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림주 임기학 (2)
이강이 내려 달라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연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백운봉까지는 아직 꽤 많이 올라가야 한다. 경사가 가팔라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무슨!’
그런 위험한 곳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사고를 놀래키려 한 당돌한 어린애가 눈앞에 있다. 이강은 어이가 없었다.
“업어 주실 필요 없습니다.”
“나 때문에 다친 거니까. 나는 괜찮아. 전혀 힘들지도 않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요…….”
여전히 진리연의 등에 매달린 채로 이강이 답했다. 진리연은 스물 초반. 그리고 이강은 열넷의 나이다. 나이에 비해 아직 체구가 작고 몸이 마른 이강이기에 진리연이 힘들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창피합니다.”
명문가 자제의 위신이고 뭐고 그냥 쪽팔렸다.
특히 저 유수린이라는 꼬마애가 보는 눈이 몹시 곱지 않았다.
「그러게 처음부터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어야지.」
‘분위기에 휩쓸린 겁니다. 진 소저가 전혀 이상할 것 없이 말하니까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딱히 방법도 없었고요.’
다행히, 유수린이 거들어 주었다.
“사고. 아무리 그래도 쟤는 남자애잖아요. 남자애를 등에 업는 건 조금.”
“아…….”
진리연이 생각지 못했다는 듯 입을 벌렸다.
진리연의 눈에 어린 이강이 남자로 보였을 리도 없고. 명문가 규수처럼 남녀유별을 강조 받으며 자라지도 않았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제들을 돌보던 경험이 그녀를 무디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남사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음, 그런데 예전에 수린이 네가 준명이를 기절시켰을 때. 그때는 내가 업고 의약당으로 뛰어갔던 것 같은데.”
“그, 그건! 그건 오래 전 일이잖아요.”
이강이 얼른 끼어들었다.
“좀 그냥 내려 주십쇼.”
비로소 이강은 진리연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가다듬은 그는 애써 가슴을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발목이 시큰하긴 했지만 아픈 것은 마음의 상처 쪽이 더 컸다.
“음.”
살짝 신음을 흘리고, 이강은 발걸음을 뗐다.
그런 그를 유수린이 묘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척 보아도 진리연을 무척 따르는 듯했는데, 그래서 이강은 그녀가 자신을 고까워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강이 발을 움찔대면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눈썹이 떨렸다.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하더니 또 쳐다보는 것이다. 이강은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저건 분명 죄책감이었다.
‘왜 저렇게 보고 난리야.’
아니나 다를까. 유수린이 선택한 것은 이강에게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저기, 다리가 많이 아프면은…….”
그녀는 이강의 앞에 서더니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쪼그렸다.
“누가 볼 사람도 없긴 하니까. 나한테 업혀.”
진리연의 등에서 이강을 끌어내린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일까. 또래인 유수린이 제 등을 내밀었다.
이강의 얼굴이 흙색으로 물들었다.
“수린아, 조금 전에는 남자애를 업을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니?”
“그렇긴 하지만, 다리를 다친 손님한테 계단을 오르게 하는 것은 잘못이겠죠. 손가락질을 당해도 제가 짊어질게요. 사고는 가만히 계세요.”
비장한 그 말에 진리연이 눈을 크게 떴다. 감동한 눈치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강은 감동하지 않았다.
“자, 업혀!”
“비켜라.”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말하며, 유수린을 지나칠 뿐.
유수린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을 앞지르는 이강을 올려다보았다.
* * *
이강의 추측대로 유수린이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사람들 품속에서 자란 유수린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자애가 존경하는 진리연의 등에 업혀 있는 모습은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강이 내려서 발을 절뚝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가여웠다.
양심에 찔렸다.
유수린은 어리지만 책임감을 아는 사람이었다. 진리연 대신 자신이 업어 주겠다고 한 말도 진심이었다.
“진짜 내가 업어 줄 수 있는데.”
“쯧.”
혀를 차면서 차갑게 유수린을 내려다보는 이강.
그는 가타부타 말하는 대신 옷자락을 펄럭이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유수린은 그런 이강의 태도에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녀의 또래 친구들은 전부 같이 무공을 수련하는 사이였으니, 이강처럼 젠체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이강이라고 했지. 림주님이 정말 너를 백운봉으로 초대하셨어?”
“그래.”
“무슨 일일까. 외부인이 백운봉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강은 선두의 진리연을 따라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저기, 백씨세가라는 곳에서 왔다면서? 거기는 어때? 나는 여기서 평생 있었거든.”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다.”
“흐응, 너도 검을 차고 있는 것 보니까 검사구나. 나도 검을 배웠어. 리연 사고처럼 연검을. 네 검은 근데 엄청 크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는 왜 청림에 온 거야?”
유수린이 궁금한 점들을 잔뜩 쏟아 냈다.
대충 흘려넘기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던 이강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유수린은 하마터면 이강의 등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뭐, 뭐야.”
돌아선 이강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죽을병에 걸려서.”
무심코 이강의 손바닥에 손을 얹은 유수린이 화들짝 놀랐다.
손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얼음장같이.
“이곳이라면 혹시나 고칠 수 있을지. 확인해 보러 왔다.”
“아…….”
유수린의 표정이 난처해진 것을 확인하고, 이강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어린애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는 좀 조용히 올라갈 수 있을 듯했다.
이강의 생각대로 유수린은 더 이상 질문을 던져서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이강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주, 죽을병이라고?’
그제야 이강에게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음기가 이해됐다.
