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남궁서련, 남궁유백 (1)
드드드드-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지진은 산봉우리가 무너진 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오행총이 무너졌을 때만큼 거창한 떨림은 아니었지만, 그 지진이 일으킨 파장은 적지 않았다.
폐허나 다름없는 계곡 곳곳에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그곳이 새로 생긴 오행총의 출구, 혹은 입구라고 추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비록 그런 구멍이 수십 개인 데다가 어떤 것들은 붕괴의 위험성이 있어서 쉽사리 진입하지도 못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자 경계 수준은 높아졌고, 귀찮게 굴던 무림방파들도 새로 생긴 구멍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당장 무림맹 탈퇴를 선언할 기세로 분노하던 백씨세가와 모용세가가 먼저 움직였고, 다른 가문 역시 뒤를 따랐다.
덕분에 남궁유백은 자유로워졌다.
그는 무인들이 악을 질러대는 곳이 아니라 봉우리 반대쪽 어귀로 향했다.
그를 따른 것은 소수의 멸사추적대원뿐이었다.
눈을 감고 검을 든 남궁유백.
그의 검에서 검뢰가 번쩍이고 있었다.
검뢰가 사라짐과 동시에 남궁유백이 눈을 떴다.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지키거라.”
“예.”
남궁신은 분명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무인들이 모여 있는 폐허가 아니라 이쪽이었다.
멸사추적대원들이 흩어지자, 남궁유백은 황자매(黃刺梅)가 흐드러진 꽃밭으로 들어섰다.
기구한 우연이었다. 남궁신은 만박자를 죽였던 그 꽃밭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잘됐군.’
황자매는 풀꽃이 아니라 꽃나무다.
원래라면 사람 키까지 자랐겠지만, 군락을 이뤄서 그런지 키가 허리께까지밖에 안 온다.
지력을 흡수하고 꽃을 더 많이 피우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기 때문이리라.
무성한 꽃밭은 시체조차 가린다.
만박자의 시신은 멸사대원들이 이곳 어딘가에 묻어 두었을 것이다. 그 근처에 몇 구의 시신이 더 늘어난다고 한들, 황자매 군락이 게걸스럽게 흡수할 것이다.
지금은 새벽, 안개가 무성하다.
남궁유백은 만박자의 유품을 꺼냈다.
두 뼘 길이의 깃발 다섯 개. 삼귀청동정 같은 대단한 물건은 아니더라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보패였다.
꽃밭의 경계선을 둘러서 깃발 다섯 개를 꽂아 놓자 주변으로 안개가 모이기 시작했다.
안개는 시야를 가릴 것이고, 꽃밭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막아 줄 것이다.
출입하는 것까지 막진 못하지만 장소 정도는 숨길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기문진이었다.
준비는 다 마쳤다.
남궁유백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눈을 감고 기감을 확장한다.
초절정고수, 그것도 수십 년 전에 초절정의 벽을 깬 남궁유백의 감각이 주변 환경을 인지했다.
선선한 새벽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꽃잎들.
꽃대, 흙, 뿌리. 그리고 지하.
툭-툭- 투둑-
규칙적인 진동은 아마도 발소리.
세 명이다.
남궁신 이외에도 둘이 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궁유백이 해야 할 일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둘을 더 묻을 각오를 하는 것뿐이었다.
남궁유백이 눈을 떴다.
들려오던 발소리는 몹시 조용해졌다. 아마도 조심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에게 나오라고 명하려는 순간.
초절정고수의 감각이 남궁유백의 몸을 움직였다.
휘익!
분명 조금 전까지 가만히 서 있었던 자세였는데, 어느 순간 검을 잡은 채 몸을 돌리고 있었다.
검을 마저 뽑지 않은 것 역시 예민한 감각 덕이었다. 기척을 낸 것이 자그마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황자매의 꽃잎이 파스락거리면서 흔들렸다.
쥐인지 여우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은 남궁유백의 기세에 놀라 도망치는 듯했다.
“부맹주님.”
남궁유백은 고개를 다시 돌렸다.
어느새 나타난 이강이 공손한 자세로 포권하고 있었다.
“살아남았구나.”
“하늘의 도우심이지요.”
이강의 뒤로 모용진, 남궁신도 포권했다.
“염려해 주신 덕택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음, 그래,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나. 당장이라도 연회를 열어서 그대들의 귀환을 축하해야겠지.”
하지만 그 말과 달리, 남궁유백의 목소리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이강 역시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쉬는 것보다 얼른 제 생존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식 된 도리로서.”
“철혈무정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느냐?”
“예.”
추측이었을 테지만, 이강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궁유백은 웃음을 지었다.
