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귀곡선생
오행총의 장보도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
흑시(黑市)에서 판매된 낡은 서책 한 권.
그 서책은 개봉의 시궁창에서 연명하던 작은 흑도방파의 손에 들어갔고, 때마침 무림맹에 의해 징벌당했다.
그 방파에서 입수된 낡은 서책은 무림맹의 서기에게 들어갔는데, 우연히 살펴본 그 서책에 숨겨져 있던 장보도가 발견되었다.
천기서생을 비롯한 무림맹 감찰대는 그것이 잘 설계된 함정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면밀한 조사와 현장답사를 해 본 결과, 장보도는 사실이었다.
일 년의 조사 끝에 거대한 고목의 뿌리가 뒤덮고 있는 동굴을 찾아낸 남궁유백.
굳게 닫혀 있던 비동의 문을 열자 용이 우짖는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 땅이 떨리는 그 소리는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비동의 문을 닫아도 마찬가지였으니, 하루빨리 오행총의 위치가 드러나기 전에 탐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남궁유백을 비롯한 무림맹 인원들은 오행총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미 무림맹 소속 유력 문파들이 장보도와 오행총의 존재를 알아챈 뒤였다. 독점은 용서치 않겠다는 의사가 전달되었다.
더군다나 장보도에 적힌 규칙에 따르면, 오행총은 탐사자들이 한번 입장한 뒤에는 스스로 무너진다고 적혀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장보도와 서책의 원본은 천기서생도 아닌 남궁유백이 지니고 있었다.
처음 장보도를 발견한 서기는 금자 일백 냥을 부상으로 받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이 바로, 오행총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남궁유백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후기지수들을 내려다보았다.
수백 년 동안 오행총의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였다.
“입구인 이곳을 기준으로 총의 가로 폭은 25리, 세로 폭은 30리 정도로 추정한다.”
남궁유백의 말에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안 성의 성벽 가로 폭이 10리 정도 된다.
그런데 이곳 대별산의 지하에 그 정도로 드넓은 공간이 있었던 것인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그 정도의 공사를 비밀리에 수행했는지 알 수 없었다.
“통로는 그리 넓지 않을 것이며, 미로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건량과 물을 아껴 먹어라.”
하루 만에 탐사할 만한 면적이 아니다.
후기지수들은 미리 육포를 비롯한 건량과 노숙의 준비를 마쳤다.
“배부한 장보도의 필사본을 보면 알겠지만. 알려진 정보는 한정적이다. 내부에서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무림맹 감찰대는 서른의 후기지수들에게 장보도의 필사본을 나눠 주었다.
기대에 차서 그것을 받아 든 후기지수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자세하게 묘사된 것은 입구와 초반부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내부는 뭉뚱그려서 묘사했을 뿐이었다.
다만 기괴한 동물이나 벌레, 날카로운 화살과 기관의 삽화 같은 것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 장보도의 정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부처를 그린 탱화(幁畵)처럼. 오행의 만다라(曼茶羅) 위에 앉아 있는 오행신존.
그것은 후기지수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궈 놓았다.
“직선 통로를 지나가면 다섯 개의 문이 있을 것이다. 상위 5인이 이끄는 후기지수들이 각각 문을 선택해서 들어가면 된다.”
그것이 탐사대를 다섯으로 나눈 이유였다.
“장차 백도 무림의 미래를 이끌 후기지수로서. 정의를 잊지 말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
남궁유백은 준엄하게 말하고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후기지수들은 그 의미심장한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장보도가 세상에 나타나면 늘 피바람이 불었다.
최근에 있었던 신기총 사태의 경우, 죽은 100여 명 중 기관진식에 당한 자는 1할 남짓이었다.
나머지 9할은 서로 상잔한 것이다. 그중에서는 정파 무인이 같은 정파 무인을 죽인 경우도 많았다.
“수석, 백이강 나오시오.”
감찰대원이 이강을 호명했다.
“정명, 남궁신, 백하준, 유수린 순으로 서시오.”
이강에 이어서 상위 5인에 든 자들이 걸어 나왔다.
이강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맹주를 포함해 초절정 고수만 네 명이 있었다.
감찰대는 물론 맹을 지키는 정천수호대까지 함께 파견되었다. 무림맹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백의사십팔수와 평무사들은 외곽을 지키고 있으리라.
철통같은 방비였다.
