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5)
“그래서, 차기작은 정했어?”
“아, 일단 전부 보류해 봐.”
“뭐?”
그렇게 대본을 가져오라고 시켜 놓고서는 갑자기? 이태겸의 나라 잃은 표정을 본 유연서가 웃었다.
“일단 좀 쉬려고. 한 2주 정도?”
“아······.”
이태겸은 곧바로 수긍했다. 결사 촬영장에서 갑자기 급발진한 이후 유연서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으니까.
“푹 쉬어라.”
사실 공백기에는 기억 동기화에 집중할 거라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겠지만, 유연서는 한숨을 쉬었다.
‘쓸만한 정보가 나와야 할 텐데.’
할아버지의 관심이 사라지기 전까지 임승현은 몸을 사려야 했다. 믿을 건 과거의 기억밖에 없었다.
아무튼, 유연서가 쉬면 이태겸도 자동으로 휴가였다.
“너 쉬는 동안 또 게임하러 가냐?”
“아니거든, 박 실장님 따라다닐 거거든?”
“그래? 잘해보던가.”
금방 포기할 줄 알았던 이태겸은 꾸준히 일을 배우러 다녔다. 뭐, 나름 믿을만한 범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니 열심히 해서 종신 노예가 되면 좋지.
“난 간다.”
“들어가라.”
“푹 쉬십시오, 도련님.”
유연서가 집안으로 들어가고, 남겨진 이태겸과 임승현이 밖으로 향했다.
“형님은 쉬는 동안 뭐 하실 거에요?”
“저는 회사 가서 사무일 해야죠.”
“아 맞다. 우리 소속 아니시지.”
하도 같이 다니다 보니 잊고 있었다. 임승현은 대기업 소속의 엘리트였다. 유연서가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임승현은 주성 본사에서 유연서를 보조하기 위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임승현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네?”
“아닙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넵, 들어가세요.”
이태겸은 미련 없이 주차장으로 향하는 임승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 되게 딱딱하시네.”
난 친해지고 싶은데.
***
“안녕하세요.”
“왔어? 앉아.”
유연서가 휴식기에 들어가고 다음날, 이태겸은 회의실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박 실장 옆에 앉았다.
“오늘은 뭐 해요?”
“제작사 미팅. 너 미팅은 처음이지?”
“오, 네. 어떤 배우에요?”
“윤정우,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 조율하러 갈 거야.”
윤정우는 20년 차 영화 배우이자 헤일로 미디어의 간판 배우 중 하나였다. 이 간판 배우에는 당연히 유연서도 들어가 있었다.
예전이라면 투자자도 겸하는 자본 깡패라서 간판이었다면, 지금은 자본과 연기, 영향력을 다 잡은 올라운더였다. 실제로도 유연서 덕분에 헤일로 미디어에 들어오는 작품이 배로 늘었다.
“그래도 오늘은 좀 쉬울 거야. 우리가 투자할 거라서.”
“아 진짜요?”
“유연서, 걔가 눈여겨보던 작품이었거든. 보는 눈은 귀신이니까.”
영화판에서 가장 갑은 투자자 혹은 투자와 배급을 겸하는 회사다. 유연서는 돈이 많아 투자에 쏟는 것에도 망설임 없었고, 그를 아끼는 최유진이 투자배급사를 운영하니 영화판에서는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한 대표가 자존심도 버리고 유연서에게 매달리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유연서가 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헤일로 미디어는 소속 유망주를 끼워 넣을 수도 있으니까.
‘오, 뭐야. 유연서 걔 나름 착했네.’
이태겸이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했던 생각이었다. 상대 배우도 갈아치울 수 있을만한 영향력인데, 여태껏 그러지 않았다는 건 나름 신사적이라는 소리 아닌가?
‘와 내가 무슨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유연서 위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딴생각에서 벗어났다.
아무튼, 지금 미팅 주어인 윤정우도 투자사 하나를 끼고 들어가는 거니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우리 배우님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딜을 걸어야 해.”
“오······ 그렇구나.”
“네가 유연서 담당 실장 되면 엄청 쉬울 거다.”
하지만 박 실장은 유연서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투자자가 제일 갑이니만큼, 갑인 유연서가 변덕을 부리면 뒤에서 바쁘게 수습하는 게 박 실장이었다.