이 후기지수는 남궁유백의 적의를 알아채곤, 내 가족이 여기 와 있으니 보내 달라고 협박하는 중이었다.
“마중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모용진과 이강은 좌우로 갈라졌다. 그대로 남궁유백을 지나쳐가겠다는 듯했다.
“멈추어라.”
물론 남궁유백은 그들을 보내 주지 않았다.
남궁유백의 손이 검으로 향한 걸 보고,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둘 중 한 명은 베일 것이다.
그 직후, 나머지 한 명도 베일 것이고.
“한 달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듣고 싶구나. 너희들의 실종은 큰일이었다.”
“저희 셋의 일이 그리 대수일까요.”
“무슨 말이냐. 무림맹의 영명한 후기지수들이 꼼짝없이 죽었다고 모두가 슬피 울었다.”
남궁유백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
이강은 웃으며 답했다.
“급히 듣고 싶으시다면야……. 오행신공을 구하려다가 지하 호수로 떨어졌습니다. 거기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연명하다가 출구를 찾아 나왔지요.”
“오행신공을 정말 찾았나 보군.”
남궁유백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남궁신이 오행신공을 찾고 그곳에서 죽기를 바랐다. 후기지수들과 함께 오행신공도 묻혀 사라지도록.
그래서 후에 남궁세가만이 오행신공을 독점하기 위해서.
그것을 알았기에, 이강은 남궁유백이 탐욕스럽게만 보였다.
“저는 읽지 못했습니다. 오행신공의 죽편이 호수에 빠져 버렸거든요. 하지만 남궁신 소협은 알 겁니다.”
“호오.”
남궁유백은 제 조카손자를 보았다.
항상 침착했던 남궁신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있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처럼.
“이리 와 보거라.”
“……예.”
거역할 수 없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비틀비틀 걸어 다가가는 남궁신.
남궁유백의 손이 슬쩍 검에 닿았다.
서걱-
베인 것은 멀찍이 떨어진 이강의 행낭이었다.
이강은 주르륵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검을 뽑은 팔이, 순간 늘어난 것처럼 가속해서 행낭을 베었다.
와르르 쏟아진 잡동사니들은 별것 없었다.
남궁유백은 그것을 슬쩍 보더니 남궁신에게 물었다.
“오행신공을 읽었느냐?”
“……예.”
“너만?”
“그렇……습니다.”
“외웠고?”
이 대답이 중요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남궁신은 각오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인사를 해야겠군.”
백도 무인과 흑도 무인에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흑도가 아닌 이상, 살인을 앞뒀을 때 백도 무인은 살기(殺氣)를 흘리게 된다.
“작별인사를 말이야.”
남궁유백이 결정을 내린 그 순간.
남궁신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었다.
부모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태상가주. 그 잔혹한 초절정고수에게 기습을 가한 것이다.
또 한 번 창뢰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수명이 또 깎일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푸르게 빛나는 남궁신의 검이 남궁유백의 가슴을 찔러 갔다.
손속은 두지 않았다. 심장을 꿰뚫을 각오로 쾌속하게 검을 내질렀다.
카각-
하지만 남궁유백은 검뢰조차 뿜지 않고 그 검을 막았다. 그러곤 곧바로 응징했다.
남궁신의 목이 잘리지 않은 것은 동정심 같은 게 아닌, 오로지 오행신공을 전해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커헉!”
복부를 얻어맞은 남궁신은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남궁유백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강을 돌아봤다.
“무슨 짓이냐.”
이 일을 꾸민 것이 이강임을 알아챈 듯했다.
이강은 진작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러곤, 황당하게도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무언가 계책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남궁유백은 검을 주저했다. 그 덕택에 이강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 뒤편, 모용진이 준비해 두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검이 아니었다. 검으로 기습해 봤자 초절정고수에게는 통하지 않을 테니.
행낭에서 꺼낸 것은 기다란 원통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당길 수 있는 손잡이가 달린 물건.
바로 귀곡선생의 목함에 담겨 있던 것이었다.
이강이 설명하길, 염무신통(炎霧辛筒)이라 하는 귀곡선생 비장의 암기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의 것이니, 능히 초절정고수를 위협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남궁유백이 벤 것이 모용진의 행낭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모용진은 주저하지 않고 염무신통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퍼엉-!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십 알의 검은 철환이 발사되었다.
마침 이강을 향해 있던 남궁유백의 등 뒤로 그것들이 쏟아졌다.
그는 귀신같이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타다다다당-
고수가 보는 시간은 느리기라도 한 것일까.
날아가는 검은 구슬을 일제히 베고 튕겨 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난다면 귀곡선생의 비장의 무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반쪽 난 구슬들은 그 이름에 뜨거운 독무를 뿜었다.
