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그다음 비무
사천당가는 칠대세가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과 암기라는, 경원시 받는 무기를 사용하면서도 정파의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사파 무인은 물론, 정파 무인들도 당가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괜히 가까이하면 중독될 듯한 꺼림칙함이 있는 것이다.
당은설은 그런 당가에서도 현 가주의 친딸이었다.
당가주가 끔찍하게도 아끼는 금지옥엽. 방계와 직계가 확실한 당가에서도 직계 순혈이 그녀였다.
진정한 독공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 운남의 오독문까지 보냈다고 하니, 그녀가 약하다고 누가 무시할까.
하지만 저 얼빠진 표정 하며 이마를 톡톡 두드리는 모습까지 영 요상하다.
“십 할, 다 이겼다고요?”
“네, 십 할 전부. 끅, 하고 죽었어요.”
여태까지 싸우면서 다른 문파 무인들의 실력을 검증했고, 독을 사용했다면 어땠을지 가정했단다.
이강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당은설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들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렇게 한 번 칙, 그리고…… 이렇게 다리를 들었을 때 휘익.”
“칙, 휘익이요.”
“네, 원래 하독할 때 소리는 안 나는데 설명하려고 낸 거고요.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데요.”
“네.”
“요렇게, 몸을 한 바퀴 돌릴 때.”
당은설의 치마가 몸의 회전에 맞춰 흩날렸다.
독특하고 달큰한 향이 사방에 퍼졌다.
그녀는 이마를 살짝 훔치고 말했다.
“후, 이거는 전부 몰살.”
“하하.”
이강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기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유수린은 표정이 구겨졌다.
당은설의 말은, 본 실력을 드러냈으면 자신이 이겼다는 것 아닌가.
물론, 당은설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만큼 유수린도 자신이 이긴다고 확신했다.
무인이란 그런 것이다. 질 것을 생각해서는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아직 백씨세가와 남궁세가의 검은 모르겠네요.”
당은설이 모든 사람들과 겨뤄 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물었다.
“소협이 싸워 보는 건 어때요?”
“제가 말입니까?”
“네, 저분이나. 그 남궁신 소협하고요.”
저분이라는 것은 얌전히 서 있는 백하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있었다.
“하준이와 말입니까?”
“네, 동생분이시죠.”
“안 그래도 그럴 겁니다.”
그 말에 놀란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듣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
“내일 오랜만에 합을 맞춰 보기로 했지요.”
이강은 지금 순위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백하준, 팽무아, 모용진, 혹은 유수린과 함께 조를 이룰 생각은 진작 바꿨다.
무림맹의 새로운 공지를 들은 이후였다.
“기대되네요.”
당은설의 말대로. 모두가 기대하는 표정을 보였다.
형제의 싸움 아닌가. 한 명은 이미 그 뛰어난 검술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동생. 한 명은 청림에 입문해 비로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의 형이다.
이강은 처음에는 백하준과 비무를 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의 눈에는 아직 소심하게만 보이는 동생이다.
비무에서 진짜 실력을 낼까 걱정된 것이다.
“…….”
하지만 백하준의 반응을 본 뒤로는 걱정을 버렸다.
무표정이지만 빛나는 눈빛.
검 손잡이에 올려놓은 손.
백하준은 형과의 비무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 * *
그리고, 청안석과 삼귀청동정을 가져간 담현.
그는 3일 동안 청안광마의 몸을 만들어 주는 일에 몰두했다.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최고의 소재라고 할 수 있는 혈석과 삼귀청동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요력을 잔뜩 머금은 청동 솥을 대장간에 가서 녹였다. 그러곤 길쭉한 청동판 여러 개를 만들어 와서는 자신의 거처에서 밤낮없이 그것을 두들겼다.
깡깡거리는 소음이 계속 울리니 무림맹 사람들이 주의를 주었지만 담현은 멈추지 않았다.
“흐흐…….”
담현의 눈빛에는 귀기가 흘렀다.
잠을 자지 않아 거뭇해진 눈가. 그 위에는 수정을 깎아 만든 안경(眼鏡)이 걸려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청동판을 꼬아서 덧댄 여우의 인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화려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관절이 구부러지도록 섬세하게 만든 물건이었다.
“거의, 다 됐다.”
여우 인형의 옆에는 청안석이 박힌 이강의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깃들어 있을 청안광마는 반지에서 나와 있었다.
담현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는 다리를 꼰 채로 탁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아주 신났구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린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푸르게 빛나던 눈동자가 지금은 흑요석처럼 검다.
