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59)
◈ 259화. 독왕 당조, 광마 당명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이 조용한 공터에 은은한 빛을 흩뿌린다.
모두가 깊게 잠든 시각.
아들과 단둘이 마주 앉은 당조가 물었다.
“요즘은 무엇을 수련하고 있느냐?”
“암기와 더불어 새로운 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독?”
당우는 품에서 손바닥만 한 주머니를 꺼냈다.
“만리추종향(萬里追從香)입니다. 기존에 본 가에서 사용하던 만리추종향은 염하수(炎河水)로 씻으면 효력이 끝났었지요. 저는 염하수로도 씻기지 않는 추종향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만리추종향은 상대를 추격할 때 사용하는 약으로 당가에선 세가만의 특별한 비법을 추가해 쉽게 지워지지 않게 개조했다.
당우는 그것을 보다 강력하게 만들고자 연구 중이었다.
당조가 흥미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어디 한번 볼 수 있겠느냐?”
당우는 멋쩍게 웃으며 전낭을 건넸다.
“아직은 연구 중인 단계라 실제로 사용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전낭을 연 당조는 지그시 눈 감은 채 전낭 속의 향기에 집중했다.
‘완벽한 무향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기존의 추종향과 다를 게 없어 보였으나 아들 스스로 이런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대견하다.
전낭을 닫은 당조가 따스한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노력하고 있구나. 훌륭하다.”
부친의 칭찬에 당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아직 그 정도는…….”
“독낭에 섞어서 사용하면 보다 쓸모가 다양해질 것이다.”
“예.”
당우는 즉시 허리춤의 독낭을 꺼내 추종향을 살짝 섞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당조가 말없이 웃는다.
자신이 신경 써주지 못했음에도 당우는 어엿한 장부로 자라고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 다양하게 교차하는 감정들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색한 정적 속에 당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그래.”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당조는 무슨 질문이 나올지 어렵지 않게 예감했다.
“명이에 관한 것이로구나.”
“……예.”
당조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재가 뛰어난 아이였다. 단순히 무재만 놓고 보면 천이보다도 훌륭한 아이였지.”
“그런 형님이 갑자기 집을 나간 건…… 역시 소가주 자리 때문입니까?”
“고작 열다섯의 나이에 음혼귀소 추용보를 제거한 녀석은 자신의 실력에 부쩍 자신이 붙어있었지. 일각에선 그 녀석을 소가주 자리에 올리자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문경이다.”
당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너진 사천맹의 비각주이자 맹주 한천월의 지낭이었던 당문경의 이야기가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애초의 진심은 어땠을지 몰라도 어린 나이에 주변에서 그렇게 떠받들어주니 놈도 내심 욕심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비무가 성사됐지.”
두 아들의 비무를 참관했던 당조는 당명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당천을 소가주에 임명했다.
살수를 봉인한 당천과 달리 비무에서 형에게 살초를 사용한 아우를 소가주에 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홀연히 세가를 떠났지. 명이를 지지했던 당문경도 더 이상 세가의 일에 관여치 않고 사천맹에 전력했다. 나는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아들 하나를 잃었으나 세가의 분란 거리가 사라졌으니 되려 잘되었다는 마음도 있었다.
당시의 당조에게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던 당조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다. 그만 자자꾸나.”
굳이 당우에게 광마의 이야기를 꺼내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당우도 뭔가 뒷이야기가 있음을 눈치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당조가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형님.’
그를 떠올리면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만 떠오른다.
장난 삼아 던진 암기가 팔뚝에 틀어박힌 적도 있었고 독공을 수련한다며 자신을 실험체로 삼은 적도 있었다.
정말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한 장난에 몸서리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만일 어린 시절 그 기억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없는 사람 생각은 그만하자.’
고개를 털어 기억을 지운 당우가 몸을 일으킬 때, 번을 서던 당조의 수신호위 도륭이 다가왔다.
“삼공자.”
“예.”
“가주께 이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십 년 전부터 당조를 모셔온 도륭은 당명에게 얽힌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주름 가득한 도륭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볼일 좀 보고 올게요.”
누우려 하니 소피가 마려운 것이다.
“다녀오십시오.”
도륭의 공손한 예를 받은 당우가 신법을 전개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큰 나무 밑에 도착한 당우는 바지춤을 내렸다.
“이제 막 사천을 벗어났으니 도착하려면 빨라도 열흘은 더 걸리겠는데.”
쪼르르…….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나무 아래 작은 골이 패인다.
볼일을 마친 당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바지를 올릴 때였다.
“내 동생. 많이 컸구나?”
등 뒤에서 들려온 난데없는 목소리와 함께 당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천천히 바지를 묶은 당우는 품 안의 비수를 조용히 꺼내며 돌아섰다.
무성한 나무로 가려진 달빛.
어둠 속의 인영이 천천히 다가오며 나무 틈새의 달빛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지?”
개구진 인상의 청년이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든다.
당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형님?”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형 당천과 매우 닮은 사내는 바로 오래전 실종된 당명이었다.
“잘 지냈냐?”
당명은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살갑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가 되려 당우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저렇게 웃을 때마다 반드시 뭔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혀, 형님이 여길 어떻게…….”
“아버지께서 이곳을 지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처럼 인사나 드릴까 해서 찾아왔지.”
내딛는 당명의 발걸음이 늘어날수록 당우의 심장박동 또한 한 박자씩 빠르게 늘어난다.
과거의 악몽이 새록새록 떠오른 까닭이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당명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넌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 혹시 아버지한테 무슨 얘길 들은 거야?”