새파란 연기가 남궁유백의 신형을 감쌌다.
“큿!”
독무에 담긴 것은 오행신공을 지키던 시독(屍毒)과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극독이었다.
그 경로에 있던 이강 역시 연기에 휩쓸렸다.
다만.
‘됐다……!’
입에 문 피독주는 또 한 번 이강을 구해 주었다.
피부가 시뻘겋게 일어나고 벗겨질 듯 뜨거웠지만, 이강은 무사했다.
다만,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으로도 남궁유백의 기척을 잡아 내지 못했다.
그래도 허리에 차고 있는 보패에는 원래부터 눈이 없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휘익-”
피독주를 물고 있는 탓에 조금 갈라진 휘파람이 새어 나왔고.
허리를 감싸고 있던 검은 허리띠가 살아 움직였다.
이강의 가슴을 타고 온 허리띠가 치켜든 오른팔을 휘감더니.
소매 속에서 검은 뱀처럼 뛰쳐나간다.
지금껏 꽁꽁 숨겨 두었던 흑사대(黑蛇帶)가 푸른 연기를 꿰뚫고 날아갔다.
‘가라!’
「좋아!」
완벽한 연계였다.
정말 초절정고수를 위협할 만큼 과감하고, 비겁하며, 또 살인적이었다.
하지만 이강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쩌저저정-
천둥소리와 함께 돌개바람이 불었다.
푸른색 독무는 상승기류를 따라 높게 치솟았다.
그리고 검을 들고 있는 남궁유백이 나타났다.
그가 만들어 낸 검풍에 독무가 흩어진 것이다.
얼굴이 시퍼렇게 물든 것을 보니 중독된 것 같긴 했지만, 손에는 분명 흑사대가 잡혀 있었다.
“청림과 백씨세가가 이상한 놈을 키워 냈군.”
“…….”
흑사대의 모가지를 잡은 남궁유백이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득-
스승이 선물한 보패가 박살 났다.
이강은 이를 악물었다.
* * *
아직 희망은 있다.
이강은 초절정의 계단에 발을 내디딘 제 숙부와도 겨뤄 본 적 있었다.
내공을 잃고 기력이 쇠했다지만, 분명 제 손으로 숙부인 백진태를 쓰러뜨렸다.
그렇다면, 이강은 남궁유백을 앞두고 자신감을 가졌을까?
재능 있는 후기지수 셋이 모였으며, 귀곡선생의 염무신통이라는 암기와 흑사대까지 가지고 있으니.
계획을 잘 세워 기습한다면 남궁유백을 쓰러뜨리고 도망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었다.
이강은 자기객관화를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때문에, 패배를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천뢰령을 쓰지 못한다는 값을 치르고 청안광마를 보냈다.
이강의 진원진기 조금을 양도받은 청안광마는 꽃밭의 나무줄기 틈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담현을 만나는 것.
담현이나 청림의 사질들에게 이강의 위기를 알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준명과 진리연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어, 어…… 어어!”
「야! 너!」
준명은 기겁했다.
그는 예전 영천골에서 여우 한 마리가 자신을 기절시켰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그, 그 여우인가!”
「이강이 위험해! 네 사숙을 데려와, 담현을!」
물론 준명의 눈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여우 인형이 캥캥대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다만, 그 옆에 있던 진리연은 준명보다 상황판단이 나았다.
“담현 사형을 불러와!”
“예, 사고!
준명은 허겁지겁 달려가서 담현을 불러왔다.
담현은 이강과 함께 떠났던 청안광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놀란 얼굴이었다.
청안광마는 답답한 듯 땅을 톡톡 두드렸다.
「에이 씨, 뭐라고 말해야 하지.」
따라오라는 것 말고도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강 말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강은 무엇을 믿고 청안광마를 보낸 걸까.
「야! 일단 따라와 봐!」
“따라오라는 뜻이지?”
「뭐……?」
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을 길게 뻗어서 제 귀에 쑥 박아 넣는다.
그러자, 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렸다.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노력했거든.”
「…….」
“뭐? 이강의 그 물건도 가져오라고?”
어떤 위험한 짓을 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내적으로 얼굴을 찡그린 청안광마에게, 담현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칭찬할 건 없어.”
「미친놈.」
담현은 청안광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해 보였으리라. 준명과 진리연이 감탄했으니.
「뭐, 상관없겠지.」
어쨌든, 이강이 시킨 일은 다 했다.
청안광마는 담현의 어깨에 휙 올라탔다.
“얘들아 가자!”
담현이 믿음직스럽게 외쳤다.
그의 코와 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