그녀는 담현의 몰두한 표정을 가까이서 보았다.
「내가 사실 사람이어서 무섭다더니, 지금은 또 괜찮은 것이냐.」
“으음…… 이렇게 하면 꼬리도 움직일 수 있나.”
「아니면 보이지 않기에 잊을 수 있는 것이냐.」
“그래, 일단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두는 게 낫겠지.”
「이강이한테 맞고 나서 조금 성격이 순해진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청안광마, 청서호의 목소리는 담현에게 들리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도 오랜만이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려 이마와 콧대가 드러났다.
꽤 오랜만에, 청안광마는 고독감을 느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은 이후까지. 고독했던 시절이 그렇지 않았던 때보다 훨씬 많았다.
「이강 그놈은 내가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다 받아 줬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이강과 함께한 몇 년은 잠시 그런 고독을 잊게 만들었다.
평생 단맛을 느껴 보지 못한 자가 사탕(沙糖)을 맛보면 얼마나 달콤할까.
외롭게 살아온 청안광마에게는 이강과의 몇 년이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잠깐 동안 예전처럼 돌아온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더 가혹하게 찾아왔다.
「꼬마야, 아직도 사람이 싫으냐?」
청안광마는 일어서서 담현을 내려다보았다.
담현이 이강보다 나이가 많을진대, 어째선지 훨씬 어리게 보였다.
그녀가 여우 인형에 깃들어 있던 시절, 담현이 아직 어렸던 때에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담현은 마적단에게 가족이 죽은 뒤로 비뚤어졌을 것이다.
머릿속에 암기가 깃들어서 광기가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러지 않는 것이 낫지. 지금은 잘 지내잖나. 사부도 있고, 친구도 있으며…….」
“이강이 좋아하겠군. 사부님도 칭찬해 주실 거고.”
「그래, 그렇지.」
거의 완성된 여우 인형을 살펴보며 담현이 좋아했다.
그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청안광마 청서호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태생부터 요괴의 피가 섞여 난, 그렇기에 이용당하다가 처참하게 찢겨 죽은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만박자,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런 보물로 진법 따위나 가지고 놀다니. 귀곡선생과 비견된다는 소문은 헛소리였네.”
혼자서는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강과 유정신 말고는 아무도 담현의 저런 모습을 모르리라.
청안광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 무림맹에 돌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잊지 못할 옛 얼굴들을 만났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이강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
담현과 달리, 청안광마는 인간을 아예 버리기로 결정했다.
옛 원한과 악연은 잊고 완전한 요괴가 되어 살리라. 자유롭게 산천을 뛰놀며.
그녀는 다시 반지 속의 청안석으로 돌아갔다.
담현이 이강의 반지를 여우 인형의 뱃속에 넣었다.
딸깍-
침을 꿀꺽 삼키며, 담현은 자신의 진원진기를 인형에 불어넣었다.
귀한 진원진기를 퍼부으면서도 전혀 아까운 기색이 없었다.
잠을 못 자 창백했던 얼굴이 더 희게 질리고.
여우 인형의 꼬리가 꿈틀 움직였다.
“돼, 됐다!”
청안광마가 여우로서의 몸을 얻는 순간이었다.
대단하고 복잡한 기관장치가 설치된 것도 아니었는데, 혈석의 도움을 받은 그녀는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예전의 여우 인형보다도 훨씬 안정적인 모습이다.
서호는 여우의 몸으로 담현을 올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휴식만 취하면 될 거고…… 말은 못 해도 울음소리는 낼 수 있게 울림판을 속에 넣었으니까…….”
주먹만 한 여우 인형에게, 담현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청호…… 아니, 청호는 아니지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이름이 서호였나.”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품에 안고 다니며 말을 걸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것이 요괴의 피가 섞였다고 하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론 말을 걸지 않았다.
그 탓인지, 담현은 막상 그녀에게 몸을 만들어 주고 난 뒤에 더 소심하게 굴었다.
“…….”
침묵하는 담현.
먼저 움직인 것은 서호였다.
그녀는 담현의 손에 다가갔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듯, 톡, 톡 그의 손등을 두드려 주었다.
“……!”
담현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 하하하…….”
그리고 그는 뒤로 풀썩 넘어갔다.
쾅 소리를 내며 대자로 뻗은 담현.
진원진기를 소모했기에 기절하듯 잠든 것이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 * *
청안광마가 임시로 쓸 만한 몸을 얻고, 담현이 좋은 꿈을 꾸며 곯아떨어진 다음 날.
