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87)
◈ 87화. 귀환
“누가 감히 본 맹의 무인을 핍박하는가?”
육중한 내력이 섞인 목소리가 고원에 퍼져 나갔고, 이어서 무리의 선두로 화려한 자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 나타났다.
‘사천맹주?’
선두에서 백발을 휘날리며 빠르게 달려오는 노인은 바로 파천검(破天劍) 한천월이었다.
‘대체 저놈이 어째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맹주가 직접 왔다면 그와 함께하는 자들 또한 범상치 않은 고수가 분명할 터.
이대로는 필패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소유붕은 즉시 돌아섰다.
“퇴각한다!”
사천맹주 한천월을 필두로 비각주 당문경, 운룡각주 우가산과 천선각주 장유기까지 두꺼운 장포를 거칠게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염화교는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젠장, 젠장!”
하지만 사태의 긴박함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는 몸을 돌리며 진무립을 쏘아봤다.
“그 목, 깨끗이 닦고 기다려라.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진무립의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그렇게 억울하면 그냥 지금 싸우던가.”
“…….”
오늘의 굴욕을 가슴에 새긴 염화교는 즉시 퇴각하는 무리로 합류했다.
혈교의 무인들이 물러간 직후, 한천월과 사천맹 무인들이 도착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천무대와 운룡각 무인들이 일제히 예를 갖췄다.
한천월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고생 많았네.”
그의 어깨 너머로 입술을 질끈 깨무는 천선각주 장무기가 보인다.
‘천무대가 당한 것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공을 세울 요량으로 자청해서 천무대를 보냈다.
사천에서 적모개의 보고를 들었을 때만 해도, 조금 전 당중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눈앞에 부복하는 천무대원들은 출정한 숫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도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가 복잡한 것은 당문경도 마찬가지였다.
‘비각의 정보가 잘못됐다니.’
만일 비각의 요원이 적에게 당하지 않았더라면 서장에 들어온 무인들이 들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적모개의 보고가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면 천무대가 당한 것은 비각의 책임이 된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혈야광인의 실험장 하나를 초토화하고 위기에 빠진 천무대를 구한 진무립에게 모든 공이 돌아간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당문경은 옅은 미소에 복잡한 심경을 감췄다.
“맹주님. 자세한 이야기는 대설산맥을 넘어 사천으로 복귀한 뒤에 나누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적지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게 없겠지. 자네 말대로 하세나.”
“예. 은천대는 준비해온 들것에 부상자를 눕히게.”
당문경의 명에 회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부상자를 수습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무립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맹주가 직접 행차하셨군.’
진무립은 처음부터 맹주와 당문경이 함께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적모개는 분명 아는 것을 모두 보고했을 것이다.
당시의 예상대로 천무대가 함정에 빠져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다면 모든 공은 자신에게 돌아올 터.
맹주가 직접 온 것은 임무 중 위기에 빠진 무인들을 구출했다는 공을 내세워 자신의 공적을 일정 부분 덮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했다.
들것에 부상자 고정을 마치자 한천월이 선두로 나섰다.
“사천으로 돌아가세나.”
일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신법을 전개해 왔던 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신법을 전개하는 진무립 곁으로 단려화가 다가왔다.
[괜찮아요?]그녀가 걱정스럽게 묻는 것은 진무립의 얼굴이 다소 창백한 까닭이었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과정은 지난번 적사곡에서의 전투와 비슷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아니, 다를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다소 무리하게 내력을 끌어올린 것이기도 했다.
‘내력의 흐름이 전에 비할 수 없이 빨라졌다.’
진무립의 내력 수발은 기신봉진대법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이었다면 내력을 끌어올린 뒤 초식을 전개해야 했다면 지금은 손이 나가는 순간 내력이 빨려들 듯 치솟았다.
왠지 이번에는 제대로 힘을 써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진무립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때와 거의 비슷한 양의 내력을 소모했음에도 단전 속 두 기운은 전혀 날뛸 기미가 없다.
‘돌아가면 제대로 확인해봐야겠어.’
그때 선두에서 달리던 우가산이 슬며시 뒤로 빠져 진무립에게 다가왔다.
[소공자.]진무립은 씩 웃었다.
[오랜만이군. 별일 없었나?] [별일이야 내가 아니라 소공자에게 있었던 것 같구려. 허허허.]나직한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우가산도 적모개의 보고를 듣는 자리에 함께 있었으니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뒤에 그를 찾아가 진무립의 소식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른 법.
우가산은 진무립과 만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적모개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주름진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천무대는 사천맹의 최정예 부대.
그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마도림의 소공자가 해냈을뿐더러 위기에 빠진 천무대까지 구출하고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왔다.
사천 무림이 들썩일 만큼 엄청난 공적이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그대의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군.]* * *
대설산맥을 넘어선 이들은 성도를 향해 남하했다.
