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무영검각, 선우휘 (3)
“참으로, 난처한 질문이야.”
곤란해하는 명원의 눈을 이강이 똑바로 보았다.
감히 까마득히 높은 배분의 무당 장문인과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듯한 기세.
무례함으로 비칠 수 있지만 반드시 대답을 듣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그 눈빛에 명원의 표정도 착잡하게 변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으음…… 내가 아는 것이라면.”
진심은 전해진 것일까.
능지평의 입이 기대로 작게 벌어졌다. 드디어 그를 괴롭히던 과거가 밝혀지는 것일까.
하지만 어찌나 말하기가 어려운 일인지 명원은 그 이후로도 한참 뜸을 들였다.
부릅뜬 두 눈이 시려 올 때쯤, 이강이 명원을 다시 한번 재촉했다.
“아시는 것을……?”
“음?”
명원은 잠시 눈썹을 비틀었다. 이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커험, 아, 그렇지…… 내가 아는 것이라면 말해 줄 텐데 말일세.”
“예?”
명원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무영검각과 무당 간의 악연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잘은 모른다는 말이지. 그 당시에는 내가 그저 일대 제자였고 게다가 사문의 명을 받고 강호를 주유하던 참이라…….”
“아…….”
능지평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에 다 잡힌 것 같았던 비밀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래도 실망은 일렀던 것일까.
명원이 덧붙였다.
“다만, 전대 장문진인께서는 아시겠지.”
“……장현진인 말씀이십니까? 그 공공유선 님이요?”
이강의 눈이 커졌다.
전대의 장문인이라면 검제의 사제다. 공공유선(空空有仙)이란 별호로 알려져 있는 전대의 고수.
“그분은 장로원에 계실 테니까 지금 기별을 넣어 보겠네.”
“감사합니다!”
명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곤, 직접 장현진인을 찾아갔다.
이강과 능지평은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명원을 기다렸다.
능지평이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공자님 덕택입니다.”
“저는 그저 물어봤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능지평의 달콤씁쓸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폭삭 늙은 도인이 영문도 모르는 표정으로 명원에게 끌려왔다.
그가 바로 전대 장문진인인 장현진인이었는데.
“……그으, 나도 잘 모르는데.”
“예?”
능지평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했지만 콧김이 거세지는 건 막지 못했다.
“나도 잘은 모른다고. 그으, 선우휘라는 자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이야.”
“어찌 진인께서도 일을 모르십니까?”
명원도 당황한 눈치였다. 비급을 도둑맞을 만큼 큰일이었다면 장문인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야 내가 잡은 것도 아니고, 내가 처리한 일도 아니니까 그렇지.”
“그럼 누가 아실지…….”
장현은 흰 눈썹을 찡그리더니 답했다.
“사부님.”
“설마…… 수룡자 사조님이요……?”
명원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수룡자라고 하면 전전대의 고수다. 장현과 검제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래, 내가 이곳 자소전에서 업무 중이던 어느 날 밤, 사부님께서 들어오시더군. 점혈된 청년 하나를 들쳐메시고.”
“그러면…….”
“그자가 무영투도라 불리는 선우휘였네. 사부님은 내게 이리 말씀하셨지. 도둑놈 하나를 잡았으니 데려가시겠다고.”
능지평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사숙, 아니, 선우휘 그자가 대체 무엇을 훔친 것입니까.”
“그것이…….”
장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른다네. 세상에 그것을 아시는 분은 이제 떠나가신 사부님밖에 없을 거야.”
죽은 사부를 추억하는지, 그의 눈빛은 어느새 아련해져 있었다.
능지평이 분연히 외쳤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무영검각은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으응?”
“무당이 무영검각의 무림맹 맹적을 박탈시키지 않았습니까?”
능지평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담겨 있었다.
장현은 새카맣게 어린 후배의 성화에 화를 내는 대신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무당은 그런 방식을 쓰지 않네. 그것은 잘못 와전된 일이야.”
“그러면…… 검각은…….”
능지평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각은 왜 멸문한 것입니까!”
“허어, 현천상제시여…….”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엄숙한 침묵이 오랫동안 흘렀다.
능지평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톱이 단단한 마룻바닥을 긁었다.
내공을 담은 한 수도 아니고 순전히 감정의 표출이었으니, 손톱이 부러져서 피가 흘렀다.
