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5)
몇 명의 지원자를 더 보고 중간 쉬는 시간을 틈타 유연서는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보고도 꽤 많은 사람이 아직 오디션을 못 봐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을 익숙히 받아낸 유연서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연서 씨.”
“민아 씨. 안 가셨어요?”
“네. 인사는 하고 가려고요.”
내가 언제 나올 줄 알고······ 마침 잘 됐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연기할 때 무슨 생각 해요?”
“글쎄요······ 그 순간만큼은 제가 맡은 배역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죠.”
“그럼 그게 잘 되고 있나요?”
“아직은 미숙하죠. 한······ 절반 정도는 그 캐릭터가 된 느낌?”
“그러면 남은 절반 정도는 무슨 생각을 해요?”
“아무 생각 안 하죠?”
홍민아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유연서는 대체로 몰입을 잘하긴 했지만, 연기 도중에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캐릭터가 되어서 그 캐릭터의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의 컷 사인이 들리면 거의 바로 몰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온 오프가 확실하다는 건 장점이지만, 그만큼 완벽한 연기를 했다고 하면 아닌 것 같았다.
[가끔은 다른 생각 없이 배역 자체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네.]천 감독의 조언도 그렇고······.
“나는 그렇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래요? 설마 막 여기서는 이렇게 가야지, 이쯤에서 머리를 넘겨 볼까? 같은 생각 하세요?”
“음······ 가끔요?”
홍민아는 고민하는 유연서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사람마다 방식의 차이일 수는 있지만······ 어우, 저는 그러면 몰입이 금방 깨지던데. 그렇게 계산하고 그 정도 연기를 한다고요? 재능이네요.”
“그러면 민아 씨처럼 연기하면 캐릭터에 몰입하면 깨기도 쉽지 않죠?”
“조금 힘들진 하죠. 박수아 역에서도 벗어나는 데 며칠 걸렸어요.”
“음······.”
배우들이 대체로 이런 편인가? 연락처를 알고 있는 모든 배우에게 물어볼까? 유연서는 잠시 고민했다.
“어······ 저분 연서 씨 비서죠? 전에도 봤었지만 진짜 크네요.”
그가 홍민아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리니, 중년의 남자가 임승현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홍민아와 짤막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연서 도련님.”
“할머니가 보내서 왔나요?”
“네.”
군데군데 흰 머리가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임승현의 안내에 따라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저는 박정호라고 합니다.”
“유연서입니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만 되어 있는 박정호의 명함을 품속에 넣은 유연서는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할머니께 무슨 말을 듣고 오셨나요?”
“도련님을 최대한 보좌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요?”
“도련님이 만족하실 때까지요.”
“그럼 박정호 씨는 만족하십니까?”
처음에는 갑자기 손자한테 가서 일을 도우라 해서 당황했지만, 이미 유연서를 둘러싼 소문은 많이 희석되었다.
“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박금주의 곁에 있을 때가 더 불편했다. 요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박금주의 기분이 몹시 안 좋아서 지켜보던 수행원들이 저절로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다른 말씀은 안 하셨나요?”
“의문을 가지지 말고 토 달지 말고 시키는 일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제가 뭘 시키든 보고하지 말라고도 얘기하셨나요?”
“네.”
더는 알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그냥 죄책감 때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려는 건가. 아무튼, 조사에 진척만 있으면 된다.
“제가 알고 싶은 건 1999년 5월 12일에 할아버지 저택에 있었던 모든 사람의 명단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신원 조회할 수 있는 정보도요.”
“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고 개인 정보 보호 때문에 자료가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박정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냉큼 대답했다.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하는 일이 그가 할 일이었다.
“혹시 그때 일 기억나시나요?”
“미술관 관련 일 때문에 잠시 방문한 적 있었습니다.”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잊을 수가 없죠.”
저택을 나가고 나서 그 사건이 터졌으니······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대답에 유연서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잠시 침묵 끝에 유연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즈음에 저희 친척들이 어땠는지 조사할 수 있겠어요?”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사업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게 있는지, 아니면 돈이 부족해서 곤란한 적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요.”
만약 유은호와 백서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무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작은 실마리라도 좋았다.
“알겠습니다. 조사 결과는 임 비서님을 통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날 사용인의 간단한 신상 명세는 빨리 받아보고 싶은데요.”
“그건 이틀이면 될 거 같습니다. 변동사항 있으면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유연서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절대 다른 가족들에게 내가 이 사건 관련한 조사를 지시했다는 건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들키지도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꼬리를 밟히지 말라······ 어렵군. 그렇게 생각한 박정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를 돌아본 그는 오디션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유연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박금주가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게 유연서와 연관되어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마침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네, 관장님.”
(그 애는 만났나요?)
“네, 방금 뵙고 나오는 길입니다.”
(지금······ 어때 보이죠?)
“생각보다 정중하셨습니다. 요구하시는 자료도 어렵지 않게 캐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금주는 대답이 없었다. 맘에 안 드는 대답이었나······ 박정호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기침도 좀 하시고 귀도 자주 긁으시고······.”
(······그래요. 알겠어요.)
귀를 자주 긁는다는 대답에서 박금주가 숨을 크게 삼켰지만, 박정호는 모른 척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박금주는 손자의 안위를 꽤 신경 쓰는 거 같았는데······.
‘관장님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으셨군.’
저분은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가 보네······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유연서가 시킨 일을 처리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
(아무 생각 안 하는데?)
“형도요? 왜요?”
