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영화제자들 (2)
“에잇 젠장! 이게 무슨 고약한 냄시야!”
그리 말하며 나타난 이는 두툼한 옷에 또 겉옷을 걸쳐 입은 자였다.
그 덕에 회중시계의 폭발에도 멀쩡해 보였다.
잘 만든 가죽옷은 어지간한 천 갑주에도 버금갈 만한 것이다.
회중시계가 폭발한 잔해는 그 가죽 겉옷에 박혀 있었다.
“어, 도원명!”
먼저 나타났던 영화제자가 놀라서 겉옷 사내를 가리켰다.
겉옷을 입고 있던 자도 이변을 알아챘다.
회중시계의 폭발을 뒤집어쓴 겉옷에서 탁한 연기가 솟고 있었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더니 허겁지겁 옷을 벗어 던진다.
옷은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회중시계의 기관 안에 들어 있던 녹색 액체는 극독 중의 극독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계속 품속에 넣어 두고 다녔으니 소름이 끼칠 법도 한데, 담현은 눈앞의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웃고 말았다.
“인석아, 뭐가 그리 웃기든?”
골탕을 먹은 자가 콧김을 씩씩 뿜었다.
“진정해라. 반가운 사질을 만나지 않았냐.”
“반갑긴 무슨. 뺀질뺀질해 가지고 말이야.”
두 영화제자는 그리 투닥거리며 싸웠다.
그들의 이름은 각자 도맹, 도원명이라고 하였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키가 큰 자가 도맹, 얼굴이 붉고 하체가 튼실한 자가 도원명.
둘 다 영화제자로서 유정신의 사제였다.
일대제자 중 막내 취급을 받는 유정신이지만, 사실 영화제자 중에 사제들이 있던 것이다.
담현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린 시절 청림에 입문했을 때 그를 쉴새 없이 괴롭히던 이들이다.
“사숙들은 뭐 그렇게 옷을 두껍게 입고 계십니까. 날도 따듯한데.”
“북해에서 와서 그렇다 북해에서!”
“북해야 추워서 그런 거고 이곳은 따듯하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오랜만에 본 사숙한테 꼬박꼬박 말대꾸야!”
도원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추적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지만 담현은 깜짝 놀라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도맹과 도원명이라는 두 명의 영화제자가 합류한 이상…….
“여긴 왜 온 겁니까?”
“정신 사형한테 연락이 왔지 뭐냐. 당장 청림으로 복귀하라고. 그 길에 곤륜산맥에 들러 대기하라고 했지. 그런데…… 그 이강이라는 아이는 없나 보구나?”
다혈질의 도원명 대신 도맹이 그리 말했다.
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은 조금 늦게 올 겁니다.”
“……흠. 뭐 상관없겠지. 그쪽에는 도천 사형이 계실 테니까. 아쉽군.”
“뭐가 아쉬운데요.”
“그 아이를 만나 봐야 안 쓰겠냐. 우리들이 그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떤 기분인 줄 알아?”
이강의 이야기가 새외에 나가 있던 영화제자들한테까지 뻗어 나간 것인가.
담현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도원명이 얼굴을 쓰윽 내밀고 외쳤다.
“그 기똥찬 놈 한번 실제로 만나 보고 싶다.”
“그래, 딱 그거지. 우리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해.”
“그렇게 대단한 것이 들어왔다는데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한번 보고 싶다 이거지.”
그 목소리에선 선망이나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강은 영화제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듯하다.
징그럽다고 느낀 담현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생기긴, 뻔드르르하게 생겼죠.”
“킁, 담현 넌 아직도 차력을 못 배우지 않았냐.”
차력(借力)이라고 하였다.
이강이 천뢰백미호의 힘을 빌려 뇌전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처럼. 힘을 빌린다는 뜻이다.
아직도 차력을 못 배우지 않았냐는 도원명의 말에 담현이 얼굴을 구겼다.
“못 배운 게 아니라 안 배운 겁니다. 신선들한테 알랑대고 떡고물 주워 먹으려는 게 싫어서.”
“하! 말은 바로 해야지. 네 떡잎이 누래서 림주님이 금지하신 것 아니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담현이는 아직 정신적인 성장이 필요하겠다, 하고.”
