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53)
◈ 53화. 사천맹
마도림이 온다는 소식에 사천맹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화제의 중심은 당연히 진무립이었다.
대검문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에 혈천수라를 잡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그 외에도 워낙 다양한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인물이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무립과 우가산을 필두로 백여 명의 무인이 정문을 넘어섰다.
주변을 둘러본 진무립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야~. 여긴 공기가 다르구만.”
십여 채의 삼 층 전각은 각기 높은 담장이 둘러져 있었으며 중앙에 높게 치솟은 오 층 전각은 맹주의 거처인 듯싶었다.
하지만 진무립이 말한 공기는 건물 사이로 느껴지는 찬 공기가 아니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을 이른 것이었다.
‘저자가 마도림의 소공자 진무립?’
‘성도에서 맹주님께 굴욕을 안겨줬다던 자가 바로 저놈인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용모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수려하다는 소문이 성도에 자자했으니까.
여인들 사이에선 이미 옥룡(玉龍)이란 별호로 유명해진 진무립이었다.
물론 사천맹의 젊은 무인들은 옥룡 대신 미칠 광을 붙여 광룡(狂龍)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담장의 모퉁이는 물론이고 높은 전각의 창문까지 무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진무립이 아니다.
싱긋 웃으며 한 발 나서는 순간.
잽싸게 다가온 단려화의 손이 입을 덥석 틀어막았다.
이어서 고저 없는 작은 속삭임이 귓속에 스며든다.
“그러지 말아요. 창피하니까.”
그녀의 손을 살짝 떼어낸 진무립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그녀의 게슴츠레한 눈에 싸늘함이 깃들었다.
“그게 뭐든.”
“…….”
왠지 거부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눈빛이다.
그때 골목에서 한 무리의 무인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철검대가 각주님을 뵙습니다!”
육군명의 우렁찬 선창에 대원들이 일제히 목청을 키웠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우가산이 점잖게 수염을 쓸어내리며 앞으로 나섰다.
“반갑네. 우가산일세.”
이환과 신평이 앞으로 나섰다.
“속하들이 운룡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골목에 접어들었음에도 쏟아지는 눈길은 줄어들 줄 몰랐다.
중앙의 높은 전각 앞을 지나던 진무립이 잠시 멈춰섰다.
“이곳이 맹주가 머무는 곳인가?”
곁을 따르던 신평이 답했다.
“예. 중목원(中木院)이라고 합니다.”
중목원이라는 이름의 전각은 마치 사천 무림을 굽어보듯 높게 치솟아 있었다.
‘이제 한 걸음이다.’
사천제일세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선 저곳을 넘어야 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웠지만 그래도 건물을 움켜쥘 수는 없다.
하지만 결코 닿지 못할 곳도 아니다.
상천을 이끌며 이보다 더한 도전도 성공한 자신이니까.
우가산이 다가와 물었다.
“소공자. 무슨 일이오?”
우가산의 얼굴과 중목원의 최상층을 번갈아 보던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평소와는 다른 정중한 말투.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워주고자 한다는 걸 짐작한 우가산이 빙그레 웃었다.
멈췄던 행보가 이어지자 우가산은 신평에게 물었다.
“금호대는 어디에 있나?”
신평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미…… 운룡각에 들어가 있습니다.”
새롭게 부임한 각주가 왔음에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는 건 명백히 우가산을 무시하는 처사다.
‘사대거파의 자존심인가.’
자존심을 떠올리니 왠지 웃음부터 나왔다.
진무립이 중경에서 벌인 일들이 떠오른 까닭이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한 우가산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목원을 지나친 이들은 북서쪽의 긴 담장을 돌아 작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삼 층 전각과 숙소로 보이는 두 채의 건물, 그리고 세 개의 연무장이 있는 이곳이 진무립 일행에게 주어진 운룡각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우가산이 말했다.
“내부가 생각보다 넓군.”
전각은 물론이고 두 채의 이 층 숙소도 족히 수백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일부러 좋지 않은 곳을 배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곳이다.
속내를 짐작한 이환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중목원을 제외한 모든 전각은 구조가 비슷합니다. 저희 철검대는 임시로 우측의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각주님께서 명하시면 언제든 자릴 옮기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지.”
정문에서 전각까지 이동하는 동안, 좌측 숙소에 틀어박힌 금호대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후기지수들의 작은 도발에 흔들릴 만큼 우가산의 내공은 얕지 않았다.
금호대의 숙소.
일 층에 모여 문을 살짝 열어본 후기지수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각주가 도착한 모양이야.”
“정말 나가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제아무리 뒷배가 든든한 그들이라지만 예의범절조차 못 배운 건 아니다.
그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일조장 당중호가 나타났다.
“나가고 싶나?”
“…….”
당중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 봐. 누구도 나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무공광인 대주 당천과 부대주인 진설란은 임무가 없을 땐 연무장에 틀어박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인물은 바로 당중호였다.
대원들이 눈치를 살피며 안으로 들어가자 당중호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제 밥그릇 뺏기는 줄도 모르는 멍청한 것들.”
그때 계단으로 당우가 내려왔다.
“형님.”
당중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계의 핏줄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던 당우가 무림행에서 돌아온 뒤로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네놈이 언제부터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고.’
제아무리 무서울 것 없는 당중호라지만 당가의 일원인 이상 직계에게 막 나갈 순 없다.