(왜라고 말하면 뭐라 딱히 말할 건 없는데······.)
막 녹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진수호는 유연서의 뜬금없는 질문 전화를 받았다. 연기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니······ 그도 딱히 의문을 품지 않았던 주제였다.
“형도 메소드 연기, 그런 거예요?”
(그렇게 극단적으로 캐릭터에 이입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마 비슷할 거야.)
“그래요?”
(근데 그건 왜 물어봐?)
“잘 몰라서요.”
진수호가 헛웃음을 짓는 것이 들렸다. 왜, 뭐, 왜.
(그게 이제서야 궁금해? 너 지금까지 연기는 어떻게 했는데?)
“그냥······ 했지. 가끔 딴생각도 하고.”
(허······ 캐릭터 이해는 다 한 거지?)
“이해는 하죠. 리딩 전에 다 분석하고 들어가니까. 근데 그 캐릭터가 중심이 되었냐 하면 그건 아닌 거 같거든요.”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고 대답한 진수호는 다시 질문했다.
(너 춘백이 연기했을 때 그럼 몇 퍼센트 정도였는데? 100% 기준으로.)
“음······ 춘백이 70% 정도에 내가 20% 정도?”
그리고 강진후가 10% 정도? 아무튼 100% 몰입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마다 방식은 다르니까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진수호가 다시 말했다.
(네가 몰입을 안 하는 것도 아니던데······ 그럼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것도 빠르겠다?)
“그냥 되던데요?”
(그건 내가 배우고 싶다.)
그렇게 말한 진수호는 자신의 일화를 짤막하게 풀었다. 당시 악역 역할을 맡아 촬영하던 진수호는 누군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자,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울컥했다고 한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진수호가 이럴 정도면 배역에 너무 몰입해 일상생활에서도 배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런 적 없는데.”
(그게 네 연기 방식이면 나는 굳이 고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연기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음······ 하고 싶은 게 생각나서요.”
100% 몰입을 어떻게 하지? 그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어지는 진수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너 입원했다며. 혹시 그거 때문이야?)
“아니 이 형은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 별거 아니었어요. 끊어요.”
(잠깐······.)
그는 진수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조금 삐지기는 하겠지만 나중에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하면 금세 풀어질 거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유연서는 뭐지?’
대본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건 바로 캐릭터 분석이었다.
그는 동기화 받은 기억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것을 토대로 본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평판은 쓰레기 수준이었지만, 어릴 때는 그래도 착하고 배려심 넘쳤다. 그때의 천성이 남아있어서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크게 이입해서 결국 환청까지 듣게 됐지만.
‘이희서에 대한 애착이 꽤 강했지. 이건 아직 이해를 잘 못 하겠어······.’
그나마 본체의 기억을 동기화 받아서 잘 못 하는 정도지, 예전이었다면 아예 이해 자체를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범인을 그냥 보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이건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 그도 구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유연서와 강진후의 공통점을 찾던 그는 기진맥진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러면 끝이 없겠어.’
그러면 역으로, 강진후를 지우는 일은 어떨까? 그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자신을 지우는 일은 익숙했다.
“우웩!”
그렇게 집중하던 그가 돌연 상체를 숙여 피를 토했다. 꽤 많은 양을 토해내서 그런지 현기증이 났다.
‘베타.’
그는 소매로 대충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강진후를 지우자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못 버텨서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마치 며칠 전에 베타가 경고했던 그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과 똑같았다.
‘이 방법은 못 쓰겠는데.’
그냥 이대로 살까? 어차피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들켰는데.
“······연서야.”
“어?”
지금처럼 말이야.
그는 거실 입구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유은호를 보고 당황했지만, 일단 침착하게 말했다.
“왜 왔어?”
“네가 그렇게 쓰러졌는데 내가 안 올 것 같았냐?”
“그렇다고 대뜸 오면 어떡해?”
“전화했다. 네가 안 받아서 혹시 전 같은 일이 생겼나 하고 들어온 건데······ 하아······.”
핸드폰 화면을 보자, 부재중 3통이 적혀 있었다. 유은호는 한숨을 푹 쉬고 동생에게 다가갔다. 그는 일단 휴지를 뽑아 유연서의 입가에 대 줬다. 바닥에 흥건한 피가 섬뜩할 정도였다.
“이렇게 심각한데 검사 결과가 깨끗한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게 말이야.”
자기 일을 남 일처럼 말하는 동생을 보고 유은호는 손을 더 밀었다. 유연서가 아프다고 작게 항의했다.
“그 가방은 뭔데, 설마 여기서 살 거야?”
“당분간은. 빈방 많지?”
“아니 내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피나 마저 닦고 말하지?”
유연서는 구시렁거리면서 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유은호는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병원에 데려갈까?
“너 그렇게 됐는데 집에 사람도 없는 건 불안해서. 아니면 비서랑 매니저 불러서 같이 살던가.”
“아니 그건 좀.”
그래도 타인보다는 가족이 낫다. 게다가 그들은 요즘 너무 수발을 들려고 해서 조금 귀찮다.
“언제부터 이랬어?”
“얼마 안 됐어.”
“얼마 안 된 게 아닌 거 같은데.”
유은호의 말꼬리 잡기에 유연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검사 결과 깨끗하다며. 나 안 아프거든?”
“야 이렇게 빨간데 아픈 게 아니라고?”
“아씨, 왜 자꾸 시비야!”
그렇게 두 형제는 한참을 입씨름했다. 그리고 그날은 환영과 환청 없이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