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이대 제자 (1)
적산청영검(赤山靑榮劍).
붉은 산을 푸르게 물들일 검이라 하여, 청림 검공 중에서도 능히 상승절학이라 할 만한 무공이었다.
청화궁주의 성명절기로 취급받는 무공인 만큼, 청림의 제자라고 전부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무의 검에 일렁이는 푸른 검강은 분명 적산청영검의 것이었다.
그 푸른빛의 검강이 사도련 귀명대주의 가슴팍을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끄윽, 끄으윽…….”
귀명대주는 비칠비칠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눈에는 원독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손에 명을 달리한 청파장 문도가 한둘이 아닐진데, 무엇이 그리 억울할까.
하지만 이미 실전 경험이 쌓인 이대 제자들은 그런 것에 정신을 팔지 않았다.
대개, 저렇게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이 되면 묘하게 착잡한 얼굴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다만 드물게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까지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다.
사도련의 귀명대주 또한 그랬다.
그는 뒤로 넘어지는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휙 뿌리려 했다.
차르륵-
진리연의 연검이 늦지 않게 지나갔다.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 들어가 힘줄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귀명대주는 비로소 아쉽다는 듯 씨익 웃곤 뒤로 쿵 넘어갔다.
진무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사도련 본단의 무인들은 쉽지 않네.”
순진했던 강호 초출의 시절이었다면 이런 기습에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무 역시 놀고만 있진 않았다. 그의 옷자락에는 푸른 꽃 다섯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오화(五花)제자.
이미 청림의 주요 전력 중 하나가 된 그였다. 이 정도 기습에는 당할 리 없었다.
“잘했다. 리연.”
“네, 사형.”
진리연이 건조한 어투로 답했다.
그녀는 마른 천으로 연검의 피를 닦아 허리에 맨 검집에 넣었다.
그녀의 옷자락에도 푸른 꽃 네 송이가 수놓여 있었다.
진리연 역시 아직 깨부수지 못한 초절정의 벽을 깨고 나간다면 분명 다섯 번째 꽃을 얻을 수 있으리라.
“고맙습니다, 리연 사저!”
유수린이 오도도 달려와서 진리연에게 안겼다.
진리연은 그런 유수린의 머릿결을 쓸어 주었다.
“고생했어, 수린아.”
“헤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연에 대한 유수린의 애정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진리연을 따랐다.
진무가 어물쩍거리며 나섰다.
“그으, 수린아. 나는 안 보이니?”
“아, 예, 사숙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는…….”
이대 제자와 삼대 제자는 나이 차가 크지 않다. 그래서 제법 사이가 친밀했다.
하지만 진무는 조금 달랐다.
그는 거칠게 자란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대 중의 대제자인 그는 이미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도인이 아니었다면 이미 아이를 낳고 가장이 되었을 나이.
아직 20대 초반인 삼대 제자들을 보면 괜히 씁쓸한 미소만 떠오를 뿐이었다.
“근데…… 두 분만 오신 건가요?”
손희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삼대의 대제자가 된 손희일은 예전보다 생각이 깊어졌다.
함께 지원을 온다던 이대 제자 셋 중 한 명이 안 보인다는 것에 무언가 찜찜함을 느낀 것이다.
“담현 말이냐?”
“예.”
“걔는 혼자 있지.”
진무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대수롭지 않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쩐지 말하기도 껄끄러워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삼대 제자들이 당황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준명의 말이었지만, 나머지 둘도 같은 생각이었다.
“담현 사숙의 무공은…… 이젠…….”
‘삼대 제자보다 이대 제자가 강한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는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당연한 명제처럼 느껴지는 말이었다.
실제로 담현은 강했었다. 영화제자이고, 오랫동안 갇혀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러나 오랜만에 사문으로 돌아온 담현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섬예…… 무슨 대법 때문이라고 했나.’
유수린만이 아버지 유정신에게 대충 들었을 따름이었다.
수년 전부터 절정고수였던 담현은 오히려 퇴보한 상태였다. 지금은 그저 겨우 일류고수라 할 만한 정도.
무공의 경지를 따지면 이제 삼대 제자의 평균에도 못 미치게 되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으나, 확실한 것은 다시 원래의 경지를 되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이다.