이강과 백하준의 비무가 약속된 날이었다.
굳이 사람들에게 소문을 낼 만한 일은 아니어서 모일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판정관으로 직접 나서줄 화산신검 화무천.
이강의 지인들과 꼭 구경하고 싶다고 부탁한 당은설 정도.
하지만, 비무대 앞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표정 변화가 적은 백하준은 드물게도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당은설은 처진 눈을 크게 뜨면서 기대감을 드러냈고, 이강만이 침착한 표정이었다.
“왜입니까.”
이강의 앞에는 남궁신이 서 있었다.
그는 비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곤 제안했다.
“백씨세가의 무공을 견식해 보고 싶습니다.”
비무를 하자고.
“어차피 1위 아닙니까, 이미.”
남궁신은 이미 수석의 자리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가장 대단한 부상을 받을 것이다. 금태화리의 내단도 그의 차지가 될 것이고.
오히려 주변에서 걸어오는 비무를 거절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와서 되려 비무를 요청한 것이다.
“순위는 상관없습니다.”
“그렇군요.”
판정관으로 온 화무천은 난처한 듯 턱을 긁적였다.
“미안한데, 지금 이 형제의 비무가 먼저 계획되어 있는데 말이야.”
“저는 기다려도 상관없습니다.”
“그 말은…….”
“비무가 끝나고 나서. 이기는 자와 비무를 하지요.”
백하준이 분노가 섞인 날숨을 내쉬었다.
남궁신의 말은 기다렸다가 승자와 겨루겠다는 뜻. 예의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강호의 예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와서 곧바로 저런 요구를 하지는 않았으리라.
화무천이 웃는 얼굴로 제지했다.
“그거는 아무래도 조금 그렇지 않나. 차라리 날을 따로 잡든지.”
동시에 남궁여상을 살짝 노려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제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순서를 바꿔 주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한테 말할 것 있나. 백씨 형제들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겠지.”
화무천은 결정권을 이강과 하준에게 넘겼다.
남궁신은 고개를 돌린 뒤, 절도 있는 자세로 포권했다.
“비무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포권을 한 대상은, 3위를 차지한 백하준이 아니었다.
이강은 자신에게 비무를 요청하는 남궁신의 행동에 조금 놀랐다.
“가능하다면 백씨세가와 청림의 검, 모두 보고 싶군요.”
모두가 백하준과의 비무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궁신이 직접 이강을 지목하기 전까지는.
듣다 못 한 하준이 한 발자국 나섰다.
“나를 상대…….”
“좋습니다.”
그런 백하준을 제지한 것은 이강이었다.
이강은 백하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와는 다음에 겨뤄 보도록 하자.”
“……형.”
당황한 하준을 놔두고 이강은 비무대를 가리켰다.
“잠깐만 저기서 기다리시죠.”
“감사합니다.”
남궁신은 주저하지 않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강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당은설에게 다가갔다.
“남궁세가와 백씨세가의 검이 궁금하다고 했는데, 잘됐군요.”
“네, 아주 잘됐네요.”
“직접 비무하지 않아도, 독을 쓰면 어떻게 될지 계산해 볼 수 있습니까?”
당은설이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이야기를, 이강은 믿어 주었다.
“어느 정도는요?”
“한번 보고 어떨지 알려 주십쇼.”
“제가 중독시킬 수 있는지를요?”
“예.”
“좋아요. 그런데 남궁신 소협을 이길 수는 있을 것 같나요?”
이강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비무하면서 계산해 보겠습니다.”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비무와 생사결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강은 비무에서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당은설이 그러하듯.
그는 웃으며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당은설은 머리 장식을 톡톡 치며 중얼거렸다.
“이기는 쪽 편에 들어갈까. 오행총에 들어갈 때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서른 명의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한 것이 남궁신이었다.
철혈기재보다, 소림일권보다.
그리고 아마도 백이강보다 더.
몇 년 전부터 이미 검명을 울렸다는 남궁신 아닌가.
하지만 어째선지, 이강이 쉬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준비.”
화무천이 판정관으로서 비무를 주관했다.
남궁신은 방심하지 않은 듯, 제왕검형의 기수식을 취했다.
저 검법 아래에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이강은.
스르르르릉-
아주 천천히, 묵색의 검을 뽑았다.
“시작!”
비무가 개시된 즉시.
이강과 남궁신의 신형이 흐릿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