당중호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주와 부대주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형님께서 대원들을 통솔해 나가봐야 하는 게 아닌지요.”
당우의 달라진 모습이 가식으로 느껴진 당중호는 마음 같아선 주먹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삼공자.”
“예. 형님.”
“사천맹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돼서 잘 모르시나 봅니다. 맹주님이 성도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오셨는지 모르십니까? 마도림과 우리는 같은 편이되 같은 편이 아니란 말입니다.”
당우가 제아무리 세상 물정 모른다지만 사대거파가 마도림을 견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천맹의 식구가 된 지금 굳이 견제를 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당우는 진무립을 적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형님. 마도림의 소공자는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와 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아마도 사천맹에서 당우보다 진무립의 무서움을 잘 아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정말 죽기 직전까지 맞아봤으니까.
하지만 당중호가 그걸 알 턱이 없다.
“당가의 삼공자가 고작 마도림 따위를 두려워하다니 세상이 웃을 일입니다. 그럼 혼자서 가보시던지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당우를 지나치던 당중호가 잠시 발을 멈췄다.
“그리고 형님이라는 호칭은 듣기 거북하군요. 이곳에선 조장으로 불러주길 바랍니다.”
당중호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당우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 업보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지.’
꺼질 듯 한숨을 내쉰 당우의 뇌리에 진무립의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가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분명 가봐야 하는데 혼자서 그를 만날 용기는 도무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과 함께 가줄 사람도 없다.
당가의 삼공자란 위치는 함께 술을 마시던 한량들 사이에서나 알아줄 뿐 쟁쟁한 후기지수들이 모인 이곳에선 누구도 대접해주지 않는다.
당우는 문득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면서도 외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달라질 수 없어.’
당우와 헤어지고 은밀히 숙소를 나선 당중호가 비각에 도착했다.
비각주 당문경은 마치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너라. 갑작스럽게 소속을 옮기게 되어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닙니다. 각주님. 조금 전 마도림의 무인들이 운룡각에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어 중요하다고 그리 서둘러 말하느냐. 일단 왔으니 앉아서 차부터 한잔하자꾸나.”
그 따뜻한 배려에 당중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두런두런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찻잔의 바닥이 보일 무렵 당문경이 물었다.
“새 식구가 들어오는 날은 늘 어수선한 법이지. 금호대의 동료들도 많이 혼란스러울 게야.”
“조금 어수선하긴 합니다.”
“금호대가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각주나 소공자에게서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느냐?”
“예. 아직 별 반응은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당문경이 무겁게 목소리를 깔았다.
“중호야.”
“예. 각주님.”
“방계인 우리가 이 거친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방계인 자신의 미래는 당가가 아닌 사천맹에 있다.
그렇기에 같은 방계출신으로 사천맹의 비각주까지 올라간 당문경은 자신의 우상이자 목표였다.
“안다면 됐다. 무슨 일이 있거든 언제든 날 찾아오너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눈을 반짝인 당중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예. 각주님.”
* * *
각기 백여 명의 흑영대와 철검대, 그리고 금호대를 포함하니 운룡각의 무인은 모두 삼백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운룡각의 구조를 파악한 우가산은 중앙 전각의 이 층에 임시로 흑영대의 숙소를 배정, 삼 층은 자신의 집무실과 거처로 삼았다.
방 배정이 끝나자 진무립은 각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육군명과 함께 앉아있던 지월인이 즉시 일어나 예를 갖췄다.
“각주께서는 직인을 인수하시고자 중목원에 가셨습니다.”
“그래?”
“각주께 부대 개편안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흑영대와 철검대에서 스물다섯씩 차출해 소공자께 맡긴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육대주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대 개편안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가산과 함께 정리를 마친 상황.
그런데 지월인이 했던 이야기 중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금호대에서도 스물다섯을 차출할 생각이다.”
지월인의 눈에 의구심이 번졌다.
“금호대에서 말입니까?”
“그래.”
육군명이 흥미로운 듯 말했다.
“각주도 무시하는 놈들인데 말을 들을까?”
진무립이 그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나? 좀 두들겨 패면 될까?”
“하하하! 역시 넌 재밌는 녀석이야. 하하…… 하? 어?”
한참을 웃던 육군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진무립의 표정에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당문경을 떠올린 진무립은 씩 웃었다.
‘금호대를 운룡각에 맡긴 건 네 실수다.’
진무립은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잘난 놈은 필요 없다. 금호대에서 가장 약한 놈,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놈으로 스물다섯. 네가 우리보단 상황을 잘 알 테니 내일까지 명단을 추려서 가져와라.”
“가장 약한 놈으로?”
고개를 갸웃한 육군명은 이내 진무립의 생각을 눈치채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지.”
이야기가 끝나자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 대에서 차출한 인원은 내일 점심까지 내게 보내라.”
밖으로 나온 진무립은 문 앞에서 서성이는 당우를 발견했다.
“오랜만이네?”
“억!”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당우가 그만 벌러덩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소, 소, 소공자?”
“금호대에 있었나?”
진무립의 미소와 마주한 순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온몸이 저려왔다.
“그,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날 만나러 온 모양이군.”
“그게, 그게…….”
부르르 떨던 그는 눈을 돌리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이 찾아옴을 느꼈다.
당우는 결심한 듯 말했다.
“저를 소공자의 부대에 넣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