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9)
◈ 39화. 무음광검 백채륜
부하들을 골짜기에 남겨둔 진무립은 유대하와 단려화, 용추를 대동하고 왔던 길을 올라왔다.
동굴을 빠져 나오자 용추가 물었다.
“근데 괜찮겠습니까? 쟤들 아직 많이 허약한데요. 부곡채주에게 맡기면 진짜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맡기는 거다. 그놈에게서 살아남는다면 누구도 두렵지 않을 테니까.”
문득 그의 얼굴을 떠올린 용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는 서랑곡에 식량을 넣어두고 마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알았다. 다녀오마.”
용추를 남겨둔 진무립은 유대하와 단려화를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주.”
“그래.”
“그곳은······ 혹시 은곡입니까?”
마을에서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본 유대하는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맞다. 서랑곡(西浪谷)이라고 부르던 곳이지.”
“역시······.”
무림의 습격으로부터 십이 년.
공격을 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고 이곳에 살던 자들도 모두 죽었다.
과거 수백 명이 숨어 살던 서랑곡은 누구도 찾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멀리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천과 섬서의 경계에 위치한 서랑곡은 몸을 숨기고 수련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진무립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상천의 산채에 가본 적이 있나?”
“그 무서운 곳을 어떻게 갑니까?”
유대하에 이어 단려화가 답했다.
“나도 없어요.”
“잘됐군.”
“네?”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지금부터 구경하게 해주마.”
***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협곡.
십 장 높이의 절벽 사이로 열 대의 마차와 수십 명의 상인이 진입했다.
상단의 선두, 탐스러운 수염이 하관을 뒤덮은 중년인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금양상단의 대행수 곽영의 말에 등 뒤의 젊은 무인, 복홍이 물었다.
“누가 나온다는 말입니까?”
“상천의 무인을 말하는 걸세.”
“이곳이 상천의 구역이었습니까?”
복홍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함께 하는 이들의 다수는 상인과 쟁자수였고 무인은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네. 여긴 원래 길이 없던 곳이야. 그들이 길을 만들고 통행세를 받고 있지. 자네 혹시 무음광검(無音狂劍)라는 무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무음광검 백채륜.
무림의 젊은 무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름이다.
“무림 칠군의 일인 아닙니까?”
십대고수 바로 밑의 칠경(七勍)이 천하대전에서 활약한 무인들이라면 칠군(七君)은 그 후에 나타난 강자들을 말한다.
고작 약관의 나이에 살수 집단 흑살회(黑殺會)를, 그것도 단신으로 몰살한 무음광검은 장래 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곽영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가 관리하는 구역일세.”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절벽 위에 젊은 사내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모두의 고개가 위로 들리는 순간, 훌쩍 뛰어내린 사내가 좌우의 절벽을 번갈아 디디며 내려오는 신기를 보였다.
눈을 뜬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뱀처럼 가는 눈매에 날카로운 턱선.
눈처럼 하얀 무복을 입은 청년이 그들의 앞에 착지하며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이군요. 대행수.”
첫 상행을 따라온 이들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상대를 알아본 곽영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오, 오늘은 채주께서 직접 나오셨구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소.”
긴장한 복홍이 침을 꿀꺽 삼키며 상대를 바라봤다.
‘이 사람이 백채륜.’
칠군 중에 가장 젊다는 말은 들었으나 칠군이 아니라 후기지수의 범주에 들어가야 맞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너무 젊었다.
백채륜이 말했다.
“상행에 못 보던 이들이 있다고 하길래 나와봤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텐데 안면이라도 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곽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잘 와주셨소. 그렇지 않아도 상행에 처음 따라온 이들은 상천의 이름만 듣고도 지레 겁을 먹었다오.”
백채륜은 낯선 얼굴들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난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상호 간의 예만 지키면 누구보다 부드러운 사람이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쟁자수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복홍은 달랐다.
‘무슨 눈이······.’
찰나 간 눈이 스쳤을 뿐인데 수백 마리의 구렁이가 온몸을 훑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복홍을 비롯한 무인들의 손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 때, 부드럽게 웃은 곽영은 품에서 은자 일만짜리 전표를 두 장을 꺼냈다.
“반년 치 통행세라오.”
단발성 상행을 하는 이들은 그때마다 통행세를 지불했으나 금양상단과 같이 정기적으로 오가는 곳은 이렇게 한 번에 지급하곤 했다.
그편이 돈을 더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표를 챙긴 백채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고맙습니다.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긴 있소만.”
“혹시 장남평(長南平)의 마적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장남평은 부곡산 북쪽 백 리 밖의 들판으로 간혹 마적 때가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관과 인근 무림 방파에서 몇 번이나 소탕에 나섰으나 어찌나 귀신같은지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고 허탕 치기 일쑤였다.
곽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곳이 상천의 영역이 아니라는 건 아오만 가는 길에 있으니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혹시 최근 동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시오?”
백채륜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건 제가 잘 알지요.”
“설마 피해자가 또 발생한 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종종 우리 영역의 마을로 술을 마시러 오기에 술 한잔 사주고 잘 타일렀더니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안심하고 지나가시지요.”
