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6)
6화 동생, 백하준 (1)
홍옥 수련장의 한구석에는 화로가 있다. 반드시 열수(熱水)로 닦아야 하는 홍옥을 관리하기 위해서 하인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강은 그 화로 앞에 쪼그려 있었다.
등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홍옥 수련장을 청소하려는 게 아님은 확실했다.
화로에는 작은 솥이 올라가 있었고, 이강의 옆에는 야채와 식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은 무려 이곳에서 국을 끓이고 있었다.
‘이 홍옥 수련장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고!’
능지평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홍옥 수련장은 백씨세가에서 신성시되는 장소. 한겨울에도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는 붉은 옥은 전설적인 불사신검이 참사교의 교주를 베고 가져온 귀물이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백하준은 물론, 선대의 사람들도 늘 불사신검의 동상에 예를 올리고 경건한 자세로 하고 있거늘.
그런데 돌아온 백이강은 품위 없게도 전골을 끓이고 있으니.
‘용납할 수 없다.’
그냥 가려던 능지평은 백이강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다가갔다.
적요일검이라는 별호답게, 뛰어내려서 이강에게 다가가는 동안 능지평은 조금의 소음도 내지 않았다. 이강은 능지평이 다가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전골을 젓고 있었다.
한 다섯 보 거리까지 가까워졌을까.
이강이 놀라서 당황할 것을 예상하며, 능지평이 그를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그만.”
입을 먼저 연 것은 능지평이 아닌 이강이었다.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솥을 젓는 채였다.
이강의 한마디에 능지평은 우뚝 굳었다.
“거기 가만히 서 계시지요.”
이강이 명령했기에 멈춘 것은 아니었다.
능지평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어떻게 내 기척을.’
몸에 밴 경신법 덕에 평상시에도 기척은 전혀 흘리지 않았다. 아직 백하준조차 감히 능지평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그 백이강이 등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능지평의 접근을 알아챈 것이다.
‘아니, 내가 하인들을 징벌하는 것을 들었나.’
어쩌면 그때 능지평의 등장을 알아챘을지도 모르는 일.
‘그래도 내가 가까이 온 것을 어찌…….’
이강은 태연하게 솥을 휘저으며 소금과 노두유를 더하고 있었다. 의외로 요리가 능숙해 보인다.
능지평은 이강이 혹시 대충 말을 던져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때려 맞춘 것은 아닙니다.”
“……!”
가슴이 뜨끔했다. 마치 능지평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한 말이었다.
난감해진 능지평을 가만히 세워 두고, 이강은 계속 말했다.
“직접 음식을 해 먹는 게 예의며 품위에 어긋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먹지 못하면 죽는 게 인간인데…….”
“…….”
“열 살쯤 이 만두전골을 해서 아버지께 칭찬을 들은 적이 있지요, 동생도 좋아했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칭찬이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능지평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 날카로웠다.
능지평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그제야 태음절맥의 특징을 기억했다.
무공을 대성할 수 없는 허약한 몸. 하지만 대단히 명민해지는 지능, 날카로운 육감.
“먼저 보았으면 진작에 와서 인사라도 건넬 것이지…….”
“큭.”
이강은 능지평을 꾸짖고 있었다.
멀찍이서 이강을 알아보았으면 세가로 돌아온 이강에게 인사를 올릴 것이지.
어찌 주제도 모르고 기척을 감추며 다가오느냐. 그런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분명, 처음부터 나를 인지하고 있었다.’
능지평은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지금은 한여름. 주변에는 항시 열을 뿜는 홍옥이 잔뜩 깔려 있다.
그런데 명백한 냉기가 바로 앞에 서 있는 이강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능지평을 보았다.
“어라, 능지평 대주 아니십니까.”
짐짓 놀란 척 꾸미는 이강의 태도가 오히려 능지평의 심장을 서늘하게 했다.
* * *
‘어우, 추워.’
태음경 수련을 끝마친 그 시점. 이강은 곧바로 화로로 달려갔다.
「완성한 태음경은 음기를 끌어모은다고 하지 않았더냐. 경지에 오르면 그것을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태음경을 더 오래 수련할 수 있도록 이곳 홍옥 수련장을 찾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강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실제로 냉기를 풀풀 뿜고 있었다.
오늘은 그래서 준비한 것이 더 있었다.
“오, 육수도 다 끓었네요.”
「거 참, 음식으로 양기를 보충할 생각을 하다니, 그런 머리는 제법 명민하도다.」
“마늘, 부추, 파, 닭고기 등. 숙수에게 시켜서 양기가 강한 재료로 만두를 빚어 오라 했습니다.”
