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4)
◈ 4화. 과하지욕(胯下之辱)
술을 마시던 철사방주 육무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굴 팼다고?”
탁자 밑에 무릎을 꿇은 칠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마, 마, 마도림의······ 소공자를······.”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부하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방주님! 마도림 사람들이 왔습니다!”
“이런 씨발.”
술잔을 팽개친 육무봉이 벌떡 일어났다.
횃불로 밝혀진 철사방의 앞마당.
진무립의 곁에 선 우가산은 어이가 없었다.
객잔을 되찾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사람이 개처럼 얻어맞고 바닥에 나뒹굴다니.
뒤늦게 나타난 상호군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소공자.”
진무립의 잘생긴 얼굴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유대하는 어디 갔습니까?”
“곧 올 거야. 가만있어.”
두 원주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갈 때, 전각의 문이 열리며 육무봉과 수하들이 나왔다.
“마도림의 선배들께서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오?”
나오면서 대강의 사정을 들은 육무봉이었으나 일단 상대의 반응을 보기 전까진 시치미를 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무립의 처참한 몰골을 본 순간, 일이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어떻게 팼기에 저 지경이 된단 말인가?’
순간 고문을 한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객잔에 있었다던 자신의 수하들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멀쩡하다.
진무립의 당부가 있었던지라 상호군과 우가산은 육무봉을 노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 한 걸음 나서는 진무립의 얼굴을 두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그대가 마도림의 소공자인가?”
육무봉이 물었으나 진무립은 입을 열지 않았다.
상호군은 진무립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가?’
우가산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진무립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돌아간다.”
이곳에 오기 전, 두 원주는 진무립에게 절대 입을 열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기에 말없이 몸을 돌렸다.
철사방주 육무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도림의 위세가 과거와 같지는 않으나 감히 철사방이 넘볼 정도는 아니다.
제아무리 자신들의 뒤에 대검문이 있다지만 그들은 명분 없는 싸움에 손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중경에 자신을 대신할 자는 얼마든지 있을 터, 도리어 섣불리 마도림을 자극했다고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소공자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잠깐······.”
육무봉이 손을 뻗는 순간, 진무립이 풀썩 쓰러졌다.
“소공자!”
입술을 질끈 깨문 육무봉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 뭐 이런 엿 같은 상황이.’
***
철사방의 별채.
유대하가 데려온 의원이 진무립을 살피자 상호군이 다급하게 물었다.
“좀 어떻소?”
곁눈질로 유대하를 살핀 의원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겠다만 기혈이 제대로 뒤틀려 이대로는 자칫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뭐요?”
문을 뚫고 나온 상호군의 고성에 육무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미친.’
치미는 욕지기를 꾹 눌렀다.
아무리 자신들의 구역이었다곤 하나 무기조차 들지 않은 초평천의 손자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면 절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조금 전 자신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던 진무립의 눈빛을 생각하면 절대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안에서 뭔가 대화가 오가더니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의원을 댁까지 잘 모셔다드리게. 나머지는 총단에 돌아가서 치료해야겠네.”
“예.”
의원을 데리고 나온 유대하는 육무봉이 뭔가 묻기도 전에 별채를 빠져나갔다.
“돌아가십시다. 가서 태상림주께 아뢰어야겠소.”
“알겠소.”
진무립을 등에 업은 상호군과 표정을 굳힌 우가산이 방에서 나왔다.
“소공자는······.”
육무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으나 진무립의 당부를 받은 두 사람은 입도 뻥끗하지 않고 별채를 나섰다.
이들이 장원에 들어선 시점부터 지금까지 나눈 대화가 한마디도 없다.
육무봉에겐 그게 더 미칠 지경이었다.
‘이걸 빌미로 초평천이 나선다면 대검문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정말 미치겠구나.’
마음 같아선 객잔에 있던 열한 놈의 목을 베어 마도림에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
한동안 조용하던 마도림의 아침이 한바탕 뒤집혔다.
간밤에 외출한 소공자가 철사방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소공자라는 인간이 한낱 흑도패에게 그 모욕을 당했으니 어이도 없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는데 철사방에 다녀온 인물들이 진무립의 명령 같은 부탁으로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이다.
태상림주 초평천이 기거하는 태경원(太京垣)에 당사자들이 모였다.
내림원주 상호군, 외림원주 우가산, 퉁퉁 부은 얼굴로 앉아있는 진무립과 호위로 따라갔던 유대하가 자리에 앉았다.
초평천의 눈치를 살피는 우가산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자신의 시험이 소공자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배짱으로······.’
호위를 붙인 것도 사실상 진무립에게 현실을 조언하고 포기하게 할 이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하필 자포자기 상태인 유대하를 데려갈 줄이야.’
우가산은 치미는 한숨을 억지로 참았다.
애당초 가능한 일이었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객잔을 빼앗아왔을 것이다.
명분도 없이 나섰다간 대검문과의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일, 그래서 객잔을 빼앗긴 지 몇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냥 두고만 보고 있던 것이다.
생각에 잠겨 침묵하던 초평천이 진무립에게 물었다.
“기혈이 뒤틀려 크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들었다. 움직여도 되겠느냐?”
진무립은 대답 대신 유대하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공자께선 외상 외엔 멀쩡하십니다.”
