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갈사혁, 그리고. (1)
갈동탁이 쓰러졌다.
그 순간, 갈사혁은 격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노회한 호랑이었다.
태산에서 이강을 죽여 버릴까 고민했던 때, 신승이 등장하자 바로 살기를 숨겼던 것처럼.
세상 그 누구보다 아끼는 자식이 거지 놈의 독에 쓰러졌다고 해서 날뛰지는 않았다.
다만 발톱을 숨기고 분노를 가다듬었다.
제 아들과 달리 갈사혁은 한 자루의 도끼만 쓴다.
청산대월(靑山大鉞)이라 불리는 그의 쌍날도끼.
날카롭게 날이 벼려진 그 도끼를 가만히 잡고 있었다.
-사도련주. 이제는 나가도 되겠소?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전음했다.
전음을 들은 사도련주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갈동탁의 패배로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데도 감정의 변화가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잠시.
갈사혁을 멈춘 사도련주는 입가에 가져다 댔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짝 몸을 기울여 비무대를 자세히 살폈다.
쓰러져 있는 갈동탁이 꿈틀거렸고, 노식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저렇게 큰 환호성이 쏟아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때, 비틀대며 일어난 갈동탁이 노식을 잡아 엎어트렸다.
양팔이 구속된 노식은 그대로 뒤통수를 찧어 기절했다.
그야말로 양패구상(兩敗俱傷).
진행을 맡던 천기서생은 더듬거리면서 선언했다.
“무, 무승부.”
사도련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전음했다.
-마음껏 하시오. 지원해 줄 테니.
갈사혁이 사납게 웃었다.
그는 도끼를 들고 뛰어들었다.
오늘은 특히 치장에 신경 썼다.
머리카락은 오디즙과 약초 섞은 물로 물들였고, 피부는 기름을 발라 팽팽하다.
사실, 언젠가는 이런 귀찮은 짓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새로 나오는 머리카락들이 조금씩 검어지고 있다.
늙어서 푸석하고 쭈글거리던 피부는, 천천히 탄력이 돌아오고 있다.
분명 오디즙과 기름의 효과는 아닐 것이다.
갈사혁은 다시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갈사혁의 반로환동(返老還童)은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다.
좌중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목청에 내공을 담아 외쳤다.
“용납 못 한다!”
그의 수하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은 그저 갈사혁의 목청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공을 담아서 발성할 때의 울림을 최대한 억제한 덕이다.
또한 갈사혁의 그 야수 같은 기세도 사람들을 착각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이 승부는 용납할 수 없다-!”
무승부를 용납할 수 없다.
갈사혁의 외침이 수백 명의 좌중을 압도했다.
천기서생이 당황해서 접근했다.
“갈 대협. 지금 무슨 짓입니까. 비무에 난입을…….”
“물러나라!”
천기서생은 무공이 그리 대단치 못하다.
갈사혁은 살기를 숨기지 않았고, 천기서생의 안색은 새하얘졌다.
“비겁하게 독이라니! 개방의 거지가 선을 넘었군!”
갈사혁은 노식을 내려다보았다.
갈동탁에게 짓눌린 채로 혼절해 있는 노식.
멍청하게 입을 헤 벌린 채 기절을 한 꼴을 보니 갈사혁은 몹시 부아가 치밀었다.
“이 거지새끼가…….”
멍청한 얼굴을 노려보던 갈사혁은 흠칫 놀랐다.
노식이 의식을 되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무승부의 선언이 난 상황이지만 노식이 먼저 깨어난다면 그림이 좋지 않다.
갈사혁은 슬쩍 노식의 관자놀이를 걷어차서 다시 기절시키려 했다.
카앙!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검이 노식의 관자놀이 앞에 박혔다.
어두운 빛깔이 예사롭지 않은 보검. 유성아였다.
그리고 이강이 비무대 위에 뛰어올랐다.
“무슨 짓입니까.”
“……어린놈이 건방지게.”
이강은 갈사혁을 마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분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감히 그것을 숨기지 않는 그 적의에 갈사혁은 속이 끓었다.
이강은 뚜벅뚜벅 다가와서 노식의 상태를 살폈다.
“……노식.”
노식의 상태는 온전치 못했다.