담현의 입에서 결국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싯팔.”
“사숙 앞에서 욕지거리하는 것 보게! 이 사부 등에 칼 찌른 파렴치한 놈아!”
그 이야기는 담현의 역린이나 다름없었다.
반성하고 있는 옛날이야기를 왜 또 꺼낸단 말인가.
이래서 이 사숙들이 싫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까먹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왜 갑자기 찾아와서 지랄입니까!”
“어쭈? 너 이거 사숙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기사멸조라고 알아 이 자식아!”
도원명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답했다.
“네놈들 중원까지 무사히 모셔 가라고 해서 왔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나 없이 잘해 보쇼!”
담현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숙 둘이 돕겠다고 나섰다.
그가 아는 사숙들이라면 호위로서 부족함은 없으리라.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을 터.
사실, 담현이 굳이 이 고생을 더 할 이유도 없었다.
“에라!”
담현은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암천추살대의 포위망이 어쩌고 하든 상관없었다.
담현이 추격에 고생한 이유는 딸려 있는 짐덩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초절정고수인 고요자나 갈동탁도 담현에게는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홀몸이라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기척을 죽이고 포위를 벗어난 뒤, 청호와 함께 달아나면 그만이다.
“저놈 보게!”
하지만 담현은 얼마 걷지 않고 멈춰 섰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청림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무언가 턱 걸린다.
담현이 그리 머뭇거리자 도원명이 한마디 했다.
“왜 안 가냐! 간다더니!”
“……제기랄!”
담현은 몸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강과 약속하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을 중원까지 제대로 인도하기로.
“사숙님들, 와 주셔서 고마우니까 적당히들 좀 합시다. 예?”
“참내.”
도맹과 도원명이 비웃거나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입을 다물어 주었다.
그리고, 수풀 속에서 쇠뇌들이 쏘아졌다.
도맹이 등에서 날이 두 개 달린 창을 뽑았다.
극(戟)이라고 불리는 무기다.
철판도 뚫는 철시가 가볍게 튕겨 나갔다.
소란을 피웠으니 암천추살대에게 발각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암천추살대가 들고 다니는 쇠뇌는 위력적이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쇠뇌들 사이에 함께 날아오는 우모침들이 더 위험하다.
한 대라도 맞으면 몸이 굳어 버리는 마비산(痲痹酸)이 잔뜩 발라져 있다.
도맹이 극을 또 한 번 휘둘렀다.
그 쇠털처럼 가느다란 암기들은 강렬한 바람에 모조리 튕겨 나갔다.
도원명이 움직였다.
탄탄한 다리근육이 팽창하고, 시뻘건 얼굴의 도인은 놀라운 속도로 수풀로 들어갔다.
그리고 암천추살대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풀에서 날아왔다.
도원명이 잡아 던진 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암천추살대원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그들의 운명이 변하지는 않았다.
도맹이 극을 놀라운 속도로 찔러 댔기 때문이다.
퍼퍼퍼퍽!
한번 극을 찌를 때마다 암천추살대원들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네 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암천추살대의 일개조가 전멸할 때까지는 눈 몇 번 깜빡일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가죠.”
담현이 앞장섰다.
“커억. 후.”
도맹과 도원명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성큼성큼 뒤따랐다.
수풀을 해치고 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담현의 무공은 겨우 절정 수준에 간신히 이른 상황.
홀로 암천추살대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힘들었지만, 사숙 둘과 함께하는 지금이다.
돌아가는 길은 거침없었다.
스슥-
수풀 너머로 추적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일부러 기척을 숨기지 않는 듯했다.
그 수는 점점 불어났다.
담현과 도맹은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걸었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한 나무 앞이었다.
나무는 껍질이 벗겨져서 특수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담현이 얼마 전 직접 새긴 것이었다.
발치를 내려다보면 기문진을 위한 돌과 나뭇조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담현은 그것을 발로 걷어차서 진식을 흩어 놓았다.
스르륵-
그러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졌다.
전면에 있던 빽빽한 수림은 사실 기문진의 조화.
