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대회전(大會戰) (4)
흑암, 망혼, 귀령.
참사교의 호교사령 셋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몹시 드문 일이다.
근 수십 년을 통틀어 처음일 정도였다.
그들은 이곳 곤륜산에 있었다.
십수 만의 사람들이 서로 죽이며 피를 흘리고 있는 와룡분지 근처에.
가장 뒤늦게 등장한 귀령에게 망혼과 흑암의 시선이 꽂혔다.
“유유자적이군.”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귀령이 고운 눈썹을 찌푸렸다.
그 간단한 몸짓에도 기품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우아한 모습에서 쌍두마뇌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망혼은 토악질하는 시늉을 했다.
“적응이 안 되는 면상이군, 너한테 하는 소리지 다른 소리일까. 임무도 실패한 년이.”
“제 얼굴에 침을 뱉는군. 포달랍궁에서 네가 벌인 추태도 생각 못 하고.”
“……여래를 만난 게 너였으면 쥐포가 됐을 거다.”
망혼은 그리 말하고도 분이 치미는지 씩씩댔다.
다시 만나면 석가여래를 가만히 안 두겠다는 둥, 허풍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망혼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귀령도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이전까지는 감히 현세에 강림한 석가여래에게 대적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세상, 참사천이 열리고 나면…….
흑암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력의 냄새가 나더군. 수호문의 영화제자들이 왔나?”
“네, 가둬져서 나오진 못할 거예요.”
“죽음을 확인했나?”
“아니요.”
세상을 우습게 여기던 흑암도 영화제자들의 일에 신경을 썼다.
참사천이 열리면 강해지는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흑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미안해요. 그들의 기습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확실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어요.”
“아니.”
흑암과 귀령의 관계는 그나마 망혼 간의 관계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망혼이 침을 퉤 뱉으며 씨근덕댔다.
“네년은 왜 흑암한테만 존대이지? 내가 우습나?”
“그래, 예전에 붙어먹기라도 했어?”
“이 천박한 작자가!”
귀령도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그녀로부터 농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산천초목이 진동하고 무형의 기파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그 대상이 된 망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로의 기파가 허공에서 맞부딪쳐 요란한 소음을 냈다.
“그만.”
흑암이 묵직하게 만류했다.
“대계를 그르칠 생각이라면 너희 둘 다 이 자리에서 죽여 주지.”
“……더럽게 무게 잡는군.”
망혼이 먼저 기세를 거뒀다.
흑암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 역시 지금 순간만을 기다려 왔을 뿐이다.
“무고의 진은 거의 완성되었다.”
무고(巫蠱)란 오래된 무당들이 사람을 저주하는 방식이었다.
큼지막한 항아리에 수많은 독충들을 욱여넣는다.
독충들은 항아리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서로 상잔하며 먹어 치운다.
마지막 남은 독충 한 마리는 원념과 독기를 잔뜩 머금고 새로 탄생한다.
그 항아리를 고독 항아리, 또는 무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물이 꽤 많이 들었을 텐데요.”
귀령은 비릿한 향을 맡았다.
피 냄새와 향냄새, 이 주변에서 느껴진다.
아마 와룡분지를 둘러서 수백 명에 달하는 제물이 바쳐져 있을 것이다.
무고의 진을 발동시키기 위한 제물이다.
망혼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곁에는 열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익숙하지?”
귀령이 흠칫 놀랐다.
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관짝들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백 년 전이 아니다, 수천 년 전의 관이었다.
그 관짝의 독특한 양식을 귀령은 알아보았다.
“……순장된 봉신들의 관이군요.”
현재의 중원인들에게는 아득하기만 할 고대, 은주(殷周) 시대.
그 시대의 마지막 목격자 중 하나로서 그녀는 그 관의 의미를 알았다.
“그래, 하늘길이 열려 있던 때의 놈들이지.”
그때와 지금의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게다가 순장되었다고 해도 봉신(封臣).
보통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약해지고 쇠락한 인간과 달리, 가지고 있는 힘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던.
귀령은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안에 있는 봉신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의식을 준비한 망혼만이 알 것이다.
