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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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방연
“무조건 맨 마지막이에요 오빠.”
스타일리스트, 임민지의 말에 진수호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뭘 그렇게까지 신경 써. 그냥 도착하는 대로 들어가면 되지.”
“안 됩니다.”
매니저가 고개를 홱 돌려 진수호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진수호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맨날 마지막에 들어갔던 우리 배우님이 유연서한테 밀려서 순서 사수 못 한다? 말도 안 되죠.”
“오빠. 이건 자존심 싸움이에요.”
진수호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드리밍’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종방연을 위해 깔린 레드 카펫을 밟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선자 선생님도 있잖아.”
“그분은 이런 거 싫다고 먼저 들어가시잖아요. 봐봐요, 저기.”
이선자가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었다.
레드 카펫은 무조건 늦게 들어가야 인기의 척도, 기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전의를 불태웠다.
“나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리자.”
“쓰읍, 가만히 계세요.”
안 그래도 자신의 스케쥴 때문에 종방연이 밀린 거라서 눈치가 보인 진수호는 제 식구의 만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밴에 묶였다.
“저 일단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착해서야 원, 내가 알아서 챙겨줘야지. 매니저가 비장한 목소리로 밴에서 내렸다. 그는 레드 카펫 순서를 담당하는 스태프를 찾았다.
“우리 진수호 배우님은 언제 들어가면 될까요?”
“저기······ 그게······.”
스태프가 어색한 얼굴로 한쪽을 가리켰다. 이태겸이 득의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정장을 입은 임승현은 옆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사실 이태겸이 시켜서 한 것이다.
“그래서, 도련님이 기억 상실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임승현이 이태겸에게 작게 귓속말을 했다. 저번 대본 리딩 때 유연서에게 귀띔을 해 주던 이태겸의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가족 외에 유연서의 기억 상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헤일로 미디어의 대표와 실장 그리고 임승현이었다.
이태겸에게는 ‘그냥 성격이 좀 바뀌었다.’정도로만 퉁치고 딱 잡아 얘기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유연서를 도로에 내버려두고 간 전적이 있어서 말하지 않은 게 컸는데, 이태겸도 이 이유 때문에 군말 없이 일만 했었다.
“척하면 딱! 이죠.”
“언제부터?”
“거의 처음부터요?”
이태겸이 눈동자를 굴렸다.
사고 후에 철 들었다고 하고, 돈도 많이 준다니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왔는데······ 성격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머리를 얼마나 다쳤길래.’
근데 머리를 다쳤다고 사람 성격이 저렇게 바뀌나? 에서 시작한 의심이었다.
“유연서 걔가 버벅거릴 때마다 형님이 귓속말하는 거 보고 알았죠.”
“그래요?”
“걔가 성격이 좀 지랄 맞아도 머리는 진짜 좋거든요. 그런 사소한 것까지 형님이 알려줄 정도면 아 얘가 여기에 문제가 있구나. 하고 딱.”
이태겸이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그는 굳은 임승현의 표정을 보고 지레 주눅이 들어 말을 덧붙였다.
“저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저야 걔 매니저니까 안 거지 다른 사람은 모를 걸요?”
임승현이 알겠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제가 좀 못 배워도 눈치는 빨라요.”
솔직히 유연서의 더러운 성격만 빼면 완벽한 직장이었다. 유연서가 소속사에 ‘내 매니저를 다른 배우한테 빌려줘?’ 라고 깽판을 친 전적이 있어서 그의 스케쥴이 없는 날에는 매니저도 다른 배우의 로드를 뛰지 않고 푹 쉴 수 있었다.
“근데 기억 좀 없다고 성격이 그렇게 변하나? 원래 천성이라는 게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걔 보니까 아예 백지상태도 아니던데.”
“글쎄요, 기억을 잃어본 적이 없어서.”
“알고 보니 천성은 좀 괜찮은 놈인가?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이태겸이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지척에서 듣고 있었던 임승현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듣고 보니 꽤 날카로운 말이다.
