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84
EP.187 외전 – 그들의 이야기 – 3
저것이 무엇이고, 어떤 힘을 지녔는지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세실 일행은 전력을 다해 마물들과 싸웠고, 결국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커허어억… 허억… 허억…”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마물들을, 특히나 수많은 독 마물들을 잡아먹으며 독을 강화시킨 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장 식스맨은 완전히 중독되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고 있었고 괄테이락이 한쪽 팔을 잃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니.
그렇지만 그들은 저 마물들을 전부 쓰러트리는데 성공했고, 결국 영혼석을 얻어낼 수 있었다.
“어서 사제님을 불러!!”
유적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세실은 다급하게 외쳤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국기사단원들이 움직이고, 새롭게 이단심문관의 수장이 된 올웬과 다른 사제들이 와 에드워드와 식스맨을 돌본다.
그들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세실은 안도할 수 있었다.
“당분간은 나도 푹 쉬어야겠네…”
사이론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한계를 넘어서까지 주술을 사용하느라 몇번이나 피를 토할 정도로 속이 진탕이 되었으니.
적어도 몇달은 요양만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국에 방을 마련해둘게. 편하게 쉬도록 해.”
“고맙네.”
“별 말씀을. 자자. 다들 수고했어.”
“그런데 세실.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사이론의 긴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세실의 손에 들려 있는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 있는 붉은색 보석. 영혼석이 가진 힘을 생각한다면 궁금할만도 할 것이다.
세실은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연구를 해봐야지.”
“공국 혼자서만 연구하기는 힘들것이오…”
한쪽 팔을 잃은 괄테이락이 신음하며 말했다. 그 말대로다. 아까 이 영혼석을 얻었을 때 세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물건이라는 것을.
마치.
현자처럼 말이다.
그러니,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그렇다면 협력해야하지 않겠어?”
세실은 상자를 톡 치고 애써 웃었다.
현자의 유일한 제자를 생각하며.
이제는 새하얀 눈이 머리에 가득 쌓인 것처럼 백발이 성성하지만, 육체는 예전처럼 건장하기 그지없는 왕국의 장군, 레오덴은 백암궁을 걸으며 생각했다.
마왕이 쓰러진 이후로 왕국은 계속해서 성장해왔고, 이제는 다양한 종족들이 왕국과 거래를 요청할 정도로 번영을 이루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종족연맹을 들 수 있으리라.
과거 엘프의 숲에서 벌어진 역병 사건 이후로 전대 여왕은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 많은 이종족들과 협력체계를 갖췄고. 그 수장의 자리를 공고히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국왕에서 은퇴한 후 종족연맹의 수장으로서 대륙의 많은 종족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한참 왕국이 성장세일 때 그녀가 은퇴하여 그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이야기는 분명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이야기일 뿐.
현자의 첫번째이며 마지막 제자로서 무척이나 현명해진 왕국의 ‘붉은 장미’.
루실 에르메이어 여왕은 그녀의 스승인 현자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현명하고 정직하게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왕국의 충신이며, 왕가의 충신인 레오덴 장군은 이제 정말 죽어도 상관이 없을정도로 여한이 없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만은 분명 존재했다.
터벅터벅 백암궁의 복도를 걷던 그는 정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 시녀들과 기사들이 모이고 있었다.
저들이 저렇게 움직인다는 것은, 오늘도 그곳에 젋고 아름다운 여왕이 있다는 것이겠지.
레오덴 장군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 그곳을 향해 걸었다.
“앗. 레오덴 장군님.”
“음.”
이제는 완숙한 노년 장군이 된 그를 향해 시녀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정원의 중앙에 도착한 레오덴 장군은 또다시 차오르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원의 중앙에 앉아 있는 것은 한명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붉은 장미라는 이명이 어울릴 정도로 풍성하고 붉은 머리칼, 상앗빛의 새하얀 얼굴은 신이 만든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붉은 루비와 같은 눈동자에는 언제나 빛이 담겨 있었고, 살짝 얇은 듯한 입술에 걸려 있는 것은 상냥하지만, 약간은 고독해보이는 미소.
이제는 소녀가 아닌, 막 꽃피어난 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여인이 된 그녀는 드레스 위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살짝 테이블에 기댄 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에휴.”
루실을 볼 때마다 마음 속 한 구석에 뿌듯함이 드러날 정도다.