무려 천 명이 넘는 대병력.
산과 들로, 세인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이동한 이들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날 성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천맹의 정문 앞에 구름 같은 인파가 운집했다.
“언제 도착하는 거지?”
“일각 안에 도착할 거라고 연락이 왔다는군.”
“맹주님이 직접 서장까지 다녀오시다니 천무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혈야광인에 대한 정보는 극비로 취급한 것이기에 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임무에 나선 이들이 도착해봐야 알겠지.”
곧이어 사천맹주 한천월을 필두로 일천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맹주님이다!”
“천무대가 복귀했다!”
마중을 나온 무인들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복귀하는 인원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들은 이내 들것에 실려오는 천무대원들을 보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입구에 도착한 한천월이 발을 멈췄다.
“모두 나와 있었군.”
북천각주 진하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맹주님. 이게 대체 어찌 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던 천무대였기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각주 당문경이 앞으로 나섰다.
“임무 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맹주님께서 제때 도착한 덕분에 이들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천월의 공을 부각하며 시선을 맹주에게 집중시켰다.
그의 의도가 적중한 것인지 무인들 일부는 역시나 하는 얼굴로 감탄을 금치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이오?”
진하성의 궁금증은 이 자리에 운집한 모든 무인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과 같았다.
한천월이 나직이 말했다.
“우선 부상자들의 치료가 먼저일세. 나머지는 추후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한천월이 안으로 들어가자 함께 온 무인들도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맹에 남아있던 이들 중 일부는 맹주와 함께 다녀온 무인들에게 다가가 그간의 일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위기에 빠진 이들을 맹주와 자신들이 구했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천무대의 패배로 오는 내내 무거운 공기가 감돈 탓에 뭔가를 파악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운룡각 무인들은 우가산의 뒤를 따라 숙소로 발을 옮겼다.
주변을 돌아본 조영성이 표정을 구기며 볼멘소리를 했다.
“칫. 고생은 우리 대주가 다 했는데…….”
강유월과 마찬가지로 맹주 한천월 또한 그의 사숙조였기에 꼬집어 말하진 않았으나 내심 불만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후기지수들의 생각도 대부분 그와 비슷했다.
진무립이 세운 공적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만일 진무립이 없었더라면 적사곡의 실험장 폐쇄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천무대 또한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당사자인 진무립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나, 임무에 함께한 후기지수들은 수뇌부가 임무 과정을 조사할 때 반드시 그의 공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강유월이 인자한 미소로 조영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상자가 많은 천무대의 앞에서 승전을 축하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광무대주의 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 너무 염려할 것 없네.”
조영성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숙조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충격이 큰 천무대 앞에서 우리의 공을 내세우는 것도 문제가 있긴 하겠습니다.”
하종보가 옅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다들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게나.”
이어서 그와 강유월은 우가산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이번 임무에서는 운룡각 무인들의 공이 매우 컸습니다. 훗날 따로 포상이 있겠지만 그 전에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구려.”
우가산도 포권을 취하며 그들의 예에 화답했다.
“두 분 노사님들이 계셨기에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하셨으니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시지요.”
강유월이 빙그레 웃었다.
“각주께서 괜찮으시다면 조만간 곡차라도 한잔하십시다.”
“어찌 두 분의 방문을 마다하겠습니까?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지요.”
“일간 한번 들르겠소이다.”
강유월은 함께 고생한 운룡각 무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들 돌아가서 푹 쉬시게.”
진무립이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들어가십시오.”
“또 보세나.”
무인들의 예를 받은 두 노사가 정무원으로 돌아갔다.
그들과 헤어진 이들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 마침내 운룡각의 정문을 넘었다.
광무대와 금호대, 흑영대와 철검대의 무인까지.
그토록 보고 싶던 얼굴들이 모두 마중을 나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가산을 보좌하기 위해 이곳에 남아있던 유일한 대주, 흑영대의 지월인이 그들을 대표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어서 오십시오.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좌우로 늘어서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무사 복귀를 환영합니다!”
우렁찬 외침에 전율이 일며 사천맹의 정문을 넘어설 때만 해도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들만큼은 자신들의 고생을 알아줄 것이다.
육군명의 곁에 서 있던 이환과 신평이 서로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우리가 정말 돌아오긴 한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네.”
우가산이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들 들어가지.”
지월인이 길을 비켜섰다.
“오늘쯤 복귀하실 거란 이야기에 조촐한 연회를 준비해뒀습니다. 모두 중앙각으로 드시지요.”
진무립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수고했다.”
지월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번 일이 알려진다면 본 림의 위상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소공자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야.’
아직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적모개가 가져온 정보는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저기, 집에 가봐야 할 것 같긴 한데 밥은 먹고 가도 되겠죠?”
조심스럽게 손을 든 인물은 동초개였다.
우가산은 빙그레 웃었다.
“물론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