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곤륜산의 천뢰백미호 (3)
……에 한 짐승이 있는데, 그 생김새가 여우와 같고 꼬리가 아홉이다.
『산해경(山海經)』
* * *
여우와 동물에 대한 설화는 어디서든 가볍지 않게 다뤄진다.
인간이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도교 공부를 하는 자는 그래선 안 된다.
청림에서는 깊은 도교 지식을 가르친다.
때문에, 곤륜산에 옥으로 만든 궁궐을 짓고 산다는 서왕모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다.
선천존신이자 모든 여선(女仙)들의 우두머리인 그녀의 수하라고 전해지는 게 바로 구미호다.
여우요괴가 남자를 홀린다는 전승은 평범한 요호(妖狐)를 착각한 것이리라.
이곳 곤륜산에 서왕모는 없었지만 구미호는 존재했다.
다만 그 정체가 천뢰백미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는 자가 적었으리라.
담현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도선 사백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도선 사백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토론을 했지, 곤륜의 천뢰백미호와 서왕모 간의 관계에 대해서.”
“사실 저희가 술법을 쓰는 도인이라고 해도. 서왕모니 신선이니 하는 것은 좀 먼 이야기 아닙니까.”
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법을 쓰며 등선(登仙)을 논하는 도가 무인이 하기에는 우스운 말이지만 실제가 그랬다.
등선을 했다는 사람은 보았어도 신선이 땅에 내려온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적어도 담현이 알기로는 그랬다.
신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지금 당장 대요괴들과 함께 걷는데 무슨 상관이냐.”
“그건 또 그렇지요.”
신선은 있을 것이다. 천계든 어디든 분명.
불사신검과 소화의 영혼이 간 곳이 그쪽이기를 이강은 바라고 있었다.
“이곳이다. 너만 들어가라.”
서미가 멈춘 곳은 거대한 동굴 앞이었다.
동굴의 입구만 해도 족히 건물 하나만큼 거대했다.
천뢰백미호의 수장이자 어머니인 구미는 이곳 안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미는 이강에게 한마디 했다.
“……어머니께서는 늙으셨다. 마음을 놓지 말도록.”
마음을 놓지 말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한마디였다.
차라리 공손히 행동하라고 하거나 허튼짓하지 말라고 했다면 이해할 법했다.
이강은 품속의 청안광마를 느끼며 조심스레 발을 뗐다.
귓가에 담현의 전음이 들렸다.
-구미호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승은 아주 많아. 조심해라.
이강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천뢰백미호가 사람의 몸으로 둔갑하곤 했지만, 이곳 동굴에서는 사람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길이 닦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석순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고, 흰 털 뭉치가 조금 흩어져 있을 뿐.
횃불도 없었으니 걸어 들어갈수록 어두워졌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입구로부터 들어오던 빛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는 칠흑같이 변했다.
스으으으-
조금 축축한 바람 소리만이 울렸다.
이강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발을 멈추지도 않았다.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동원해서 어둠 속을 나아갔다.
그의 속도가 느려진 것은 얼마 뒤였다.
스으으…….
느리던 걸음이 완전히 멈췄다.
어둠 속에서도 이강은 대충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리고, 동굴 안쪽에서 불어오는 이 축축한 공기가 무언가의 ‘호흡’이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생물의 호흡이 이렇게도 거대할 수 있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았을 뿐.
「있다.」
가냘픈 그 목소리는 청안광마였다.
이강의 품속에서 잠들어 있던 그녀를, 앞에 있는 무언가가 일깨운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푸른 눈동자 하나가 떠올랐다.
족히 문 한쪽만큼 거대한 그 눈알은 ‘떠올랐다’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뿐이겠지만, 푸른 전류가 번쩍이는 눈동자는 꼭 허공에 떠 있는 듯했으니.
그것이 이강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너는.”
으르렁대는 듯, 사람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듯해서 귀가 먹먹했다.
눈을 감은 듯 다시 어두워지더니, 불꽃이 주변에서 솟아올랐다.
