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태극검제 장경 (2)
무당제일검(武當第一劍)이 곧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진지하게 믿고 있다. 단순히 백도 무인만이 아니라 평범한 양민들이 오히려 더 그랬다.
역사상으로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고, 양민들에게 무당의 고수가 거의 신선 취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무당제일검, 태극검제(太極劍帝)는 어떠한가.
그는 어릴 적 장삼봉의 태극권을 수련하다 태극의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약관에 달했을 때, 이미 자신보다 배분이 높은 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얻어 냈다.
수염이 굵어지기도 전에 초절정고수가 되었으니, 무당에 신룡이 나왔다고 이야기가 자자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주목받는 신흥고수 정도였다.
마교대축출이 일어나고, 쏟아져 나오는 마인들과 대적하면서 도사 장경은 태극검제가 되었다.
금강권을 사용하며 사자후를 터뜨리고 다니던 소림승 무명과 유독 합이 잘 맞았다.
한 명은 도사, 한 명은 중이었으나, 뜻이 맞으니 상관없는 일이다.
난세가 강자를 탄생시키는 법이다. 둘은 사이좋게 절대지경에 들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괴팍한 성격의 신승 무명대사는 무림맹주가 되었고, 성품이 고아하고 정의로웠던 태극검제는 무당산에 은거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었지만, 검제가 받는 존경과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가장 강한 검수였으며, 또 무당의 최고 어른이었으니.
검제가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무당 입장에선 뼈아픈 일이었지만,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검제가 어느 날 홀린 듯한 얼굴로 자소전(紫霄殿)에 나타났다.
은거한 태사조의 등장에 장문인까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내…… 조사의 비동(秘洞)을 찾은 듯하오, 장문진인.”
무당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산세도 험하기 그지없으니, 이따금 선대 무인들이 은거하던 비동이 종종 발견되었다.
운이 좋다면 실전된 무공을 찾기도 했으니, 검제의 말은 기쁜 소식이었다.
장문인과 장로들도 ‘태사조께서 기연을 찾았으니, 감축드립니다.’ 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분명 기뻐할 일인데도 검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장문인이 조심스럽게 어떤 고인의 비동을 찾으셨냐 여쭈었다.
검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사 장삼봉 진인이 머무시던 곳 같았소이다.”
그 말의 충격은 대단했다.
장삼봉은 무당의 정신적 지주 같은 인물이었다.
용을 토벌하고 천마와 대적했던, 종래에는 등선했던 신비로운 대종사.
하지만 그 역시 악룡을 토벌한 전후에 문파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 은거하며 지냈다.
검제보다도 더 심산유곡에 은거했었는데, 설마 그러한 비동을 남겼을 줄이야. 게다가 그는 자신의 거처를 찾지 말라는 유고까지 남겼었다.
장삼봉이 창안한 절세신공 중 여럿이 실전된 상황에서 그 비동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장문인은 조심스럽게 그곳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태극검제는 고민하면서도 딱 잘라서 거절했다.
“때가 되면 사문에 그 위치를 알리겠소이다. 다만 지금은 어려울 듯하오.”
어찌하여 그런지 물어도 검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의 간절한 재촉이 있고 나서야 조금의 단서를 알려 줄 뿐이었다.
“조사의 무공이 심오막측하니 해석이 쉽지 않소. 내가 직접 탐구해 보고 결과를 알려 주겠습니다.”
장삼봉의 무공을 익혀 보겠다는 뜻이었다.
모두 기뻐하며 검제의 성취를 기원했다.
어쩌면 검제가 또 새로운 경지에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제2의 장삼봉이 무당에 탄생하리라.
장문인과 장로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약 1년 뒤, 나타난 검제는 성취를 얻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 변해 있었다. 다만, 아주 안 좋은 상태로 바뀌었다.
장삼봉의 무공이 마공도 아닐진대, 검제의 정신은 쇠약해졌다.
노망, 치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인지력이 약해지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세가 악화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격이 바뀌는 듯했으며, 종종 포악해져서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아직 어린 이대 제자들이 검제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지만, 어느 날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검제의 손에 얻어맞은 제자 한 명이 팔다리가 부러졌다. 죽지 않은 것이 용한 상황이었다.
뒤늦게 잠시 정신이 돌아온 검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모두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또 흘렀다.
그사이 무당은 봉문했다. 무당의 최고 고수인 검제가 노망이 난 것과, 전설적인 장삼봉 조사의 무공을 완전히 무당의 무공에 편입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검제의 병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도 점차 표정이 안 좋아졌다.
특히 검제의 뒤치다꺼리를 맡게 된 일대 제자 현철과 직접 수발을 드는 이대 제자 둘은 이미 지친 상황이었다.
1년은 짧다면 짧겠지만 길다면 긴 시간이다.
“내 보물을 훔쳐 가려고 왔지!”
존경하던 검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악을 지른다.
예전에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지만, 무뎌진 이제는 그저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
“훔치긴 뭘 훔칩니까. 진정하십쇼, 사조!”