갈동탁에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아서 얼굴은 썩은 만두처럼 엉망진창으로 부풀었다.
바닥에 찧었던 뒤통수에는 축축한 피가 묻어나왔다.
“으…….”
그는 희미하게 뜬 눈으로 이강을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갈동탁을 다 이겨 놓고서 방심했다.
그 탓에 무승부가 된 것이다.
“열심히 해 봤는데…….”
어이없는 이유로 후개에서 탈락한 이래, 모든 일에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 태평장에서의 한 달.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훨씬 웃도는 갈동탁과 싸운 오늘.
노식은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물거품이 되자, 도저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훌쩍거리는 노식에게 이강이 나지막이 말했다.
“잘했다.”
“……크흑.”
“최선을 다했으니, 된 거다.”
노식은 그 말을 싫어했다.
열심히 했으니 되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헛수고가 아니다.
그것은 패배자들의 비참한 자기 위로가 아닌가.
허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본 적 없는 사람뿐이었다.
노식은 누워 있는 상태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허이구,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는군.”
갈사혁이 쯧쯧 혀를 찼지만 이강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노식을 부축하여 비무대 밖에 대기하던 의원에게 넘겼다.
그뿐만이 아니라 쓰러져 있는 갈동탁도 끌고 갔다.
개방의 독은 그리 독하지 못해서 갈동탁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때까지 멀뚱히 서 있던 갈사혁은 이를 갈았다.
‘개 같은 어린놈이 다 만든 분위기를 …….’
갈사혁은 비무대로 난입하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것이 이강의 개입으로 애매해졌다.
지금이라도 다시 상황을 주도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도끼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꽈아아앙!
모두의 시선이 다시 갈사혁을 향했다.
“무승부란 있을 수 없어! 흑도와 백도의 운명을 정하는 비무가 무승부로 끝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쩌렁쩌렁 내뱉은 일갈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갈사혁의 말은 사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여태껏 흘린 피가 무수하다. 죽은 동도들의 원혼들이 구천에 떠돌고 있다. 그것을 비무로 완결지으려 했건만, 무승부우?”
상식적인 이야기였고, 동의하는 사람도 많았다.
흑도 측 무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백도 측 무인들 역시 수군거렸다.
“결코 납득할 수 없다-!”
갈사혁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시의적절하게 끼어든 것은 사도련주였다.
그의 말투는 나지막했지만, 어쩐지 모두의 귀에 때려 박히듯 울렸다.
“틀린 말이 아니군. 이렇게 끝내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러자 흑도 무인들이 함성을 질러 화답했다.
갈사혁은 마음에 드는 듯 팔짱을 끼고 웃었다.
그때, 사도련주의 목소리보다 더 기이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가 울렸다.
「정숙!」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좌중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소림의 초상승 전음법, 혜광심어가 분명했다.
비무대 아래, 신승이 서 있었다.
“산적아,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갈사혁은 움찔했다.
“승부를 무르고 다시 재비무라도 하자는 것인고?”
“……흐흐.”
갈사혁은 애써 웃었다.
그는 평소에 신승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먼 옛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승에게 겁먹을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그의 뒤에는 사도련주를 포함한 흑도 측의 고수들이 있다.
“애새끼들 싸움 구경이 지겹지도 않소?”
“호, 뭐라?”
갈사혁은 비무대에 박아 넣었던 도끼를 뽑아 들어 어깨에 걸쳤다.
“이곳에 모인 강호 동도들도 똑같이 생각하겠지. 이제는 슬슬 어른들이 나설 때가 되었다고.”
“그 말은…….”
“나, 녹림패왕이자 녹림맹주이자 녹림맹 총표파자(總瓢把子)이자 녹혈마공의 계승자 갈사혁이 말하겠소.”
사람들은 갈사혁이 무슨 생각으로 비무대 위로 뛰어올랐는지 눈치챘다.
그는 싸울 생각이었다.
“나와의 비무로 승부를 가립시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귀빈석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비무에는 맞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철혈무정 백류산. 언젠가 그대와 한번 겨뤄보고 싶었지.”
갈사혁이 지목한 상대는 백류산이었다.
“나와 강호의 앞날을 걸고 한판 붙어 보지!”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한 비무 신청.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강은.
“…….”
격하게 분노했다.