“근데 형님, 저 사람 진수호 매니저 맞죠?”
“그러네요.”
이태겸이 팔짱을 풀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유연서 씨 매니저······.”
“아 네, 진수호 배우님 매니저시죠?”
이태겸이 씨익 웃으며 진수호의 매니저를 맞이했다. 안 어울리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니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임승현에게 낚였던 그 웃음을 보고 따라 한 거였다.
임승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삼켰다. 이를 드러낸 치와와 같은데······.
“저 혹시 유연서 씨는 언제 입장을······.”
“마지막이요.”
“네?”
“우리 배우님은 마지막으로 입장 못 하면 죽는 병에 걸렸습니다.”
금세 정색하더니 뻔뻔하게 말하는 이태겸을 보고 진수호의 매니저가 벙쪘다.
“아니 그래도······.”
이태겸이 고개를 홱 돌려 임승현을 바라봤다.
“비서 형님, 이 드라마 투자자가 누구죠?”
“우리 도련님이죠.”
임승현은 일단 장단을 맞춰줬다.
듣고 있던 진수호의 매니저가 임승현을 바라봤다. 유연서를 졸졸 따라다니길래 소속사 실장인 줄 알았는데 비서? 유연서 개인 비서 데리고 다니나?
“억 소리 나는 주연 배우 회당 출연료, 바로 입금한 거 누구 덕분?”
“우리 도련님이겠죠.”
출연료가 원래 방송 후 지급이었다면, ‘드리밍’은 달랐다. 제작사는 JSENM 계열에 부회장의 특별 지시로, 돈 문제는 철저해야 한다는 유연서의 주장에 바로바로 지급했다. 스태프와 주연 배우, 단역 배우 차별 없이 평등하게.
“저 그래도 진수호 네임 밸류가 있는데······.”
매니저의 말은 어느새 대화를 엿듣고 있던 진수호에 의해 막혔다.
“그만, 그냥 먼저 가자니까.”
“헉, 언제 오셨······.”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진수호는 임승현과 이태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바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겼다.”
이태겸은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임승현에게 내밀었다.
“근데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실장님이 꼭 사수하라고 했어요. 마지막에 등장해야 가오가 산다고······.”
회사의 정치 싸움과 비슷한 건가. 임승현은 요새 오너 일가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어서 같은 부서 동료의 견제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연서 담당이라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오너 일가와 본부장의 예쁨을 받고 있으니 꽤 심장이 쫄렸나 보다.
“야, 우리 진수호 다음이다. 맨 마지막.”
“결국 해냈냐.”
유연서가 질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도 진수호와 마찬가지로 순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잘했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한 거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유연서는 밴에서 내렸다.
***
“이게 다 뭐에요?”
“종방연 서포트요.”
예전에는 그냥 배우 스태프들끼리 소소하게 고깃집에서 종방연을 치렀다면, 요즘은 달랐다. 배우 팬덤도 아이돌 팬덤과 비슷한 양상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연서는 꽃다발을 옆으로 치우고 예쁘게 포장된 종이 가방을 열어 봤다. 드라마 관련된 스티커로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유연서의 종이 가방에는 은발의 춘백의 모습이 프린팅되어 있었다.
“뭐 이런 거를 다 준비하냐······.”
리본에 묶여 있던 벨벳 상자를 열어보니 크리스털 감사패까지 있었다.
유연서는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만 서포트해도 된다고 못을 박았지만, 그의 팬들은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꼼수를 썼다. 해당 드라마나 영화 갤러리의 팬으로 가장해 서포트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지독하다고 유명한 유연서의 팬덤과 머릿수와 화력이 어마어마한 진수호의 팬덤이 서로 붙었으니, 서포트 경쟁도 치열했다.
“팬분들이 선물을 엄청 많이 준비해주셨네요!”
