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7)
술김에 고개를 끄덕인 이정훈은 그다음 날, 숙취에 지끈거리는 몸을 이끌고 JSENM 산하 제작사를 찾았다.
이정훈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지는 계약서를 보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와······ 진짜네.”
“그럼 가짠 줄 알았습니까?”
“그냥 위로의 말인 줄 알았죠.”
“내가?”
맞은편에 앉은 유연서가 코웃음을 쳤다. 내 이미지 많이 좋아졌네? 하긴, 그가 빙의한 2018년 이전에도 일부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연기력으로 욕은 먹어도 신인 구해주는 좋은 놈’이라는 인식이 있긴 했다고 한다.
“감동할 시간 없어요. 무조건 구상보다 빨리 내놔야 하니까.”
“넵.”
“최대한 빨리 결과물 가져오세요.”
유연서가 초 치는 소리를 해도 이정훈은 눈을 반짝 빛냈다.
‘노예계약인 줄 모르고 좋아하기는.’
그 뒤로 이정훈은 바로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갔다. 갑자기 최대 2년 안에 영화를 한 편 찍어내야 하는 직원들도 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성과금을 준다고 하니 불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내가 주연을 맡으면 더 빨리 될 거 같긴 한데······.’
이정훈의 시놉도 꽤 맘에 들었고······ 캐릭터도 좋았다. 하지만 이미 드라마 촬영도 예정되어 있었고,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투자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
“죽었다고?”
“어, 여기.”
백서준은 유연서가 보내온 명단을 토대로 기본적인 신원 조사를 마쳤다. 그가 내민 서류를 받은 유은호와 유연서는 동시에 종이를 넘겨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택 경호하던 30명 중에서 5명이 죽었다?”
유연서는 의심이 가득한 말로 혼잣말했다. 1999년에 30대면 지금은 고작 50대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일단 지병으로 죽은 사람 제외하면 세 명은 교통사고야.”
“이게 설마 우리가 의심한 것과 연관된 걸까?”
“아예 0%는 아니지.”
유은호와 백서준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이게 다야?”
유연서는 서류를 살살 흔들며 백서준을 바라봤다.
“일단, 기본 조회는 다 해봤는데. 나도 함부로 움직일 순 없어. 이것도 불법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 형이 이래 봬도 청장 아들이거든. 책잡힐 일 하면 위험해. 게다가 요즘 옆자리 놈이 자꾸 신경을 긁어서······.”
“뭐야, 경찰 아저씨 빽 좀 있네.”
백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만큼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건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래도 주소는 다 알았으니까 조사는 해 봐야지.”
“음······ 그래?”
유연서는 삐, 울리는 이명을 애써 무시했다. 나머지는 발로 뛰는 방법밖에 없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그래도 25명은 너무 많은데. 게다가 이미 죽은 사람도 아예 손 뗄 수는 없다.
“혹시, 이 죽은 사람들 말이야······ 자세한 뒷조사 가능하려나?”
“아마 가능할걸.”
두 형제가 사람의 뒷조사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자, 백서준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야 지금 경찰 앞에서 불법적인 일을 도모하냐?”
“집어넣을 배짱은 있으시고?”
“와 진짜, 딱밤 한 대만 때려도 돼?”
“하지 마라.”
대답은 유은호에게서 나왔다. 백서준은 숨을 후욱, 뱉었다. 전에는 소문치고 꽤 얌전해서 괜찮았는데, 오늘따라 좀 까칠하다?
“우선 이 사람들부터 조사하고, 차례로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나?”
“야, 너는 또 기억나는 거 없어?”
백서준의 질문에 유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연서는 고개를 숙인 채 제 입가를 가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유은호가 한숨을 쉬었다.
“······뱉어.”
“티나?”
물이 섞인 대답, 그런데 입 안쪽이 유난히 새빨갛다. 백서준이 몸을 움찔 떨었다.
“뭐, 뭐야.”
“뭐긴 뭐야. 저기 휴지 좀 더 줘.”
“아니 지금······.”
백서준은 얼떨결에 휴지 곽을 넘기면서도 인상을 찌푸린 채 휴지를 입가에 댄 유연서를 빤히 바라봤다.
“쯧······.”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하필 오늘 터졌다. 그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범인을 잡으려면 같이 다닐 일도 많을 텐데, 차라리 아픈 걸 미리 공개하는 게 나았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고?”