예전이라면 현철도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숨겨 둔…… 으잇!”
검제는 말하다가 분통이 터졌는지, 초옥 옆에서 나뒹굴던 바가지를 집어 던졌다.
현철은 대경실색해서 머리를 숙였으나. 신비롭게도 물이 담긴 바가지는 그대로 현철의 정수리에 적중했다.
빠각!
바가지가 박살 나면서 현철은 물에 흠뻑 젖었다.
노망이 난 뒤로, 검제는 예전의 현기 있는 풍모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대충 집어던지는 바가지에도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묘리가 담겨 있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오늘은 난동이 격하다.
검제의 수발을 드는 청수는 요강을 얻어맞았으니, 물벼락을 맞은 현철의 입장이 나을 정도였다.
“이 사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괜히 강한 표정을 지어 봤지만, 현철은 내심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태사조님! 저 청혜입니다!”
청수와 함께 검제의 수발을 드는 이대 제자였다.
이제 십 대 중후반의, 이대 제자 중에서도 어린 편인 아이였다.
그 옛날 날뛰는 검제에게 얻어맞아 팔다리가 부러진 아이기도 했다.
“청혜냐? 아무리 너라도 내 걸 가져갈 수는 없어!”
그때의 기억은 남아 있는 건지.
어지간하면 검제는 청혜에게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청혜는 익숙한 동작으로 검제를 달랬다.
“에이, 태사조님. 제가 태사조님 보물을 왜 가져가겠어요.”
“그, 그래?”
“네! 자, 이걸 드셔 보세요.”
팔다리가 부러지는 곤욕을 겪은 청혜다. 그가 수발들기를 거부한다고 해도 경을 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검제의 곁에 계속 남아 있기를 원했기에, 사문 존장이 모두 청혜를 어여삐 여겼다.
“이건, 잣이구나.”
“잣 좋아하시죠?”
흥분했던 검제는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피, 피곤하구나. 들어가서 잘래.”
잣을 오물오물 씹어 먹더니,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돌려 들어가는 검제의 등이 왜소해 보였다. 청혜는 직접 따라 들어가서 검제를 도왔다.
“제가 침구를 펴 드릴게요.”
현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청혜, 저 아이가 없었다면 답답해서 못 견뎠겠구나.”
“사제의 덕이 크지요.”
“너는 사형이라는 아이가 왜 청혜만큼 못하고 그러냐.”
눈빛이 말갛고 귀염성 있는 청혜와 달리, 청수는 불퉁한 표정이었다.
“저도 열심히 했습니다, 사숙. 태사조께서 청혜 사제를 좋아하셔서 그렇지.”
“네가 평소에 잘하면 될 것 아니…… 큭, 냄새나니까 가까이 오지 말거라.”
“…….”
청수가 얼굴을 찡그리고, 검제와 함께 들어갔던 청혜가 나왔다.
“태사조께서 차를 드시고 싶어 하시네요.”
“다시 정신이 드셨느냐?”
“잠시 돌아오셨어요. 사형께 미안하시대요.”
청수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차라니…….”
“차를 드시면 정신이 또렷해질 것 같은 기분이라셔요.”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사조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철은 기특하다는 듯 청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차를 가져오는 게 좋겠느냐. 장문인께서 작설(雀舌)을 가지고 계시다만.”
“꼭 황산모봉이 드시고 싶으시다네요.”
“황산모봉? 으음, 그걸 구하려면 산 아래의 다루까지 가 봐야 할 텐데.”
황산모봉(黄山毛峰).
안휘성 황산에서 나오는 명차였다. 무척 고급품이었기에 다루에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청혜는 기세 좋게 입을 뗐다.
“제가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현철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래, 다녀오는 김에 맛있는 밥이라도 사 먹고 오거라.”
그는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 주었다.
황산모봉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청혜와 청수 모두 환히 웃었다.
현철 역시 웃다가, 무심코 코를 막았다.
“청수, 너는 꼭 씻고 내려가거라.”
“예, 사숙!”
말이 끝나기만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 * *
무당산 아래의 도경현(道景縣).
처음에는 큰 마을이 아니었지만. 이 험난한 산속에 있는 현치고는 대단히 발전했다.
모두 무당파 덕택이었다. 매일 참배객이며 무당파와 관련된 인원이 엄청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상업이 발전했고, 객잔도 많았으며, 이런 산간에서는 찾기 어려울 수준의 다루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경현은 텅텅 비었다. 무당이 봉문하고 방문객이 끊긴 지도 한참 되었다.
그나마 무당 도인들이라도 내려왔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들 역시 함부로 산문을 나서진 않았다.
사람들이 가난해지자 무당에 대한 민심 역시 하락했다.
다른 이들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배를 곯아도 한결같은 것은 수행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간단한 음식과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 명월객잔에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급 주루가 아니기에 객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양민들이었다.
특히, 무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한량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낮인데도 벌써 불콰하게 취해 있었다.
