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태평장 교두, 백이강 (2)
정파 측 후기지수 다섯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불사신룡(不死神龍) 백이강이다.
그렇다면 사파 측은?
“낭월도 벽기입니다.”
낭월도(浪月刀) 벽기.
이강도 들은 적이 있는 초절정의 무인이다.
“낭인 출신의 고수인데, 월도(月刀)를 쓰지요. 그렇게 사도련의 간부까지 올라간 대단한 무인입니다.”
월도(月刀)란 창같이 생긴 긴 봉에 칼날을 붙여 둔 무기이다.
그 예전 관운장이 쓴 청룡언월도가 그런 월도 중 하나이다.
이강의 표정이 묘해졌다.
“낭월도 벽기라면 이립(而立)이 넘었을 텐데?”
그렇다고 해도 젊은 나이에 초절정에 오른 대단한 고수다.
다만 이립, 즉 서른이 넘은 나이라는 건 분명한 상황.
감독 역의 무인은 이립 이하의 젊은 고수를 들인다는 게 태산 회합에서 정한 규칙이었다.
“낭인 아닙니까. 자기가 노안이라 늙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창창한 이십 대라는 주장이었지요. 뭐 낭인이 제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것은 흔한 일이니…….”
“그것참 편리한 변명이군.”
이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와 접촉해 보고자 하십니까?”
“그래서 나쁠 것은 없겠지.”
노식은 아는 것이 많았고 이강의 의중을 금세 파악했다.
이강은 다섯 명 중 노식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무공 경지가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그랬다.
“내원에서 만나게 되면 한번 이야기해 봐야겠군.”
태평장에서 좌원과 우원을 연결하는 곳이 바로 내원이었다.
그곳에서는 종종 사파 측의 인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강은 노식과 함께 내원으로 향했다.
“간다고 바로 만날 수 있지는 않을 텐데요?”
“상관없어. 내원을 찾을 용무가 또 있으니.”
노식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이강을 따라 내원으로 향했다.
이강이 내원에서 곧바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오셨습니까.”
시비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주방에서는 시비들이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태평장에는 머무는 인원의 편의를 위해서 최소한의 인원만 종사했다.
그중에 이 주방의 인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방을 담당하는 하인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준비는 했지만…….”
하인이 가리킨 것은 주방 중앙에 있는 조리대(調理臺)였다.
그 위에는 각종 식재들이 놓여 있었다.
깨끗하게 손질된 닭, 기름기가 없는 소고기.
신선한 푸른 채소들.
이강은 그 식재들을 직접 살폈다.
“음 고맙네.”
“식단을 직접 관리하시겠다니…….”
하인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며칠 전 이강은 갑자기 주방을 방문했다.
그리고 숙수와 하인들에게 식단의 변화를 요구했다.
“말한 것들을 전부 구해 왔군.”
“예, 그리 어려운 재료들은 아니었는지라.”
숙수는 당황했다.
이강이 다섯 명의 후기지수들을 가르치고 감독한다고 하나 식사까지 관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소림사가 구인해 온 숙수는 나름 유명한 숙수였다.
숙수로서의 자존심도 있는 자였는데, 음식이나 요리에 대해서는 무지한 무인이 갑자기 주방에 쳐들어온 것이다.
숙수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이강을 보고 있었다.
“맡기시면 어련히 제가 잘 요리해드릴 텐데요.”
“어디서 일했다고 했지?”
“ ……사천에서 가장 큰 주루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군.”
이강은 잠시 고개를 들어서 주방에 맴도는 냄새를 맡았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나 보군.”
“예, 말씀하신 대로 조리했습니다.”
숙수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이강은 식재 준비만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주문한 식재들로 어떤 요리를 하느냐까지 지시했다.
고용된 입장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입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숙수는 자신의 자존심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지시를 따랐다.
“한번 보여 주겠나?”
“여기, 청경채와 닭의 가슴살을 볶은 것입니다. 여기에 밥을 곁들였습니다.”
숙수는 수많은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절벽의 제비집을 이용한 청탕연와(清汤燕窝), 곰 발바닥, 웅장(熊掌)을 이용한 찜 요리까지.
닭가슴살에 채소를 볶은 요리쯤이야 시시하기 그지없었다.
‘어디 한번 먹어나 봐라.’
숙수는 젓가락을 든 이강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강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탁.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숙수를 노려봤다.
“왜 지시를 따르지 않았지?”
“예? 그, 그게 무슨…….”
