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53
마늘 냄새 안 나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차 창문을 살짝 열었더니 운전석에 앉은 승준이 피식 웃었다.
“홍초원 주임님, 오늘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했죠?”
승인을 받은 다음부터 집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주의 사항이라 초원은 이제 자다가 잠꼬대로도 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안전이요.”
“두 번째로 중요한 건?”
“들키지 말 것.”
“총은?”
초원은 오른쪽 허리께 후드 티 아래로 불거진 무언가를 보란 듯 탁탁 쳤다.
“다른 델 쏘면 제압은 되지만 완전히 처치하려면 심장을 쏴야 해요.”
“알아요.”
“절대 혼자 행동하지 마요. 뱀파이어랑 단둘이 남으면 안 되니까 항상 차 주임이랑 같이 다니고.”
“네.”
평소에는 붙어 다니는 꼴 보기 싫다던 사람이랑 꼭 붙어 다니라는 걸 보니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탐문 수사일 뿐인데 승준은 초원이 당장 격리 작전이라도 하러 가는 것처럼 굴었다.
“뱀파이어 판별법은?”
초원의 머릿속으로 수능 날 아빠 차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던 순간이 스쳤다.
‘초원아, 신분증 챙겼지? 시계는? 시간 안배 잘하고. 아빠는 너를 믿는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만 해. 화원아, 동생 오답 노트 좀 다시 읽어 줘라.’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게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초원은 한숨을 쉬다 코를 찌르는 마늘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대답.”
“네, 네, 팀장님. 피부가 차가우니 악수해 볼 것. 마늘 냄새와 십자가에 과도하게 반응하는지 볼 것. 물건의 개수를 세는 데 집착하는지 볼 것. 햇빛은 겨울이라 딱히 도움이 안 되네요.”
차가 멈춰서고 초원은 현우의 오피스텔 건물 입구를 곁눈질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보자고 했으니 여기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조심해요. 뱀파이어도 파트너도.”
“헐, 뭘 조심해요? 아깐 같이 다니라면서요.”
“차 주임이랑 단둘이 있는 것도 위험해.”
사내 비밀 연애를 눈치채면 보통은 입을 다물거나 입을 다물지 않거나 둘 중 하나지, 현우처럼 굴지는 않았다.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도발과 한 번씩 도둑놈 보듯 승준을 보는 그 눈빛이 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미친놈. 뒤늦게 남의 여자한테 흑심 품네.’
“뭐야⋯. 나 못 믿어요?”
“초원 씨는 당연히 믿지. 그놈을 못 믿는 거지.”
“남자가 다 누구처럼 늑대인 줄 아나.”
초원은 꿍얼거리며 ‘늑대’의 어깨에 붙어 있는 긴 머리카락을 떼어 냈다.
“그러니까 못 믿는 거지. 늑대는 평생 자기 짝 하나만 사랑하는 거 알아요?”
승준은 생긋 웃는 초원의 두 볼을 붙들고 입술을 맞대다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흠, 내가 마늘을 너무 많이 넣긴 했네⋯.”
“에잇, 복수다!”
초원은 뒤로 물러나려는 승준의 목을 단단히 휘감고 입술을 사정없이 비볐다.
오전 내내 흐리고 이슬비도 내리더니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지금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황량한 논밭과 비닐하우스의 행렬이 잦아들고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에 들어서자 현우는 걷는 게 차라리 빠를 정도로 차의 속도를 줄였다.
“저긴 어때요?”
창밖을 유심히 관찰하던 초원이 허름한 식당 하나를 가리켰다.
“제법 이 동네 사람들 핫스팟 같아 보이는데.”
스치듯 보긴 했지만 유리문 너머로 뽀글뽀글 파마머리가 여럿 모여 있는 것이 동네 소문을 듣기엔 딱일 듯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가에 차를 대었다.
“초원 씨 생각은 어때요? 난 여기에 한 표.”
이 마을의 뒷산에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그럴 규모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템플스테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고 네 곳 중 유일하게 외국인만 받는 곳이었다.
오전에 가 본 곳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절에 평범하게 사람 좋은 스님들이 있었을 뿐. 데이트 나온 커플인 척하며 스님에게 이것저것 물었더니 두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친절하게도 점심을 먹고 가라는 걸 사양하고 이곳으로 왔다.
“나도 한 표요. 제발 여기가 맞아서 딴 데 안 가 봐도 되면 좋겠네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합 10개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주인인 듯 앞치마를 맨 중년의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거기 말고 이쪽에, 바닥에 앉아. 여기가 따뜻해.”
호피 무늬 블라우스 위에 팥죽색 패딩 조끼를 입은 다른 아주머니가 식탁에 앉으려는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상 앞에 앉자 주인아주머니가 물병과 물잔을 가지고 왔다.
“뭐로 드릴까?”
아주머니의 물음에 두 사람은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다 서로 눈치를 살폈다.