아무리 쩐주라고 해도 제작비를 어떻게 사용할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너무 제멋대로 하는 이미지면 곤란했다. 업계는 좁으니까. 박 실장은 온 힘을 다해 유연서의 이미지를 포장했다. 그래도 새어나간 게 그 정도였지만······.
“유연서, 걔는 요즘 어때?”
“요즘요? 뭐 특별한 건 없는데요.”
“이야, 진짜 걔 매니저 입에서 이런 소리도 나오네. 원래라면 또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깽판을 쳤나 썰이 나와야 할 텐데.”
박 실장은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 그는 유연서가 헤일로 미디어에 입사했을 때부터 그를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유연서가 사고를 칠 때마다 새로 생기는 미팅 자리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생활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도 사고를 안 치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청 나아졌지.’
사고 이후 ‘백호함’에서 갑자기 촬영을 펑크냈었지만, 박호진 감독이 제작비를 많이 까먹지 않게끔 효율적으로 찍는 스타일이었고, 낭비한 시간에 대한 제작비는 유연서가 추가로 투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투자했는데 왜 또 돈을 주냐고 난리 쳤을 것이다.
‘가상 현실’에서 무단 탈주 사건도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건 어쨌든 좋게 끝나서 괜찮았다.
“사실 좀 이상한 게 있긴 했는데······.”
“진짜?! 뭔데?”
“음······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에요.”
이태겸은 최근에 있었던 유연서의 이변을 일단 감췄다. 박 실장은 미팅 자료를 검토하느라 바빠서 추가로 질문하지는 않았다.
“상태야.”
“김 실장, 왔어?”
윤정우가 보통 간판 배우가 아니라서 이번 미팅에는 헤일로 미디어의 다른 실장도 참여한다. 이태겸은 쭈뼛거리면서 일어나 김 실장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얘야?”
김 실장은 묘한 표정으로 박 실장을 바라봤다. 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소문의 유연서 담당이구나.”
“소문이요?”
이태겸은 손을 내미는 김 실장의 악수를 얼떨결에 받았다.
“몰랐어? 너 유명해.”
“야, 김 실장. 잡담 그만하고 일단 이거 좀 봐 줘.”
내가 왜 유명하다는 거지. 그냥 일개 로드매니저 아닌가. 이태겸은 의문을 한가득 안은 채 일단 두 실장의 뒤를 따랐다.
“아, 핸드폰 충전 안 했네. 혹시 보조 배터리 있어?”
“저 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근데 미팅하면 핸드폰 볼 시간 없지 않아요? 왜 충전을······.”
초짜같은 질문에 박 실장과 김 실장이 작게 웃었다.
“녹음해야지.”
“녹음이요?”
“우리나라 영화 계약서라는 게 그렇게 세세하게 적혀있진 않거든. 미팅하면서 전부 구두로 계약하고 수정하는 거야.”
외국인 경우에는 잘못하다간 소송이 들어가기 때문에 계약서가 세세한 편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업계가 좁아서 소송 한번 걸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으니까.
일단 구두로 협상하고, 촬영장에서 최대한 그걸 맞춰주는 형식이었다. 촬영 도중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에 대한 미팅을 또 진행한다. 그래서 녹음기는 필수, 회의록 작성도 필수였다. 실장이 바쁜 이유가 있었다.
“시간 많지? 오늘 미팅 회의록은 네가 작성해 봐.”
“앗, 네.”
자동 반사적으로 대답한 이태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괜히 따라왔나. 그냥 로드만 뛰어도······ 그렇게 생각한 이태겸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근데 이런 게 많이 있어요?”
“이런 미팅 자리? 한 작품에 한 3,40번 할걸?”
“와······ 그렇게 많이 해요?”
“많이 할 수밖에 없어. 조율할 게 많으니까. 로드가 현장에서 배우 지키는 동안 실장들은 제작사랑 계속 딜 하면서 배우 지키는 거나 다름없지. 너도 보면 알아.”
그들이 미팅 장소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미리 와 있는 제작사 쪽 직원과 인사하고, 바로 미팅이 시작됐다.
“요구하신 대로라면 제작비가 좀 더 드는데······.”
“저희가 투자한 거 아시죠? 이 정도는 양보해 주실 수 있잖아요.”
“전에 이건 꼭 찍고 싶다고 하셨는데, 배우 컨디션 어때요?”
