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87)
◈ 287화. 겨울
서장에서 시작된 검은 바람이 서서히 중원을 향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그들보다 한발 앞서 근거지로 복귀한 황천패는 회의를 소집했다.
초옥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
일렁이는 횃불이 복령천 수뇌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오늘따라 유독 무거운 분위기 속에 황천패가 입을 열었다.
“때가 왔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약환의 얼굴로 옮겨간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황천패였으나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복령천의 지낭 약환이었다.
약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화령도를 무너뜨릴 거다.”
운화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빠르군.’
회동 일자인 여월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약환의 설명은 운화결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회동은 정월 초하루. 마교 놈들은 분명 그날 소화산에 나타날 게야.”
운화결은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일사령 주유성이 물었다.
“여월이 아니라 정월입니까?”
그에 황천패가 답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니 날짜 헷갈리지 말고 제대로 움직여라.”
약환이 설명을 이어갔다.
“마교 놈들도 생각이 있다면 회동도 갖기 전에 무림맹과 충돌하고 싶진 않을 거란 말이야. 그런데 무림맹이 바보가 아닌 이상 마교 놈들이 소화산까지 오는 걸 못 알아차릴 리도 없지.”
사사령 음묘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정월로 회동을 앞당긴 건가요?”
“놈들은 분명 살존에게서 여월의 회동 정보를 알아냈을 거다. 그러니 지금도 개방의 거지들이 소화산을 주시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겠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놈들과 싸운다면 그 마두 놈들도 쉽게 감당하긴 어려울 게야. 그렇다면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겠지.”
황천패가 약환의 어깨를 툭 치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혀가 길어. 요점부터 말해.”
“예. 주군.”
실실 웃은 약환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예정보다 한 달 앞서 회동을 벌인다면 놈들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정예부터 파견할 게다. 양측 수뇌가 모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약환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우린 마교를 이용해 소화산에서 놈들의 수뇌부터 잡는다. 그리한다면 천하무림과 마교의 균형이 얼추 맞겠지.”
회동 장소에 황천패와 자신만 남는다면 부하들의 손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약환은 완벽하게 마교와 무림을 상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뜻을 이해한 십이사령과 백화무단 수뇌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무단주 양무화가 물었다.
“그럼 우린 무엇을 하면 됩니까?”
“신룡과 화윤은 개봉에 있다. 백화무단은 화령도 인근에 대기, 십이사령은 강남의 중소방파들을 멸문시켜라. 화령은 강남 무림의 지주이니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화령도에서 무인이 빠져나가면 백화무단은 텅 빈 화령도를 불태우는 거다.”
물 흐르는 듯한 설명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환은 품에서 세부 계획이 적힌 종이를 주유성에게 건넸다.
“자네의 역할이 중요해.”
“맡기십시오.”
종이를 품에 넣은 주유성이 황천패를 향해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에 이어 수뇌들이 일제히 행동을 같이 한다.
주유성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천하 무림을 피로 적실 대계. 반드시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황천패가 모두를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실패하면 나한테 뒈질 줄 알아라.”
“예. 주군.”
예를 갖춘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운화결도 몸을 일으켰다.
짐을 챙기고자 처소로 돌아가는 운화결이 미간을 좁혔다.
‘일정이 달라졌다. 정보를 넘겨야 한다.’
* * *
횃불이 은은한 불빛을 흩뿌리는 낡은 장원.
내리는 눈송이가 장원의 지붕을 하얗게 뒤덮는다.
뽀얀 입김과 함께 마당으로 나온 단려화가 눈밭에 깊은 족적을 새긴다.
“펑펑 쏟아지네요.”
뒤따라 나온 은수련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눈을 좋아하십니까?”
“강남은 눈이 잘 내리지 않으니까요.”
고개 돌린 단려화가 은수련을 빤히 쳐다본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음. 확실히 전보다 많이 변했어요.”
“제가 변했다는 말입니까?”
단려화는 빙그레 웃었다.
“전보다 웃음이 많이 늘었는걸요. 본인은 못 느꼈어요?”
“아.”
듣고 보니 단려화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언제나 밝고 생기 있는 단려화를 지켜보다 보면 지금처럼 절로 미소가 나오곤 한다.
슬쩍 시선을 피한 은수련이 미소를 지웠다.
그에 단려화가 짓궂은 얼굴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은소저는 웃는 얼굴이 예뻐요. 서대주도 그걸 더 좋아할 걸요?”
느닷없는 이름에 은수련이 헛웃음을 삼킨다.
“조급하게 생각할 마음은 없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대로 두다 보면 언젠가 바다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바로 앞에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단려화가 배시시 웃었다.
“여유가 있군요. 보기 좋아요.”
“감사합니다.”
몸을 돌린 단려화가 쏟아지는 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손에 눈이 쌓이지는 않는다.
닿는 순간 녹아내리는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모든 일이 끝나면 좋을 것 같았다.
‘잘될 거야.’
강한 긍정으로 불안을 날린 단려화가 진무립의 처소를 바라보았다.
“길어지네요.”
주인이 없는 빈 방.
이곳에 온 뒤로, 진무립은 식사 때를 제외하면 뒷산의 공터에서 거의 내려오질 않았다.
그런데 식음을 전폐한 게 오늘로 딱 열흘이다.