“초원 씨 뭐 먹고 싶어요?”
“음, 두부전골 괜찮아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식당 주인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럼 저희 두부전골 주세요.”
어떻게 동네 주민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어야 할지 초원은 고민했다. 아주머니들이 먼저 오지랖을 부려 주었으면 했지만 초원의 뒤에 있는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주머니들은 막장 드라마 재방송을 보며 남자 주인공을 욕하기에 바빴다.
“아이고, 염병을 한다. 소원이 눈앞에서 딴 년 끌어안아 놓고. 뭐? 소원 씨 보고 싶었어요?”
“허이구, 저놈은 대체 뭔 생각이다냐.”
“저렇게 양손에 떡 하나씩 쥐고 뭐 먹을까 하는 놈들은 떡 평생 못 먹어. 딴 놈이 그새 다 채가지.”
“쯧쯧, 저러다 땅을 치고 후회하지.”
대체 무슨 스토리인가 싶어 몸을 뒤로 틀어 TV를 보던 초원은 목이 아파 오자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왜요?”
현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그가 바라보던 건 초원이 입고 있는 네이비색 후드 티였다. 패딩을 입고 있을 땐 몰랐는데 벗고 있으니 후드 티에 적힌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대학교 이름이 적힌 후드 티야 흔하디흔한 것 아닌가. 현우의 시선을 끈 건 다름 아니라 그 대학 이름이 초원이 나온 곳이 아닌 승준이 나온 곳이란 사실이었다.
‘대체 왜? 정말 나 때문에⋯?’
입이 쓰고 속이 쓰렸다. 초원과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운을 떼야 좋을지 몰랐다. 입술을 달싹이던 현우는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물어본다 한들 아니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들 찾아왔어요? 마실 나왔나?”
식당 주인이 두부전골 냄비를 내려놓으며 묻자 현우는 방바닥에 둔 카메라를 보란 듯 들어 올렸다.
“드라이브하러 나왔는데요. 여기 사진 예쁘게 잘 나오는 데 없나요?”
“저어기 뒷산에 약수터까지 가면 누각도 있고 거기서 내려다보면 경치 끝내줘요.”
“아니지, 은애 엄마야. 총각은 경치가 아니고 여자 친구 찍어 주려고 하는 거 아냐?”
“아이고, 여자 친구야 이쁘게 바라보면 아무렇게나 찍어도 이쁘게 나오겄지.”
“하하, 기왕이면 배경도 예쁘면 좋으니까요. 뒷산에 운치 있는 절 같은 건 없나요?”
현우는 슬슬 미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 있지. 약수터 가는 길에 암자 작은 거 하나 있어요.”
“아유, 거길 가라고 하긴 그렇지.”
초원의 뒤에 앉아 있던 호피 무늬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주인을 말렸다.
“왜요?”
초원이 뒤를 돌아보며 묻자 아주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 암자에 사는 주지 스님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양놈들이랑 왜놈들한테만 굽신대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주 찬밥 신세야. 뒤늦게사 돈독이 들었나.”
“근데 그 머시기 스테이가 돈이 되긴 하나? 많이 델꼬 오지도 않더만.”
현우와 초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잠시 주고받았다.
“그 냥반이 갑자기 이상한 바람이 들었나. 원랜 안 그랬는데.”
“애가 불쌍해서 우짤꼬⋯.”
“애요? 스님이 애가 있어요?”
전혀 예상 못 한 정보에 초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니, 자기 애가 아니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디서 애 하나를 데려왔더라고.”
“난 또 고아 키워 준다고 좋은 일 하신다고 우리 애들 어릴 때 보던 동화책도 갖다주고 했는데. 에잉, 아까비라.”
“그러게 키운다고 데려왔으면 학교도 보내 주고 해야지 동네 애들이랑도 못 놀게 하고.”
“생긴 것도 히마리 없이⋯. 얼라가 핏기가 하나도 없어 가지고⋯.”
초원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현우에게 보냈다.
‘설마 애를 먹이로 삼고 있는 건가.’
갈증이 심해질 때를 대비해 힘없는 아이를 비상식량 삼아 키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저번에 절밥 지어 준다고 갔을 때⋯.”
초원은 식당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맛있는 거 준다고 오랬더니 애가 겁먹었는가 오지도 안 하고.”
“절밥도 지으세요?”
“응, 가끔 그 외국인 손님들 오거나 49재 있으면 내가 올라가서 하거든.”
그렇다는 건 식당 주인은 절에서 무언가를 봤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돈독이여. 기도는 안 열면서 49재는 챙기고.”
“아이고, 기분 좋게 놀러 온 사람들 기분 잡치게 이런 이야길 하고 있어.”
“아, 아닙니다. 저 이런 이야기 좋아하거든요. 또 막 오싹한 소문 없나요?”
