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614)
제614화
#614.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기울어버리는군.
시끌벅적하던 드웨인의 귀화 소식이 한미 양국에서 모두 해프닝으로 취급받을 즈음 한국 헌터계는 오랜 다툼을 멈추고 이견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소상엽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럼, 한국 나가 공격대 참모 대표단은 이렇게 확정 짓겠습니다.”
업계에서 슬레이어는 모든 티어 길드가 라이벌로 여겨 공동의 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일반적인 헌터와 중소 길드 사이에선 경탄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즉, 모두에게 먼 존재라는 뜻.
하지만 그건 사문혁과 최도유 시대의 슬레이어가 가진 이미지였다.
최근까지 슬레이어는 성선제가 최도유를 제치고 차기 길마로 인정받으면서 사문혁이 길드 대소사를 맡기고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고, 최도유는 은퇴에 가까운 은둔 생활을 이어가게 했었다.
성선제는 앞선 두 사람보다 융통성이 있었기에 점진적으로 타 길드와의 접촉면을 확대했다.
그 덕분에 길드들은 슬레이어에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협력하는 공생 관계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사문혁 길드장이 다시 전면에 나서고 최도유 부길마가 복귀하면서 경계가 높아졌지. 그때 소상엽이 성선제의 역할을 대신해 나가 전쟁에 합류했다.’
강무혁은 각 길드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소상엽을 보면서 미스터 조의 보고서를 떠올렸다.
그가 부탁했던 슬레이어 원정대 인원의 최신 근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원정대는 예전과 달리 적당히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어.’
여기서 ‘적당히’란 표현은 원정대 전원을 소집하는 게 아닌 파티별로 나뉘어 다른 공격대를 지원한다는 업계 은어였다.
슬레이어와 같은 티어 길드, 아니 한 국가의 최고 길드 원정대가 이런 식으로 쪼개서 운영되는 건 극히 드문 사례였다.
‘구심점을 잃어서인가?’
현재의 슬레이어 원정대는 어디까지나 성선제가 만든 작품이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던 주세아를 올리고, 너무 평범해서 원정대 헌터라는 데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소상엽을 원정대장에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도 모자라 기존 원정대 인원의 8할을 교체하는 대개혁을 통해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길드 내외부에선 성선제가 최도유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에 지나치게 골몰에 기본을 잊었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성선제의 원정대는 역대 최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런 호평은 주세아가 퇴단한 뒤에도 쭉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지. 소상엽 대장이 있는 한 모래알처럼 흩어질 린 없다.’
그렇다면 최도유의 농간이라고 봐야 할 터.
성선제에게 밀려났던 데 대한 복수라고 봐야 하겠지만…….
‘소상엽 대장을 한국 참모 대표단의 책임자로 올린 걸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단 말이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슬레이어의 새로운 체제와 교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무혁이 느낀 최도유는 그런 소인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도유가 벌인 과거의 행적이야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니니 뭐라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현재의 그는 누구보다도 능력 있는 헌터이자 부길마였다.
그를 겪으면 겪을수록 강무혁은 성선제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인물을 꺾었다는 게 성선제의 대단함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증거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강무혁의 상식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부길마라는 유리한 고지, 슬레이어를 반석에 올리는 수완, 휘하 헌터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얻어내는 카리스마, 압도적인 인력풀…. 어느 면을 보더라도 당시 성선제 팀장을 능가했다는 게 팩트야. 그런 최도유 부길마를 이기는 건 확률적으로 극히 희박해.’
일부러 져준 게 아니고서야…….
‘!!’
강무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가리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당황한 표정을 주변 헌터들에게 들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까진 숨기지 못했다. 일순 소상엽과 시선이 얽혔다. 강무혁은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다행히 소상엽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간혹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온다. 이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무혁은 자신도 모르게 열어선 안 되는 문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방금… 자물쇠를 풀어버린 건가?’
그 자물쇠의 키워드는 ‘사문혁’이었다.
‘난 지금까지 최도유 부길마에게만 집중했었다.’
우중도의 비사도 그렇고, 도시 괴담처럼 쌓인 그의 행적들.
티어 길드는 모두 그를 경계했다. 그리고 그 저변엔 두려움이 있었다.
일본 헌터계도 역시 한국 헌터계에 개입할 때 가장 꺼리는 게 최도유였다.
지금까지 강무혁은 그들이 슬레이어를 경계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확히는 최도유가 슬레이어에 있을 시절부터 일본 헌터계의 공작이 현저히 줄어들었었다.
‘그래서 ‘최도유’라는 이름 석 자에만 골몰했었다.’
그다음으로 집중한 건 성선제.
그는 슬레이어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인물이었다.
간단히 사문혁과 최도유, 성선제를 역사에 빗대자면, ‘태조 이성계-태종 이방원-세종 이도’로 이어지는 계보와 유사한 면이 많았다.
실제로도 과거 언론에선 그런 비유를 즐겨 쓰기도 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태조였다. 그가 왕조를 열지 않았다면 태종도 세종도 없었을 테니까.