“5인 외의 후기지수들은 각기 탐사조를 고르시오. 탐사조를 이끌 5인은 거절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소. 순번은 수석인 백이강의 조부터 입장할 것이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후기지수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은 가만히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팽무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이야기해 둔 대로 백하준의 조로 갔다.
이강의 옆에 당은설, 소운, 모용진이 다가왔다.
“드디어 시작이네요.”
소운이 소곤거리며 말했다.
모용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묵했고, 당은설은 느릿하게 말했다.
“다들 첫 번째로 가려고 우리 쪽으로 오면 어떡하죠?”
“글쎄요.”
첫 번째로 오행총에 입장하는 것은 이강의 조였다. 이강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이 잔뜩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놀랍게도, 이강 일행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당은설이 조용히 물었다.
“……나 때문이에요?”
“예?”
“당가 사람이 무서워서 그런 걸지도.”
“밀실에서 독만큼 무서운 건 없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오행총의 규모가 작다면 첫 번째가 좋겠지만, 총의 내부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먼저 들어가서 실험용 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겠죠.”
“소협은 재미있는 표현을 쓰네요. 실험용 쥐라…… 확실히.”
이강의 비유를 알아들을 사람은 강호인 중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독을 연구하는 당은설은 비유를 확실히 알아들었다.
첫 번째로 들어가는 탐사조가, 분명 가장 위험할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사람이 몰리네요.”
상황은 이강이 예상한 그대로 흘러갔다.
두 번째 순번인 남궁신의 곁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남궁신은 거절하지도 환영하지도 않는 무관심한 태도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쪽에는 금세 일곱 명이 모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세 번째 조였다.
“소림의 이름이 헛되지는 않네요.”
소운의 감상대로였다.
소림일권 정명이 서 있는 곳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무려 열두 명이나.
“소림의 고수라면 악한 마음을 먹지 않을 것 같고. 친분이 없던 사이라도 일단 머릿수가 많은 것이 좋을 것 같은 거지.”
설마 오행신공의 비급을 발견한다고 해도, 정명이 다른 후기지수들의 골통을 깨부수고 독차지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틀리지는 않은 발상이었다.
“그러면, 만약 안에서 분쟁이 일어난다면 소림일권의 조가 가장 유리할까요?”
소운의 말에, 이강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글쎄다.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탐사조의 결성이 끝나자 이강은 한 발자국 걸어 나갔다.
스물여섯 후기지수들의 시선이 이강에게 몰렸다.
이강은 소림일권 정명의 옆을 지나갔다.
그의 주변에 서 있는 열한 명의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얘네들이 제일 불안해 보여.」
‘나도 그래.’
몇몇을 제외하고는 실력에 자신이 없는 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두렵기 때문에 소림 아래에 모인 것이리라.
물론 소림일권 정명의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시주.”
그는 지나치는 이강을 붙잡곤 합장을 하며 인사했다.
“예.”
“고된 길을 먼저 가는 데 관음보살의 보살핌이 함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은 그를 지나치며 한마디 남겼다.
“소림일권께서도 조심하십쇼.”
정명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이강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오행총의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통로의 초반에는 횃불이 곳곳에 밝혀져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 사람들이 답사한 곳은 극초반에 불과하다.
모용진이 조용히 화섭자를 꺼냈다.
횃불에 불을 붙이자 통로가 더욱 밝아졌다.
“공기가 음산하네요.”
당은설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공기는 조금 차가웠고 또 축축했다. 지하이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희미하게 부취가 나요.”
소운의 중얼거림에 일행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이 몰리자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부취?”
“그…… 썩은 냄새요.”
부취(腐臭).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냄새를 맡지 못했다.
통로를 일각쯤 걸었을까.
그들을 처음으로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비석 하나였다. 장보도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처음 진입했던 무림맹 인원은 이곳에서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부터가 진짜군.”
이강과 일행은 비석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이곳은 오행신존(五行神尊)의 영묘이다.
-신존은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후학에게 남기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뜻을 받들어 오행총을 만들었노라.
오행신존의 영묘가 맞았다.
게다가 무려 그의 깨달음을 이곳에 남겨 두었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다만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또 제작자가 오행신존 본인이 아니라는 것이 걸렸지만.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면 기회를 얻지 못하리라.
-입총(入塚)한 자들은 합당한 시험을 거치고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두려운 자는 이 앞에서 돌아가라.