최대한 정보를 얻어 내야 했다. 현우는 아주머니들을 향해 그 특유의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오싹한 거 좋아한다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요즘 동네 개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네.”
“오, 어쩌다가요?”
“아이고, 이거 밥 먹으며 할 얘긴 아닌데⋯.”
“아, 괜찮아요. 저희 비위 좋거든요.”
초원은 웃으며 두부 한 조각을 입속에 넣었다.
“몸에 구멍이 뚫려 가지고⋯.”
“구멍만 뚫렸나? 입 안이 허연 거 보니까 피도 다 빠져서 죽었던데?”
인간 사냥이 힘드니 가축 사냥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연무 스님 짓 아녀? 우리 집 황구가 접때 스님 보더니 꼬리를 막 요렇게 다리 사이에 숨기고 벌벌 떨면서 오줌을 지리더라니까?”
“아유, 설마. 스님이 그런 짓을 하겄어?”
뱀파이어라면 하고도 남을 짓이었다. 퍼즐이 척척 풀려 가고, 현우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며 초원을 향해 속삭였다.
“초원 씨, 오싹한 절 데이트 어때요?”
초원은 얼굴을 찡그렸다. 산길이 가파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놈의 마늘 냄새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입으로 가쁜 숨을 쉴 때마다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힘들어요?”
앞서가던 현우가 손을 내밀자 초원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가렸다.
“질식하기 싫으면 어서 가요.”
“얼굴 가까이 대고 있는 거 아니면 냄새 별로 안 나는데⋯.”
초원은 계속 손을 내미는 현우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작은 암자라 하더니 건물이 세 채나 됐다. 초원은 긴장한 듯 후드 티 아래로 불거진 총을 매만지다 텅 빈 마당으로 발을 옮겼다.
‘아무도 없⋯.’
마당 가장자리에 서서 경내를 둘러보던 초원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찰칵 소리에 움찔했다. 뒤를 돌아보자 현우가 수사 자료로 쓸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보수를 안 하는지 곧 쓰러질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법당을 향해 초원은 다가갔다. 세찬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쨍, 하고 귀를 찔러왔다.
향냄새가 진동하는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비었어요.”
엉성한 돌계단 아래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현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앗!”
이끼 낀 돌계단 위로 내디딘 발이 미끄러졌다.
“조심해요!”
현우가 재빠르게 허리를 붙들어 당겨 준 덕에 엉덩방아는 면했지만 놀라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좀 과한데.’
초원은 순식간에 현우의 품에 안긴 꼴이 됐다.
“서, 선배, 고마운데 이제 됐어요.”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지만 현우는 놓아주지 않았다. 초원은 뱀파이어도, 파트너도 조심하라던 승준의 말이 근거 없는 질투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초원 씨⋯.”
현우는 초원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저 어딘가에 진실이 있지 않을까. 그를 위해 매일 울어 주던 때는 언제고, 왜 갑자기 그를 밀어내고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간 건지. 그 답을 현우는 간절히 찾아 헤맸다.
역시 그런 걸까?
그를 밀어내던 두 손이 뚝 멈췄다. 초원이 갑자기 고개까지 젖혀 들더니 현우를 향해 입술을 내밀었다.
‘역시 초원 씨가 나를 좋아하는 게 맞구나. 이게 다 그 망할 팀장이 억지로⋯.’
굳게 다물렸던 초원의 입술이 벌어지는 순간, 현우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후우⋯.”
“헉, 콜록 콜록⋯.”
아무래도 마늘은 뱀파이어만 쫓으라고 퍼 먹인 게 아니었나 보다. 초원은 승준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현우를 뿌리치고 걸었다.
“초원 씨⋯.”
“선배, 일하러 왔으면 일이나 해요.”
“잠깐 얘기 좀⋯.”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건물 뒤에서 회색빛 승복을 입은 초로의 남자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아, 저흰⋯.”
“약수터는 이쪽이 아니고 나가서 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묻지도 않은 길 안내를 하는 말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서슬 퍼렜다.
“절이 참 고즈넉하고 좋네요.”
초원이 마지못해 눈웃음을 살살 쳐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주지는 소매로 코를 가리더니 다른 손을 휘저으며 두 사람을 쫓아내려 했다.
“여긴 볼 거 없습니다.”
“저기, 49재⋯.”
현우가 불쑥 내뱉은 단어가 통했는지 주지는 내젓던 손을 뒤로 물리곤 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를 올려야 하는데 누가 여길 추천해서요.”
“그러십니까? 돌아가신 분과의 관계는⋯.”
“아, 저희 할머니께서 며칠 전에⋯.”
사실 현우의 할머니는 아직도 며느리를 쥐 잡듯 잡으실 정도로 팔팔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초원은 마주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다른 건물로 다가갔다. 주지가 돈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경내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자꾸 등 뒤로 날카로운 시선이 꽂혔다.
“아, 저기⋯.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