백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은호와 유연서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빨리 이 상황을 설명하라고 무언의 시위를 했다.
“나 보지 마. 나도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허······.”
백서준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눕히고 멍하니 유연서를 바라봤다.
“난 진짜 유은호 하나로도 감당 못 했는데, 너네 형제랑 만나면 기가 다 빨리는······.”
“나 잠깐만. 이거 중요한 연락이다.”
“이거 봐.”
저, 저 말 끊는 거 봐. 백서준은 벌떡 일어나서 멀찍이 떨어지는 뒷모습에 대고 삿대질했다. 그러다가 유연서의 모습이 사라지자 심각한 목소리로 유은호를 바라봤다.
“저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일단 검사상으로는 깨끗하긴 했는데······ 나도 모르겠다.”
“하······ 일단 이건 비밀이지?”
“네가 나 없을 때 신경 좀 써줘.”
자신 때문에 속 터지는 사람이 하나 늘었다는 것도 모르고 유연서는 테라스로 나와 난간에 기댔다.
“어, 한 대표.”
(지금 바쁘냐?)
“아니.”
유연서는 핸드폰을 반대쪽 귀로 옮겼다.
“조사는 좀 해 봤어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전화했어. 일단 그 당시 소속사에서 일하던 사람 연락처는 알아 놨어. 소속사 차려서 아이돌 키우고 있더라고.)
“오, 빠르시네.”
(문자로 보내 줄게. 연서야, 혹시 ‘국새’에 우리 애들 좀 꽂아도 되냐?)
“안 될 건 없는데······ 너무 과하면 알죠?”
(알지. 단역에만 몇 명 꽂을게.)
한 대표는 신나서 전화를 끊었다. 좀 더 개인적인 부탁을 해도 좋았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소속 배우들을 위해 애쓴다는 건 알겠다.
“뭐야?”
“우리 소속사 대표. 엄마 스토커 때문에.”
“수확은 있었어?”
“아직은.”
마음 같아서는 직접 나서고 싶지만, 그는 너무 알려졌다. 유연서는 어쩔 수 없이 임승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단독] 유연서, JSTV ‘국새’ 캐스팅···신예원과 호흡하반기 기대작 ‘국새’ 신예원X유연서 캐스팅 확정···입헌군주제 배경의 배틀 로맨스
└와 캐스팅 미쳤다
└신예원이랑 유연서??
└나 이조합 소취했는데ㅠㅠㅠ진짜 되네ㅠㅠㅠㅠ
└근데 이거 작년부터 기대하던 사람 많았는데 결국 유연서가 가져가네
└└이사님이잖어ㅋ
└유연서가 신예원이랑 붙을 급은 아직 아니지 않냐?
└└왜 아직 아니냐고 생각하냐? 지금 20대 배우 원탑 아님?
-아 국새 기대했는데 또연서임?
JSTV가 가져갔대서 불안했는데 또연서ㅋㅋ
└사실상 이앤앰 산하 방송국이나 스튜디오에서 괜찮은 대본은 유연서가 다 쓸어간다고 보면 될듯ㅋㅋ
└이사됐다고해서 불안불안하더니 역시나ㅋㅋ
└견제 미쳐돌아가네ㅋㅋ 꼬우면 느그 배우도 재벌 하던가~
-이 게시판 애들 지랄맞은건 알았는데
유연서같은 배우가 좋은 작품 들어가면 빽쓴다고 신인남배 데뷔견제하려고 이러냐고 하고
자리잡은 3040 배우들이 좋은 작품하면 신인 남배들이 가져갈거 아재배우가 가져간다고 지랄하고 뭐 어느 장단에 맞추냐
핑계가 신인남배밖에 없는데 지금 신인 남배중에 인물이 없는걸 어쩌라고ㅋㅋ
└ㄹㅇ 아무리 그래도 신예원이 신인이랑 붙을 급은 아니지 유연서 잘어울림ㅇㅇ
└유연서가 신인 남배 앞길 막는 건 팩트 아니냐?
└└뭐만 하면 팩트팩트 ㅇㅈㄹ
└└└유연서가 무슨 분신술 쓰냐ㅋㅋ 2030남배 앞길을 다 막아버리게ㅋㅋ
└근데 글쓴이도 은근 신인남배 후려치네ㅋㅋ
└아무튼 국새 난 좋던데 빨리나왔으면
└머글들은 이미 조합 난리났다고 슨스 반응 쩔던데 여기 애들만 후려치고 난리남ㅋ
유연서가 JSENM의 사내이사가 됐다는 소식이 들린 뒤로 이유 없이 까는 이런 견제성 글도 늘어났다.