이러나저러나 그녀는 예비 도화(道花)제자였다. 그 말은 술법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 많은 진원진기를 가지고 있고. 상단전의 영력을 풍부하게 타고났다. 세상 만물과 오행(五行)의 기운을 유독 잘 느끼기도 한다. 그 방면의 재능은 진리연보다 더 뛰어날 정도였으니.
그런 유수린에게는 처음부터 이강의 수상한 점이 느껴졌다.
어쩐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가벼움.
평범한 사람에게는 느껴질 리 없는 한기가 흘렀으며, 주변의 공기가 종종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녀는 이강이 앓고 있는 태음절맥의 존재를 몰랐기에 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음기가 눈에 보일 것 같아.’
술법이라고 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날짐승들을 놀래키는 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지에 오른 도화제자들은 천문을 읽고 환술을 펼친다. 이야기 속 절대고수가 검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설화는 부양술의 일종일 것이다.
그리고 유수린은 통찰안(洞察眼)이라는 술수를 배운 상태였다.
상대방의 본질을 꿰뚫는 눈이라는 뜻. 언뜻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별것 아니다.
상대가 술자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운을 지녔는지 정도.
‘대체 어느 정도길래.’
한참 고민하던 유수린은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들었다.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어서 제 눈에 댄다. 이 별것 없는 손짓이 재능과 결합하면 훌륭한 술법이 된다.
‘급급여율령.’
나지막한 주문을 중얼거리자. 오른쪽 눈의 시야가 점점 변했다.
동공이 확장되고, 본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의 흐름, 태양이 흩뿌리고 있는 양기. 백운봉의 공기에 흐르고 있는 영험한 기운.
그리고 이강의 등.
‘별것 없는 것 같은데.’
확실히 이강의 몸에서는 푸르스름한 음기가 흐르고 있었다. 쌀쌀맞은 태도를 보면 유수린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별다른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수린은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진원진기를 끌어올려 통찰안을 강화한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더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처참한 이강의 몸 상태. 진원진기가 보통 사람보다 더 옅다. 죽을병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품고 있는 영력이 범상치 않다.
‘술법을 수련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강의 영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유수린보다 더 강한 영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청림의 이대 제자들보다 더. 도무지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다.
유수린은 홀린 듯 이강을 바라보았다.
점차 느껴졌다. 무언가 강력한 영물의 기운.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부터 범상찮은 물건이다.
그리고.
두근-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감각과 함께.
비로소 유수린은 이강의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알아챘다.
“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 비슷한 게 흘러나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강을 지키듯 맴돌고 있다. 이강이 잡귀에 씌거나 한 것은 아니다.
저런 걸 잡귀라고 할 수는 없다. 막대한 영력. 여태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
유수린으로선 한평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어…….”
비교하자면, 먹구름 속에 숨어 있던 용이 거대한 아가리를 드러낸 것처럼.
그리고, 이강과 그 누군가가 동시에 몸을 돌려 유수린을 내려다보았다.
유수린은 손을 눈에 가져갔던 그 자세로 굳었다. 훔쳐보다 들켜 버렸지만 아닌 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워낙 술법의 재능이 뛰어난 탓이었다.
통찰안을 능력 이상으로 사용해 버렸고, 여리고 성숙하지 못한 정신은 충격을 이겨 내지 못했다.
유수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진원진기가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다리라도 풀렸다간 백운봉 아래로 추락할 텐데.
‘위험해.’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질 듯한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짚었다.
“허허.”
노인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였다.
어깨에서 정순한 기운이 스며들면서 유수린의 폭주하던 내기를 안정시켰다.
“하악, 학.”
유수린은 비로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따라 흘렀다.
“수린아. 술법을 쓸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한단다.”
부드러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유수린은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죄송해요! 그리고, 미안해.”
이강은 멀뚱히 보더니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유수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몹시 부끄러웠다.
그리고 노인은 이강에게 말했다.
“손님을 마중하러 나왔는데. 어린 제자가 실례를 했구나.”
이강은 포권을 하며 답했다.
“실례랄 게 있겠습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림주님.”
유수린의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분명 백운봉의 정상에 있었을 청림주 임기학이었다.
“백이강이라고 합니다.”
하얀 수염이 마치 신선 같은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전혀 놀라지 않는 듯한 태연한 이강의 모습은 그를 감탄하게 했다.
비로소 이강과 상산검선 임기학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 순간, 이강은 다른 생각을 했다.
‘쟤는 왜 갑자기 미안하다는 겁니까.’
「으음, 글쎄다.」
갑자기 뒤에서 앓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수린은 이상한 자세를 한 채로 굳어 있었다.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눈에 댄 채.
‘무슨 짓이라도 했나요?’
「나야 저런 어린아이의 마음을 알겠느냐. 」
불사신검은 그러더니 손뼉을 딱 치면서 말했다.
「혹시 똥침이라도 하려다 딱 걸린 것이 아닐지.」
‘……퍽이나 그렇겠습니다.’
이강은 한숨이 나올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 청림주를 보았다.
분명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청림주가 유수린의 뒤에 서 있었다. 이강은 깜짝 놀라서 얼굴이 차갑게 굳어 버렸을 정도였다.
‘오는 기척을 못 느꼈는데.’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겠지. 어찌 되었든 범상치 않은 놈이다.」
‘그런가요?’
「저놈, 내가 보이는 듯해.」
이강이 깜짝 놀라 청림주를 보았다.
그는 빙긋 이강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