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자리에 앉다 탁자 위에 펼쳐진 붉은 청접장을 본 남궁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허.”
불쾌한 웃음.
“소자가 불민하여…….”
남궁문결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찌 네 잘못이겠느냐? 고개를 들어라.”
그러고는 무심한 눈으로 청접장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래, 어떤 방도를 생각하고 있느냐?”
“당장 떠오른 건 두 가지 방도입니다.”
“말해 보거라.”
“첫 번째는 황보세가와 정략적 결혼을 통해 세 가문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 가문의 결혼 동맹에 본가도 끼어드는 것입니다.”
남궁문결의 말에 남궁기의 눈가에 주름이 그려졌다.
“다른 방도는 없고?”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해도 그럴듯한 명분이 없습니다.”
“흠.”
남궁기는 신음을 흘렸다.
남궁문결의 말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
“가주님. 총관입니다.”
“들라.”
총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좀 알아보았는가?”
“급한 대로 알아보았습니다.”
“일러보게.”
“이름은 야현. 무림인은 아니옵고, 정이품 황명비호특무도어사직을 위임하고 있는 관인입니다. 황명비호특무도어사직이라는 것은 황제의 명만 따르는 특별직으로 관부 쪽에 알아본바 황제의 신임이 매우 두터운 자라고 하옵니다.”
“나이는?”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스물 중반쯤 되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거주하는 곳은 북경 내 진경 지구라고 하옵고. 그 외에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알았네. 수고했어.”
총관이 나가고.
“관인이라, 관인이라…….”
남궁기가 중얼거렸다.
“뜻하지 않은 인물이로구나.”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생각을 마친 남궁기가 남궁문결을 쳐다보았다. 그도 생각을 마친 눈치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일단 아버지께서 그를 만나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자를?”
“현재 이 결혼이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의도된 산물인지. 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자인지 일단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마시게 되었구나.”
남궁기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별다른 이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남궁 전대 가주가 남궁세가를 떠났습니다.”
월영이 보고했다.
“전대 가주?”
“그렇습니다.”
“은퇴했다고 하지 않았나?”
“가주직을 현 가주에게 넘겨주었으나 금분세수(金盆洗手)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언제라도 강호에 출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가 은거를 깨고 나온 이유는?”
“주군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월영의 딱 부러지는 대답에 야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독고결과 갈위가 화이트 기사단의 힘을 빌려 살문을 일통한 후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자 하오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웅크렸던 몸을 활짝 폈다. 아니, 오히려 공격적으로 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황보세가는?”
“당혹해하고 있지만, 남궁세가와 달리 어떠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단 말이야.”
야현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흑사에게 맡긴 일이니 어련히 잘 풀어 갈까. 동태만 잘 살펴.”
“예, 주군.”
“그리고 마교 쪽은?”
“감숙과 청해, 신강에 하오문 지부가 빠르게 복구되고 있습니다.”
“마풍각도 알겠지?”
“지금쯤 알고 있을 겁니다.”
“백월단과 적랑단, 그리고 마법단을 준비시켜. 마풍각과 부딪치는 순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게.”
“명!”
월영과 함께 자리하고 있던 흑오가 복명했다.
“그리고 오늘이지? 백문대전.”
야현의 물음.
“지금쯤 개전되었을 겁니다.”
흑오가 대답했다.
* * *
마풍각주 곡사무가 집무실 안을 서성이다가 벽에 걸린 마교의 영역이 그려진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중에서도 신강에 표시된 붉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오문의 지부들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롭게 늘어나는 점들.
눈가를 찌푸리고 있던 곡사무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너무 신중했었어.”
평소 보이지 않던 차가움이 눈동자에 담겼다.
“하오문 따위가 본교를 어쭙잖게 볼 줄은 몰랐군.”
“부르셨습니까?”
그때 백마대주 마검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왔는가?”
곡사무는 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그를 탁자로 안내했다.
“차라도 한잔 하겠나?”
곡사무는 마검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차를 준비해 내왔다.
“저기 붉은 점들 보이지?”
“그렇습니다.”
“하오문 지부들이야.”
“의외로 수가 많군요.”
솔직히 마검자는 곡사무와 같은 책사가 아닌 순수한 마인이다. 그렇다 보니 정치나 세력 판도 같은 건 잘 모른다. 그냥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한 것이다.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곡사무의 말에 마검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이놈들이 겁을 잊은 모양일세.”
그 말에 마검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적당히 숨어서 눈치를 보면 나도 적당히 눈 감아 줄 텐데. 몸을 사리지 않는단 말이지.”
“당한 게 있는데 적당히 숨는다고 봐준다는 생각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 말도 맞네.”
곡사무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하오문 몇 개만 정리해 줘.”
“몇이나 지우면 되겠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백마대가 오십이니 다섯으로 나눠 일단 신강에 있는 것부터 정리를 하고 싶은데…….”