「그냥 아예 끓여 오도록 하면 되는 일을.」
이강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려는 만두전골은 이곳 중원의 음식이 아니다.
고춧가루와 매콤한 장을 적절하게 풀고, 닭 육수에 한국식으로 얼큰하게 끓여 낼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뜨끈하게 데우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만두를 미리 받아 왔으니 요리는 별것 없었다. 준비한 양념을 육수에 넣고 파를 성큼성큼 뜯어 넣는다. 그다음 적당히 끓으면 만두까지 와르르 넣으면 된다.
「허, 향이 훌륭해!」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불사신검은 솥에 코를 박을 기세였다. 요리에 방해될 정도여서 이강은 짜증을 담아 말했다.
“그만.”
「어이구, 무서워라. 표정이 살벌하구나.」
다행히 불사신검은 얌전히 물러나서 옆에 섰다.
“거기 가만히 서 계시지요.”
짐짓 차갑게 말했던 게 제법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강은 국물을 수저로 맛보았다. 살짝 싱겁다. 소금과 고춧가루를 대강 뿌리면 된다.
「그렇게 간을 때려 맞춰도 되겠는고.」
“때려 맞춘 게 아닙니다.”
그저 풍부한 경험에 근거한 노련함일 뿐.
완벽하게 간이 맞는 국물을 맛보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불사신검은 이강 혼자 먹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흥. 백씨세가의 적통이라는 자손이 품위 없게. 시비에게 시킬 것이지. 고추가 떨어지겠도다.」
이강이 국자 좀 잡았다고 그런 참사가 일어날 일은 결코 없으리라.
“직접 음식을 해 먹는 게 예의며 품위에 어긋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먹지 못하면 죽는 게 인간인데…….”
「커험.」
“열 살쯤 이 만두전골을 해서 아버지께 칭찬을 들은 적이 있지요, 동생도 좋아했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칭찬이었지만.”
「동생이라. 으음 자손이 혼절했을 때 찾아왔던가.」
이강은 씁쓸히 웃었다. 동생 백하준과는 묘한 사이가 되었으니. 정신을 차린 뒤에도 아직 만난 적이 없었다.
“먼저 보았으면 진작에 와서 인사라도 건넬 것이지…….”
그런 이강을 불사신검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흠…… 자손이여.」
이강이 불사신검을 바라보았다.
「말할 순간을 놓쳤다만. 저놈은 왜 저렇게 가만히 서서 자손을 노려보고 있는가.」
이강은 목덜미에 얼음물이라도 쏟아진 것처럼 놀랐다.
뻣뻣해진 목을 돌려서 뒤를 보니, 그 앞에는 비연대 대주인 능지평이 서 있었다.
“어라.”
이강의 머리가 필사적으로 돌아갔다.
능지평이라면 엄격하기로 유명한 인물. 하필 홍옥 수련장에서 전골을 끓이는 모습을 들켰으니 곤욕을 치를 것이 분명했다.
“느, 능지평 대주 아니십니까.”
목소리가 조금 떨려 나온 것 같았다. 진작 알려 주지 않은 불사신검이 원망스러웠다.
싫은 소리를 잔뜩 듣겠구나, 각오한 순간.
능지평이 갑자기 포권을 했다.
“인사를 드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이강 공자님.”
그렇게 허리가 뻣뻣했던 사람인데 너무도 공손한 자세다.
이강을 꾸짖기 전에 추진력을 모으는 것일까.
“제……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쇼.”
그런데, 설상가상 능지평은 이강에게 사죄하기까지 했다.
당황한 이강이 반문했다.
“무슨 무례…… 말입니까?”
궁금해서 물었는데 능지평은 입술을 깨물었다.
“큭…….”
“짐작 가는 바가 없군요.”
“제가…… 가신으로서의 본분을 잊었습니다.”
그러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기까지 한다.
이강은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면, 물러가 보겠습니다.”
능지평이 그렇게 떠나가서 다행일 정도였다.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아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이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대체 저건.”
「이상한 놈이로다.」
불사신검도 황당해하며 능지평을 욕했다.
“어 씨, 국물 넘친다!”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 능지평에게 정신이 팔린 틈에, 전골이 끓어 넘쳤다.
이강은 얼른 다시 만두전골에 집중했다. 능지평의 등장은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불사신검이 혼란한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자손이여, 식사를 할 때 또 한 번 내게 몸을 맡기는 것이 어떻겠는고!」
“다시 빙의하면 죽을 수도 있다면서요.”
「그대가 그리 바라던, 몸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겠노라!」
“죽으면 뭔 소용입니까!”
