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홍기, 백기 (2)
명원은 다시 한번 질문지 목록을 슥 훑어봤다.
몇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검제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질문이 어처구니없는 쪽에 속했다.
이런 것으로 자격을 판단하려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납득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검제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십니다. 장문진인.”
검제의 눈빛은 냉철한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제정신이 맞았다.
“장 조사의 신공을 전수하는 일이지요. 그 자격을 정하는 일인데, 감히 그 과정에 왈가왈부할 자가 있겠습니까?”
“…….”
“그런 방만한 자에게 전수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만일 불만을 표하는 자가 있다면 장문인이 직접 내쳐 주시지요.”
그렇다.
신공의 전수란 그런 것이고, 대문파의 의사결정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감히 사문의 존장, 그것도 무당 최고수이자 배분도 드높은 검제가 결정한 일이었다.
감히 불만을 갖더라도 그것을 표출할 만큼 경우 없는 자는 없으리라.
그러나 검제의 설명에도 명원은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여전히 미심쩍은 것이 있었다.
“다만…… 이것이 장삼봉 조사의 무공을 배우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까?”
“내 생각엔 그러합니다.”
“불민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사백.”
검제는 여태까지 자세한 설명을 삼가 왔다.
하지만 그래도 장문인인 명원이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데 계속 침묵할 수는 없었다.
“장 조사의 신공은 아무나 익히지 못하니, 검의 재능이나 성실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백께서는…….”
“나는 그 신공을 중간까지 습득하다가 벽에 막혔소이다.”
벽.
절대지경의 고수이자 검의 천재인 검제가 넘지 못한 벽이다.
500여 명의 지원자 중 검제보다 나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궁구하여 답을 내렸으니, 나는 장 조사와 너무도 다른 산을 오른 것이었습니다.”
다른 산을 오른다.
그 비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무인은 제각기 자신만의 산을 찾아 오르기 마련이다.
산의 정상이 얼마나 높은지는 등반한 뒤에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정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위치에서는 도무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봉우리들.
검제가 오른 산은 아마도 중원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높은 산이리라.
“내 일평생 장 조사를 흠모하여 그분의 검을 닮고자 했으나…… 내가 걸어온 길은 너무 떨어져 있더군.”
검제가 원래부터 장삼봉의 열성적인 추종자였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아직 산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 무인이 필요합니다.”
“그것과 이 질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그리고, 장삼봉 조사와 닮아 있는 자만이 그분의 신공을 익힐 수 있을 것이고요.”
그제야 명원은 모든 수수께끼가 맞춰지는 듯했다.
검제가 찾는 것은 ‘장삼봉과 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질문들이 터무니없어 보임은 이해합니다만. 나를 믿어 주십시오, 장문진인. 의미 없이 장난을 치려는 것은 아니외다.”
명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장삼봉의 절학을 제대로 전수하고 싶어 하는 것은 검제 본인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명원은 질문지를 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제는 조금 나중에 나가겠다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소전에 홀로 남자, 그제야 긴 날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기력이 쇠한 표정이었다.
검제는 장문인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산이라…….”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에게는 검제 자신의 검이 장삼봉의 검과 너무 달랐기에 신공을 익히지 못했다 말하였다. 그가 오른 산이 장삼봉이 오른 산과 너무 떨어져 있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조금 부족한 설명이었다.
“다른 산은 다른 산이겠지…….”
실제로 장삼봉의 신공, 그 흔적을 보았을 때 검제는 절망했다.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도무지 좁힐 수 없는 드높음을 느낀 것이다.
그것을 전부 말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부끄럽기 때문이리라.
검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500여 명이 공터에 모여 있었다.
평소에 무당파 무인들이 검진(劍陣)과 진법을 수련할 때 이용하는 수련장이었다.
산 중턱을 개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하면, 무당의 위세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 주는 듯했다.
아무리 도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나, 이 정도 수가 모이니 웅성대기 마련이었다.
장내는 어수선스러웠다.
“흡, 차.”
소음을 보태는 자 중에서는 팽구인 또한 있었다.
그는 다리를 길게 늘이거나 제자리에서 뜀 걸음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허잇차!”
팽구인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어이! 이강아. 너도 와서 몸 좀 풀자고.”
“괜찮습니다.”
다만 이강은 팽구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몸을 푸는 대신 주변을 살폈다. 어떤 시험이 주어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담현은 결국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강은 수련장의 좌우를 번갈아 보았다.
「홍기와 백기군.」
‘깃발이 두 개 있으니, 진영을 나누는 걸까요?’
공터의 가운데에는 긴 선이 그어져 있었고, 좌측에 홍기가, 우측에 백기가 세워져 있었다.
이강이 처음에 생각한 것은 진영을 나누어 경쟁하는 것이었다.
“불사신룡 소협!”
그때, 청혜와 청수가 나타났다.
그들은 소매를 꽉 조인 수련복을 입고 있었다.
결의가 보통이 아닌 듯했다.
“경쟁할 분들을 살피고 계셨군요.”
“경쟁? 아…….”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에 조금 오해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강은 굳이 그들의 착각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청수와 청혜가 알아서 종알거렸기 때문이다.
“사실, 워낙 다양한 배분의 고수분들께서 참여하셔서 저는 도통 자신이 없네요.”
“불사신룡 소협이 보시기에는 누가 될 것 같아요?”
시험의 내용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알 터가 없었다.
이강이 어깨를 으쓱이자, 청수는 묻지도 않은 의견을 내었다.
“제 생각에는…… 진무관주님일 확률이 높아요.”
청수의 시선 끝에는 진중하게 무게를 잡고 있는 도인 한 명이 있었다.