돌아갈 자는 없겠지만.
-마음이 맑고 몸이 건강한 자. 또한 정순한 내공을 가진 젊은이만이 오행신존의 심득을 얻으리.
-오직 서른 명만이 입총할 수 있다.
-그 수가 초과하면 오행총은 즉시 폐쇄될 것이며, 한번 오행총이 객(客)을 받아 운행된다면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자 돌아가라.
과하게 친절하고 복잡한 설명.
여기까지 읽은 이강 일행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수상하네.”
“수상하네요…….”
신비롭기 그지없는 고대의 영묘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던 것이다.
이 오행총을 만든 사람은 분명 괴팍한 자임이 분명했다.
무림맹의 사람들도 꺼림칙함을 느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이 오행신존의 영묘임은 확실해 보였으니.
-생귀(生鬼), 백
저 생귀라는 자가 누군지가 중요했다.
어쨌든, 저 비석을 기점으로 진짜 시작일 것이다.
이강은 가장 먼저 발을 내디뎠다.
끼기기긱-
벽면에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일행이 잠시 멈췄지만,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가지.”
“네……!”
더 깊숙한 곳으로, 이강 일행이 나아갔다.
* * *
모든 사람이 오행총으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
용봉지회와 칠성지회 참가자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여전히 맹 내에 있었다.
담현을 포함한 청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담현은 멍하니 의자에 기대 있었다.
그는 지금쯤 오행총으로 들어갔을 이강과 서호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 나도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신비롭고 괴이한 것들. 담현의 관심사는 대부분 그쪽에 몰려 있었다.
전대 고수가 남긴 진전은 담현의 호기심을 많이 자극했다.
하지만 탐사대에 참가할 자격이 없었기에 이렇게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담현의 지루함을 깨트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사숙! 담현 사숙!”
거구 하나가 우당탕거리면서 담현의 거처로 들이닥쳤다. 준명이었다.
“뭐야, 이 자식아!”
“림에서 서찰이 왔어요!”
준명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던 담현은 얼른 그의 손에 들린 서찰을 빼앗았다.
대서고주 유정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상자에서 본 독특한 문양에 대해 사부에게 서찰을 보냈던 것이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는데 이럴수록 몸조심해야 한단다.
혹시나 네가 사고를 치고 다니지는 않을지, 사부는 걱정이 되는구나.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보냈던 자신과 달리, 유정신의 서찰에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 가득했다.
담현은 빠르게 시선을 내렸다.
-이강이의 몸은 괜찮으냐?
그 아이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네가 사형으로서 사제를 돌봐 주어야지. 잘할 것이라 믿는다.
거기서는 잠시 멈칫했다.
이강은 청안석을 찾아서, 서호를 데리고 곤륜산으로 떠나야 한다.
금태화리의 내단이나 오행총보다 중요한 것이 그거였다.
담현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쳤다.
그가 가졌던 궁금증은 유정신이 무사히 풀어주었다.
-그 문양 말이다. 헷갈렸는데, 이번에 서책들을 뒤져 보고 알아냈다.
귀곡선생(鬼谷先生)의 문양이더구나.
그가 직접 만든 물건 중 몇 개에 그런 문양이 찍혀 있었어.
말을 들어 보니 그 상자는 보통 물건이 아닌 듯한데, 대단하구나.
담현은 서찰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귀곡선생, 그래. 그자였어……!”
만박자처럼 무공 외의 것으로 유명한 강호인은 시대마다 여러 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사도(邪道)로서 가장 명성을 떨쳤던 사람을 꼽자면 귀곡선생밖에 없다.
만박자쯤이야 귀곡선생의 위용에 비해서는 붕새 앞의 참새나 다름없었다.
“분명 오행신존과 살았던 시대가 겹쳤지. 생각을 전혀 못 했는데…….”
귀곡선생은 오행신존의 시대에 활동했던 기인이었다. 아마 오행신존이 자취를 감추고 그 또한 몇 년 뒤 사라졌던가.
‘설마 오행총을 그자가 설계했나…….’
충분히 할 만한 추론이었다.
담현은 곧, 귀곡선생이 일평생 추구하던 숙원을 떠올렸다.
“영생…….”
영생(永生). 그는 마치 고대의 진시황처럼 영원히 사는 것을 꿈꾸는 미친 사람이었다.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 미친놈이다.
담현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고개를 저었다.
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말았다.
“……설마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