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58)
◈ 258화. 복령천
불어온 실바람이 마주 본 두 사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백화무단주 양무화.’
설지량의 정보에 따르면 복령천주 아래 존재하는 십이사령과 같은 위상을 가진 강자다.
복령천의 핵심 전력을 이끄는 자가 결코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운화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넌 이곳에서 몇 번째냐?”
은연중에 느껴지는 기도는 절대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만일 이와 같은 자가 여럿이라면 그 진무립일지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글쎄. 어떨 것 같은가?”
“…….”
묘한 미소를 보인 양무화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한잔하겠나?”
상대를 파악할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지.”
양무화가 부하들을 돌아보며 두 팔을 펼쳤다.
“자리를 깔아라.”
“예.”
나직한 대답에 이어서 순식간에 탁자가 나타나고 술상이 차려진다.
“제법 잘 훈련된 자들이군.”
“그렇지?”
입가의 미소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럽다.
먼저 앉은 양무화가 자리를 권했다.
“표국의 일은 들었네. 유감이야.”
“누굴 원망할 마음은 없다.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다.”
“솔직한 게 마음에 들어.”
양무화는 빈 잔을 차례로 채웠다.
그윽한 주향이 번지는 가운데 양무화가 잔을 들며 물었다.
“광룡 진무립과 싸웠다던데.”
양무화를 향한 운화결의 눈동자에 살심이 스쳐 지나갔다.
“내 입으로 결과를 듣고 싶나?”
날카로운 반응에 양무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악취미는 없네. 그저 어떤 자인지 궁금할 뿐이야.”
운화결은 잔을 가볍게 비웠다.
“위험한 자다.”
“팔존까지 나섰음에도 당해내지 못했으니 당연히 위험하겠지.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군.”
“무슨 말이지?”
“상천과 화령. 어느 쪽이 더 우리에게 위험이 될까?”
순간 운화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왠지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짧은 고민 끝에 운화결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 그저 난 내 손으로 진무립의 목을 따고 싶을 뿐이다.”
“후후. 그런가.”
이번엔 운화결이 모른 척 물었다.
“생각보다 수가 적군. 백화무단은 여기 모인 자가 전부인가?”
얼추 눈으로 보이는 자가 서른.
주변에서 감지되는 기운을 포함하면 모두 오십여 명이다.
설지량이 가져온 정보와는 다른 것이다.
양무화가 말했다.
“아닐세. 다른 이들은 지금 부단주와 함께 밖에 나가 있지.”
“임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군.”
애매한 대답이다.
더 이상의 질문은 자칫 오해를 살 위험이 있다.
입을 다문 운화결은 빈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무화가 싱긋 웃었다.
“활령단까지 내어주신 걸 보면 천주께서 자네를 귀히 쓰실 모양이야.”
“나 정도의 무인을 쓰고 버리기엔 아깝지 않은가?”
“하하하! 자신감이 마음에 들어. 그렇지. 자네 정도의 무인이라면 분명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을 테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고하러 갔던 장경이 돌아왔다.
“운공. 천주께서 하달하신 임무입니다.”
“임무?”
장경이 가져온 장계를 펼쳤다.
“금성표국주 운화결에게 명한다. 무당산을 불태우고 소실봉 정상에 금성표국의 깃발을 내걸어 그대가 살아있음을 천하에 증명하라.”
순간 무거운 정적이 주변을 감싸는 가운데 양무화가 말없이 웃었다.
운화결은 복잡한 내심을 감추며 담담하게 물었다.
“무당을 불태워라?”
“그렇습니다. 백화무단에서 열 명의 무인을 차출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양무화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화무신검이 함께한다면 몰락한 무당 따위 지우는 게 뭐 어렵겠나?”
천하대전에서 몰락한 무당은 아직 그 전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적이 길어지자 장경이 운화결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운공?”
정신을 차린 운화결이 말했다.
“언제 출발하면 되지?”
“해가 지면 이곳을 떠나십시오.”
촉박한 시간이었음에도 운화결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지.”
장경은 허리춤에 묶은 두 자루 검 중 하나를 풀러 운화결에게 건넸다.
“이게 끝인가?”
“육병백궤를 다시 만들기엔 시일이 걸립니다. 백화무단이 함께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거라 하셨습니다.”
양무화가 기껍게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말게. 튼튼한 녀석들로 붙여주겠네.”
“기다리지.”
술병을 챙긴 운화결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당을 불태워라.’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자신에 대한 의심은 가실 것이다.
그러나 무당을 지운다면 임교영의 곁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해진다.
황천패는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공터를 벗어난 운화결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방도를 찾아야 한다.’
멀어지던 운화결이 모습을 감추자 양무화가 장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하필 무당인가? 가까운 소림도 있는데.”
“가깝기 때문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꼬리를 잡히기 쉽다.
그래서 보다 먼 무당산을 노린 것이다.
“만일 수상한 행동이 감지된다면?”
“즉각 죽이십시오.”
망설임 없는 대답을 보니 상부의 결정인 모양이다.
“그럼 어중간한 녀석들론 안 되겠는데.”
어렴풋이 살핀 운화결의 무공은 쉽게 볼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당분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상 믿을 만한 부하를 보내야 한다.
부하들을 돌아본 양무화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칠 조.”
순식간에 열 명의 부하가 눈앞에 부복한다.
“예. 단주.”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자들.
양무화가 말했다.
“운화결을 따라가서 무당을 불태워라.”