갑작스러운 빛에 이강은 눈을 가렸다.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거대한 여우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집채만큼 거대하다고 하나 조금 전보다는 훨씬 작아진 모습이었다.
“몸을 줄였느니라.”
늙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구미호라고 하면 젊고 요사스러운 여자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는 다른 듯했다.
애초에 꼬리 개수부터 달랐다. 아홉 개가 아니라 네 개의 흰 꼬리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강의 시선을 눈치챘다.
“구미(九尾)라 하더니 왜 꼬리가 네 개뿐인지 궁금한 게냐.”
“……조금 그렇습니다.”
“꼬리는 내 목숨이다.”
아홉 개의 목숨.
“세 개는 저 아이들에게 주었고, 한 아이는 세상을 떠돌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그 옛날 내 정인에게 주었다.”
“정인이라면…….”
“남궁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지.”
그 옛날, 남궁의 무인이 천뢰백미호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구미호야말로 진정한 대요괴로 보였으니.
구미는 지친 표정으로 턱을 바위에 기댔다.
털은 윤기가 없이 잿빛이었다.
“불쌍한 것.”
“……남궁서련을 알아보십니까?”
“알아본다. 그 아이가 기어코 내 남은 꼬리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어.”
이강의 품속에서 청안석 하나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구미는 그것을 꿀꺽 삼켰다.
여우 인형의 등이 열리고, 또 하나의 청안석이 빠져나왔다. 청안광마가 깃든 청안석이었다.
둥둥 떠 있는 청안석을 구미는 지그시 바라봤다.
“오래 걸렸구나.”
「오라고 하시어서…….」
이강은 청안광마의 목소리에 깃든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비소로 도달했다는 기쁨과,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네게 남은 시간이 적다. 잠들거라.”
그리 말하자 청안석의 빛이 희미해졌다.
이강은 불안했지만, 구미가 청안광마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여우가 되고 싶어 했지, 너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요괴의 몸을 얻는 것 아닙니까.”
“그래. 저 서미나 흑무, 적요처럼 내 자식이 되는 것이다.”
“가능합니까?”
다른 여우들은 불가능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 앞의 여우는 그들과 격이 다른 존재가 분명했다.
동물이라기보다는 오래된 나무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그만큼,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능하다.”
“그러면…….”
“이 아이가 내 꼬리 하나를 가지고 왔으니, 그 꼬리를 빚어서 숨을 불어넣으면 되겠지.”
이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증표를 가지고 온 자에게는 보답을 해 주기로 했는데…… 어떤 것을 원하느냐. 그 병든 몸을 고쳐 주랴?”
“……!”
그 말에는 안도하면서도 놀랐다.
술법의 불이 빛을 밝히고 있다곤 해도, 자신이 절맥증인 것을 바로 알아보다니.
구미는 코를 벌름거렸다.
“재와 먼지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대로라면 1년 안에 죽을 짧은 수명이야.”
“…….”
“맥 하나를 강제로 뚫어 놨어. 그 몸에 품고 있는 누군가의 영력 덕인가.”
“제 조상님의 보살핌입니다.”
“조상 덕을 보았군, 대맥을 이어서 또 몇 년을 벌고 싶으냐?”
“물론이지요.”
“좋다. 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복된 것이니.”
청안광마는 이강의 몸을 고쳐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내, 이 아이의 몸을 만들어 주고 네 대맥을 뚫어 주겠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렸다는 생각에 이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도는 조금 일렀다.
구미가 질문했다.
“다만, 미리 확실히 하고 가야 할 것이 있구나. 네가 원하는 것은, 이 아이를 우리 천뢰백미호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지.”
“……예. 그녀가 원하는 대로요.”
“정확히 말하거라. 나는 모호함과 추상적인 것을 싫어하니.”
“정확히 말입니까?”
이강은 조용히 침묵했다.
구미호는 일개 요괴가 아닌 신선에 가까운 존재였다. 혼령을 요괴로 탄생시키고 이강의 대맥을 뚫어 줄 정도라면 신선도 틀린 표현은 아니리라.