이강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 * *
이강에게 된통 당하고 홍옥 수련장을 떠났던 능지평.
그는 해가 저물 때쯤 다시 홍옥 수련장으로 돌아왔다. 곧 백하준에게 경신법을 지도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백하준은 어림에도 어른스러웠고 그 무공에 대한 재능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능지평은 수련 시간 전에 항상 긴장해 있었는데…….
“후우…….”
오늘은 낮의 일 때문에 아직도 심란했다.
평소에는 해가 완전히 저물고 진행했으나, 오늘부터 반 시진가량 앞당겨졌다.
그 탓에 백이강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내가 잘못 보았던 것일까.’
세가에 충성하는 가신으로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특히 소가주 문제에 관해서는 감히 함부로 입을 연 적도 없었다.
다만 마음 깊이 백하준을 지지하고 있었다. 단순히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은 아니었고. 이강보다는 백하준이 소가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백이강이 어느 순간부터 그 총기를 잃고 한심한 모습을 보여서였다.
‘게으르고 한심해 보였던 것은 그저 꾸민 모습이었던가.’
이강이 그러지 않았다면 그가 무공을 못 배운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백씨세가는 다른 칠대세가와 다르니.
‘아니, 부질없는 일. 어차피 스물이 되면 죽을 몸이니.’
능지평은 고개를 흔들어서 잡념을 털어 냈다.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까.
등을 기습하는 암습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쉬이익-
검의 파공성이 들리는 순간, 능지평이 검을 뽑아 뒤로 휘둘렀다.
따악-!
검과 목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암습자는 냉랭한 인상의 소년. 다름 아닌 백하준이었다.
“능 대주님. 닿았어요.”
늘 그랬듯, 백하준은 수련장에 오는 동시에 기습을 했고 능지평은 막아 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여태까지는 늘 능지평이 먼저 백하준의 기습을 눈치챘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잡념에 잠겨 있었다곤 하나, 기어코 평소보다 더 공간을 내준 것이다.
“허……! 공자님!”
철 가면처럼 굳어 있던 능지평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겨우 열두 살 어린아이다. 검을 쥔 손만 해도 여물지 않았는데, 그 검이 능지평을 놀라게 했다.
다만 기뻐해야 할 백하준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것이 어린 백하준의 성격이었다.
“그래도 쉽게 막힌 검이지요.”
“하하, 기뻐하셔도 될 일입니다. 이 능모, 경신법만큼 감각 또한 자신 있는 부분이니까요.”
나날이 일취월장해 가는 백하준을 보니, 능지평의 답답했던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래, 백하준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이자 소가주이다.
“오늘은 ‘도깨비 잡기’의 수준을 더 높여서 수련해도 되겠군요.”
“예.”
백하준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허공으로 시선을 올렸다.
“공자님?”
“……음.”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리는 백하준.
“냄새가, 나는군요.”
“아!”
능지평이 깨달았다. 익숙해져서 잊었지만, 수련장 안에서는 희미하게 만두전골의 향이 남아 있었다.
순간 이강을 만난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향…….”
능지평이 흠칫 놀랐다. 아주 잠깐이지만 백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 것 같았다.
비로소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보였다.
“사실…… 오전에 이강 공자님이 다녀가셨습니다만.”
그리고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금 전보다 차가워진 얼굴로 백하준이 물었다.
“형님이요?”
“예, 하준 공자님의 수련 시간이 아닐 때 이곳에서 수련하신다던데…… 모르셨습니까?”
“…….”
눈치를 보아하니, 백하준은 모르는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한 번도 시간이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이 냄새는…….”
“예, 이강 공자께서 수련을 마치고 전골을…….”
목검을 쥔 백하준의 작은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능지평은 그것을 눈치챘다.
‘역시 아직 사이가 좋지 않나.’
조금 전에는 미소를 짓더니, 이번에는 분명 분노하고 있다. 늘 얼음 조각 같던 백하준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감정 변화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오늘은 우선 수련에 집중하시지요. 할 일이 많아 수련 시간도 일찍 잡았으니.”
백하준과 백이강이 직접 대면한다면 분명 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능지평이 백하준을 진정시키려던 순간이었다.
끼이익-
하인이 출입할 시간이 아니었는데, 홍옥 수련장의 문이 열렸다.
“왜 등불이 켜져 있…… 어.”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강이 등장했다.
“……너 왜 지금.”
이강으로서도, 백하준의 수련 시간이 당겨졌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백하준도 얼음처럼 굳어서 제 형을 바라봤다.
형제가 비로소 3년 만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