한쪽 눈동자가 온통 새하얀 사내, 조장 구홍이 물었다.
“다른 명은 없으십니까?”
한 자루 검을 귀신같이 사용하는 그라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
양무화는 술병째로 들이키며 말했다.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알아서 처리해.”
백궤를 잃은 운화결은 팔천영신공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
칠 조는 부하 중 신법이 가장 뛰어난 자들로 운화결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고개 숙인 부하들의 눈에 짙은 살기가 스쳐 갔다.
“존명.”
칠 조의 무인들이 안개처럼 사라지자 장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주.”
“말씀하시오.”
장경은 천주의 수신호위 흑무대의 일원.
양무화의 서열이 높다곤 하나 함부로 하대를 할 순 없었다.
“부단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모르오.”
“예?”
양무화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른다니까.”
아직은 출발하기에 이른 한낮.
처소로 돌아와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 운화결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들을 데리고…….’
어쩌면 임교영을 탈취해 돌아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운화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영악한 놈이 교영을 그대로 두었을 리가 없지. 백궤도 없는 지금의 상태론 무리다.’
임신한 그녀를 데리고 추격을 뿌리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그건 임교영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무당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지금 있는 위치라도 알게 된다면 방도를 찾아볼 텐데 그것조차 어려우니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다.
길잡이를 할 백화무단이 인적 없는 산으로만 골라서 움직인다면 자신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당산에 도착하고 말 터.
고민하던 운화결은 이내 생각을 접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금 당장 생각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려앉는 밤기운이 고즈넉한 분지를 감싸 안는다.
노을이 사라진 산속.
드리운 어둠 속에 운화결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백화무단 칠 조장 구홍이 공손히 예를 갖춘다.
“구홍입니다. 무당까지 운공을 모시겠습니다.”
운화결의 두 눈이 시립한 열 명의 무인을 빠르게 훑는다.
‘쉽지 않겠군.’
잘 벼려진 칼날 같은 기도가 이들의 전신에서 은연중에 풍겨 나온다.
“천주님께선 바로 출발하라 하셨습니다.”
운화결은 챙긴 봇짐을 구홍에게 툭 던졌다.
“앞장서라.”
봇짐을 수하에게 넘긴 구홍이 몸을 돌렸다.
“가시지요.”
운화결이 산중의 어둠에 스며들 무렵,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황천패가 텁석부리 수염을 손가락으로 휘감았다.
“구홍이냐?”
곁에 선 약환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역시 양무화입니다. 제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군요. 흐흐흐.”
신법의 대가인 칠 조라면 절대 운화결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 무당을 지우는 건 너무 섣부른 짓은 아니고?”
“여기서 무당까지는 천 리가 넘습니다. 꼬리를 밟힐 염려도 없을뿐더러 놈들에게 경각심을 한번 줄 때도 됐습지요.”
이번 계획은 단순히 무당을 지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약환은 이번 임무를 통해 몇 가지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운화결의 속내를 확실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그리고 상대를 자극한 뒤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다려 검존 성유기의 진심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만일 무당의 멸문으로 조바심을 느낀 상대가 계추월 소화산에 나타난다면 검존에 대한 의심은 확신이 된다.
움직이는 상대의 전력에 따라 함정을 팔 수도, 아니면 배후를 노릴 수도 있다.
약환은 소수정예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생각인 것이다.
“차라리 검존이 배신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킬킬킬.”
황천패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영감. 거 자꾸 재수 없는 소리 하면 갈아버릴 거야.”
“흐흐흐.”
발을 돌린 황천패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당명은.”
“남은 일을 해결한다고 갔습니다.”
“남은 일?”
“킬킬킬킬!”
순간 황천패의 주먹이 약환의 정수리를 벼락같이 후려쳤다.
따악!
“큭!”
주먹을 매만진 황천패가 잔뜩 인상을 쓰며 방문을 열었다.
“이 인간은 뭘 물으면 한 번에 대답하는 법이 없어. 성질나게.”
* * *
짙어진 밤과 함께 봄날의 꽃내음이 관도 변의 공터를 가득 채운다.
타오르는 모닥불가에.
석 대의 마차를 벽처럼 세워둔 독왕 당조 일행이 하룻밤 노숙에 들어갔다.
당조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당우에게 말했다.
“내일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 그만 들어가서 자거라.”
당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 저었다.
“저는 이곳에서 자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들어가십시오.”
새로이 창설될 무림맹을 위해 중원으로 가는 길.
부친이 자신에게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언제나 천덕꾸러기로 가문의 눈 밖에 나 있던 자신이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당조가 모닥불을 응시하며 말했다.
“최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한다고 들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무엇이 너를 그리 바꾼 것이냐?”
당우의 대답엔 망설임이 없었다.
“매질입니다.”
“매질?”
진무립을 떠올린 당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날의 끔찍한 고통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 까닭이다.
“세가에서는 제가 무엇을 해도 나무라는 이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조차도 어느 시점부터는 제게 한 마디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지요.”
“음.”
당조는 나직이 침음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과할 정도로 엄격한 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한 번의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친의 생각도 모른 채 당우는 멋쩍게 웃었다.
“진공자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었을뿐더러 섣부른 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보여주었습니다.”
“진무립이라.”
그의 이름을 읊조린 당조는 옅은 미소를 숨겼다.
당천에게도, 당우에게도.
그는 아비인 자신조차 가르치지 못한 중요한 것들을 두 아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정말 대단한 사내지.”
당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