* * *
세상의 음모와 계략은 얼마나 간교하고 또 얕을까.
꼭 흙탕물을 끼얹는 것과 같았다.
갈동탁이 쓰러졌을 때, 이강은 갈사혁을 보았다.
그가 도끼를 매만지면서 전음하는 것을.
입을 가리려고 했지만, 종종 움직이는 입 모양이 보였다.
그 전음의 상대를 찾는 것은 조금 더 어려웠다.
갈사혁보다는 조심스러운 인물이었겠지만, 이강은 사도련주 서문재가 그 상대임을 알아챘다.
그는 갈사혁이 전음으로 상의할 만한 인물이었으며, 갈사혁의 전음이 끝난 직후마다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어 입을 가렸다.
그리고 노식의 실수로 인해 무승부 선언이 났을 때, 갈사혁과 서문재는 분명 웃었다.
‘처음부터, 결과에 납득할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갈동탁을 마지막으로 내보낸 것은 저쪽의 의견이었다.
아마 무승부가 되지 않았다면 노식이 비겁한 수를 썼다든지 하며 트집을 잡았을 것이다.
‘무승부 선언이 나오자 기뻐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이강을 분노하게 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노렸나.’
갈사혁은 태산에서부터 유독 백류산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처음부터 백류산을 상대할 적으로 상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판을 짠 뒤에, 공개적인 비무 신청으로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이미 백류산을 상대할 준비를 해 두었을 것이다.
백씨세가의 무공을 연구하고, 그 파훼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이강은 태평장에서 진작 이상한 점을 느꼈었다.
우원(右院)에 찾아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갈동탁과 다시 한번 대련을 했다.
갈동탁은 유난히 이강의 검술에 잘 대응했다. 그때는 그저 감각이 날카롭게 타고났나 생각했는데…….
으득.
이강은 이를 악물었다.
갈사혁은 늙고 교활한 짐승 같은 자였다.
더군다나 비무에서 이기든 지든 손해는 백류산이 더 크다.
백류산은 곧 무림맹주로 내정된 자였으니.
그때, 이강의 머릿속에 신승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가 치미느냐?」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승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네가 나서 보겠느냐?」
“……!”
「저 늙은 산적 놈은 분명 강하다만. 어디, 붙어 볼 수 있지 않겠는고.」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믿지 않을 말이기도 했다.
젊은 이강이 천하십대고수의 일원인 녹림맹주를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기엔, 가능하다.」
하지만 그 발언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신승이었다.
이강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뭘 어떻게 하나. 가서 건방진 소리 말고 나랑 붙어 보자고 하거라.」
신승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뒤는 내가 봐 주겠느니라.」
그리고 갈사혁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겁먹었나 백류산!”
이제는 도무지 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백류산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비무대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갈사혁은 갑작스레 자신의 얼굴에 쏟아지는 바람에 당황해서 신승을 바라보았다.
신승은 장풍을 날려 놓고 딴청을 피웠고, 그 비무대 위로 이강이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신승이 껄껄껄 웃었다.
그가 웃는 소리는 혜광심어와 섞여 머릿속을 징징 울렸다.
관객들이 어지러운 듯 신음을 흘리고, 심지어는 갈사혁마저 얼굴을 찡그렸다.
「하하하, 격에 맞지 않다!」
신승이 호통을 치듯 외쳤다.
「일개 산적이 어디 백도무림의 수장에게 싸움을 거나. 이 모리배 같은 놈!」
신승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쩌렁쩌렁 울렸다.
갈사혁은 지지 않겠다는 듯 외쳤다.
“그깟 부맹주! 뭐가 대단하다고 핑계요!”
「이제는 그가 맹주다! 나는 이 순간 무림맹주를 그만두고, 내 자리를 부맹주 백류산에게 넘길 테니.」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신승은 으하하 웃으며 갈사혁의 목소리를 묻어 버렸다.
「대신 네게는 다른 상대를 주마!」
“뭐……?”
그리고 이강이 녹림맹주의 맞은 편에 섰다.
신승의 혜광심어가 멈추자, 장내에는 싸늘한 침묵만 가라앉았다.
“녹림맹주.”
먼저 입을 연 것은 이강이었다.
“건방진 개소리 그만두고 나랑 붙지.”
갈사혁은 두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