곽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상천이로군. 채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안심할 수 있지. 고맙소. 그럼 이만 가보리다.”
“살펴 가십시오.”
정중한 인사를 건넨 백채륜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양쪽의 절벽을 번갈아 디디며 훌쩍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곽영이 탄성을 흘렸다.
“백채주의 신법은 언제 봐도 감탄을 금할 수 없군. 이만 출발하세.”
“예.”
그들은 잠시 멈춘 행보를 다시 이어갔다.
십 리에 달하는 협곡을 빠져나가자 지평선이 보일 만큼 탁 트인 평야가 펼쳐졌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좁은 협곡을 빠져나와 들판을 맞이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 좋단 말이지.”
듬성듬성 잡초가 솟아난 들판은 더없이 황량했으나 그 분위기조차도 마음에 들었다.
아직은 오후의 햇살이 쨍쨍한 시간.
장남평을 가로지르려면 족히 하루는 걸린다.
“서두르면 장남평의 객잔에서 묵어갈 수 있을 걸세. 가세나.”
평야의 중심부엔 사막의 녹주처럼 덩그러니 세워진 객잔이 있었다.
마차의 속도를 높인 이들이 들판을 두 시진 정도 내달리자 지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잠시 쉬어갈 겸 마차를 세운 곽영이 노을 진 들판을 바라보며 탄성을 흘렸다.
“정말 아름답군.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풍경이니 자네들도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게.”
“예.”
먼 곳을 바라보던 복홍의 눈에 작은 숲이 들어왔다.
“대행수님. 혹시 저곳이 객잔입니까?”
복홍이 가리킨 곳에는 노을을 등진 숲이 있었다.
곽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일이군. 대체 언제 저런 숲이 생겼지?”
수십 번을 오고 간 길이었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숲이었다.
“한번 가보고 오세나.”
“예.”
곽영이 말을 달리자 복홍이 그 뒤를 따랐다.
숲이 석양을 등진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나 복홍은 왠지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대행수님. 먼저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리하게.”
속도를 높인 복홍이 빠르게 숲과 가까워졌다.
‘저것은······. 숲이 아니다.’
떨리는 눈빛과 함께 가슴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백 장, 오십 장, 삼십 장.
점점 거리가 좁혀지자 흐릿하던 숲이 점점 선명해졌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지독한 혈향이 느껴지자 복홍은 속도를 줄였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우욱!”
숲의 정체를 확인한 복홍은 입을 틀어막았다.
어제 먹은 소채까지 올라올 것처럼 구역질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숲으로 착각한 것은 높은 장대에 꽂힌 수백 구의 목 없는 시신.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이 분명했다.
몸을 잃은 머리는 탑처럼 쌓여 있었고 그 앞의 커다란 술독엔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복홍이 글을 읽으러 다가가자 까마귀 때가 일제히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한 복홍은 가까스로 속을 다스리고 술독의 글을 읽어갔다.
“대접 잘 받고······ 지옥으로 갑니다.”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서며 소름이 돋았다.
글을 읽는 순간 백채륜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술 한잔 사주고 잘 타일렀더니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상천의 두려움을 새삼 다시 깨달은 복홍은 손발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세상과 상생을 표명한 상천은 함부로 힘을 쓰지 않는다.
천하의 표국이 유언비어를 퍼트려 모함해도 힘으로 억누르려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상천이 두려운 것은 이따금 힘을 쓸 때마다 이처럼 무참히 상대를 짓밟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에 경고를 남기는 것처럼.
그때 뒤에서 뭔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선 복홍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날렸다.
“대행수님!”
숲의 정체를 확인한 곽영이 혼절하며 말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
부하들과 헤어진 진무립 일행은 한 시진 뒤, 사방을 굽어보는 부곡산의 기슭에 도착했다.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주. 설마 산채 사람들이 대주를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죠?”
상천의 천주 진무립은 무면산왕으로 불릴 만큼 철저히 가려진 인물이다.
용모파기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유대하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진무립이 웃으며 말했다.
“내 부하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상천의 산채는 천하에 수십 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들이 향하는 곳은 그 중에도 대채주들이 머무는 여덟 산채 중 하나.
이곳은 오로지 은곡의 사람들만 머무는 만큼 진무립을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좌우로 삼 장 가까이 치솟은 거목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운데 뒤따르던 단려화의 시선은 십 장 밖의 나무 위를 향했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그녀의 감각이 뭔가를 감지한 것이다.
“누가 있군요.”
그녀의 시선을 좇은 유대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역시 예리하군.”
진무립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녹의를 입은 인물이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
진무립은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유대하를 제지했다.
“그럴 필요 없다.”
멈춰선 유대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녹의인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접근하는 녹의인의 신법이 광룡대 조장들보다도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이 고작 문지기로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진무립의 앞에 멈춰선 녹의인은 한쪽 무릎을 경건히 꿇었다.
“부곡채의 가경이 천주님을 뵙습니다.”
진무립이 대견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놈, 많이 컸구나.”
사내가 복면을 내리자 이제 갓 약관을 넘겼을 법한 얼굴이 드러났다.
가경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도림에 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그래. 채주를 만나러 왔다.”
“속하가 모시겠습니다.”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한 가경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