“제아무리 하늘이 내린 천재일지라도 숨 쉴 때마다 무공이 강해지는 건 아닌가 봐요.”
은수련이 말했다.
“천음지체를 타고난 주군의 재능은 소저의 말씀처럼 하늘이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정말 주군이 대단한 것은 그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투에서 진무립을 향한 무한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단려화는 진무립이 머무는 뒷산을 응시했다.
“과연 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요?”
은수련이 그녀와 시선을 공유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하늘 아래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벽같은 무인이 되어 돌아오실 겁니다.’
두 사람이 눈 덮인 마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달빛이 내린 뒷산의 공터에선 무척이나 고요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제법 쌓인 눈밭 위엔 사람의 발자국은커녕 짐승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속에 풀피리 부는 듯한 작은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공터에서 이 장 남짓 떨어진 앙상한 나무 위.
사방을 경계하며 공터를 지켜보던 금성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공터는 텅 빈 것이 아니었다.
눈에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고절한 보법으로, 진무립은 마치 공간을 뛰어넘듯 엄청난 속도로 사방을 누비고 있었다.
쉬익!
검파를 움켜쥔 진무립의 머리칼이 찢겨나갈 듯 거칠게 흩날린다.
‘더 빠르고 날카로워져야 한다!’
지금까지 상대한 무인 중 가장 고강한 인물은 단연 단소룡이었다.
단소룡의 육감을 상대로 쉽게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건 자신이 그의 반응속도를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빠르게!’
스스스…….
방향을 튼 진무립이 눈밭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진다.
이어서 소리 없이 내지르는 검신에 하늘마저 꿰뚫을 듯한 날카로움이 깃든다.
무려 열흘에 걸친 수련이 서서히 마무리될 무렵, 산 밑에 나타난 단려화가 다급하게 비탈을 뛰어 올라왔다.
“무립!”
나직이 심호흡을 한 진무립이 육병흑궤에 병기를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야?”
이곳에 온 뒤로 줄곧 평온하던 단려화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복령천이 움직였어요.”
진무립의 눈이 반짝거렸다.
‘벌써 움직였다고?’
여월까지는 아직 달포 이상이 남았다.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앞으로 열흘은 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여월은 연막인가? 아니면 계획을 변경했나?’
어느 쪽이든 상대가 움직인 이상 이쪽도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회동 장소가 소화산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거다. 우릴 끌어들이고 싶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이 지면을 박찼다.
“가지.”
단려화와 금성우가 그 뒤를 따르는 가운데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복령천이 움직였다면 곧 마교도 움직일 거다.’
산을 내려간 진무립은 장원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부하들을 볼 수 있었다.
진무립이 당우에게 물었다.
“전원이 움직였나?”
“예. 전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방향은?”
“남쪽입니다.”
예상대로라면 그들의 목적지는 강남일 것이다.
소화산에서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을 붙이고 빠르게 화령도를 접수할 생각인 것이다.
진무립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차분히 정리했다.
“성우. 너는 즉시 문화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하고 태종무단을 소집해라.”
“예.”
금성우가 사라지자 진무립은 상천팔기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너희들의 상대는 십이사령이다. 놈들은 분명 강해. 화령의 지원이 있을 테니 절대 무리하지 마라.”
상천팔기가 즉시 고개 숙인다.
“예. 주군.”
“전쟁은 시작됐다.”
좌에서 우로, 진무립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마주치는 눈빛마다 결연한 각오로 가득하다.
이날만을 기다려온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천하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낸 뒤에.
상천의 가족들과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을 보내게 될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마당에 늘어선 모두를 차례로 눈에 담은 진무립이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나자.”
* * *
밤이 내린 산중의 관제묘.
허름한 실내의 일렁이는 등불 아래, 마주 앉은 적모개와 소걸개 사이엔 작은 술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소걸개가 잔을 채워주며 웃었다.
“너와 이렇게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게 얼마 만이냐?”
공위맹에서 만난 적은 있으나 이렇게 술을 마신 건 적모개가 사천으로 좌천되기 전이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적모개는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렇군.”
“전쟁이 끝나면 예전처럼 거하게 한잔하자.”
고개를 끄덕인 적모개가 잔을 들이켜고 물었다.
“이제 며칠 뒤면 해가 바뀌고 정월이다. 시일에 맞추고자 한다면 마교가 곧 움직일 거다.”
정월이 지나면 여월이 찾아온다.
소화산의 회동이 있는 날이 바로 결전의 순간이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서장의 경계에 깔아둔 거지만 족히 이천이 넘어. 우리의 눈을 속이고 중원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지.”
개방은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두 번이나 내홍을 겪은 개방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자면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천이라.”
적모개가 혼잣말을 하듯 읊조렸다.
“어쩌면 피해가 생각보다 클지도 몰라. 상대가 바로 그 마교니까.”
일순 소걸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그렇겠지. 피해가 없을 순 없겠지.”
말이 끝나자 실내에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적모개가 어색하게 웃으며 잔을 권했다.
“이만 비우고 일어나자. 내일 일찍 감시망을 둘러보려면 늦지 않게 자야지.”
“그래.”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들었을 때였다.
“소, 소방주!”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육봉개가 뛰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육봉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쳐 들어왔다.
“마, 마…….”
“마?”
침을 꿀꺽 삼킨 육봉개가 다급하게 외쳤다.
“마교가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