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44
EP.144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 1
“우으~ 피곤하다아~.”
밤 사냥이든 뭐든 일단 우리는 축제를 즐겼다.
트레버 마을 특제 닭꼬치라든가, 튀김이라든가.
추운 날씨에 먹으면 몸이 훈훈해지는, 윌커스네 어머니의 비프스튜라든가.
단순하게 먹거리 뿐만 아니라 수인족들이 정성스레 만든 비단 장신구들이나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했고, 개 수인들이 이끄는 눈썰매도 탔다.
게임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수준의 미니게임 정도지만, 이것도 실제로 하니 은근히 재밌었다.
“우와아… 다 젖었어.”
아까 어린 애들과 눈싸움을 실컷 하더니만 수녀복이 푹 젖어 베로니카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굴곡지고 탄력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던 베로니카는 가져 온 가방에서 새로운 옷을 꺼냈다.
“나 먼저 씻고와도 괜찮아?”
“물론.”
“흐흥~ 고마워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베로니카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후, 빼꼼 고개만 내민 그녀는 축 늘어진 은발에서 물을 똑똑 흘리며 내게 말했다.
“약속 잊지마.”
“물론이지.”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베로니카는 싱긋 웃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욕탕에 받아 놓은 물 안으로 참방하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니~”
한참 추운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군 것이다. 그게 꽤나 기분이 좋았는지 베로니카는 성가를 작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방에 앉은 채 그녀의 노래를 듣던 나는 종을 들었다.
-딸랑~!
“부르셨습니까.”
창문 앞으로 검은 날개를 지닌 까마귀 수인 하나가 날아왔다. 난 베로니카가 나오면 마실 따뜻한 술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부탁했고,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문하신 물품을 가져왔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고양이 수인이었다.
차분하게 걸어와 테이블에 셋팅을 해주기 시작한다.
찬 술과 따뜻한 술.
그리고 테이블에 있는 난로에 데워서 먹을 수 있는 안주들까지.
준비를 마친 고양이 수인은 내게 정중하게 인사한 후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죽음은 하나의 거대한 미궁입니다. 길은 여럿이나 나오는 길은 하나이지요.]
“여관주에게 전해. 길 알고 있으니까 쓸데없이 간보지 말고 오늘 밤에 보자고.”
고양이 수인의 노란색 눈이 커진다. 말없이 나를 응시하던 그는 피식 웃었다.
“인간 중에 세상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바로 현자라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조아린 후 그대로 나가버렸다.
다시 홀로 남게 되자 난 그대로 의자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언 앙이어?”
얼마나 명상을 했을까? 다 씻은 베로니카가 나왔다.
물에 빠진 쥐처럼 홀딱 젖어 축 늘어져 있던 베로니카는 안에서 씻고, 머리까지 제대로 말리고 나왔는지 탐스러운 은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타박타박 걸어와 자리에 앉더니 입에 물고 있던 끈으로 머리를 순식간에 묶기 시작한다.
등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가 돌돌 묶여 자연스럽게 베로니카의 머리 위에 자리잡았다.
“넌 안씻어?”
“음… 여자들이 그렇게 머리 묶는 거 보면 되게 신기하단 말이지.”
“응?”
“얍.”
“야!!”
난 베로니카의 머리 위에 있는 은색의 털뭉치를 살짝 잡고 흔들었다. 그것에 따라 베로니카의 몸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그녀는 웃으며 내 복부를 향해 살짝 주먹을 날렸다.
“장난치지 말라고. 정말.”
“아무튼 먹자.”
“넌 왜 안씻냐니까?”
“마법 썼어.”
“기분의 문제지. 기분의 문제.”
“하하. 그건 또 나중에.”
난 테이블을 가리켰다. 적당히 몸을 회복시킬 술과 안주를 보며 베로니카는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 왜 이래? 되게 잘해주는 것 같다?”
“가끔씩은 이래야지.”
“응?”
“휴가 나왔는데도 개고생해야 할테니까.”
내가 따라 준 술을 받아 한모금 마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난 슬쩍 창 밖을 바라보았다.
높이 떠있는 달빛에 비춰진 호숫가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거울과 같은 그 몽환적인 모습에 베로니카의 눈이 살짝 풀렸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저거.”
“말했잖아.”
난 내 잔에 술을 따르고 한모금 마셨다.
“이 땅은 저주받았다고.”
창 밖에 있는 호수의 얼음 안쪽을 본 베로니카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놀란 표정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의 얼음 안쪽에.
수없이 많은 원혼들이 얼음을 부숴버리려는 듯 두들기고 있었으니까.
“가보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왜? 저정도 원혼이면…”
“어차피 가봤자 지금은 의미가 없어.”
난 차분하게 설정을 설명해주었다.
은잠비와 이 마을의 2대 촌장 로발레가 손을 잡은 이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불로불사라는 삐뚫어진 욕망을 위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타락한 연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수없이 많은 실패 속에서 죽어간 원혼들은 산 자에 대한 막대한 증오를 가진 채 명계에 돌아가지 못하고 잡혀 있게 되었다.
“길 잃은 망령을 연구하는 것도 불로불사의 길 중 하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베로니카는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털썩 자리에 앉으며 낮게 신음했다.
“그래서. 저 불쌍한 이들을 저기에 가둬 둔거다?”
“그렇지.”
“그게 이 축제의 밤사냥? 언데드가 나오는 이유야?”
“어? 아니. 저건 저주와는 상관없어.”
밤 축제에 나타나는 언데드는 그냥 이 땅의 저주에 이끌려 생성되는 부산물일 뿐이지.