그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숙수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그저 간단한 지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강이 들이민 음식 접시에는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는 요리가 담겨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주루의 요리야.”
숙수는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닭가슴살은 맛이 담박하고 심심한 고기입니다. 그 때문에 돼지기름으로 맛을 내고 흑호초를 뿌려 향을 냈지요! 감자에서 전분을 우려낸 뒤 노추와 달달한 꿀을 넣어서 끼얹었습니다!”
“……그게 문제다.”
이강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무공 교두라고 식단까지 간섭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 시대의 영양학적 지식이란 그저 밥과 고기를 든든히 챙겨 먹는 것이 좋다는 정도이니.
이강은 거기에 최대한 현대적 지식을 적용하려 든 것이다.
“예? 문제라고요?”
“그냥 밥을 준비해 달라 했는데 그걸 또 왜 볶아 왔나! 그것도 아주! 고슬고슬하게!”
밥은 기름과 계란을 넣고 고소하게 볶아 오기까지 했다.
옆에는 후식으로 먹으라고 달달한 꿀빵까지 만들어 두었다.
이런 것은 식단으로써의 의미가 없었다.
이강은 얼이 빠져 있는 숙수를 지나쳤다.
그러곤 화구 앞에 서서 직접 솥을 잡았다.
“그저 이런 것을 주문했던 거다.”
솥은 이미 적은 양의 기름을 머금고 있었다.
이강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닭의 가슴살을 토막 쳐 썰었다.
산에서 뜯어 온 버섯도 썰고, 청경채는 하부의 심만 대충 떼냈다.
그것을 솥에 넣고 소금을 살짝 뿌린다.
“수련이 고될 테니 섭취해야 할 열량이 많을 테지. 그러니까 소금은 적게 쓰고. 세 끼가 아닌 네 끼를 요구한 거고.”
강한 불로 대충 볶아 낸다.
전혀 기교도, 진귀한 재료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강의 모습은 정말 요리에 익숙한 듯했다.
“진짜 요리를 할 줄 아시는군요.”
노식이 그리 중얼거릴 정도였다.
“대강은…… 자, 먹어 봐라.”
이강은 흰 쌀밥을 대충 퍼서 함께 건넸다.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숙수와 노식은 얼른 젓가락으로 밥과 닭가슴살 채소볶음을 집어 먹었다.
오물오물 꼭꼭 씹은 뒤 꿀꺽 삼킨다.
그들은 곧,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싱거워.”
“……맛없어.”
요리 과정에서 상상한 맛 그대로였다.
못 먹을 음식은 결코 아니었지만, 맛이 단순하고 조금 퍽퍽하며 무엇보다 무척 싱겁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부탁한다. 뛰어난 숙수라고 했으니 이해했겠지.”
“예, 예에, 알겠습니다.”
숙수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이강이 원하는 것은 맛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안 돼……. 한 달 내내 이런 것만 먹어야 한다고?”
다만 노식은 절망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원래 음식은 몸에 안 좋은 만큼 맛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너무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노식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이강은 그것 말고도 현미와 서홍시(西紅柹)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식단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떠나려나 싶었는데, 이강은 다른 재료들을 추가로 요구했다.
“몇 가지 식재를 가져가도 되겠나?”
“물론이지요.”
“껍질이 두꺼운 큼지막한 닭 두 마리와 찹쌀, 향신료로는…….”
노식의 귀가 쫑긋했다.
그 재료들이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거지닭?’
얼마 전 숭산에서 푸짐하게 잘 먹었던 그 요리의 재료들 아닌가.
요구한 재료를 받아 챙겨 나온 이강은 노식에게 지시했다.
“몸을 깨끗이 씻고 손톱을 다듬어서 저녁에 나오도록.”
씻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노식이지만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예.”
* * *
밤의 내원.
그 한가운데에서 노식은 거지닭을 준비했다.
지난번처럼 솥에 황토를 담은 뒤, 거기에 연잎으로 싼 거지닭을 넣고 불을 피웠다.
놀란 하인이나 시비들이 몇 번 기웃거렸지만, 신경 쓰지 말라는 이강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원 한복판에서 거지닭을 구워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노식은 애써 의식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거지닭을 덮어 둔 황토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기가 막히는 향이 풍겼다.
바람이 솔솔 부는 쌀쌀한 밤.
그윽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깊은 밤이 되었으니 슬슬 야참이 당길 법한 시간.