“대체 도사 나으리들은 뭣을 하길래 아직도 문을 꽁꽁 걸어 잠갔는지.”
“……장 씨, 목소리 좀 낮추게.”
“뭘 낮춰.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평소라면 도경현에서 무당파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객잔 내의 사람들은 다 그러려니 하는 꼴이었다.
귀라도 쫑긋한 사람은 한쪽 구석에서 만두와 소면을 먹고 있는 청년 둘뿐이었다.
그들은 찻잎을 구할 겸 산에서 내려온 청혜와 청수였다.
사문의 명에 따라서 무당파 도인인 것을 숨기고 평범한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만두를 우물대며 조용히 취객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무당파 사람들을 욕하려는 게 아니야. 뭔가 일이 있으니 문을 걸어 잠갔겠지.”
“그래, 그렇지.”
“그래도 적당히 오래 해야지. 벌써 1년 넘게 이러고 있는 게 말이 돼?”
“목소리 좀 낮추는 게 좋을…….”
“십 년 동안 머슴처럼 일해서 낸 가게가 망했다고!”
젓가락을 잡고 움직이던 청수와 청혜의 손이 느려졌다.
죄책감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묘한 기분이 속을 쓰리게 했다.
“다섯 살배기 딸년은 태열이 올라서 앙앙대는데 약이 없어서 못 구해. 상단이 도경현에 온 게 언제인지나 알아!”
아픈 딸의 이야기를 하면서, 취객은 화주를 또 한 잔 들이켰다.
무당파를 욕하기에는, 그 역시 아픈 딸을 놔두고 술이나 마시고 있는 작자였다.
다만, 젊은 도사들에게는 가슴을 쿡 찌르는 말이었다.
“대체 왜 그 지랄인 거야!”
“……음, 이건 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마주 앉은 사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별로 작지도 않은 소리로 말했다.
“무당에서 무슨 일이 나도 제대로 났나 봐.”
“뭐? 무슨 일이.”
“대단한 도사 한 명이 제대로 미쳤다더군…….”
청수와 청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문파에서 극비로 치부되고 있는 일인데, 설마 민간에까지 소문이 퍼진 것일까?
“어떤 도사가! 누구?”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주 꼴같잖은 상황인가 봐. 똥오줌도 못 가리고 칼을 막 휘두른다던데.”
“푸흐흐…….”
소면을 먹고 있던 청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취객들의 대화는 점점 이어졌다. 살이 붙고 왜곡되어서 선을 넘기 시작한다.
“꼴좋다, 말코도사 놈들.”
듣던 취객이 그리 말하는 순간.
결국 청수가 참지 못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시오!”
그는 청혜가 말리기도 전에 그들의 앞에 섰다.
깜짝 놀랐던 취객들은 청수의 복색이 평범하자 코웃음을 쳤다.
“어린놈의 새끼가 어딜 어르신들 말하는데 끼어들어!”
입에서 나오는 술 냄새가 역했다.
청수는 이를 꽉 악물고 화를 삭였다.
“무당이…… 그대들에게 어떤 호의를 베풀어 왔는데.”
“뭐? 으하하하. 뭘 해 줬는데.”
“뭐, 뭐요?”
“도사들이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고!”
취기는 사람을 용감하게 해 준다.
도경현은 분명 무당파 덕에 발전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청수는 할 말이 없었다.
청수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입을 다물고 있자, 취객은 가래침을 뱉은 뒤 그를 밀쳤다.
“할 말 없으면 꺼져…… 억!”
어리다고 하나 무당의 도인이 취객에게 밀릴 리 없었다.
청수는 본능적으로 취객의 팔을 꺾었다.
그리 강하게 꺾지도 않았는데, 취객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악, 이놈이 사람 잡는다!”
붕문한 상황이었기에 신분을 숨기라 했건만, 이래서야 아무것도 안 됐다.
청수의 얼굴이 당황으로 굳은 순간.
꽈앙-
문이 세차게 열렸다.
그와 함께 피비린내가 훅 밀려들어 왔다.
역광이 드리워서, 등장한 사람들의 외모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덩치가 대단한 도객이었다.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밀어서 그런지, 인상이 몹시 강해 보였다.
“뭐야, 이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취객의 팔을 꺾고 있는 청수를 슬쩍 본다.
그의 옆으로, 붉은 장포를 입고 있는 젊은 검수가 나타났다.
무척이나 빼어난 용모의 사내였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창백한 안색과 차가운 눈빛이 독특했으나.
매끈한 콧날과 곱상한 이목구비. 얼음 조각이 맺힐 것 같은 속눈썹이 눈에 띄었다.
분명 남성적인 기세 또한 느껴진다.
그는 이곳, 무당의 앞까지 찾아온 백이강이었다.
이강은 청수를 흘끗 보곤 입을 열었다.
“하던 일마저 하시오.”
그러곤 청수를 지나쳤다.
“아아악! 놔! 놓으라니까!”
팔이 꺾인 취객의 비명 소리만 선명하게 객잔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