종방연 사회는 이민성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진행했다. 부모의 죽음을 알고 발버둥쳤던 처절한 연기와는 다르게 본체 배우는 꽤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다.
이민성의 짤막한 진행이 끝나고, 다들 시끄럽게 떠들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많이 드세요.”
“······수호 씨는 안 드세요?”
“저도 구우면서 먹고 있어요.”
진수호는 집게를 놓지 않고 같은 테이블의 배우들에게 열심히 고기를 퍼 날랐다.
“그래서, 인공지능 스피커에 춘백 버전 녹음한다면서요?”
“네.”
“재밌겠다. 양주희 박사는 필요 없대요?”
“네.”
유연서의 단답형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배를 잡고 넘어가는 조유미를 보며 유연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술 몇 잔 마셨군.
그래도 성격 더럽다는 소문을 들어 눈치 보고 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편이 낫긴 했다.
“연서 씨.”
“작가님!”
정다희도 테이블을 오가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정다희가 부른 건 유연서였는데, 엉뚱한 조유미가 대답했다.
“제작사에서 시즌 2 간 보는 거 같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때요?”
“글쎄요······ 제작사 요청 때문에 여지를 남기긴 했는데, 따로 쓰고 싶은 게 생각나서요.”
정다희는 지망생 시절 자신 없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어엿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황미정 작가와의 소송도 무난히 이길 것 같다고 했었나.
“잘 됐네요.”
유연서는 잔을 입에 대기 전에 말하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어쨌든 잘된 일이다. 만약 정다희가 다른 좋은 작품을 쓰면, 내가 키웠다고 숟가락 얹을 수 있나.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요? 알겠으니까 밥이나 드세요.”
면전에서 낯부끄러운 말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유연서는 정다희를 감독 쪽으로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유미가 보였다.
“뭡니까?”
“연서 씨는 소문이랑 진짜 딴판이다. 소문은 왜 그렇게 났을까요 수호 씨?”
“글쎄요······ 신기하긴 하네요.”
진수호도 눈을 반짝였다.
“저 사실 연서 씨가 주연이라는 소리에 각오 많이 하고 왔거든요.”
“이제 소문도 믿을 게 못 되죠.”
이 사람들, 놀리는 건가.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기를 진수호와 조유미 쪽으로 밀었다.
“······밥이나 드세요.”
아까 생각했던 거 취소, 차라리 소문 믿고 데면데면 구는 게 낫다.
그때, 옆 테이블의 이선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눈에 띄었다.
‘이선자가 이희서랑 같이 작품을 했었지······.’
‘감나무 아래’에서 이희서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그리고 ‘감나무 아래’는 이희서가 은퇴하기 직전에 찍었던 작품이었다.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저절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연서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이선자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망설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흡연실에는 이선자와 몇몇 스태프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선생님.”
“······너도 담배 피니?”
“아뇨.”
유연서는 담배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자리를 피하진 않았다. 이선자는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한테 할 말 있구나.”
“네.”
유연서가 굳은 표정으로 이선자의 눈을 응시했다.
“우선 제가 ‘인형’때 선생님께 버릇없이 굴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이선자가 대본 리딩때 지었던 못마땅한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무슨 이유인지 유연서에게도 잘 해주려 했는데, 그래도 전에 있던 앙금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어머, 얘. 이러지 마. 이미 다 잊었어.”
“받아 주시는 거죠?”
“사과받았어. 그만해.”
이선자는 꽤 놀라서 입에 문 담배를 뗐다. 유연서가 버릇없이 굴긴 했어도 이렇게 진중한 사과를 받을 정도로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거 사과한다고 나 따라온 거니?”
“사실······ 여쭤 볼 게 있는데요.”
“뭔데?”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얘기인데······.”
이선자가 놀라서 손에 든 담배를 놓쳤다.
“희서······ 말이니?”
“네.”
“얘기해도 괜찮은 거야?”
“네?”
유연서가 되레 물음표를 띄웠다. 이게 무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