이강은 피워 둔 불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슬슬 먹어도 될 법한데요.”
“조금만 더.”
이강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
또래 후기지수가 교두 역할을 맡게 된 데에 있어서, 사실 노식을 포함한 후기지수들은 조금 어색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노식은 그의 지시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강에게는 연장자의 여유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너무 오래 익히면 육즙이 빠져나가서 퍽퍽한데요.”
“아직은 괜찮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거지닭은 거지닭이었다.
노식은 왠지 모를 초조함을 느꼈다.
그가 가만히 솥만 노려보던 도중이었다.
툭.
어디선가 소음이 울렸다.
시선을 돌리니, 주방이 있는 곳의 처마 아래에서 검은 인영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노식은 위기감이 번쩍 들었다.
‘……누구지.’
누군가 잠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이강에게 그것을 알리려는 순간 이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먹을 준비를 하지.”
“……예?”
“손님이 왔잖아.”
손님이라니.
그 말의 의미를 곧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 정체가 똑똑히 보였다.
“갈동탁……?”
사파 측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한밤중에 이곳에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는 이강을 보고 중얼거렸다.
“문이 잠겨 있었어.”
“매일 밤마다 음식이 사라진다더라고. 내가 자물쇠를 걸라고 조언했지.”
“…….”
갈동탁은 어미 잃은 송아지 같은 눈을 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을 잘 안 챙겨 주나?”
“그건 아닌데…….”
“부족했나 보군.”
갈동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시선은 자꾸만 노식이 준비하고 있는 거지닭을 향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늘 그랬듯 밤참을 훔쳐 먹으러 온 갈동탁은 문이 잠긴 것을 보고 돌아가려 했으리라.
그러던 도중, 이강과 노식이 풍기는 거지닭의 향에 저항하지 못하고 걸어온 것이다.
“맛있지. 아주.”
이강은 닭다리를 잡고 쭉 뜯어 먹었다.
갈동탁은 손을 움찔했다.
그가 아비에게 배운 바로는, 녹림도답게 ‘밥을 내놓아라, 으하하!’하고 손에 든 거지닭을 강탈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강이 두려웠다.
그렇다. 갈동탁은 이강을 두려워했다.
살면서 그렇게 대차게 두들겨 맞은 적이 없었다.
주먹 한 방 한 방 맞을 때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짜릿했다.
“같이 먹겠나?”
“음, 꿀꺽. ……그래도 되면.”
“대신 대가가 있어.”
“대가?”
“같이 지내는 네 명의 후기지수들, 그들의 무공이나 성격에 대해서 말해 줘라.”
이강이 닭다리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갈동탁의 눈동자가 닭다리를 따라 왕복 운동했다.
그러나 그는 곧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럴 순 없다. 그건 배신이니까.”
“그래? 그렇군.”
이강은 생각보다 싱겁게 답했다.
그러고는 아직도 닭다리에 시선을 두고 있는 갈동탁을 향해 손짓했다.
“와서 먹어라. 우리 둘이 먹기엔 조금 많으니.”
“저, 정말이냐!”
갈동탁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넉살 좋게 이강의 옆에 앉았다.
“노식, 한 마리 줘라.”
“예, 뭐. 알겠습니다.”
이강은 통 크게도 큼지막한 닭 한 마리를 갈동탁에게 넘겼다.
갈동탁은 뜨겁지도 않은지 닭을 통째로 잡아들고 뜯어먹었다.
“으하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야!”
“그러냐.”
“너희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구나.”
“맛있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말이야 …….”
이강은 옆에 앉아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얼굴에 화상 입은 사람. 무섭게 생겼던데. 도객인가 보지?”
“아, 서문청 형? 생긴 건 무서워도 좋은 사람이다.”
“겨뤄 봤어?”
“음, 그렇지. 도끼로 찍어 버리려고 했는데 신기한 보법을 밟아서 피하더라. 막 다리가 주욱 늘어나는 것 같았는데…….”
“네 도끼질이 보통 빠른 게 아니던데.”
“서문 형은 발도술(拔刀術)의 달인이거든 …….”
이강의 질문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 갈동탁은 술술 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적고 있지는 않았지만, 끄덕이는 이강의 머리라면 이 대화 내용을 완전히 기억할 것이다.
노식은 내심 생각했다.
‘……교활하다.’
허나 그것이 비난의 마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개방도인 그조차도 생각지 못한 뛰어난 정보수집능력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멋져.’
노식은 이강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