한없는 절망감.
능지평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었다.
이미 잊어서 희미해졌다고 생각한 과거는 그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것이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상처의 형태로.
이강 덕택에 그 해묵은 상처를 꺼냈다.
하지만 상처는 봉합되지 못했다. 뙤약볕과 소금기 아래에 노출된 속마음은 그 정도로 쓰라렸다.
“……제가, 헛된 미몽을 꾸었습니다.”
“…….”
“이제 내막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군요.”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전전대의 고수.
살아 있었다면 세수 백 세를 훌쩍 넘겼을 테니, 늦게 찾아와도 한참 늦게 찾아온 셈이었다.
무당의 이들이 말하기로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아니던가.
“음,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
하지만 장현이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더 있습니까? 내막을 아는…… 아, 혹시 무림맹에…….”
“아니, 사부님한테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지.”
그 순간 이강이 흠칫 놀랐다.
혹시 이곳 어딘가에 수룡자의 영혼이라도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강이 나서면 될 일, 그는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장현은 떨떠름하게 설명해 주었다.
“떠나셨다는 거지, 돌아가신 건 아니네. 은거하셨지.”
“예? 살아 계신 겁니까?”
“그렇지……?”
능지평의 얼굴에 그 지긋지긋한 희망이 다시 돌아왔다.
“다만 사부님을 부를 방법이 문제인데…….”
그 방법을 들은 이강과 능지평은 그만 얼이 빠져 버렸다.
* * *
예전, 이강의 사부인 유정신이 말해 준 것이 있다.
“천하십대고수나 천하백대검수, 뭐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있느냐?”
“예, 들어 보았습니다.”
당장 청림의 림주 또한 그 천하십대고수의 상위권으로 꼽히고 있었다. 무당의 검제나 소림의 신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하십대고수는 호사가들이 지어 낸 개념이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의외로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 헛된 것이야. 재미로 듣고 진지하게 여기지 말거라.”
“틀린 내용입니까?”
“아주 그릇되지.”
하지만 유정신은 확고한 부정을 했다.
그 이유를 곧바로 설명하는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또 던졌다.
“대문파의 저력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강은 잠시 고민했다.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본산 무공의 고절함, 문파원의 수, 대단한 자금력, 거미줄처럼 뻗쳐 있는 동맹 관계, 속가제자라는 형식으로 퍼져 있는 인적 자원.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지만 이강은 다른 답을 골랐다.
“역사와 전통입니다.”
유정신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만큼 이강의 답이 흡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한 스승의 역할을 하기 위해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
“반만 맞았다.”
“소질이 부족했습니다.”
“하하, 어찌 반만 맞냐 하면, 옳긴 하다만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전통을 기반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아 온 문파원들이 대문파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 이야기는 좀 더 간단하게 함축할 수 있었다.
“소림 장문방장의 법호가 무엇이냐.”
“정각입니다.”
“그 위는? 어떤 법호를 쓰느냐.”
“무자 배를 씁니다.”
“이제 소림의 방장도 열반할 연세가 되셨으니, 무자 배는 곧 전전대 승려가 되겠지. 그러하다면…… 무자 배 고승이 지금 몇 명이나 살아 있겠느냐.”
이강은 잠시 고민했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수는 고작해야 양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는데, 유정신은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최소한 쉰 이상은 살아 있다.”
“……!”
여태까지 살아남은 무자 배 고수들이라면 최소한 초절정고수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절대고수는, 절대고수 또한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천하십대고수의 말석으로 꼽히는 녹림패왕 갈사혁은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머물고 있지. 천하십대고수가 얼마나 의미 없는 말장난인지 알겠느냐.”
“이해되었습니다.”
검제나 신승, 청림의 림주 같은 경우에는 분명 전 강호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아래로는 서열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다.
집계할 수 없는 수많은 고수가 있을 테니.
이강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면…… 청림은 어떠합니까?”
“으응?”
“청림에도 은거하신 고수분들이 계시지요. 림주님과 같은 배분의…….”
림주의 배분은 소림이나 무당 장문보다도 높다.
그렇다면 청림의 저력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유정신은 그 질문에 그저 빙긋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날 이강은 답을 듣지 못했다.
* * *
대문파라는 개념 안에 무당이 포함되지 않은 적은 없다.
무당의 저력 역시 알려진 것 이상이었다.
