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멸문한 청림 (3)
대서고주 유정신은 살아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다.
대략 일백여 명.
그들은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오화대서고에서부터 이어지는 비밀통로는 바로 그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로 이어져 있던 것이다.
“수린아-!”
누군가 유수린을 맞이했다.
유수린은 달려가서 그 도인의 품에 안겼다.
“도선 사백!”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도선은 체구가 크고 푸근한 도인이었다.
그는 영선궁의 명일각주로서 도화제자를 이끌던 일대제자였다.
예전과 달리 홀쭉하게 살이 빠진 모습이다.
준명과 손희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제각기 살아남은 청림문도들과 해후했다.
“세영이와 유준이 죽었어요. 제가 봤어요.”
“그래, 그래. 그랬단다.”
유수린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나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기쁘다.
하지만 겨우 백 명이다.
천이 훨씬 넘는 문도 중에 일백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너무 많이 죽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청림에서, 눈 덮인 시신이 되어 쓸쓸하게…….
“으흐윽!”
문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슬픔을 나눴다.
그리고 이강과 담현은 조금 떨어져서 서 있었다.
몇몇이 그들을 알아보고 인사하기에 포권으로 받았다.
초화당주나 지검각주도 와서 오랜만에 만난 이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나같이 지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죄책감’이 떠올라 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대신 죽은 자들을 그리며 괴로워하는 법이다.
그들의 씁쓸한 표정을 보며 이강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살아남았다. ……어떻게?’
청림 문도 중 구 할이 넘게 죽었지만, 일백 여명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사문에 남은 싸움의 흔적은 무참했다.
참사교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대항한 청림도 마찬가지였다.
사문이 침략당한 상황에서 몸을 사리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봉신함이 탈취당할 정도였는데.’
이강은 청림의 가장 큰 사명을 알고 있었다.
백운봉에 있는 봉신함을 참사교로부터 지키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위중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봉신함이 탈취당했다.
그것은 청림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청림의 최고수인 림주가 바로 그 백운봉에 죽어 있지 않던가.
그것을 보고 온 이강에게 지금의 광경은 예상외였다.
“림주님이 희생하셨단다.”
유정신이 이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강은 제 사부를 돌아보았다.
나이를 먹은 뒤로는 잘 보지 못했던 사부였다.
하지만 그 온화한 미소는 여전했다.
세월이 마치 재처럼 소복히 가라앉았으나, 어리고 병든 제자를 보던 그 따스한 눈빛은 그대로다.
“참사교 호교사령 중 가장 강대한 흑암이 찾아왔지. 차력을 쓸 수 있는 교도 수백을 동반해서.”
차력의 위험함은 이강도 명백히 알았다.
게다가 흑암 본인 역시 림주 이상으로 강할 터.
“림주님은 나와 몇 명의 문도들을 피신시키고자 하셨다.”
담담하게 말하려는 듯하지만 유정신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나를 포함한 일백여 명이 그 대상이었지.”
림주는 안배를 해 둔 것이다.
문도의 일부를 살리기 위해서.
“너희는 모르겠지만, 사대제자들을 오 년 전쯤 입문시켰다. 그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지. 피가 흐를 테니 말이다.”
싸울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파문시키고.
“그 이후로는 죽을 자를 정했다. 모두가 림주님의 곁을 지키고자 했지만 림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어.”
유정신도 남고자 했다.
하지만 림주는 일백여 명의 문도들을 내보냈다.
“그곳에서 모두 죽으면 그것으로 청림은 끝이겠지. 림주님은 끝까지 백운봉에 남아 의무를 다하셨단다.”
림주로서는 도망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문도 구 할의 희생으로 문도 일부를 살리는 데에 성공했다.
유정신은 그 책임자로서 이곳에 결계를 세우고 문도들과 금기보패 몇 점을 숨겼다.
이 피신은 청림의 명맥이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우리가 연명을 위해 목숨을 지킨 것은 아니다.”
유정신은 확고히 부정했다.
“우리는 한 자루의 비수가 된 것이다.”
세상이 참사교의 손아래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저항할 이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청림이다.
그리고 청림은 일백여 명의 문도라는 마지막 칼날을 숨겼다.
“그리하여 여기 모여 마지막으로 한번 휘둘러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유정신의 얼굴은 이강이 처음 보는 결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강이 계속 자신을 바라보자, 유정신은 문득 머쓱한 듯 웃었다.
“너도 성취를 얻었다 들었다. 절대지경에 들었다고?”
“예. 그리되었습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구나. 하하, 어디 한번 실력 좀 보여 주겠느냐?”
유정신으로서는 궁금할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제자가 과연 어떤 성취를 얻었을지.
이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정신이 크게 외쳤다.
“도강 사형, 도선 사형. 와 보십시오!”
도강은 지검각주로서, 청림제일검이었다.
도선은 명일각주로서, 청림제일의 술법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강의 실력을 보겠다고 모였다.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일백여 명의 문도 대부분이 구경을 왔다는 것이다.
마치 장터에 공연패가 온 것처럼 요란했다.
이강은 이것이 사문 어른들의 노림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정신과 사백들은 문도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합류한 영화제자 이강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그러면, 부족하나마 얻은 성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강은 때문에 결심했다.
그가 얻은 것들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맞부딪치겠다고.
도강과 도선은 이강이 절대지경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청림의 절학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검강이 이강의 전신으로 쇄도했고.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술법들이 상하좌우로 날아들었다.