난 호수에서 미친듯이 얼음을 두드리고 있는 원혼들이 달빛이 사라지자 점점 모습을 감추는 것을 힐끔 보았다.
“그럼 저건 뭔데?”
“보관소. 끔찍한 실험들에 희생되었고, 그나마도 더 써먹겠다고 은잠비가 잡아 둔 망령들을 보관한 일종의 창고지.”
“이거… 쉽지 않겠는데. 교회에 요청해볼까?”
원혼이 하나도 아니고 수천이 넘는다.
아무리 성력이 강한 베로니카라고 하더라도 상대하는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생각보다 저 이벤트는 클리어가 쉽다.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서 그렇지.
거기에 내 첫번째 죽음과 부활을 위해서는 저 원혼들을 명계로 이끌어야 하는 이벤트를 거쳐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저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아니 저걸 보고 어떻게 걱정 안해… 저정도면 교회의 대주교들을 전부 모아도 힘들 것 같은데.”
“에헤이. 거 참. 괜찮아. 괜.찮아. 방법만 알면 쉬운 거니까.”
뚱한 표정을 짓던 베로니카는 결국 내가 따라 준 잔의 술을 홀짝거렸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술을 마시고 얼마나 되었을까?
평소보다 빨리 달리던 베로니카는 아예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얼굴을 비벼대며 만취한 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음. 그만 마셔야겠군.
“현우야아아아~ 안아죠오!”
“아. 예.”
얜 내일 내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이러는지.
난 그녀를 안아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그렇게 침대에 눕힌 후 이불까지 덮어준 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게 기분이 좋았던 걸까? 베로니카는 풀린 눈으로 날 보며 헤실거리다가.
“쿠우우울…”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주사가 애교 좀 부리고 금방 잠드는 수준이라 다행이군.
베로니카가 잠들고 난 후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숨소리만 고요하게 들린 방에 다른 소음이 들렸다.
-똑똑.
“손님. 준비가 되었습니다.”
난 베로니카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아주 깊게 잠들어 있다.
잠꼬대로 입맛을 다시거나. 무슨 꿈을 꾸는 건지 헤죽헤죽거리는게 웃겨서 난 그녀의 볼을 한번 꼬집어 준 후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아까의 그 검은 고양이 수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
그와 함께 간 곳은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나와 베로니카가 머무는 방의 바로 앞에 있는 방이었으니까.
내가 머무는 방 만큼이나 화려한 방에는 이미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여관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난 의자에 앉았고, 내 앞에 앉은 고양이 수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두개의 노란색 눈 중 오른 쪽 눈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현자님을 뵙습니다. 트레버 마을 13대 촌장이며, 피닉스의 주인이고.”
“……”
“죽음을 보는 자. 바론 남작이라고 합니다.”
조인족의 위대한 주술사.
하지만 나이 탓에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자신의 제자의 몸을 빌려 바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를 마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작. 반가워. 현자다.”
“예. 현자님에 대한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암호를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정확하게 맞는 금액만큼의 물건을 주문하는 건…”
“나 현자야.”
역시 전가의 보도답게 바론은 바로 납득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마을에 찾아 오신 이유는… 살아 있는 자는 마실 수 없는 불완전한 부활의 영약을 얻으시려는 것이겠지요.”
여덟 별의 수호자에서 캐릭터의 죽음은 끝을 의미했다.
일단 죽으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냥 죽는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활할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명계행’ 이벤트다.
그 이벤트를 진행해 명계에 들어가고, 그것이 끝났을 때 불완전한 부활의 영약을 마실 경우 캐릭터는 부활한다.
내가 지금 이 작자를 만나는 것과 이 마을의 저주를 해소하는 것이 바로 그 ‘명계행’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흐으음…”
“뭔가 불편하십니까?”
“아니. 참 쓸데없이 일을 돌려서 한다 싶어가지고…”
사실 ‘첫번째 죽음’은 원래 이런 식으로 깨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할 것 다 하고 나서 캐릭터 하나 죽이면 끝나는.
업적 중에서도 획득 난도가 가장 낮은 업적이다.
하지만, 이게 내 일이 되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죽고 끝! 이럴 순 없지 않은가.
내 나름대로 세운 대책이 고작 이 쓸데없이 긴 이벤트라니.
참나. 별 짓을 다하는군.
게임에서는 부활해봤자 업적도 안주고 보상도 그냥저냥해서 스토리 한번 보고 거들떠도 안본 이벤트였는데 말야.
생각을 마친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바론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선조들께서는 오랫동안 그 영약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오셨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했지요. 그 이유는…”
“이 땅에 있는 저주가 원념이 되어 약의 완성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산 자는 절대로 마실 수 없게 하는.”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요. 예. 맞습니다. 불로불사를 원하던 선조들의 탐욕은 수많은 생명을 불태워버렸고, 그 연기가 저주가 되어 저희의 비원이 완성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자. 그럼 쓸데없는 얘기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가 이 마을의 저주를 해주하면 ‘불완전한 부활의 영약’을 넘길 수 있나?”
“예.”
바론은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바론의 파란 눈이 번뜩인다.
“다만 과거에도 이 땅의 저주를 해주하기 위해 도전하신 분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 모두 죽음의 미궁을 돌파하지 못하고 실패하셨지요.”
잠시 숨을 멈춘 그는 날 똑바로 응시했다.
“현자께선 가능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난 웃으며 대꾸했다.
“나 현자야.”
바론은 말없이 날 응시했다.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다시 떴을 때 검은 고양이 소년의 눈은 다시 노란 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가 나가자 난 홀로 남은 채 술만 홀짝거렸다.
죽음의 미궁이라.
딱히 어려울 건 없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