그 안에는 숨겨진 공터가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서 죽어 가는 노식과 곤륜제자들.
팽무아와 고요자가 무기를 들고 경계했다.
담현은 도맹과 도원명을 가리키며 말해 주었다.
“내 사숙들이다.”
팽무아가 당황했다.
고요자는 도맹과 도원명의 옷에 새겨진 영화제자의 표식을 보고 놀랐다.
“설마…….”
“도맹입니다. 옆은 사제인 도원명이지요.”
그들은 같은 도인인 고요자에게 포권을 하며 예를 표했다.
인사치레를 길게 할 여유는 없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흩어져 있던 추격자들이 전부 몰려들었다.
물론, 다분히 의도된 일이었다.
“우리가 길을 뚫겠소이다.”
도원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도맹이 자신의 극을 뽑아 들고, 도원명은 그 옆에 섰다.
이런 수림에 제대로 된 ‘길’이 있을 리 없다.
그 길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
저 수풀 속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암천추살대의 마인들을 뚫고.
고요자가 놀라서 말리려는 것을 담현이 막았다.
“지켜보시죠. 못 뚫으면 다시 우리끼리 가면 됩니다.”
“자식 말본새는!”
도원명이 침을 퉤 뱉곤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일행은 물론 마교도들마저 당황시킨 일이 벌어졌다.
도맹이 갑자기 몸을 수그린 도원명의 어깨에 올라탄 것이다.
도원명은 당황하긴커녕 제 사형을 어깨에 지고 일어섰다.
즉, 목마를 탄 꼴이다.
“……별짓을 다 하는군.”
“보아라 담현! 이게 차력이라는 것이다!”
도원명은 벌떡 일어서서 포효했다.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덩치 큰 사형을 짊어져 힘든 걸까 싶었지만, 설마 초절정 고수가 그럴 리는 없으리라.
사제의 어깨에 올라탄 도맹이 휙휙 극을 휘젓기 시작했다.
담현은 눈을 찌푸렸다.
차력이라면 힘을 빌리는 일을 말하는 것.
그렇다면 누구의 힘을 빌린다는 것일까.
도원명에게서는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도맹이 사방팔방으로 휘젓고 있는 극(戟)이 단서가 될 듯했다.
극을 쓰는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가 누구던가.
더욱이, 도원명이 든 극은 보통의 극과 달리 조금 더 화려하고 거대했다.
떠오르는 게 있다.
담현은 무심코 입을 헤 벌렸다.
‘……방천화극(方天畵戟)?’
저 극이 그 전설적인 무기의 진본은 아니겠지만.
도맹의 눈가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휘두르는 극에서는 거센 바람이 휭휭 불었다.
그렇다면 도맹이 힘을 빌린 대상은.
인중룡(人中龍).
자(字)는 봉선이요.
이름은…….
그렇다면 그를 태운 도원명은 무엇의 힘을 빌린 것인가.
사람의 입에서 나올법하지 않은 포효가 답을 주었다.
“히히히힝!”
괜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이 아니었다.
사람 중에는 여포(呂布)라 하면.
말 중에는 적토(赤兎)라 하였다.
사숙 도원명은 무려 전설적인 말의 힘을 빌린 것이다.
목마를 탄 한 쌍의 도인이 달려가는 꼴은 결코 멋지다고 할 수 없었다.
“별꼴이군.”
그러나 보기에 어떻든 그 위력만은 폄하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무가 자신을 가로막든, 마인들이 쇠로 만든 그물을 던지고 쇠뇌를 쏘든 상관하지 않았다.
마치 그 고대에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전장을 휘젓던 것처럼.
콰콰콰쾅!
부딪친 사람이 하늘을 날고 나무들은 부서지고 박살 났다.
방천화극을 흉내 낸 극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도원명은 마치 실제로 전마(戰馬)가 된 듯 넘어지고 뒹구는 마인들을 짓밟으며 나아갔다.
담현이 그리 외치고.
그의 일행들도 노식을 치켜 메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곤륜에서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것이 마지막 추격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정사연합의 세력권 내로 진입했다.
파천도를 탈출한 이강 일행이 대막에 접어든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