“사도련 무인들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하핫, 그놈이?”
진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웃긴 일도 아니었는데 진무는 점점 크게 웃었다.
“하하, 리연. 어떻게 생각해? 얘들이 담현을 걱정한다. 하하핫!”
“…….”
진리연은 늘 그렇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머쓱해진 진무는 수염을 긁적이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담현 그놈은…….”
그때,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는 듯하기도 했고,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듯하기도 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히 들려서 삼대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뭐, 가 보자고.”
진무는 빙긋 웃더니 청파장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제자들을 수습해서 산으로 내려가십시오. 재월방과 사도련 무인들은 저희가 다 정리하겠습니다.”
“예……? 네, 네엡!”
겨우 여섯 명으로 가능한 일일지 의심스러웠지만, 청파장의 장무정은 감사의 포권을 올렸다.
진무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일행이 따라붙었다.
기묘한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우우우! 우흐으으으!”
어쩐지 소름 끼치는 소리에 준명은 작게 몸을 떨었다.
덩치는 산만 해졌지만 성향에는 여전히 심약한 부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담현은 말이다.”
청림의 제운신을 빠르게 펼치는 와중에도 진무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음, 그놈이 맡은 곳은 이곳 산간의 서쪽 능선 전부다.”
“네에?”
손희일이 깜짝 놀랐다.
그는 당연히 진무와 진리연이 담현과 함께 서쪽을 정리하고 왔다고 생각했다.
귀명대주가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던 것은 맞았지만, 그쪽에는 재월방의 방주를 포함해서 사도련의 절정고수들이 여럿 있었다.
그것을 담현 한 명이 맡았다는 말인가.
“왜 그런…….”
“담현이 직접 그렇게 하기를 청했어.”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담현을 걱정하는 삼대 제자들에게 진무가 말했다.
“담현이 나보다 강하지는 않겠지만. 아니, 너희보다도 무공의 경지는 낮겠지만…….”
진무 역시 돌아온 사제의 변한 모습에 경악한 적이 있었다.
“우리 중 가장 위험한 놈인 것은 확실하지.”
“우우우아아아악!”
비명 소리는 이제 지척에서 들렸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수림에서 뛰쳐나가자마자. 일행은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났다.
“이건…….”
사방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재월방의 무복을 입은 자들부터, 조금 전 귀명대처럼 흑의를 입고 있는 자들까지.
죽은 사람도 있었고, 혼절하거나 부상을 입고 끙끙대는 자 또한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중에 청파장 무인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내분(內紛)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서로를 찌른 자세로 죽어 나자빠진 자들도 있었다.
유수린은 흠칫, 몸을 떨었다.
주변의 수풀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꽃이라는 것이 비현실적이게도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술법으로 만든 특별한 불꽃임이 분명했다.
도화제자로서 영선궁주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유수린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상승의 술법.
“우우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자의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재월방주였다. 험악한 중년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짚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단검 두 자루가 각기 그 손바닥을 꿰뚫고 땅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등 위에 담현이 걸터앉아 있었다.
무척이나 오만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시끄러워.”
“우으으으.”
순식간에 재월방주가 입을 다물었다.
담현은 조용히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자,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그쪽에는 모여 있는 자들은 청파장의 인원들이었다.
청파장주의 딸과 그녀를 지키고 있는 무인들이 서로 모여 벌벌 떨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대가는?”
“우선…… 일을 수습하고.”
“후후…… 만약 약속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면…….”
담현은 뱀이 쉿쉿거리는 듯한 사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이놈들처럼…….”
“이놈아아아!”
진무가 얼른 달려가서 담현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아, 뭐야!!”
“도와주러 온 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하하. 죄송합니다, 청파장 여러분.”
“아니, 내가 목숨을 구해 주고 복수도 대신해 줬으면 당연히……!”
“입 좀 다물어 봐라, 좀.”
“내가 다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냐!”
“또 여우 타령할 것 아니냐!”
“이거 놔!”
삼대 제자들은 멍하니 진무와 담현이 다투는 꼴을 지켜봤다.
진리연은 옆에서 머리가 아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영 보기 우스운 꼴이라서 준명과 손희일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사저.”