마검자의 눈두덩이 꿈틀거렸다.
“하오문의 꼬리가 안 잡혀.”
마검자의 경직된 표정을 보며 곡사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고.”
“그래도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그래도 이해해 주게. 자네나 백마대의 체면도 있으니 둘로 나눠 일단 두 지부부터 정리를 해 보게.”
“깡그리 지워 버리겠습니다.”
“아, 아! 아니야. 그러면 안 돼.”
곡사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지를 저었다.
“수뇌는 살려서 데리고 와야 해. 알아볼 수 있는 건 알아봐야 하니.”
“그리하겠습니다.”
“차 식네. 마시게.”
이야기를 마친 곡사무는 반쯤 식은 찻잔을 들었다.
* * *
땡땡땡.
나른한 오후.
다급한 종소리가 야풍장에 울려 퍼졌다.
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주실을 나갔다. 때를 맞춰 흑오가 빠르게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신강에 위치한 하오문 두 지부에서 특급 경계령인 적색 신호가 왔습니다.”
서방에서 마탑의 마법 병단 소속 흑마법사들이 대거 파견되어 왔다.
통신구를 이용한 통신.
무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연락 체계였다.
그리고 또 하나.
야풍장과 지부를 잇는 워프 게이트 진.
야현은 흑오와 함께 야풍장 장주실 좌측에 만들어 놓은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용도야 대연무장이지만 세간에 노출된 야현의 신분이 관인인지라 드러내 놓고 연무장으로 꾸미지는 않고, 형식적으로 나무 몇 그루를 심어 놓고 땅을 편편하게 다져 무늬만 정원인 곳이었다.
밝아야 할 대연무장은 어두운 검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빛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는 뱀파이어를 위한 전용 흑마법인 블랙 클라우드 마법에 의한 검은 안개였다.
화이트 기사단, 백월단 전원이 진혈이면 좋겠지만 사실상 뱀파이어 일족에서 진혈은 지극히 소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낮에 전투를 치러야 할 때에 흑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안개의 경계에 흑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우히히히히!”
그 선두에 카이만이 서 있었고,
“충!”
야현이 대연무장에 들어서자 코스카 부단장이 검은 안개에서 나와 군례를 취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독고결과 갈위가 살수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공격받는 지부는?”
“신원 지부와 고차 지부입니다.”
흑오의 대답이었다.
“결, 그리고 위.”
“예, 주군.”
“하명하시옵소서.”
“살수들이 나설 싸움이 아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언뜻 실망감이 둘의 얼굴에서 묻어 나왔지만 야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기에 그들은 뒤로 물러났다.
“카이만, 코스카.”
“예, 주군.”
“우히히히.”
“둘은 신원 지부로 가라. 본인은 고차 지부로 가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흑마법사 한 명과 기사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마법 병단 일대장 래넌이라고 합니다.”
“화이트 기사단 제3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진혈의 하라스라고 하옵니다.”
“새삼 인사할 필요는 없다.”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새로운 얼굴들은 아니었다.
“가자, 피의 축제를 즐기러.”
야현의 나직한 명령에.
“명!”
“명!”
짧은 복명 후.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 * *
척박한 신강 신원에 홍루 하나가 들어섰다.
언제나 새로 들어서고 사라지는 그저 그런 하나의 홍루일 따름이었다.
싸구려 술에 분첩 냄새가 가득한 대낮의 홍루 거리는 한산하다. 그저 생업에 종사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척척척!
그런 홍루 거리에 하얀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들어섰다.
“배, 백마대다.”
신강은 대대로 마교의 땅이다.
신강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이 좋든 싫든 마교와 연관되어 살아간다. 교의 이름은 유지하고 있지만, 종교적 색채는 사라진 마교의 영향력이 신강에 뿌리 깊게 파고든 것이다.
백마대는 간판조차 달리지 않은 홍루 앞에 섰다.
“배, 백마대 고수분들께서 누추한 이곳에 어인…….”
홍루의 주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후덕한 몸집을 가진 주인이 비굴한 표정으로 굽실거렸다.
“그대가 하오문 지부장인가?”
백마대주 마검자가 주인을 내려다보며 고저 없는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참.”
굽실거리던 주인이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허리를 쭉 폈다.
“그렇습니다. 백마대주님.”
여전히 말을 높이고 있었지만 전처럼 비굴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놀랍군.”
마검자는 진심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명에 왔지만, 호기심이 이는군. 무엇이 이토록 하오문을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는지 말이야.”
“그냥 모른 척 넘어가심이 어떠신지요?”
홍루 주인, 하오문 신강지문 신원지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히 말했다.
“모른 척 넘어가 달라?”
그의 말을 되읊은 마검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크하하하하하!”
그러더니 이내 대소를 터트리며 검을 뽑아 지부장의 목에 들이밀었다.
“흠.”
그러나 미약한 침음만 흘릴 뿐 하오문 지부장의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배짱인지 정말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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