사문혁은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슬레이어의 후계 구도에서 최도유 원톱 시절일 때에도 그가 성선제 체제 때처럼 길드 일에 아예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무언가 개입이 있었고 그것이 후계자 승부에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다.
‘아니야. 그건 너무 나간 억측이다.’
강무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까지 나가는 건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의문이 남기 때문이었다.
사문혁은 왜 최도유라는 걸출한 후계자를 두고 다른 후보를 데려와 경쟁시켰는가?
‘최도유가 부족해서? 그럴 리가 없지. 길드장의 능력과 품격 면에서 현시점 최고는 분명 최도유 부길마다. 안타깝지만, 주세아 길드장님조차 그건 따라가지 못해.’
만약 주세아가 최도유만큼의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면, 강무혁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성선제는 이제 갓 원정대장에서 전략팀장으로 영전한 애송이였다.
원정대에서 역대급 실적을 올린 성선제를 애송이라 부르는 건 어폐가 있겠지만, 사문혁이나 최도유의 경력에 비한다면 분명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분명했다.
최도유와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마나중독증으로 활성화된 두뇌는 지금까지 얻은 정보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해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생각을 떨치려 해도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기울어버리는군.’
강무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열어버린 문 안에 있는 어떤 진실을.
‘최도유는 길마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 전제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최도유가 소상엽을 밀어주는 이유.
‘부길마는 지금 성선제 팀장을 대신할 새로운 후계를 키우는 거다.’
그때 경악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소상엽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강무혁 단장님, 이번 전쟁에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차석 참모 자릴 드린 거니까요. 성선제 팀장님께 하셨듯이 의견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씀해주십시오.”
강무혁은 소상엽의 한마디로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도 자기 위치를 알고 있다.’
자신이 성선제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감 넘치는 표정, 강무혁이 내민 손을 가볍게 쥐면서도 의지가 느껴지는 아귀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무혁은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지도 편달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죠. 오히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소상엽 원정단장님.”
‘원정대’에서 ‘원정단’으로 격상한 최대 규모의 한국 정예 헌터 부대는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 * *
한국 나가 전쟁 원정단의 참모진은 전쟁에 앞서 작전을 조율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중·일 3국 원정단은 도쿄에 모여 원정군을 출범시킬 예정이었다. 원정군은 총사령부를 차리고, 3개국 참모진이 합류할 계획이었다.
한국은 슬레이어 길드의 소상엽 단장을 필두로, 현역 티어 길드 마스터 중 가장 젊은 용잡이 길드의 전예성이 수석 참모를, 그리고 이번 원정군의 유일한 일반인인 아이언윌 길드의 강무혁이 차석 참모를 맡아 진용을 꾸렸다.
그 밖에도 각 티어 길드의 전략팀장과 부길마가 참모진에 합류했다.
명실공히 한국 최고 정예 전력을 움직일 만한 포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선 강무혁이 예상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강무혁 참모님 말씀대로군요.”
동북아 3국의 쟁쟁한 헌터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소상엽은 스스럼없이 우측에 앉아 있는 강무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일본과 중국의 헌터들은 일반인이 헌터들이 있는 자리에 끼어든 것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몇몇은 은근한 압박을 줄 정도였다.
그런 시선을 무마하기 위해 소상엽은 일부러 더욱 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강무혁이 주눅 들지 않고 활약할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주변의 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강무혁은 일본 원정단 대표를 쳐다봤다.
‘요시무라 겐.’
대전쟁의 영웅이자 헌터계의 살아있는 화석.
그가 일본 원정단장으로 나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늙은이가 총사령관을 맡는 데 동의하시는 겁니까?”
요시무라가 사람 좋은 옆집 할아버지 얼굴로 허허 웃고 있었다.
그가 나서자 원정군의 톱자리를 노렸던 중국조차도 함부로 반대할 수 없었다.
중국의 전력이 가장 강했으나 대전쟁 시기 영웅의 체면과 경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이는 중국의 대전쟁 참전 원로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요시무라 겐이 대표로 나설 줄이야.’
중국 측 대표단에 앉아 있는 자오커지는 착잡한 입맛을 다셨다.
그도 요시무라가 일본 원정단장이 되는 경우의 수를 고려했었다. 그래서 요시무라에 걸맞은 경력을 지닌 황룡 길드의 은퇴한 장로를 내세우는 방안을 올렸다.
하지만 위에서는 장로에게 제안하는 시늉도 없이 반려했다.
표면적으로는 평생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은퇴한 장로를 위한 배려라고 했으나 자오커지는 그러한 점잖은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로를 위시한 원로원이 길드 일에 관여할 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거겠지.’
원로원은 나이가 들어 기량이 떨어져 은퇴한 헌터들의 집단이었으나 어쨌든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쌓인 나이만큼 연결된 인연도 많다는 뜻.
이를 바탕으로 한 그들의 영향력은 황룡 길드 내부에서도 좀처럼 따를 자가 없었다.
이건 S랭크인 비원쥔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그들만의 힘이었다.
자오커지의 한숨이 더해지는 가운데 80대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 있는 요시무라의 목소리가 회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가 전쟁의 기본 전략을 수립해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