옛날에 루실은 어땠었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 못하는 그런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소녀가 이렇게 잘 자라서 한 나라를 이끌 정도의.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이끌 정도의 아름다운 여왕이 되었다.
왕가에 충성하는 레오덴 장군에게 있어서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능력도, 혈통도, 그리고 외모까지도.
모든 것이 완벽한 그녀가 당최 결혼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레오덴으로서는 그녀가 저렇게 성장하게 만들어 준 은인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지만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거 참.”
십여년 전 창조신의 빛과 함께 베로니카 추기경과 사라진 현자.
만약 그가 있었다면 루실 여왕이 저렇게 계속 혼자서 살려고 했을까?
레오덴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라진 그를 떠올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크흠. 여왕폐하.”
“어머. 레오덴 장군님. 오셨어요? 차 한잔 하시겠나요?”
방긋, 그녀가 웃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밝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아니, 이미 밝아졌다.
벌써 시녀 몇몇이 루실의 미소에 헤롱거리고 있잖은가.
남녀 누구든 미소 한번으로 홀리는 그녀의 모습에 또다시 한숨이 나온다.
저렇게 매력이 넘치면서 왜 결혼을 안하겠다고 말하는 것인지.
“하하. 오늘은 날이 좋지요?”
어색하게 웃으며 레오덴은 루실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옆에 있는 마녀.
루실을 대마법사로 이끌고, 그녀에게 마법적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해가면서 백암궁에 빌붙어 사는 휠로트가 째릿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현자의 소개로 루실의 멘토가 된 그녀는 오로지 루실의 부탁만 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번 같은 얘기로 루실을 귀찮게 하는 자신을 꺼려하는 것이겠지.
만약 루실의 제지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막대한 마법에 갈기갈기 찢겨졌을지도 모른다.
“여, 여. 영감. 탱이. 왜. 왜 왔어!”
“마녀님. 이것을.”
“에헤.헤헤헤.”
레오덴은 품에서 꺼낸 상자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휠로트는 상자를 열어보고 웃었다. 안에 있는 것은 충인족이 만든 벌꿀과자.
여왕벌만이 만드는 로열젤리와 꿀을 이용해서 만든 과자로 한개에 몇십골드는 하는.
귀족들도 어지간해서는 입에 대지도 못하는 귀한 물건이다.
그런 사치스러운 물건을 받자 휠로트는 히죽거리며 입을 다물고 행복하게 그것을 오물거렸다.
겨우 이야기할 틈이 생기자 레오덴은 루실이 따라 준 차를 홀짝거렸다.
“역시 여왕님. 차도 아주 잘 끓이시는군요.”
“후후. 스승님께 배운 것이에요.”
스승.
대륙에서도 강한 나라인 왕국의 수장이 망설임없이 존경을 담아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현자를 떠올리며 레오덴은 쓰게 웃었다.
그렇기에 물러날 수 없었다.
“저… 오늘 이렇게 여왕 폐하를 찾은 이유는, 선왕께서 제가 간곡히 부탁하신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머. 그러신가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모르는 척 하기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할 줄 뻔히 알면서 루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귀여운 모습에도 레오덴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손녀같은 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건 그녀의 행복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레오덴은 가져 온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한장의 그림이었다.
“엘프의 숲에서 장래가 기대되는 인재인 칼츠 로실란테입니다. 뛰어난 마법사이며, 이종족에 대한 편견이 없고. 또한 성격도 좋으며…”
“그렇군요.”
“혈통 역시 나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즐겨하시는 카드 놀이 역시 수준급의 실력을 지녔다고 하더군요.”
“칼츠 로실란테님은 저도 알아요. 예전에 만나 뵌 적이 있거든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놀라는 레오덴에게 루실은 입가를 가리며 생긋 웃었다. 곱게 휘어진 눈매 때문일까?
레오덴은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아. 텃다.
“예전에 스승님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닌 적이 있지요.”
“…아. 예.”
수업이라는 명목 하에 현자는 왕궁 내부에서 가르친 적도 있지만 험한 곳도 많이 데리고 갔었다.
어쩌면, 그때 만났으리라.
“칼츠님이 듀얼을 잘하신다고 하셨는데. 후훗.”
“……”
“스승님께 3턴킬 당하셨지요.”