“이 부분은 스턴트 쓰시죠? 우리 배우님이 요즘 관절이 아프다고 하셔서.”
박 실장과 김 실장이 요구 사항을 말하고, 제작사 직원은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절충안을 마련했다.
“아 그 호텔은 안 돼요, 우리 배우님이 조식 별로라고 했어서.”
“그럼 이곳은 어때요? 여기까지는 가능할 거 같은데.”
“거긴 괜찮아요. 일반룸 2개 아니면 스위트 이상, 아시죠?”
심지어 촬영할 때 머물 호텔까지 깐깐하게 따지고 있었다. 이태겸은 멍하니 앉아 그들의 전쟁을 지켜봤다.
“조금 쉴까요?”
“그러죠.”
숨막히는 협상 끝에 녹음기를 잠시 멈췄다. 두 실장은 거침없었다. 최대한 담당 배우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이끌고 있었다.
‘와 이런 사람을 유연서 걔는 로드로 부려 먹었다 이건가?’
유연서라서 가능했다 진짜. 이태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작사 직원은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는 이태겸을 바라봤다.
“근데 뒤에 분은 누구예요?”
“저요? 아 저는······.”
실장도 아니고 일개 로드 매니저인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태겸이 망설이고 있을 때, 박 실장이 대신 대답했다.
“쟤 유연서 담당이야.”
“진짜요?”
“미리 준비해야지. 걔 맡을 사람은 이제 쟤밖에 없어서.”
제작사 직원의 놀란 반응에 이태겸이 되레 몸을 움찔했다.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어디 인터넷에 떴나?
“와, 소문의 그 매니저? 반갑습니다.”
“네?”
“유연서 씨, 전에 일하던 매니저 다시 불러들인 뒤로 멀쩡하잖아요. 그 매니저가 이분 아니에요?”
“어······ 전에 일하다 다시온 건 제가 맞긴 한데.”
이태겸이 얼떨떨한 듯 제 볼을 긁었다. 박 실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을 보니, 이미 제작사 직원과 친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얘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봐?”
“그 배우, 몰라보게 달라지긴 했잖아요.”
“그랬지. 나도 가끔 놀라거든.”
“매니저도 유명해요. 무슨 수완을 부렸기에 그 미친놈······ 아 죄송, 그 트러블 메이커가 얌전해졌는지.”
여기서도 미친놈인가요. 이태겸이 허허 웃었다.
유연서의 성격이 바뀐 원인을 찾다 보니 원래 돌아오는 법이 없었던 옛 매니저가 복귀했고, 금방 다른 매니저로 바뀌어야 할 사람이 계속 같이하고 있으니······ 혹시 매니저가 잘 컨트롤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게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다 보니 부풀어진 것이다.
“저는 한 거 없는데······ 걔 요즘 괜찮아 졌어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태겸은 유연서를 변호했다.
“근데 유연서 배우님은 개런티 깎을 생각 없대요?”
“걔? 그럴 일 없어. 근데 개런티 얘기는 왜 나와?”
박 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속사 입장에서 출연료가 센 게 좋았다. 유연서 정도라면 그래도 되는 배우고.
“아니, 아무리 투자를 겸한다고 해도 정해진 제작비 내에서 줘야 하니까······ 그리고 한 배우 출연료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면 저희도 애로사항이 많거든요. 추가 제작비를 투자한다고 해도 다시 조율해야 하니까 좀 귀찮고······.”
“개런티 낮추면 작품도 많이 들어오겠죠?”
“많이 들어오죠. 저희로서는 더 싼 배우를 선호하거든요. 될만한 작품에는 진수호 급도 개런티 낮추고 들어오는 편이고······ 근데 유연서, 그분은 낮출 일이 없으니 좋은 작품 많이 놓치지 않아요?”
지금도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여기서 더? 이태겸이 생각에 잠겼다. 요즘 걔가 퇴짜를 놓는 작품이 많아지긴 했지.
박 실장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유연서가 관심을 보이던 작품 중, 투자자가 이미 확보되어 있고 괜찮은 IP를 가진 작품이라면 유연서보다는 출연료가 낮은 배우를 선호해서 캐스팅이 불발된 일도 있었으니까.
“제가 한 번 물어볼까요?”
“네가?”
“네.”
이태겸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유연서는 설득이 가능한 인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