카카캉!
벼락처럼 움직이고, 천둥 같은 소음을 냈다.
도강과 도선이 나가떨어지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끄어억!”
도강은 먼지투성이로 굴렀다.
도선은 땅바닥에 손을 짚고 헉헉거렸다.
싸늘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차력을 쓰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무공과 술법은 능히 남아 있는 이들 중 수위를 다퉜다.
하지만 이강은 손쉽게 그들을 파훼했다.
초극절기를 쓰지도 않았다.
손에 든 한 자루의 유성아. 그리고 살아 있는 듯 날아다니는 백아 한 자루.
그것만으로도 두 고수들을 제압하는 데는 충분했다.
“대단하구나, 이강.”
도강이 그리 말하고, 가라앉았던 침묵이 깨끗하게 날아갔다.
“와아아아아!”
“대단해!”
이강의 이름을 연호하는 청림 제자들.
함성과 흥분이 장내를 채웠다.
일대제자부터 삼대제자들까지 다양한 인원이 모여 있다.
이강의 활약에 흥분한 것은 젊은 제자들이 더욱 컸다.
“불사신룡, 역시 불사신룡이야!”
“언제 적 별호야, 지금은 청안검선이잖아!”
조금은 낯 뜨거운 이강의 별호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강호에서 떨쳤던 이강의 명성은 사실 청림에서 더욱 크게 울렸다.
사문 밖으로 나서지 않는 무화제자 도화제자들에게, 이강은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이강은 청림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것을 실감했다.
“내 제자가 돌아왔으니, 우리에게는 다시 기회가 왔다!”
유정신이 그리 말하자 환호가 더욱 거세졌다.
젊은 제자들은 이강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기도 하고, 검을 쓰는 이들은 이강에게 검법의 묘리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이곳에서 해 주는 조언이 얼마나 큰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강은 성심성의껏 제자들을 도왔다.
옹기종기 모였던 제자들이 전부 떠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이강은 약간의 피곤함을 느꼈다.
솔직히, 도선 도강과 겨루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
“네 검이 오기조원의 경지에 들었더구나.”
도강이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무슨 겸손을, 그때 너를 내 제자로 받았어야 했는데.”
한때 이강에게 무화제자가 되라고 제안했던 도강이었다.
그 강퍅한 표정과 형형한 안광은 그대로였다.
마찬가지로 이강에게 도화제자가 되기를 권유했던 도선이 핀잔을 주었다.
“무슨 소리요 사형. 그랬으면 이강 저 아이가 사부를 능가했을 텐데, 속 쓰려서 괜찮았겠소?”
“제자가 스승을 보고 배우듯, 스승 역시 제자를 보고 배우는 법. 만일 그랬다면 나도 절대지경에 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도강은 십수 년 전에도 청림제일검이었다.
그런 그도 결국 절대지경에 발을 걸치지는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네가 우리들의 희망이구나.”
그리 말한 도강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강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것을 사부인 유정신이 알아보았다.
“얼굴이 좋지 않구나.”
이강은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이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더욱 강하지 않습니까.”
이강의 무공이 얼마나 강하다 해도 과연 림주보다 강할까.
그런 림주마저 흑암에게 죽었다면 이강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터였다.
“호교사령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것들도 차력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이강은 탁탑천왕을 만나 싸워 보았다. 정확히는, 탁탑천왕의 차력을 써서 강림시키기까지 한 참사교도였다.
본래의 힘은 별것 없을 자가, 천신의 힘을 빌려 이강을 막았다.
장삼봉과 천마가 아니었다면 천라지망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더군요. 그런데 한낱 사람인 제가 사람이 아닌 자들과 어떻게 싸워 이길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장삼봉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그 천하를 오시하던 절대고수들이 말한 넘지 못할 벽이 이강의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삼봉진인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강은 유정신에게 장삼봉의 이야기를 했다.
유정신은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을 알겠다.”
유정신 역시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그렇기에, 너는 더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너희들도 영화제자 아니더냐.”
이강은 옆에 앉아 있던 담현을 끌어들였다.
담현이 손가락을 들어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저도요?”
“그래, 너도 와서 앉아 봐라.”
담현은 이강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본디 영화제자들에게는 능히 전수해야 할 것이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사문 밖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에 가르치지 못했다.”
사부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제자를 가르치는 일일 것이다.
유정신은 늦었지만 그 의무를 수행하고자 했다.
“너희들도 차력을 배울 때가 되었다.”
영화제자들은 모두 차력을 익힌다.
유수린 역시 그러한 차력을 익혔다.
담현과 이강도 영화제자이니 그것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그리 갑작스럽게 배울 수 있는 일입니까?”
사실 이강은 이미 혼백의 빙의를 통해 차력과 비슷한 일들을 해냈다.
하지만 그 작동방식이며 본질은 상당히 다른 것들이다.
이강이 힘을 빌린 것은 신선 장삼봉이 아니라, 인간 장삼봉의 혼백이었으니.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유정신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싶었는데, 한마디 덧붙였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보통 기재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이강과 담현이라면 짧은 시간 내에 성과를 얻으리라는 확신이었다.
그 확신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력은 누구의 힘을 빌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우선…….”
“사부님은.”
담현이 끼어들었다.
“사부님은 누구에게서 힘을 빌립니까?”
담현의 질문에 이강도 문득 궁금해졌다.
유정신은 허허 웃었다.
“나 말이냐?”
마치 부처님의 미소처럼 온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