상호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도 어제 의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그자는 의원이 아닙니다. 역용에 능한 경극단원을 포섭해 돈을 주고 연기를 시킨 것입니다.”
“뭐라고?”
상호군과 우가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무슨 의도로 연기를 시켰단 말인가?
초평천이 물었다.
“그게 외림원주의 시험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초평천의 말에 우가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체념한 그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 진무립이 먼저 말했다.
“아닙니다. 그저 술이 마시고 싶었을 뿐입니다.”
우가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소공자?’
우가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할 때 밖에서 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상림주님. 철사방주가 뵙길 청합니다.”
진무립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왔군.”
잠시 후, 철사방주 육무봉이 퀭한 얼굴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상림주님.”
상대는 어렵게 데려온 손자를 두들겨 팬 흑도의 수장. 초평천의 눈빛이 고울 리 없었다.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왔는가?”
초평천의 위압적인 기도에 눌린 육무봉은 흠칫 어깨를 떨며 말했다.
“간밤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왔습니다.”
천천히 무릎을 꿇은 육무봉이 공손히 절을 했다.
“지난밤의 사고는 절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취기가 오른 수하들이 소공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벌인 짓이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진무립을 슬쩍 쳐다본 초평천은 손자의 표정에서 뭔가 숨은 의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초평천은 진무립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겼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무엇을 원하든 네 뜻대로 해주마.”
진무립이 절뚝이며 걸어 나오자 유대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침을 남들 저녁처럼 푸짐하게 먹고 당당히 걷는 걸 봤기 때문이다.
힘겹게 걸어 나온 진무립이 초평천을 바라보며 공손히 말했다.
“마도림의 소공자라는 자가 일개 흑도무리에게 얻어맞아 실신했다는 소문이 중경에 파다합니다. 미욱한 제가 본 림의 명예에 먹칠을 했으니 어찌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저자의 목을 치고 싶으나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육무봉을 향한 초평천의 눈빛이 더없이 사나워졌다.
“돌아가라. 일간 내 직접 철사방을 찾아 책임을 물을 것이다.”
무림에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사색이 된 육무봉은 재빨리 품에서 비단 봉투를 꺼냈다.
“우리 철사방의 잘못을 모두 인정합니다! 약소하나마 소공자의 치료비를 가져왔으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봉투를 뺏어 든 진무립은 내용도 보지 않고 팽개쳤다.
“살면서 어젯밤과 같은 치욕은 처음이었다. 나는 중경의 웃음거리가 됐는데 이따위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라고 보나? 내가 죽든, 네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엔 절대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
진무립의 엄포에 육무봉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시비비가 명확한 이상 대검문의 비호도 기대할 수 없다.
육무봉은 절대 이대로 진무립을 보낼 수 없었다.
“소공자! 내가 잘못했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바짓단을 잡은 육무봉의 간절한 외침에 진무립은 슬쩍 우가산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우가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을 위해······ 소공자는 절대 제정신이 아니다.’
***
사업장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육무봉은 결국 청하객잔을 넘긴 뒤에야 진무립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서북로에 위치한 객잔을 넘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초평천의 앞에 선 육무봉에겐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마도림의 소공자를 두들겨 팬 대가가 객잔 하나로 끝난다면 싸게 먹힌 거란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가져온 전표는 청하객잔의 값어치보다 높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절을 하듯 연신 허리를 굽힌 육무봉이 안도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가 나가자 초평천이 물었다.
“외림원주가 내린 시험이 청하객잔이었느냐?”
우가산이 어두운 낯빛으로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고작 능력을 시험한다고 소공자를 사지로 몰았다면 태상림주의 화를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진무립은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우가산은 도무지 진무립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이 복잡해질 때 초평천이 다시 물었다.
“그럼 시험은 무엇이었느냐?”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시퍼렇게 부은 진무립의 얼굴이 미소짓듯 꿈틀거렸다.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한 시험의 답안입니다.”
***
태경원을 나선 진무립의 곁으로 우가산이 따라붙었다.
“소공자.”
“뭐야?”
“그것이······.”
우가산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의 표정과 태도는 전보다 한결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우가산이 어렵게 물었다.
“고작 시험을 통과하려고 그 수모를 감내했단 말이오?”
“그게 중요한가?”
“자존심 때문에 목숨이 오가는 곳이 바로 무림이라오.”
진무립의 곁을 따르던 유대하도 그것이 궁금했다. 자신 또한 자존심 때문에 마도림을 떠나려 하지 않았는가.
제아무리 목적이 있었다곤 하나 진무립의 방식은 무림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생각을 읽은 진무립은 한심하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사내에게 뜻이 있다면 어찌 과하지욕(胯下之辱)을 마다할까? 남 눈치 보느라 고작 흑도패에게 빼앗긴 객잔조차 되찾지 못하는 주제에 자존심만 내세우면 영광이 절로 굴러 들어오나?”
잔뜩 찌푸린 진무립은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쿡 찔렀다.
“정신 바짝 차려. 추락하다 나뭇가지에 매달렸으면 그거라도 단단히 붙잡아야 위로 올라갈 거 아니야. 절벽 밑바닥이 궁금한 게 아니라면 현실을 직시하라고.”
뼛속까지 무인인 우가산은 진무립의 일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까진 그 계기가 없었다.
‘나도 늙은 건가.’
우가산은 진무립이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정체된 마도림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