진무관주 명초. 당연히 초절정의 경지에 든 검사였고, 그 무학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진무관은 무당의 무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곳이거든요. 아마 장삼봉 조사님의 무공을 가장 많이 연구하신 분 중 하나일 거예요.”
“청수 사형, 그렇게 치면 선도검파의 분들이 더 유리하지요.”
선도검파(仙道劍派). 처음 듣는 단어에 이강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청혜가 설명해 주었다.
“문파 내에서도 무학의 여러 계파가 있거든요. 선도검파는 장삼봉 조사를 대종사로 삼고 선도(仙道)에 이르는 검을 연구하는 계파예요.”
“장삼봉 조사의 무공을 배운다는 뜻인가?”
“그렇지요. ‘신선의 길을 걷고자 하면, 신선의 검을 얻으라.’ 조사께서 남기신 그 말씀을 품고 수련하고 있는 검파예요. 저기 있는 현덕 사숙이 선도검파의 기대주죠.”
현덕이라는 도사는 누더기 같은 도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에는 평범한 도관 대신 나뭇가지로 만든 엉성한 것을 올렸다.
종종 무당파에서 보이던 독특한 사람들의 정체가 바로 선도검파였던 것이다.
“장삼봉 조사께서는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다듬지 않으셨고, 늘 헤진 누더기옷을 입고 다니셨다지요. 그 가르침을 따르는 거예요.”
“그렇군…….”
이강은 장삼봉에게 물었다.
‘그랬어요?’
「무슨 터무니 없는……! 나는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다녔소이다. 허어, 그저 수염이 억셀 뿐이지. 저런 소문이 퍼졌을 줄이야.」
‘신선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어쩌구 하는 말은요?’
「그런 말도 한 적 없소이다.」
아무래도 헛소문이 과장되어 퍼진 듯하다.
전설이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이강은 흥미를 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명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시험을…… 시작하겠다. 제자들은 모두 집중하라!”
그 예전, 칠성지회와 용봉지회의 발대식에서 남궁유백이 사용한 육합전성이었다.
명원의 옆에는 검제와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500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장문인의 입만 올려다보았다.
“방식은 간단하다. 주어진 질문의 내용에 따라 홍기나 백기를 선택해서 그 아래에 서면 된다.”
쓸데없는 허례허식은 없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아니니, 솔직히 선택하면 된다. 기회는 한 번씩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
“무학 지향점에는 강(强)과 유(柔)가 있다. 유능제강을 지향하는 자는 홍기로, 강능단유를 지향하는 자는 백기 아래로 가라.”
유능제강(柔能制剛)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뜻이고, 강능단유(强能斷柔)는 강함이 부드러움을 끊어 놓는다는 뜻이다.
무학에 이렇다 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도 무난한 질문에 500인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나뉘었다.
명원이 직접 시간제한을 알리는 종을 쳤다.
종이 세 번 울리면 움직일 시간도 끝난다.
「소도장은 정답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답이라는 게 있겠습니까만…….’
이강은 홍기가 꽂혀 있는 왼쪽 구역을 향했다.
‘저는 저쪽이 좋군요.’
선천적으로 몸이 강하게 태어나지 못한 이강은 ‘강’보다 ‘유’를 추구했다.
「허허, 나도 그러하네.」
장삼봉은 이강의 선택이 마음에 든 듯했다.
무당의 제자 대부분의 홍기 아래에 모였다.
오른쪽의 백기 아래 모인 자는 겨우 서른 명도 되지 않았다.
“백기 아래에 모인 자, 탈락. 탈락한 자는 구역 밖으로 이동하라.”
그리고, 백기 아래 모인 사람 중에서는 이강과 가까운 자가 있었다.
“안 돼애애애!”
어이없게 탈락한 팽구인이 까까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
백원마수 탓에 머리가 불타서 빡빡 밀지 않았다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을 듯한 모습이었다.
“쯔쯔.”
이강은 혀를 찼다.
아무리 팽가의 무도가 패도와 강함을 지향한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백기를 향할 것은 무엇인가.
이강의 곁에 모인 480여 명의 통과자들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시험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태극의 의미는 양과 음의 합일에 기원한다. 이는 양의(兩儀)를 발상시키고 사상(四象)을, 팔괘(八卦)를 발상한다…….”
질문의 내용과 난이도가 천장과 바닥없이 널뛰기한다.
경전공부에 소홀했던 이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고. 질문이 던져졌다.
“……이에, 태극권의 본질이 음양조화의 충기(沖氣)에 있다고 본다면 홍기 아래, 음양의 상반(相反)에 있다고 본다면 백기 아래로 가라.”
뎅-
시간제한의 첫번째 타종이 울리고, 모두 혼비백산했다.
이번에는 확실한 주류가 정해지지 않았다. 거의 비슷한 수가 좌우로 나뉘었다.
이강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었다.
장삼봉이 물끄러미 그런 이강을 바라보았다.
「허허, 감이 잡히시는가?」
도가문파 중, 곤륜 이상으로 존경받는 문파가 바로 청림(靑林).
그 중, 그 소장된 저서의 양과 수준이 드높다는 곳이 바로 대서고.
이강은 그런 대서고주의 제자였으며 삼화(三花)의 영화제자였다.
뎅-
두 번째 종이 치고, 이강은 장삼봉의 질문에 빙긋 웃어 주었다.
장삼봉 역시 흐뭇한 표정이었다.
「허허, 역시 소도장은 알고…….」
‘답이 뭡니까?’
이강으로선 답을 짐작 못 할 문제였다.
장삼봉은 멈칫 굳더니, 떨떠름하게 말했다.
「백기……로 가시게나.」
뎅!
“그만-!”
세 번째 종이 침과 동시에, 옆에서 진행을 돕던 고수들이 늦은 이동을 제지했다.
“홍기 아래에 모인 자들은 탈락!”
이강은 백기 아래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