관들은 기묘한 문양 위에 있었다.
망혼은 자신의 입술에 걸려 있는 고리를 움켜잡았다.
“인사하라고, 오랜만일 텐데.”
그러고는 그 은고리를 가차 없이 잡아 뜯었다.
피가 픽, 치솟았다.
주술적인 힘이 그의 주변을 휩쓸었다.
오랫동안 녹슬어서 붙어 버린 관짝의 못들이 움찔한 것이 그 순간이었다.
퉁- 투퉁-
못이 저절로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자못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지만, 호교사령들은 침착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결국 관짝이 열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말라서 목내이가 된 시신들.
당연히 죽어 있어야 할 그 시신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열 구의 시신이 전부 일어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관에 들어 있을 때는 티 나지 않았지만, 비로소 그들의 커다란 체구가 드러났다.
장신 축에 드는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크다. 무려 팔 척은 되는 듯했다.
마르고 썩은 눈꺼풀이 열리며, 회백색 눈알이 나타났다.
흉흉하기 그지없다.
당장이라도 호교사령들에게 덤벼들 것 같던 고대의 목내이들.
그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 ……주들이……시여…….”
헐고 말라붙어 버린 성대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왜……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그 모습에 귀령은 어째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사람은 없었다.
대표로 입을 연 목내이가 고개를 들어 와룡분지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피 냄새를 맡고 있었다.
“……저희를 칼로…… 쓰고자 하십니까?”
“저들을…… 죽여 바치……리까?”
명을 내린다면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어들 기세였다.
그리고, 은주시대의 봉신들은 저 고수들의 난투에서도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망혼은 그들에게 싸움을 주문하지 않았다.
“아니, 너희들은 제물이다.”
그 차가운 말에 봉신들이 몸을 떨었다.
“……오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비치는 감정은 분명 기쁨이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까.”
말라 버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무릎을 꿇은 채 목을 내밀었다.
망혼이 검을 들어, 단칼에 그들의 목을 베었다.
후두둑.
순식간에 목 없는 시체 열 구만이 남았다.
그 잘린 목에서, 놀랍게도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고대인들의 피는 끈적하게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증발했다.
수천 년 동안 죽지 않고 관 속에서 잠들어 있던 은주시대의 봉신들.
그들은 이곳 곤륜산에서 허망하게 목이 잘림으로써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
증발한 피는 붉고 요사한 기운이 되어서 하늘로 모여들었다.
와룡분지 전체에 반투명한 막이 형성되기 시작한 게 그 순간이었다.
마치 붉은 알처럼.
혹은 무고를 만드는 항아리처럼.
와룡분지가 외부와 격리되었다.
“……준비되었다.”
무고의 진이.
피, 피, 피.
와룡분지에 피가 흘렀다.
철기병들이 방진을 이뤄서 마교도들을 휩쓸었다.
갑주를 입은 기병을 태운 군마는 무겁기 그지없다.
콰자작!
무공을 익힌 마인들도 짓밟히고 머리가 박살 났다.
그러나 철기병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초절정의 마인 한 명이 발굽에 짓밟히는 대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를 향해서 날카로운 창이 짓쳐들었다.
“크압!”
마인은 그 창대를 되려 움켜잡았다.
“허, 허억!”
철기병의 눈앞으로 마인이 가까워졌다.
마인은 도끼 한 자루를 기병의 이마에 박아 넣었다.
쩌억!
천근추를 발휘해 발을 내려찍자, 강인한 군마의 등허리가 우드득 내려앉았다.
경험 많은 철기대라도 이런 공격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말과 시신이 나뒹굴자, 그 주변을 지나가던 말들이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
그 기동력을 잃는다면 철기병 역시 평범한 병사로 전락한다.
“머리를 뽑아 버리겠다!”
피에 취한 마교도들이 마치 쥐 떼처럼 달려들었다.
쓰러진 철기병들의 팔다리가 뜯겨 나간다.
“끄악!”
비명이 난무한다.
그들의 죽음을 얌전하게 지켜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무림맹 측에 참전한 고수 둘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꼭 닮은 외모를 가진 형제 도객이었다.