이미 전대 고수인 검제와 공공유선의 사부가 살아 있을 정도로.
“연세가 어찌 되시는 겁니까.”
“백이십쯤 되셨겠지.”
“장수하셨군요.”
이강 역시 놀랐다.
백씨세가의 불사신공이 강호일절이며, 황궁에서도 전수를 원했던 이유는 그것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절대고수가 되어도 백 세를 넘기는 것은 타고난 건강과 행운이 필요하다.
현문정종의 심법을 익히는 도가 문파의 경우 장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나,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팔팔하시지, 1년 전쯤 장경 사형의 병 때문에 사부님을 모셔온 적이 있으니. 지금도 정정하실 것이야.”
“참 다행입니다!”
문제는 수룡자를 불러올 방법이었다.
그는 이 드넓은 무당산 어딘가에 은거하고 있다고 한다.
은거의 방식에는 적당히 초옥을 짓고 사는 방식이 있고 정말 꽁꽁 숨어 버리는 방식이 있는데, 수룡자는 후자였다.
120세를 넘긴 노인네가 무슨 생각인지 아주 야인이 돼서 사는 것이다.
“본디 은거한 전대의 고수는 외인(外人)으로 여기는 것이 불문율이란다.”
“그 말씀은…….”
“부르지 않는 것. 그것이 원칙이지. 특히 사부님은 장경 사형의 일 때문에 불러들였을 때도 엄청 화를 내셨고.”
은거한 고수들은 정말 무당이 멸문할 위기가 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무당이 멸문할 위기에는 기라성 같은 노고수들이 수염을 휘날리며 달려오리라는 뜻이었지만, 과거의 일을 묻기 위해서는 부르기 어렵다는 듯.
하지만 그때 명원이 한마디를 더했다.
“저희 무당이 엮인 일입니다. 수룡자 사조께서 직접 행하신 일이니 그분의 업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불승들도 아니고 업보(業報)를 논할 것이 무엇 있겠느냐만…….”
장현은 능지평의 간절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이 저지른 일이시니 그것이 맞겠지. 장문진인의 뜻대로 하시게.”
허락은 떨어졌다.
“저것이, 이곳 무당에 은거한 존장분들을 부를 수 있는 북이다.”
일행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남암궁(南巖宮).
무당파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봉우리 아래에는 드넓은 산림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무당산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누각에 거대한 대고(大鼓)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저 북을 다섯 번 치면, 긴히 고수들을 소집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 전파되는 것이니라.”
아무리 북이 크다고 하나 이곳 산봉우리에서 친 북이 은거고수들의 귀에까지 들어갈까?
고수들의 감각이 범인을 초월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장현진인이 농담 따먹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 터.
“쳐 보겠느냐?”
그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이강을 바라보았다.
명원은 씁쓸하고 미안한 표정이었다.
북채를 받지 않았으니, 이강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북을 두드렸다.
퍽-
이강의 표정이 굳었다.
둥- 도 아니었고 텅- 도 아니었다. 탁한 소리가 잠시 나서 흩어질 뿐이었다.
대고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것은 도저히 북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물건이었다.
몸통에 큼지막한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는 것이다.
“원래…… 이런 물건입니까?”
“평범한 북으로는 소리를 멀리 전하지 못하는 법이지.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무당의 신기(神器), 천명고(天鳴鼓). 특별한 북채로 이 대고를 두드리면 그 소리가 백 리 넘게 퍼지는 것일세.”
대고가 적어도 고물은 아님이 확실했다.
묘한 영력이 흐르고 있었으니.
“그러면, 그 북채로 치면 되겠군요.”
“그게 어렵단 말이야.”
명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수룡자 사조께서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화를 내면서 북채를 가져가셨다네.”
“예……?”
“귀찮게 그만 부르라며 천명고를 부수시려는 것을 간신히 말렸지만…… 하나뿐인 북채를 가져가 버리셨어.”
이강은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도인이라는 자가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문파의 신기라고 하는 물건을 부수려 하고 북채를 숨기다니.
“그러면 멸문의 위기 때는…….”
“크흠, 자소궁이 불타면 보일 테니까 달려오시겠다고……. 커험!”
“…….”
이강이 할 말을 잃은 순간.
장삼봉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나와 같은 짓을 한 자가 또 있었구려!」
이강이 그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