그리고 옛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이강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에게 소원을 빌 때, 모호한 표현은 삼가야 한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남궁서련 본인이, 영혼과 기억을 모두 가지고 천뢰백미호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 그런 조건이라면 나도 쉽지 않으리라.”
이강이 정답을 말한 것일까.
“이미 네가 이 아이가 지닌 요력을 절반 이상이나 가지고 있지 않느냐.”
청안광마는 자신이 가진 요력을 전부 넘겼다.
그때, 이강의 몸은 분명 변했다. 청안광마의 도움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었던 천뢰령을 쓸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그랬다.
이강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가져가셔도 됩니다.”
“이미 땅에 스며든 빗물을 어찌 구름으로 되돌리겠느냐.”
“그러면 남궁서련은 온전히 요괴가 될 수 없다는 겁니까?”
“내 힘으로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서왕모 님과 같은 능력이 없으니. 하지만 시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러면 그리 해 주십시오.”
가능성이 작다고 어찌 시도를 안 하겠는가.
이강은 구미호에게 그리 부탁했다.
“좋다. 다만 준비해야 할 것이 있으니, 기다리거라. 전해 주겠다.”
* * *
이강은 구미가 기거하는 동굴에서 나왔다.
일행은 천만다행이라는 얼굴로 그를 반겼다.
그사이, 파한은 큼지막한 바위 아래에 야영지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긴 한데, 거기서 머무르는 게 어떻겠소.”
“아니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야겠습니다. 파한 대협께서는 돌아가셔도 될 듯합니다.”
파한은 훌륭하게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는 그가 서천성으로 돌아가도 탓할 수 없었다.
“……나도 있겠소.”
하지만 파한은 의외로 그리 말했다.
호의인지, 구창왕의 명령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강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곤륜산을 헤집고 다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파한이 남는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구미와의 대화를 설명하고 있던 중, 적요가 찾아왔다.
이강이 조용히 하준을 제지했다.
“괜찮다.”
어느덧 하준은 검을 잡은 채 일어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검에서 손을 내렸다.
하지만 이강과 적요가 드잡이질하던 것을 똑똑히 보았기에 경계심은 놓지 않았다.
사실 적요를 견제할 필요는 없었다.
적요는 그저 당혹감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그는 어머니인 구미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어, 어머니께서, 인간…… 네게 최대로 협조하라고 하셨다.”
“그렇군, 잘 부탁한다.”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깔끔한 태도에 적요는 오히려 할 말을 잊었다. 이강은 질문까지 던졌다.
“남궁서련이 새로 천뢰백미호가 되면, 네 동생이 되는 건가?”
갑작스러운 이강의 질문에 적요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답은 확실했다.
“아마도.”
“동생한테 잘해 주면 좋겠군.”
“…….”
어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적요는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우선 산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구해야 한다.”
“네가 안내해 주면 돕지.”
“나는 산에 들어가지 못해.”
이강은 적요의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여우가 산을 못 탄다는 말을 할 리는 없을 텐데,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곤륜파의 도인들과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약속이라고?”
“우리 일족은 일백 년간 산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어.”
그런 조약을 왜 맺었다는 말인가.
곤륜파 도인들이 특이하다 듣기는 했지만, 천뢰백미호와 그런 약속까지 맺은 사이일 줄은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싶지만, 어머님이 하신 약속을 자식이 깨뜨릴 수는 없지.”
적요는 정말 분하다는 듯 말했다.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한과 그들이 함께라면 어지간한 것들은 구해 올 수 있으리라.
“그러면, 뭘 구해 오면 되는 거지?”
“저것.”
적요는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산을 가리켰다.
설마 산을 통째로 옮겨 오라는 것은 아닐 테고,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설마…….”
파한이 떨떠름해했다.
높은 산에 쌓인 눈, 그 아래의 검은 암석, 그 아래에는 무성한 숲.
먼 이곳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마치 붉은 꽃이 피어난 듯한 지점이 있다. 무언가가 잔뜩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곤륜산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곳이었다.
“혈접이라고 하지. 그 피를 빠는 나방들을 채집해 오면 된다.”
적요의 입에서는 파한이 바라지 않던 이야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