아무리 유 회장이 뒤에서 손을 쓴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다 막기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았다.
물론 팬들끼리만 이렇게 견제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 사이에서도 불공평하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고 하는데, 뭐 새삼 신경 쓸 일은 아니라서 적당히 무시했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유연서는 ‘국새’의 홍보 마케팅을 위해 한 잡지사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국새’는 2021년 하반기 중요 드라마라서 그런지 홍보 마케팅 일정도 빼곡했다.
“살이 좀······ 빠지셨나?”
“아, 사진에 예쁘게 안 나올까요?”
“아뇨, 오히려 턱선이 더 살아서 괜찮아요.”
살이 빠진 모습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더 잘생길 구석이 없는데 더 잘생겼다고, 예민미가 있다고 좋아하는 반응도 많았다. 방송 카메라는 실제보다는 살짝 부어 보이게 나오니까.
그가 잠시 대기하고 있을 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선글라스를 쓴 신예원이 제 스태프들을 데리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우리 구면이죠?”
선글라스를 벗은 신예원이 유연서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연서는 최대한 정중하게 손을 맞잡았다. 신예원은 경력도, 커리어도 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탄탄한 배우였다.
“전에 너무 푼수처럼 군 거 같아서 민망하네.”
“전 좋던데요. 어차피 저희 많이 볼 예정이잖아요.”
“그래? 편하게 불러.”
“네, 누나.”
어차피 몇 개월간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출 예정이었다. 그들은 서로 밥 먹었냐, 시놉은 어땠느냐에 관해 짤막하게 대화했다.
“조합 장난 아니다.”
“미쳤는데?”
둘이 가까이 서기만 했는데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 직원들이 작게 감탄했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차피 다들 프로니 잡지가 나오기 전까지는 유출하지 않을 거다.
“일단, 연서 씨부터 가죠.”
오늘 화보의 컨셉은 ‘국새’의 배경에 맞게 한복을 적절히 섞을 예정이었다. 유연서는 정장에 화려한 도포를 어깨에 걸치고 카메라 앞에 섰다.
“눈빛 좋아요!”
사진사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추임새를 넣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화보도 연기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니 편했다.
신예원도 딱 붙는 정장에 마치 왕이 된 것처럼 붉은 도포를 걸쳤다. 곱게 땋은 머리에는 화려한 머리 장식이 꽂혀 그녀가 가진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더 극대화했다.
의상을 여러 개 바꿔가며 촬영에 임한 유연서는 잠시 쉬는 시간에서 사진사의 조심스러운 요청을 받았다.
“음······ 연서 씨. 더 애정이 담긴 눈빛 보여줄 수 있겠어요?”
“······한 번 해볼게요.”
“네.”
나름 애정을 담았다고 했는데······ 조금 부족한가. 고민하는 유연서에게 물을 내민 이태겸이 해답을 줬다.
“너 도율이 봤던 것처럼 하면 되잖아.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
도율이, ‘드리밍’에서 자주 놀았던 아역 배우의 이름이었다. 애는 귀엽고 너는 징그럽다는 그 말을 아직도 담아두고 있었나. 아무튼 좋은 조언이었다.
“와! 지금 너무 좋아요!”
전에도 괜찮았는데, 작정하고 눈빛을 바꾸니 직원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예원도 지지 않고 눈을 날카롭게 떴다. 구애하는 남자와 철벽 치는 여자 컨셉이었다.
화보의 마지막 대미는 왕좌에 앉은 신예원의 뒤에서 유연서가 면류관을 씌워주는 장면이었다.
“좋아요!”
사진사는 목이 쉴 정도로 모델들을 독려했다. 나중에 듣다 보니,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좋은 피사체에 흥분한 게 분명했다.
“한 번 더 갈게요!”
유연서가 구슬을 꿴 류(旒)를 손으로 살짝 걷어 마치 입을 맞출 듯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밀착했을 때는 작게 감탄하던 직원들이 크게 소리쳤다.
“크으······ 장난 아니다.”
“이거 공개되면 난리 나겠지?”
“안 날 수가 없어. 부수 많이 뽑아놔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