그들은 큼지막한 체구에 비해서도 긴 태도를 들고 있었다.
태도의 끝이 땅바닥을 긁었다.
그 자취를 따라 선명하게 불똥이 튄다.
태도 두 자루는 도강을 흠뻑 머금고 있었다.
그들이 펼쳐 낸 도법은 팽가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마교도들은 칼날의 폭풍에 내던져진 꼴이 되었다.
잘려 나간 사지가 하늘 높이 솟았다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팽가쌍호. 팽구인과 팽구휘는 자신들의 무공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혼란스러운 전장이었지만 반경 삼 장의 무인지대가 생겼다.
그들은 낙마한 철기병들을 구조하러 온 것이었다.
어딘가가 잘려 죽은 마인들의 시신들이 철기병들을 뒤덮고 있었다.
그들은 그 시신들을 치워서 철기병들을 구조하려 했다.
곧 눈을 뜨고 있는 철기병의 얼굴이 나타났다.
“죽었어.”
하지만 그것은 잘린 목이었다.
철기병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크흐흐.”
“제기랄, 하핫!”
어째선지 팽가쌍호는 웃었다.
팽가의 자제로서 의협(義俠)을 아는 그들이었다.
전장의 피가 그들을 취하게 한 것일까.
아니, 그렇다 치기에는 과했다.
아직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붉다.
와룡분지는 붉은 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챈 자가 적었다.
팽가쌍호의 두 눈에는 붉은 기운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전장으로 나아갔다.
초절정 고수 둘을 대적할 이들은 마교 내에도 별로 없었다.
그들은 태도를 휘두르고,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팽가의 보도에 사람 기름이 끈적하게 얽힐 때까지.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도를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간만에 도가 막혔다.
열기로 뜨거워진 관자놀이.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상대의 목을 베려니, 전신에 짜릿한 감전의 충격이 느껴졌다.
팽구인은 일순간 정신을 찾았다.
“이 멧돼지 같은 새끼들!”
그 앞에는 피투성이의 담현이 있었다.
남의 피를 뒤집어쓴 것도 있었고, 자신의 상처에서 난 피도 있는 듯했다.
“정신 차리고! 네 대장들한테 데려가 달라고!”
“멈춰야 해! 싸우다 뒤져 봤자 참사교 놈들 배나 불릴 뿐이야!”
담현이 악을 질렀다.
그는 이강을 돕다가 내공의 태반을 잃었다.
그런 몸으로 팽가쌍호를 멈춰 세운 것은 담현으로서도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팽구인의 눈빛에 돌아왔던 총기가 점점 흐려졌다.
종래에는 다시 눈이 붉게 물든다.
그는 담현을 밀쳐 낸 뒤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담현은 욕설을 내뱉었다.
도맹이 목숨을 바쳐서 와룡분지를 나갈 틈을 만들어 주었지만, 담현은 벗어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분지 내의 모두가 죽는다.
와룡분지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형성된 뒤로, 분지 내의 무인들은 대부분 이성을 잃었다.
십수 만의 사람들이 전부 죽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곧 무언가의 재료가 될 것이다.
담현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만 막상 남았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람들을 탈출시키고자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군중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정사연합의 수좌인 백류산을 만나고자 했지만 찾을 수도 없다.
반투명했던 결계는 점차 탁한 붉은빛으로 진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벗어나야 할까.
“……어떻게.”
담현의 눈이 막막함으로 흐려졌다.
무력함이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때.
앞섶을 긁는 감각이 느껴졌다.
담현은 무심코 옷깃을 들쳤다.
어디가 아픈가 싶을 정도로 얌전했던 청호가 재빨리 뛰어나왔다.
그는 담현의 머리 위로 휙 올라갔다.
“낑!”
그러고는 어느 한 방향을 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담현은 그쪽을 돌아봤다.
「저기…….」
청호가 튀어나온 이유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천뢰백미호 형제자매들.
저 결계 너머로, 푸른 여우들이 보였다.
“이강?”
그 여우에 올라타 있는 이강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