다만, 유수린의 표정은 오히려 조금 전보다 굳었다.
“응.”
“담현 사숙이 이대 제자 중에서 가장 강한 거예요?”
진무는 달리 말했지만, 이곳의 참상을 알아본 유수린은 도저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럴 법이, 이곳에 남아 있는 술법의 흔적은…….
“……어쩌면.”
진리연이 가볍게 답했다.
유수린은 이 끔찍한 상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날, 청파장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여섯 명의 청림도는 훌륭하게 임무를 마무리 지었다.
청파장은 살아남았으며, 재월방은 핵심 고수들이 죽거나 부상당해 멸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출발했을 때보다 느긋하게 사문으로 돌아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림주의 부름이었다.
“진무, 담현, 진리연.”
일대 제자가 림주의 명을 받고 산문 앞에서부터 그들을 맞이했다.
“지금 당장 백운봉으로 가거라.”
이대 제자들은 림주를 찾아갔다.
* * *
림주는 세수(歲數) 일백에 가까워지고 있는 고수다.
본래 전대 고수로 추대받아야 할 나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청림의 림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외부에선 그것을 림주 개인의 욕심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림 문도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림주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 외딴 봉우리 위에서 지냈다. 권력욕이 있는 자라면 그러지 않으리라.
“차 맛이 좋으냐?”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림주가 그리 말했다.
진리연은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고 차를 마셨고, 진무는 약간 후루룩 대면서 찻물을 들이켰다.
담현의 경우는, 마시고 싶지 않다면서 청호만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우루루, 우르르르.”
진무가 날카롭게 노려봤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청호 앞에서 손장난만 쳤다.
청호는 얌전히 앉아 있기는 했어도 그 손장난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개의 꼬리가 착 가라앉아 있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이건 대홍포라는 차지. 알고 있느냐?”
대홍포를 마셔 본 사람은 없었다.
“저 북경에서 보내 준 차다. 이강이 보내 주었어.”
청호가 림주를 휙 돌아봤다. 가라앉아 있던 두 개의 꼬리가 살랑대기 시작했다.
“찻잎과 함께, 서찰 또한 보냈더구나.”
림주가 품에서 꺼낸 것은 새빨간 비단으로 감싼 서신이었다.
그 포장의 재질만 보아도 이강이 보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청호가 벌떡 일어나 담현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
“한번 읽어 보아라.”
림주가 서찰을 내밀자, 진무가 공손한 태도로 받아들었다.
담현도 진리연도 서찰의 곁에 모였다.
심지어 청호마저 글도 못 읽으면서 서찰에 코를 킁킁댔다.
서찰을 읽은 진무의 표정은 심각해졌고, 진리연은 평정을 유지했으며, 담현은 킥, 하고 웃었다.
림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들이 북경에 가거라.”
“림주님……!”
진무가 당황했다.
청림이 상대적으로 평화롭다고 하나, 풍전등화의 상황임은 다른 문파들과 같았다.
진무가 자신을 고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초절정 고수였으며, 청림의 대제자 중 한 명이었다.
맡겨진 과업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북경으로 가라는 명을 받을 줄은 몰랐다.
당황하는 그에게 담현이 핀잔을 주었다.
“거 사형. 까라면 까는 거지, 뭘 그리 쫑알쫑알 말이 많아요.”
“뭐라고?”
“림주님께서 생각이 있으시니 저희를 보내시는 것 아닙니까.”
림주 앞이었기에 담현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심 담현의 말에 수긍이 갔다.
림주는 현명하다. 그리고 이강의 말이 사실이라면, 황궁에서는 몹시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강의 추측이 사실이라 보십니까?”
진무가 그리 질문했다.
담현은 뭐가 그리 웃긴 지 옆에서 킥킥댔다.
진무는 셋 중 이강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적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천마가 정말!”
천마의 부활이라니, 그런 이야기는 오화제자가 되고 나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다만, 림주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심계가 깊어서라기보다는 꼭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가서 이강을 도와 마교의 방사들을 상대하고…….”
림주는 명령과 함께 검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강에게 이것을 전해 주거라.”
그때였다.
청호의 털이 확 부풀더니, 상자를 피하려는 듯 풀쩍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