“…아니 사람의 매력이 그 카드놀이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스승님처럼 현명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현자와 비교하면 곤란하지요.”
“또 스승님처럼 강하지도 않고.”
“마왕을 쓰러트리고 외신 크로노스와 싸운 자를 비교하시면…”
“그 외에도 매력적인 부분은 전혀 없고.”
“…여왕의 자리라는게 꼭 매력이 있어야 상대와 결혼을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후계를 생각하시더라도…”
“에르메이어 가문에 왕족은 또 있을텐데요?”
물론 그렇긴 하다.
선대 여왕의 동생.
그러니까 루실의 이모인 사킨드 에르메이어 백작의 자식들.
모두 현명하고, 뛰어난 미래가 기대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루실이 결혼해 낳은 그 자식만큼의 정통성은 없지 않겠는가.
“저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현자를 그리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등에 하나되어 살아…”
-딸랑.
루실의 옆에 있던 지팡이가 떠오른다.
대마법사인 그녀의 마력에 이끌린 무지개 지팡이의 방울이 소리를 낸 순간 주변에 강대한 마력이 자리잡았다.
“…실언을 했습니다.”
루실은 살짝 눈을 감았다.
“스승님께서는 당신이 있어야 하실 곳.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으로 가신 것 뿐이지요.”
“아무튼. 지금은 없잖습니까. 거기다. 그. 저기. 결혼도 했고.”
“…그렇죠.”
루실의 얼굴에 담긴 옅은 고독이 진해진다. 그것을 보며 레오덴은 한숨을 쉬었다.
“저는 딱히 에르메이어 왕가를 위해서만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폐하의 행복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계속 보는 것이 안타까워서…”
“알아요. 레오덴 장군님.”
루실의 미소에 씁쓸함이 담겼다. 그녀가 가진 넘치는 매력 때문일까?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가 우울해지는 느낌이 든다.
“스승님께서는 베로니카 추기경님을 선택하셨죠. 그리고 저는 일개 제자로 남기로 했고… 알고 있어요.”
그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스승님을 그리게 되네요…”
그녀의 발언에 레오덴은 한숨을 쉬었다.
거 남자가 아내 두명 둘 수도 있지 베로니카 추기경만 데리고 떠나버렸다 그를 원망하며.
“슬슬 티타임을 끝낼 시간이네요. 요새 연구할게 아주 많거든요. 공국에서 연락도 받았고…”
빙긋 웃으며 루실은 축객령을 내렸고, 레오덴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여왕의 업무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왕궁의 지하로 향한 그녀는 몇겹의 보안시설을 통과한 후 그녀의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안에 있는 것은 많은 물품들.
마법의 연구를 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녀에게 보물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루실은 그 중에서 상자 하나를 보았다.
한장의 카드였다.
예전에 현자와 함께 대회에 나가고, 그녀가 패배하자 현자가 복수를 해주겠다며 출전했던 대회.
뛰어난 엘프 듀얼리스트 칼츠에게서 얻어낸 카드인 ‘세계수’를 보며 루실은 빙긋 웃었다.
“루.루.루시.실.여.연구. 해야지.”
“아. 그렇죠.”
카드를 보며 행복해할 여유는 없었다.
휠로트는 평소처럼 말을 더듬으며 히죽거렸다.
“어. 얼마 저. 전에. 치.친이. 마. 말했어.”
“무엇인가요?”
“이. 이상현.상. 사람이. 벼벽을.토. 통과하는.”
“…그것도 연구해봐야겠네요.”
스승은 자신이 차기 현자라 말했다.
그가 있을 때 대륙에 생긴 문제는 모두 그가 해결했었다.
그의 대를 이은 2대 현자가 된 이상. 그가 했던 일은 자신이 맡는 것이 옳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루실은 힐끔 한쪽을 보았다.
몇년 전에 생긴 왕국의 문제도 그녀와 휠로트가 해결했었지.
그 증거를 보며 루실은 작게 신음했다.
저것을 얻은지 벌써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다.
현자가 있었다면 쉽게 알았을텐데.
역시 아직 자신은 부족하다 생각하며 루실은 휠로트와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까지 그녀의 시선 끝에 담겨 있던.
‘손톱만한 크기의 피빛 보석’.
공국에도 하나 있는 ‘영혼석’이라는 보석은 그녀의 연구를 응원하기라도 하듯 조금씩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만나요! 안녕~!