴 모양입니다.”
상대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지금 핵심 전력이 움직이지 않을 것은 예상한 일이다.
창문을 활짝 연 진무립은 어깨에 걸치던 장포를 다시 벗었다.
“이젠 필요 없겠군.”
중원을 떠날 때만 해도 겨울의 향기가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이대로는 여름도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진무립은 장포를 봇짐에 넣으며 말했다.
“성우야.”
“예. 주군.”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
오늘따라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무게감이 평소보다 무겁다.
육병흑궤를 등에 진 금성우가 짧은 고민 끝에 말했다.
“소주와 항주에 가보고 싶습니다.”
“기억해두마.”
봇짐을 어깨에 걸친 진무립이 문을 활짝 열었다.
“다음 봄에는 모두 함께 유람이라도 떠나자꾸나.”
활짝 열린 문밖에서 봄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진무립은 다음 봄을 상천의 짧은 역사 이래 가장 평온한 계절로 만들리라 다짐했다.
복면을 내린 금성우가 웃으며 예를 갖췄다.
“예.”
마당에 내려서니 어느새 집결한 은무대가 일제히 예를 갖췄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좌측에는 졸린 눈을 비비는 용추와 동초개가, 우측에는 당천과 진설란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 뒤로, 언제 도착했는지 짐을 챙긴 단려화가 서 있었다.
“모두 일찍 일어났네요.”
“준비는?”
“완벽해요.”
그때였다.
“기병(起兵)!”
연무장 쪽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더니.
“답(答)!”
이어서 쩌렁쩌렁한 함성이 섬을 뒤흔들며 물결치듯 퍼져 나간다.
“진(進)! 충(忠)! 적(敵)! 멸(滅)!”
화령의 웅장한 기상이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외침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린 가운데 단려화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출정령이에요.”
“괜찮군.”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발을 내디뎠다.
“가자.”
천하에 스며드는 두 번째 환란을 앞두고.
적의 야욕을 분쇄할 영웅들이 천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