귓속을 스며드는 목소리가 오싹하다.
정신이 번쩍 든 당우가 뒷걸음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너무 놀라서…….”
“그래?”
어깨를 쥔 당명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마음 같아선 옛날처럼 놀아주고 싶은데…… 아버지께 먼저 인사부터 올려야겠지.”
섬뜩한 미소가 당우의 동공에 가득 차올랐다.
“앞장서라.”
“……예.”
당우는 천천히 마차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도무지 생각해도 지금 이 시점에 형이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차에 접근한 두 사람 앞에 번을 서던 도륭이 나타났다.
“삼공…… 자?”
갑자기 당우와 함께 나타난 청년에게 그의 시선이 옮겨진다.
당명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나, 기억해?”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도륭의 손이 번개같이 품속에 들어갔다 나온다.
쐐애액!
쏘아지는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찢어질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삼공자! 놈에게서 떨어지십시오!”
도륭의 움직임에 반응한 당우가 당명의 손을 피해 몸을 굴리는 순간.
타앙!
당명의 좌수가 짓쳐 드는 암기를 가볍게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불가에서 잠든 무인들이 튕기듯 일어났고, 마차 문이 일제히 열리며 당가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에겐 사태를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크아악!”
대체 언제 접근했는지 숲속에서 쉰여 명의 무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당가의 무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당우가 당명을 휙 돌아봤다.
“혀, 형님!”
돌아온 대답은 비릿한 조소였다.
“큭큭큭!”
그 순간이었다.
쏴아아아아!
마차 안에서 시꺼먼 장력이 뻗어 나오더니 이내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마치 수백 마리 뱀이 일시에 몸을 날리는 듯한 장력이 백화무단원들을 공격해갔다.
“승룡폭사장(昇龍暴死掌)이야. 부딪치지 말고 피해.”
당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력을 받아치려던 이들이 일시에 몸을 피했다.
쿠콰콰콰콰쾅!
거친 폭음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들은 당가 무인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카카캉!
역수로 쥔 암기로 적을 간신히 밀어낸 도륭이 다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가주님!”
쾅!
그와 동시에 마차가 터져 나가며 독왕 당조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했다.
부릅뜬 그의 눈동자에 미소짓는 아들의 얼굴이 빨려들 듯 확장된다.
“겁도 없이 이곳에 나타났구나.”
당천의 서신을 통해 살아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러나 복령천의 하수인이 된 아들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명이 반갑게 웃으며 두 손 가득 암기를 쥐었다.
“반갑지 않습니까? 하하하!”
다급하게 거리를 벌린 당우가 영문 모를 얼굴로 말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자신의 앞에 무려 십 년 만에 나타난 형이 세가의 무인들을 죽이고 있으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당조의 손이 허공에 빨려들 듯 쏘아져 나왔다.
쐐애액!
세 줄기 섬광이 당명의 전신으로 짓쳐 드는 순간.
당조는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은 광마다!”
경악한 당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과, 광마라고? 형님이 천하삼흉의 그 광마란 말인가?’
당우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당명의 소매가 허공에서 춤을 췄다.
콰콰쾅!
적지 않은 내력을 쏟아부은 암기가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간다.
당조의 눈이 빠르게 좌우를 살핀다.
놈이 나타나고 지금까지 고작 촌각에 달하는 순간, 서른에 달하던 부하 중 무려 절반이 쓰러지고 말았다.
‘백화무단!’
정말 무시무시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순식간에 지척까지 달려든 당조가 역수로 쥔 비수를 가로 그었다.
쉬익!
당명도 그에 비수로 응수했다.
카앙!
오싹한 쇳소리와 함께 두 부자 사이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마주 선 두 사람의 손과 발이 연신 허공을 강타하며 서로의 숨통을 옥죄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거친 폭음과 함께 대지가 진동하는 전장.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당우가 쓰러지는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조와 접전을 펼치던 당명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놈은 죽이지 마. 쓸모가 있으니까.”
“예.”
허리춤에서 암기 다발을 꺼낸 당우가 전신 내력을 쏟아부어 적을 향해 출수했다.
슈아아아아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수십 개의 암기 다발이 적에게 닿기 직전.
누군가가 번개같이 신법을 전개하며 당우의 암기를 모조리 후려쳤다.
카카카카카캉!
‘아아!’
당우의 두 눈에 짙은 절망이 드리운다.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이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절망 속에 차오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온다.
쿠콰콰콰쾅!
순식간에 수십 초를 교환한 당조 부자가 약속한 듯 거리를 벌렸을 땐, 살아있는 당가의 무인이라곤 당조와 당우뿐이었다.
죽은 부하들을 확인한 당조의 눈에 핏발이 선다.
“이놈!”
당명은 여유롭게 웃었다.
“후회하십니까?”
부러질 정도로 이를 간 당조가 전신 내력을 남김없이 끌어올렸다.
투둑. 투둑.
펄럭이던 옷자락이 거칠게 뜯겨 나가며 당조의 전신에서 태산 같은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
억울하게 죽어 나간 부하들의 처참한 몰골에 피눈물이 쏟아진다.
“자식한테 할 소리는 아닌데…….”
부친을 응시하던 당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난 부친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미소를 지운 당명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무거운 고요 속, 당명의 전신에서 하늘마저 집어삼킬 듯한 투기가 노도와 같이 쏟아져 나왔다.
드드드드드…….
진동하는 대지의 떨림이 점점 격해져 간다.
“고작 당가의 무공 따위로 소자를 어찌하지는 못할 겁니다. 아버지.”
말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쇄도했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